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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과 마주할수 없는 어색함....
"오래된 시간과 마주할수 없는 어색함...." 내용보기
한국과 일본은 오래된 도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수 있다. 서울은 600년이라는 긴 시간 한국의 중심으로서 왕도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것은 몇개의 궁궐과 그에 따른 건물들 뿐이다. 그속에 담긴 내용물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호흡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속에는 분명이 사람이 살았고,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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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오래된 도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수 있다.

서울은 600년이라는 긴 시간 한국의 중심으로서 왕도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것은 몇개의 궁궐과 그에 따른 건물들 뿐이다. 그속에 담긴 내용물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6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호흡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속에는 분명이 사람이 살았고, 그들의 흔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그저 눈에 보이는 과거의 유산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비록 서양인의 시각으로 작성되었다는 한계점이 있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 도쿄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그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구분지어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도쿄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일면 부러울수도 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도 하듯이 그저 흘러간것이 아닌 과거는 곧 현재성을 가지고 인간의 삶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근 독도를 둘러싼 우리의 곤혹감은 곧 바로 과거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지 않고 체계화 시키지 못한 오늘의 우리에게 그 책임이 더 많다할수 있다.

 

그저 오래된 도시.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성냥갑같은 건물만을 양산 할것이 아니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도로를 뜯어내고, 겉보기 좋게만 물을 흘려보내는그런 모습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 중심의 도시를 연구해야 할때이다.

 

 

t*****r 2008.07.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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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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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두 책인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김진송의 책이 대중문예잡지를 주된 자료로 삼아 쓰여진 것이라면, 사이덴스티커의 책은 나가이 가후, 다나자카 준이치로,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일본 근대 초기 문인들의 글이나 에도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도쿄를 찾았던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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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두 책인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김진송의 책이 대중문예잡지를 주된 자료로 삼아 쓰여진 것이라면, 사이덴스티커의 책은 나가이 가후, 다나자카 준이치로,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일본 근대 초기 문인들의 글이나 에도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도쿄를 찾았던 서양인들이 남긴 여행기 등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김진송의 책이 비록 그 제목에 '서울'을 포함하고 있지만, 김진송의 관심대상은 '서울'이라는 지리적 범위라기보다 '현대성의 형성'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근대성의 문제이다. 반면 사이덴스티커는 시기적으로 일본의 근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던 메이지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주된 관심은 도쿄라는 도시의 삶이다. 그런데 왜 자꾸 김진송이 1930년대의 경성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떠올리게 될까. 사이덴스티커는 에도 시대 말기, 그리고 메이지 시대의 도쿄의 풍경에, 그리고 오종종한 목조 건물에 살림을 꾸렸던 도쿄의 쵸닌들의 삶의 결에 탐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화점이 들어서고,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는 '문명개화'하는 도쿄의 시가지를 묘사하고, 잦은 화재와 지진으로 불타오르고 파괴되고 또 재건되는 거리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사이텐스티커의 글 속에는 무언지 모를 우울하고 애절한 탐미가 배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나는, 메이지 시대 도쿄의 풍정과 사이덴스티커의 문장에서 풍기는 아취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거기에 푹 빠져 감정이입을 하는 것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느끼는 것은 역시 우울함이지만 다소 성격이 다른 우울함이다. 그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를 참조하게 됨으로써 나오는 우울함일 것이다. 김진송의 책을 참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천지를 진동하는 지진과 에도의 꽃이라 불리던 잦은 화재 뒤엉킨, 근대의 격랑을 돌풍처럼 겪어냈던 시타마치 쵸닌의 삶에 함께 너울져 울고 웃었을지. 아니면 '도쿄이야기'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걸고 도쿄라는 고립된 도시의 풍정에만 탐닉하여 식민지의 참상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 사이덴스티커에 분노를 느꼈을지. 메이지 시대 도쿄는 아시아의 근대화 되어가는 도시였다. 그들 또한 다가올 시대의 빛을 그들 자신의 밖으로부터 구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온갖 낯선 것들이 들어왔다. 열광적인 수용이 있었고, 산발적인 반발이 있었다. 외국인 거류지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양식, 신식을 뜻하는 '하이칼라'라는 말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양식 머리모양, 서양식 복장이 일반화되고 있었다. 버터, 아이스크림, 레몬에이드가 들어왔다. 현재 그들/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철도가 깔리고, 전차가 다니고, 전기가 부설되었다. 대학이 생겨나고, '공원'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시내에 유리 진열장을 갖춘 백화점이 들어섰다. 자못 흥미진진한 발전상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 안타까움이 떠오르는 아시아의 나라, 일본의 메트로폴리탄 도쿄를 더욱 아름답게 해 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사이덴스티커가 묘사한 당대 도쿄의 풍경이, 2,30년 뒤의 경성, 또 하나의 근대도시인 서울의 풍경과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것이 끊임없이 각인될 때,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하나. 김진송의 책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2,30년의 차이가 결국 제국과 식민지라는 운명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그 2,30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 역사의 한 구석 자잘한 풍경이 나로 하여금 신경쇠약에 걸리게 한다.
h******k 2003.07.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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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 : 도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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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일본 문화사 책 한권. 그동안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나름대로 상식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모르고 있던 것도 많았고 그동안 이런 책도 안 읽고 일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대는 바로 메이지 시대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그 시대에 매력을 느끼고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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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일본 문화사 책 한권. 그동안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나름대로 상식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모르고 있던 것도 많았고 그동안 이런 책도 안 읽고 일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역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대는 바로 메이지 시대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그 시대에 매력을 느끼고 화려하고 재미있게 꾸며 낸 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시대보다 뛰어난 인물들도 많이 출현하고 시대의 흐름도 급격해서 매력적인 시대라고 느껴 왔다. 마치 천재가 밤하늘의 유성처럼 쏟아져나왔고 사회의 변모도 급격했던 조선의 18세기처럼 말이다. 이 책,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교수의 <도쿄 이야기="">는 중세도시 에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화된 대도시 도쿄로 변모했는지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도쿄의 근대화과정을 정치적 사건이나 경제 지표, 이데올로기 따위에 관심을 두고 보지 않고 있다. 저자의 시선은 도쿄의 서민들, 평범한 일본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내각의 교체나 GNP의 성장보다 가부키, 유곽, 벚꽃놀이, 스모 그리고 도쿄의 서민들의 소박한 정서에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이 도시의 성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황도, 군인도, 혁명가도, 대신도 아닌 비좁은 골목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에도의 토박이들, 힘차고 생기넘치는 그 골목길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사실적이고 섬세하며 또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의 저자는 <도쿄 이야기="">를 통해 일본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화, 도쿄라는 도시의 성장, 그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일본, 도쿄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는 이름 그대로 교토(京都)였다. 그 해 가을 근왕파의 군세가 도바, 후시미에서 막부파를 격파하고 막부의 세력을 압도함에 따라 천황은 3주간의 여행 끝에 도쿄에 도착한다. 그 후 도쿠가와의 에도성은 천황의 궁성이 되고 도쿄는 새로이 탄생한 근대 일본의 중심이 되었다. 개화 전의 에도와 개화 후의 도쿄가 공존하는 환경은 도쿄인들에게 이중생활이 일상화되도록 했다. 그러던 중 간도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것으로 도쿄의 중심지역 시타마치의 대부분이 지상에서 사라진다. 10만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메이지 시대 도쿄를 상징하는 시가지 대부분이 불타 버렸다. 바로 그 시대의 일들이 이 책 속에서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쉽고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은 크게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에서는 '종말 그리고 시작'이라는 제목 그대로, 간도 대지진으로 인한 옛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출발에 대하여, 2장 '문명 개화'에서는 에도 시대에서 메이지 시대로 바뀌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3장 '이중 생활'에서는 새로운 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급변하는 도시생활이 묘사되어 있고, 4장 '데카당스의 쇠퇴'에서는 가부키를 중심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서민 오락의 변모와 새로 유입된 서양식 오락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5장 '시타마치, 야마노테'에서는 시타마치와 야마노테를 통해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선명히 부각시키고, 6장 '다이쇼 룩'에서는 새로이 유입된 서양 문물이 일본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정착했는지 갖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곁들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이렇게 도쿄의 서민들과 생활상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기 때문에 이 책 속에서의 도쿄 역사는 마치 그 시대를 살아온 한 인간의 삶처럼 그려지고 있다. 또한 많은 화보들로 당시의 도쿄를 더욱 가깝고 생생하게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도쿄라는 도시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어렵지 않게, 중간중간 일본의 저명한 작가들 - 나쓰메 소세키라던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모리 오우가이,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등 - 의 글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일본의, 도쿄의 변모를 그리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저자의 시선을 통해서 태양력의 사용, 1일 24시간제, 1주 7일제 등의 서양식 제도와 기독교의 수용, 신문들의 간행, 도쿄의 긴자거리에 늘어서는 서양식 건물들, 가스등이 설치되는 거리, 단발에 양복차림이 유행하는 도쿄, 그 속에서 바쁘고 생기넘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일상 생활과, 그것들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고 있는 삶의 현장 도쿄를 체험할 수 있었다. 표현이 좀 우습지만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 : 도쿄편"인 것이다.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비록 도쿄에 한정해서지만 그 근대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책을 읽은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면서, 그리고 그 역사를 접하고 느끼면서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필자 자신 사학과 학생이기 때문인지 우리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도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필자는 이번 독서를 기회로 서울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조선의, 서울의 18세기는 에도-도쿄 변천의 시대처럼 화려한 시대였다. 한양-서울의 변천,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꼭 공부해야겠다. 참 즐거운 독서였다. 일본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우리 나라를 돌아보게 되었다.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그간 무미건조했던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화려한 도쿄로 나를 안내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책은, 타임머신이라는 필자의 평소 지론을 확인시켜주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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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근대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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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근대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아시아에 있어서 근대화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근대화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극동3국에 있어서 근대화란 어느 점에서 '빛'이었고 어느 점에서 '그림자(어둠)'이었던 것이다. 그간의 근대화 연구는 '개항' '시민의식의 성장'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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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근대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아시아에 있어서 근대화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근대화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극동3국에 있어서 근대화란 어느 점에서 '빛'이었고 어느 점에서 '그림자(어둠)'이었던 것이다. 그간의 근대화 연구는 '개항' '시민의식의 성장' '자본주의 문물의 수입'등의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잣대로 근대를 규정지었다. 이른바, 거대담론의 입장에서 근대화를 바라본 것이다. 이런 방법틀이 그간 유효하게 나타났지만, 최근에 들어 "신문화사"라는 개념을 적용한 근대화 담론이 시작되었다. 한국사의 경우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이 발간되어 근대화란 오히려 "'시일야방성대곡'의 비분강개한 흐느낌 속에서도 '황성신문'에 줄기차게 반복된 빌로드와 중절모의 광고가 현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또 다른 코드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수많은 '근대화의 코드'가 제시된다. 이를테면 인력거의 등장과 소멸, 외국인(서양인)들의 등장, 새로운 쇼의 수입, 대학의 설립, 공원의 건설 등이 그런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개항'의 결과이고 '시민의식의 성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정확하게 그런 거대담론으로 환원화되지는 않는다. 일본의 근대화란 천황과 핵심 각료들이 추진한 행동과 노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민들 개개인에게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위에서부터의 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위에로의 개혁'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수용했던 시민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과거에 즐겼던 문화들은 차츰 사라져가고 말았다. 저자는 책에서 근대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치나 경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스스로가 "문화사의 시대 구분도 정치사의 구분에 따라 천황의 재위가 끝나는 시점을 구획으로 삼는 것이 관례이지만, 메이지와 다이쇼의 구분은 오히려 러일전쟁 직후, 이를테면 1907년으로 하는 편이 훨씬 분명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함으로써 이를 밝히고 있다. 메이지라는 시대는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근대화'라는 의미이다. 메이지 천황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대의 증언자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도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다른 천황이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긴자의 가방 상인이 '가죽'(革)과 '주머니'(包)를 합쳐, 이것에 물건을 넣는 주머니라는 의미의 중국어, '캬반'의 음을 붙인 것을 천황이 읽지 못하여 질문하자 황송해진 주인이 이후로 간판에 가나로 토를 달기도 했다는 일화는 메이지 천황이 당시 초닌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각별히 나타내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지 천황은 그러니까 '근대'를 가져온 천황이었던 것이다. 근대의 어둠은 뒤에 가서야 밝혀진다. 나가이 가후는 예언자였을까?

[인상깊은구절]
나는 그 대지진 때에, 자신이 살았다고 깨달은 찰나 요코하마에 있는 처자의 안부를 걱정했지만 거의 같은 순간에 '어이쿠, 이제는 도쿄가 좋아지겠구나!' 하는 환희가 솟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10년이 지나자 예전보다 훌륭한 도시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도쿄도 10년 뒤에는 멋지게 부흥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상하이 빌딩이나 마루노우치 빌딩처럼 외연한 대건축물로 전부 채워지게 될 것이다. 나는 굉장한 대도시의 경관을 상상하고, 그에 따른 풍속과 습관의 변혁에 생각이 이르자, 갖가지 환영을 허공에 그렸다. 정연한 거리와 새롭게 단장한 포장도로와, 자동차의 홍수와, 기하학적인 미관으로 층층 겹겹이 솟은 블록과, 그 사이를 누비는 고가선, 지하철, 노면 전차와 일대 불야성을 이루는 밤의 번잡함과, 파리나 뉴욕에 있는 것과 같은 오락시설을. 그렇게 생각하자, 부흥 뒤에 일어날 도쿄의 갖가지 단면이 영화의 플래시처럼 마구 눈앞을 스쳤다. 야회복과 연미복과 턱시도가 뒤섞이고 샴페인 잔이 해파리처럼 부유하는 연회 장면, 검게 빛나는 거리에 몇 줄기의 헤드라이트가 교차하는 심야 극장 앞의 혼잡, 비단과 공단과 각선미와 인공 광선이 범람하는
s******z 2000.12.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