| 인류학에서 유명한 두 여성의 한 사람인 루스 베네딕트는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 국무성의 의뢰를 받고 일본에 대한 인류학적인 고찰을 담은 이 책 "국화와 칼"을 집필했다. 미국인과 다른 일본인, 그들에게 익숙했던 서양인과는 근본적인 이해를 달리하는 일본인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그녀의 일본연구는 단 한 차례의 현지방문도 없이 이루어졌으나 사료와 인터뷰, 각종자료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연구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특수성과 가치관을 올바로 이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차 세계대전중의 일본은 히로히토 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대동단결하였으며 항복을 모르는 호전성, 죽음을 불사하는 저돌성과 불굴의 정신으로 세계에 각인되었다. 국민성이라 함은 완전한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정신적 경향을 말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일본의 문화적 국민성과 그 특징을 인류학적인 고찰을 통해 풀어보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한국인에게도 새삼 새롭게 느껴질 일본인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바탕을 제공한 것이었다. 저자는 일본사회의 전체적 특성을 뿌리깊은 계층제도에 있다고 설명한다. 영구적인 상하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각자의 위치를 적당히 자리매김하는 특성에서 일본의 국민성을 이야기한다. 계급에 대한 천성적인 복종의식과 불변의 순종적 사고는 그 시대 일본인을 설명하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천황에 대한 역모가 단 한 차례로 없이 단일계보로 천황의 가계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역성혁명이 사회변화의 주축이 되었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민족적 차이를 실감케 한다. 그것은 베네딕트의 표현대로라면 "각자 알맞은 위치에서 정해진 길을 가면 더없이 안전하다"라는 일본적 사고와 절제와 은혜로 표현되는 민족성을 납득한다면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메이지 유신은 그들에게는 경천동지의 변혁이었다. 계급적 구조를 타파하고 사회를 일신하였던 그 혁명적 변화는 별다른 국민적 저항 없이 수행되었다. 그 유신으로 인해 일본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신장되었다. 그러한 발전의 뒤안에는 천황과 각하에 충성하였던 "충"의 문화와 지도층의 선진적 깨우침이 있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한 깨우침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충과 은을 더 숭상하였던 도덕적 받침이 근간을 이룬다. 개인의 명예를 위해 절제하며 수치를 절대적 모욕으로 알고 그에 대한 복수를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구조 속에서 요즘도 흔히 접하는 일본인의 할복자살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사회의 주류는 사무라이로 표현되는 무사계급이었다. 칼은 일본인에게 호전적 특성과 개인적 절제의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유교적 특성이 강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들은 호전적이면서도 직접적인 무력을 신봉하였다. 그러나 반면 그들은 은유로 대변되는 극도의 언행의 조심성과 함께 기회주의적인 민족적 이중성을 함께 보여준다. 그들은 숭상하여야 할 이상이 없는 대신에 한 가지의 시도가 실패하면 바로 반대편으로 변화하는 즉각적인 민족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 중에는 광분하였던 민족성이 천황의 항복이후로는 더 없이 순종적이고도 평화주의적인 민족성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민족적 위치에 대한 그들의 오랜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다시금 군국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일본은, 미래 일본의 모습에 대한 베네딕트의 마지막 경고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
| 인류학의 고전이라 일컫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드디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제 책가방 속에서 한 달이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그 내용에 깊이가 있어 다른 책에서 얻기 힘든 것을 새롭게 안다는 의미에서는 재미가 있었으나 단숨에 완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장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구입한 동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역사 공부에 관심이 생기면서 일본을 이해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척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그 선택이 옳았음을 느낍니다. 일본에 대해 알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텍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을 겨우 몇 차례 방문한 경험 또는 사유하지 않은 채 날것의 정보를 조합하여 어설프게 쓴 책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저자는 일본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46년, 그러니까 종전 직후였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이 책의 집필이 이루어진 것은 '아직 전쟁중'인 상황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국敵國에 들어가 연구를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류학의 고전이 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이로 인해 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류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의 서문격에 해당되는 제1장 <연구과제> 편에서, 저자는 현지 조사를 포기하는 대신 취할 수 있었던 여러 방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또는 일본인에 의해 씌어진 방대한 자료(문학, 잡지, 연구논문 등)와 영화, 인터뷰 등 현지 조사를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일본인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연구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 타문화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훈련된 문화인류학자만이 가진 재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막바지이긴 했으나 당시로서는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위촉받았는데, 그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싸워온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른' 별난 나라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적'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적'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가 분석한 주제는 크게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에 대해 매우 심도 깊은 연구 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해야 한다면, 책의 제목으로 풀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이 '국화'와 '칼'입니다. 이 둘은 극단의 상징입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인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것과 같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해하기 힘든 속성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러나 또한(but also)'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양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휘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자세한 내용 요약은 생략합니다. 워낙 유명한 것이라 인터넷에 독후감이나 레포트 떠 도는 것이 많습니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에서 저자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미국이 할 수 없는 것 - 어느 나라에서도 할 수 없는 것 -은 명령으로 자유로운 민주적 일본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러한 방법은 어떠한 피지배국에서도 지금까지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은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법률의 힘으로 일본인에게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계층 제도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알맞은 위치'를 무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p.382) 지금의 부시 정권이 다시 읽어봤으면 하는 구절입니다. 슬슬 출근 준비를 할 때가 다가 옵니다^^ 이쯤해서 마무리하지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다 보고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정작 책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보다 오히려 손가락에 관심이 갔습니다. 바로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 방법론입니다.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수많은 자료들 속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내용을 끌어내는 능력 또는 그 방법. 이것을 실현해 낸 저자가 존경스럽다는 것입니다. * 참, 이 책을 읽으실 때는 책 말미에 부록으로 들어있는 이광규 교수의 해설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 책이 씌어진 배경과 의의, 그리고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개관을 쉽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패전>연구과제>국화와> |
| '국화와 칼'을 다 읽기까지는 2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일본과 미국이 전쟁 중일때, 미국 측에서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저자) 에게 '일본에 대해 연구해달라'고 부탁하여 출판된 책이다. 빠른 정보통신과 매체가 없던 그 시기에 미국은 자신들과는 동떨어져있는 동양의 적,일본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화와 칼'을 읽는다고 해서 '현대의 일본'이나 '일본의 시대적인 유행'같은 것을 알수는 없다. 이 책은 다분히,'일본과 일본인'들의 고유적인 심리와 정신을 연구한 책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과 한국은 정말 비슷한 점이 많구나.'라고 느꼈다. (2번째로 읽게 된다면 느낌이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일본의 '천황'제도만 빼면 거의 모든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서양인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받고있다. 서양인이 이해하기 힘든 '나라에 대한 충의 정신'(목숨도 기꺼이 국가에 바칠정도의...),'효의 정신','은혜를 갚으려는 정신' 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책이다. 단점이 있다면, 이 책의 동기자체가 '연구,파악'이 목적이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점. 해석 관계상,긴 문장도 많아서 읽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쨌든 소설처럼 가볍게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니까. 하지만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더라도,일본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일본관련쪽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읽으면서 여러가지를 배울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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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 직전 패전국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처분이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고민이었다. 동양의 군국주의 국가인 일본에 대해서는 군사적인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미 국무성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과 일본인의 행동에 관한 연구를 의뢰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 당사국인 일본에 미국의 인류학자가 들어가서 연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스 베네딕트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일본영화, 소설과 잡지 등 문서, 그리고 일본군 포로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그의 연구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국화와 칼>이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다른 꽂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가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며 고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벚꽃보다 더 좋아한다. 국화와 같은 심성을 가지고 예의바르고 겸손한 일본인들의 내면에는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제목 <국화와 칼>이 가지는 의미이다.
서로 정반대의 상징성을 가진 국화와 칼은 전통적인 일본인의 심성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이후 급속한 근대화, 군사대국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라는 것을 사실 저자는 간과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의 전통과 문화의 속성을 대체적으로 정확히 꿰뚫고 있다.
동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문화적 특색들을 잘 집어내고 있는데 그 중에는 유교적 덕목인 인仁, 충忠, 효孝에 관한 통찰이 있고 일본인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민족성 중의 하나인 은혜恩惠는 일본인의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 속에서 그 실례를 포착하였고, 의리義理는 일본 사회 전체에서 포괄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강한 민족적 응집력의 한 원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과 일본사회에서만 통용되는 사회적 관념과 일본에서 유달리 강조되고 있는 도덕적 윤리관과 국가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분석하였다. 또한 서양인이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개념인 인정人情, 덕德, 수양修養 등에 관해서도 철저한 분석을 하였다.
저자는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일본과 일본사회를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 <국화와칼>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너무나 철두철미하게 꿰뚫어 보고있다. 다만, 일부분에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느 문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일본인만의 고유한 특성인 것처럼 특정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일본연구에 대한 지나친 집중화의 결과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서양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포착한 동양적 혹은 일본적 관념에 대해서는 투철하고 심도 있는 분석을 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45년을 전후하여 전쟁에서 패한 일본과 일본인을 연구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은 탁월한 저서이다. 지금은 당시와 많은 변화가 있지만 당시의 일본사회를 정확하게 통찰한 이 책은 이후로 미국의 일본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세계를 휩쓸었던 세계대전의 한 축이었던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서양의 인류학자가 바라본 동양의 강대국 일본'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은 뚜렷한 시대성을 띄고 있고 저자의 업적 또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 국화와 칼은 일단 서양인이 보는 관점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서술되었다는 점에 있어 끌릴만 하나 그것은 책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동기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요새는 무조건 일본 것은 좋다는 식으로 규정되어져 버린 듯한 서양 사회의 흐름과는 반대로 일본이란 나라를 아주 객관적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니게 해 준다. 이 책은 미국이 히로시마의 섬광과 함께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자로 기억되기 전, 일본이라는 땅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파헤치기 위해 미 국무부의 위촉을 받은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서양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동양의 많은 부분을 저자가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사회의 흐름과 다른 동양 사회의 흐름, 그리고 동양의 나라들 혹은 우리 나라와 아주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책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지만, 그것은 정말 감탄할 만한 관찰력과 통찰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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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를 상대로 외교 업무를 할 때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이다. 즉, 타국을 이해하려고 하면 자기 민족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그 나라 사람들의 견해가 어떠한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 또한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갖고 쓴 책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인들은 그들의 적국인 일본과 싸우면서 자신들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들의 행동에 당황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인들의 문화적 습속을 연구할 필요성을 느껴서, 작가에게 일본 문화에 대한 연구를 의뢰한 것이다.
전쟁의 종료 후, 미국은 패전국인 일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어떤 전투에서는 포로와 전사자의 비율이 1대 120이 될 정도로 항복을 거부했던 일본군의 모습, 죽을 때까지 죽창을 가지고라도 싸우겠다는 그들의 행동은 서양인의 사고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호전적인 그들이 과연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겠는가에 대한 우려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미국의 우려와는 전혀 달리,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바로 인정하고, 오히려 호의적으로 미국을 맞아들였다. 미국인들은 이에 어리둥절했지만, 일본인들은 그들의 습성 그대로 행동한 것뿐이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명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이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대국이 존경을 받는 것은 무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서양인이 이해할 수 없는 극렬한 방법으로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한 후 그들은 침략이 명예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사정에 맞추어 새로운 진로를 찾아가게 된다. 이후 일본은 국가 지위 획득 방법을 전쟁에서 경제성장으로 바꾸게 된다.
다른 일본인들의 특성은 온, 기리, 기무로 나타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은혜라는 말에 해당되는 온(恩)을 우리의 사고 방식으로 해석하려 하면 온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인에게 있어 온이란,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로써 사람이 할 수 있는 한의 힘으로써 질 수 있는 부담, 채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남에게 신세를 지면, 그것에 대해 고마워할 뿐 꼭 보답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런 온을 입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지나친 신경과민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일본인에게는 미덕으로 통한다. 온의 반대 의무로는 기무(義務)가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 갚을 수 없는 의무를 말한다. 기무는 효와 충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일본인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는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기무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 것에는 기리(義理)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기무와는 달리 무한정한 것이 아니다. 기리는 일종의 답례로서 계약의 이행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즉 받는 것은 그만큼 돌려준다는 일본인들의 속성과 잘 맞는 의무 이행이다.
이런 일본인들의 모습이 오늘날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같기도 하다. 일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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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의 메타포를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내는 두 단어가 있을까? 지리적으로는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매우 먼 나라가 바로 저팬이다. 같은 이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우리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 즉 겉으로 드러난 표정[다테마에]과 속마음이[혼네] 반대되는 이러한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아이러니는 속속들이 파헤친 것이 바로 이 서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이 도서를 집필한 동인은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행한 것일뿐-- 단 한번도 일본에 간 적이 없었단다. 아니, 어쩌면 이런 객관적인 위치에 있었기에 아무런 편견없이 연구를 끝낼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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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어떤 책보다 일본을 잘 분석했고... 일본에 대해서 가장 냉정하게 평가한 책이라 생각한다.
국화와 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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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은 유명한, 이미 명저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아마도 라이샤워의 <일본제국흥망사>와 함께 서구인의 일본에 대한 2대저작일 것이다. 이책은 역자 서문에도 나와있듯이 단순한 일본견문기가 아닌 학문적 노작이다. 즉 문화인류학이라는 방법론에 의거하여 평균적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틀을 밝힌 책이다. 이책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가 한번도 일본을 방문한적 없이 책을 썼다는 사실인데 오랫동안 눌러산 경험이 없다면 자료를 통해 서술하는 것이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책이 명저나 고전에 속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번역의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미 1974년 을유문고로 국화와 칼이 출간되었는데 이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완역판이라 했으므로 내 생각에 을유문고로 선보인 처음의 번역을 그대로 쓴게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문장이 지나치게 생경하고 영어식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티가 너무 완연하며, 지극히 만연체라서 때로 의미전달에 어려움을 느낄때도 있다. 번역자가 김윤식 오인석인데 둘다 일본전문가도 아니고 영문학자도 아니다. 이건 좀 의아하다. 을유문화사가 재간행을 한다면 마땅히 번역을 새로 했어야하지 않나? 내게 을유문고가 없어서 비교를 못해본 것이니 판단이 틀릴수도 있다. 전체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총론으로 저술 프로젝트의 경과와 일본에 대한 인상이 소개되어있다. 일본인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중성을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12장은 각기 제목을 달아 일본문화를 분석하였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맞는 것도 있고 잘못 해석한 것도 있다.
천황제도에 대해 미국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천황은 실세가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므로 지금 천황의 신성을 부정하고 천황이 인간에 불과함을 밝혀 권위를 격하하면 일본의 통치조직은 붕괴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천황은 초비판적인 존재이며 짧은 시간에 신성화한 일본 그 자체라고 분석하였다.
전쟁중의 항복관 역시 서구의 군인들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항복을 당연시 하는데 비해 일본의 군인들은 죽을때까지 싸우는 것을 명예로 안다고 하였다. 그런 모든 현상의 기저엔 주(忠)와 기무(義務) 기리(義理)가 있다고 보았다. 즉 저자가 일본문화를 분석한 고리는 은혜와 은혜갚음(온), 천황에 대한 온(주),천황이나 조직에 대한 의무(기무), 주군에 대한 의리(기리), 위계질서와 명분 명예, 인정 등이다.
천황이 일본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미국인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본이 항복했을때 아시아와 태평양의 섬에 산재한 일본군이 순순히 무기를 버릴 것으로 생각한 미국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황이 한번 항복을 선언한 그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일본인들이 유순해졌다. 이것이 바로 천황에 대한 주고 기무이다. 일본에 살아보지 않고 일본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다.
그러나 이 문화인류학자는 일본을 접하기 이전에 동양 즉 유교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역사적 이해는 더욱 없어서 조선의 존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아마 알수가 없었을 테지.
문화인류학이 강대국의 산물이며 서세동점과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임을 모르고 읽더라도 이 책은 몇가지 문제점이 자연스레 눈에 띤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같은 유교문화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1940년 당시에도 일본이 여전히 귀족주의 국가였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경어의 사용, 인사예절, 신분에 따른 예절, 엄격한 가정교육, 효도, 씨족제도 등이다. 전근대의 일본사회는 철저한 카스트제도라고 보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신분제를 베네딕트여사는 카스트라고 표현하고 오히려 중국에는 카스트제도가 없다고 하였다. 충효는 중국에서 온 개념이라 말하면서도 의리는 일본적 덕목이라 한다. 그러나 의리 즉 기리를 설명하는 대목은 의리와는 관계없는 관습일 뿐이다. 즉 저자는 義理의리가 성리학의 명분론에서 나온 개념임을 전혀 모르고 있다.
또 일본이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상황적 현실주의를 설명하면서도 기리를 그 이유로 드는데 그에 대한 역사적 근거로 1862년 나마무기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존왕양이운동의 진원지인 사쓰마와 죠슈는 막상 영국과 대척하다가 전투에 진 이후는 표변하여 외국에 대해 우호적 자세를 취하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 이면은 간단하지 않다. 당시 막부와 천황을 둘러싼 근왕토막파와 친막파와의 정치갈등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인데 거기까지는 파헤치지 못한 듯 하다. human feeling이라 번역한 인정(人情)의 문제 역시 서구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러웠던 듯 하다. 온천욕을 즐기는 풍습, 성적 향락, 동성애를 인정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이는 정신과 육체를, 대립하는 이원성으로 보고있지 않기 때문이라하였다.
서양에는 없는 덕목인 충효, 의리의 문제역시 당시의 저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제였던 모양이다. 1945년 8월 일본인의 주忠는 최후의 한명까지 결사항전을 요구했는데 천황의 항복으로 일본인은 그때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정반대로 적에게 협력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이유는 최고의 덕인 충때문인데 이 부분의 서술은 전장에서 태도변화의 이유를 기리로 해석한 것과 약간 모순된다.
저자가 일본문화를 해석한 탁월한 관점의 하나는 죄의 문화와 수치의 문화를 구별한 것이다. 죄의 문화는 양심에 의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남이 뭐라든 양심에 떳떳하면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수치의 문화는 외면적 강제에 의해 행동을 한다. 수치란 타인의 비평에 대한 반응이다. 이것은 바로 체면문화이며 이부분은 한국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밖에 선불교의 참선과 일본인의 자기수양을 혼동하고 있고, 자신의 전문분야나 취미에 빠져 몰입상태에서 완성도와 희열을 느끼는 것 - 무아지경- 을 역시 일본인의 자기수양이라 보았다. 무아의 상태는 동양정신에서 정신통일이라 불리는 것인데 예를들어 검도나 서예를 연습하는 사람이 어떤 경지에 올라 무아지경에 도달하는 것은 그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을 통하여 이르게 되는 것이지 일반적인 자기수양의 방법은 아니다. 또한 이는 주위의 눈길을 의식해서 그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의 결과도 아닌데 저자는 그렇게 보고있다.
무아의 경지를 글자그대로 해석해서 “죽은셈치고”라는 마음가짐과, 같은 철학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내가 죽은셈치고 무엇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없고 따라서 주위의 눈길로부터 자유스러운 상태가 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게 ‘죽은셈치고’노력하면 “숙달”의 경지에 이르고 그것이 “무아”이며 그럴때 수치의 자기감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저자의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아와 숙달은 수치와 관계없는 부분이다.
국화 칼은 어떤 의미인가. 총론에서도 언뜻 비치지만, 국화처럼 고결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꽃을 그토록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한편으로는 마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설에서 이광규씨는 밝히고 있다. 보통 이책을 소개할 때 흔히 소개되는 해석이고 이 대비되는 단어를 통해 일본인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12장에서 저자가 기술한 대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알려진 대로 일본의 정원은 다 인공적이다. 하다못해 돌 하나의 배치도 연못,건물,나무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베네딕트는 이를 “위장된 자연”이라 했다. 그리고 일본사람이 좋아하는 국화 역시 그냥 화분에 심고 보는 것이 아니라 꽃잎 하나하나가 손질되고 정돈되고 심지어 철사를 안에 끼워서 올바른 위치를 지키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화의 본질이다. 자유를 잃고 자신의 내부를 죽이고 주와 기리의 틀속에 자신을 끼워맞춘 일본인의 표상이 바로 국화인 것이다.
칼이란 무엇인가. 신체와 칼을 동일시하는 것이라 한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반짝이도록 항상 갈고닦을 책임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자기책임은 미국보다 일본이 훨씬더 철저하다. 따라서 일본적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성의 상징이 아니라 자기행위에 책임을 지닌 이상적 인간의 비유인 것이다.
국화와 칼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같은 이중성이되 베네딕트의 본의는 다테마에와 혼네가 다른 일본인 이지만 칼처럼 마음을 닦고 책임있는 행동을 할줄아는 일본인이라는 선의의 이중성인 것이다.
저자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2차자료만을 가지고 일본문화를 분석했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이정도의 분석틀을 마련하고 일본을 정확하게 읽은 저자의 안목과 노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모로 닮은점도 많다. 특히 체면과 명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우리는 원래 감정을 중시하는 문화였는데 조선 500년을 거치면서 양반의 체면문화가 한국인의 일반적인 습성이 되었다. 성리학적 충효가 중시되었으나 우리는 충효가 상충될때 일본처럼 충을 우선하지 않고 효를 우선하였다. 공사간의 의리에서 사적인 명분과 의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오륜중에는 부자유친이 우선이었고 조선후기엔 청의 사신을 접대하라는 임금의 명령보다 가문의 치욕이니 못한다는 사의가 우선했다. 반면 일본은 의리를 강조하는 문화이고 천황복고이후 천황이 의리의 중심이 되면서 충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일본은 사보다는 공이 강조되었고 전체주의로 쉽게 나아갈 수 있었다.
한때 일본은 있다 없다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일본에 관한 인상기가 넘쳐나는 지금 서구인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본 이 저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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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와 칼''이라는 책 이름은 그전부터 들어 왔지만, 책을 구입하기 까지는 상당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지금까지 일본을 설명하는 책을 몇권 봤지만, 이 책만큼 일본의 정신과 문화를 꿰뚫는 책은 없는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일본의 망언과 이해할수 없는 언행들에 대해 단순히 일부 인사들의 역사의식 부재, 오만함 등의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 그러한 일본인의 행동과 언사들이 일본인의 사고체계나 문화에 기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앞으로도 일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수 있다. 일예로 WBC에서 이치로가 두번의 한국전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 "굴욕"이라고 말한 것이나 세번째 한국전 이후 "이길만한 팀이 이겼다"라고 말한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세계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알맞은 위치찾기"라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일본야구가 한국야구보다 우월하다는, 따라서 이겨야 하며, 이길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대동아 전쟁에 대해서도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은 알맞은 위치찾기에서 한국과 중국 등을 ''도와준''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일본 전철역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본인들이 전철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지 않는 것은 ''온을 입힘으로서 안게되는 부담''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일본 문화의 틀이 우리와 ''많이 다르지만 그러나 또한'' 비슷한 점도 적지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의리이다. 과거 장세동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국정감사에서 끝까지 전대통령을 비호한 것이나, 이를 두고 국민들이 호감을 나타낸 것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우리는 독도나 신사참배 등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양국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일본의 도발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그래서 우리와의 대립도 게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문화 및 사고의 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발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미국이 썼던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