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기를 알게 된 것은 학과 수업 시간에 그의 작품 '완전한 만남'을 다루면서부터였다. 낯설었던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아마도 '완전한 만남'이 1회 임수경통일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집="">의 방현석이라든지, 이 <완전한 만남="">의 김하기라든지, 작품의 문학적 성취도 여부를 떠나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들이란 점에서 만나볼 필요가 있는 작가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가들을 소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소설을 작품집으로 묶어내는 창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문지와 창비는 우리 사회의 문학을 지탱해가는 커다란 두 축이다.
김하기가 <완전한 만남="">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감옥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도 보통의 감옥이 아니라, 당시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부딪치던, 장기수들의 특사가 그 주요 무대이다. 거기에는 작가가 만났던, '외뿔달린 빨갱이'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실천의 삶을 살아가는 장기수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많이들 북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초등학교 때 각종 반공 포스터라든지, 반공의 표어들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이란 노래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에게 북한은 말로는 '같이 살아야 하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한편 경원해야하는 '원수'이며 '빨갱이'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승복 소년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획일적이며 보수적이었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작가는 그러한 불신의 벽을 허물려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감옥의 체험을 한 뒤에,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작품들을 써낸만큼 그 기억들은 생생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즉 '빨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계 최장의 징역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 그것을 보고하는 김하기의 소설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김하기의 소설은 분명히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개인의 내성을 조명하는 데 게으르지 않다. 그의 작품들 전편에서 보이고 있듯, 그가 그려내는 장기수들은 냉철하고 감정메마른 이데올로기의 화신이 아니라(이것이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말이다), 따스한 정과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과 별반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순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내음 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완전한 만남'에서 "그들은 계급적 기반 위에 튼튼히 서 있으면서도 민족의 정서라든가 화기애애한 가정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을 많이 반성했습니다."라며 '목적의식과 핏줄이 하나가 되고 과학과 감정이 통일되는 만남'을 추구하는 주인공 송춘호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구성상에서의 허술함, 예를 들어 송춘호가 완전한 만남을 이루고자 했으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최악의 만남'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하는 것, 그리고 강일구로부터의 조언 한마디에 다시 "저도 이번 상봉으로 깨달았습니다. 마뜩찮게 열번 백번 만나는 것보다 단 한번이라도 가슴을 열고 만나는 게 모든 걸 풀 수 있는 열쇠라고요."라며 돌아서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또 어머니와의 면회에서 '골백번 죽어도 가족주의적 봉건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멍텅구리'라며 자책하는 모습도 마지막 장면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주의주의에 그쳐버리는 한계점을 갖고있던 주체사상의 한계지점이라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맑스주의에서 출발한 주체사상은 제반 현실의 여건으로 인해 반맑스주의라 할 수 있는 인간 주체를 강조하는 정신주의로 변질됐다는 점, 하나의 거대한 가족 체계로 환원됐다는 점에서 김하기의 소설들은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앞서서 말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적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내성을 다루었던 점은 높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사회 관계의 총체라고 지적한 맑스의 체취는 여기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즉 정신주의, 나아가 일종의 가족주의로 편승해버리는 경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것이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즉 '감정에의 호소'로 인해 다루는 주제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견지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금은 복잡한 문제들은 제쳐놓고서라도, 김하기의 소설은 한번쯤 읽어볼만하다고 권해주고 싶다. 우선 김하기는 그 구성상의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글에 집중하게 하는 재능을 갖고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현재-과거 회상-현재-결말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상당히 영화적인 구성인 것이, 영상 세대인 우리에게 있어 좀 더 친숙한 소설로 다가올 수 있겠다. 그리고 처음에는 편견을 갖고 장기수들을 접했던 주인공이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감화받아 새롭게 결의한다는 내용상의 구성도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 또한 작가의 문체에는 간간히 보이는 거칠은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방언과 속어들을 비롯한 생동감 넘치는 언어들은 시선을 붙잡아두는 끈끈한 맛이 있다. 앞서 계속해서 제기했던 문제점들을 의식하며 읽을 필요가 있거니와, 아직도 너무나 보수 편향의 이 사회에서 작품들이 드러내고 있는 반편향은 그만큼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고 시선을 넓혀준다는 장점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읽자, 그리고 느끼자. 그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주입된 것처럼 '빨갱이'나 '악질'의 냉혈한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도 억제되었던, 경직된 사고의 틀을 이제는 벗어던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인상깊은구절] 모두들 일어나 문어발 흡반처럼 쩍쩍 달라붙는 차가운 쇠창살을 맨손으로 움켜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온 사방을 뒤흔들 듯 노랫소리가 울려퍼지자 눈물이 약속이나 한 듯이 넘쳐나와 분노로 크게 벌린 메마른 입술들을 흥건히 적셔갔다.공동경비구역>완전한>완전한>내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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