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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의 피를 흘리며 싸울 것
"가슴의 피를 흘리며 싸울 것" 내용보기
'칼날과 사랑'을 읽고 모종의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어차피 사는 건 그렇고 그런 것'이라며 이모와 이모부의 화해를 마지못해 긍정하는 주인공이, 그럼에도 자기는 '싸우고 살리라'는 '격렬한 전의'를 느끼는 마지막 대목의 생급스러움에 있지 않을까. 결혼 생활에서 여자가 일방적으로 감내해야하는 희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많다. '칼날과 사랑'에서도 등장하는 세 여인(이모
"가슴의 피를 흘리며 싸울 것" 내용보기
'칼날과 사랑'을 읽고 모종의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어차피 사는 건 그렇고 그런 것'이라며 이모와 이모부의 화해를 마지못해 긍정하는 주인공이, 그럼에도 자기는 '싸우고 살리라'는 '격렬한 전의'를 느끼는 마지막 대목의 생급스러움에 있지 않을까. 결혼 생활에서 여자가 일방적으로 감내해야하는 희생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많다. '칼날과 사랑'에서도 등장하는 세 여인(이모, 어머니, 화자) 모두 힘겹고 억울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인데, 어머니에 대해서는 간략한 언급으로 넘어갈 뿐이고 이모인 종희와 화자의 결혼에 대해서 자세한 서술이 있다. 한때 시퍼런 칼날을 가슴에 품었던 적이 있음에도, 이모는 '교묘한 타협'으로서 안주하기를 택하며, 화자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맹렬한 전의로서 자신이 느꼈던 불만과 억압과 싸우기를 택한다. 타협이 아니면 싸움이다는 결론이라면, 좀 어설프지 않은가. 불만이 느껴지지만, 이 작품은 상당히 재미있다. 뒷다마, 혹은 수다의 소설적 형상화는 뒷다마, 혹은 수다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듯하다. 좀더 많은 여성 작가들이, 평범한 독자들이 말로 풀고 있는 경험들을 재미있는 소설로 써주기를 바랄 뿐.

[인상깊은구절]
그는 날 감동시키고 싶어서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표정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앞에는 헤어질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는 한 사내가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사랑이란 뚜렷한 실체가 아니다. 이것은 그렇게 믿기로 작정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추상일 뿐이다. 나이 서른 넷에 불현듯 온 가슴이 저린 사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결혼했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피룡하기 때문에 같이 산다는 믿음이었다. 남편은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슬쩍 나를 돌아보고 그리곤 윙크까지 찡긋 해온다. 나를 평소의 나로 되돌려놓기 위해 애쓰는 그의 노력은 차라리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의 그 애처로운 노력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그냥 사랑이라고 믿어버릴까 잠시 유혹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일들 때문에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믿어버릴까 싶기도 하다. (p.60-61)
c******r 2001.02.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진 자와 빼앗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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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작가 김인숙의 초기 작품을 모아 놓았지만 최고의 작품집이라고 할만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김인숙의 소설 세계는 그녀 나이 또래의 신세대 작가군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보다는 사건과 줄거리를 접목시켜 환경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군상들을 모습을 진지하게 파헤친다는 점이다. 또 그것은 작가가 어린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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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과 사랑>은 작가 김인숙의 초기 작품을 모아 놓았지만 최고의 작품집이라고 할만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김인숙의 소설 세계는 그녀 나이 또래의 신세대 작가군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보다는 사건과 줄거리를 접목시켜 환경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군상들을 모습을 진지하게 파헤친다는 점이다. 또 그것은 작가가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8,90년대를 거쳐 현재에까지 작품 생활을 해오면서 여러 가지 직,간접 경험을 작가로서 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왠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 붕 떠서 자신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김인숙님의 최근작보다는 이미 지나간 세대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하지만 내부에서 이보다 더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도 이 작품은 부합되리라.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차이는 백짓장 하나 차일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대는 작가의 진지함에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창작집이다.
i****3 2003.03.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