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어린 시절, 엄마가 그 말들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 앞에서 말 조심하라고 할 때마다 궁금했다. 해야 할 이야기는 뭐고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뭘까? 이제 성인이 된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는 알고 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남의 뒷담화 또는 비밀 등일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이야기임에도 은연 중에 하지 말도록 강요받아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하지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라는 걸 밝히는 순간 온갖 돌멩이가 쏟아진다. 더 큰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침묵을 강요하며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여겨지며 홀로 고통받을 것을 종용당한다. 김혜나 작가의 소설 《그랑 주떼》에는 무용을 하기에 타고난 몸을 가졌음에도 춤을 추지 못하는 주인공 예정이 나온다. 큰 키, 무용수에게는 축복이라 할 수 있는 발등의 고. 솜씨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텐데 예정은 춤을 추지 못한다. 춤을 추지 못하는 무용수는 날지 못하는 새와 같다. 새가 날지 못하니 날개만 펄럭이듯, 춤을 추지 못하는 예정도 작은 무용소에서 준비 동작인 포인과 플렉스만 알려주는 강사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소설 《그랑 주떼》에서 원장의 부재로 예정이 어린 유치원생들 수업을 도우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애써 숨겨져왔던 이야기들이 먼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그 기억들을 보며 예정은 당황한다. 이 이야기들은 꺼내어져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데... 애써 꾹꾹 억눌러왔던 기억들이 생생해지며 상처 받았던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그 기억들이 떠올리게 하는 건 강력한 질문이었다. ![]() 소설 속에서 예정은 어린 유치원생들이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을 본다. 그들은 예정이 자기들이 발레 수업을 하도록 도와주리라는 걸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걸 도와주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왜 작가는 어린 유치원생들의 수업을 등장시켰을까 의문이 들지만 곧 알게 된다. 유치원생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 받았던 예정을 치유해주기 위해 나타난 존재라는 걸. 어른들이 상처입혔고 들어주지 않았고 없던 이야기로 만들었던 그 떄로 돌아가 자신은 그 아이들의 필요를 도와주며 끝까지 소중하게 대해줌으로 예정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어른들은 그 행위를 자신을 상처입히기에 썼지만 예정은 어린 아이를 도우며 자신이 비로소 한 발짝 나아가게 된다. 춤을 추지 못했던 예정이 어린 시절로부터 벗어나 그랑 주떼, 높이 뛰어오를 수 있도록 하는 걸음마를 비로소 시작하게 해 준다. 그 시작은 바로 예정의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 존재해서는 안 될 이야기들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예정의 그랑 주뗴는 시작되었다. 소설 《그랑 주떼》에서 나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경험담들이 떠올랐다. 은연중에 우리는 위험할 뻔했던 여러 순간을 이야기했다. 나 뿐만이 아닌 여러 친구들이 가까스로 위험을 벗어났던 우리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정작 위험을 피하지 못했던 이들 끝내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걸. 그들 역시 타고난 선천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날지 못했던 예정처럼 그들의 그랑 주떼 역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친구 리사와의 이야기이다. 평범했던 예정을 무용세계로 오게 한 친구 리사. 소설 속에서 나는 리사와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리사가 예정에게 꽃을 주며 아끼며 하는 말. ![]() 함부로 건드리면 부서질까 꺾어질까 조심히 안아주고 끌어주었던 리사의 말은 세상의 상처로 그랑 주떼하지 못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을 안아주며 그들이 '그랑 주떼'를 외치길 원하는 작가의 말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