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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짜리가 '살의'를 아는 인생. 밀물같이 넘실대는 '적대감'을 아는 인생. 공선옥이 말하는 인생에는 그런 처절함이 빠지지 않는다. 이십대 초반에 처음 그녀의 소설을 읽었을 때 괜히 불편하고, 괜히 민망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녀의 작중 인물(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목마른 계절'의 주인공)의 입을 빌자면 '죄가 있다면 살아 있다는 것' '살아 남음이 죄'이라서 느끼는 그런 민망한 가책의 감정.
그 감정에는, 아주 적은 양이지만 반발도 섞여 있었다. 공선옥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배척당하는' 이들의 '사는 건 이런게 아냐'라는 울부짖음이, 그렇다면 윤리는 가난한 자에게서 나온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었다. 나는 그녀의 소설이 '각박해서' 싫다고 생각했고, 다시 읽지 않았다. 그랬다가, 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녀의 소설을 다시 읽는데, 십년 전에 느끼던 그런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의 고통어린 비명이 예전처럼 '울부짖음'으로 들리지 않으며, 종류가 다르고 정도가 다를지언정, 내가 내뱉았던 한숨과 신음이 그 비명과 아예 다른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공선옥의 소설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느끼는 것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이것, 자문이지만 민망하다. [인상깊은구절] 누군가가 내게 '인생'을 이야기해온다면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진정 인생을 아느냐고. 나는 일곱 살 그해 겨울, 캄캄한 변소간 속에서 우리 인생에서 일컬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아 알아버렸노라고.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나는 그 순간에 다아 알아차려버렸노라고. 심지어 살의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까지도. (p. 99) 칼은 내 머리맡에 있다. 파마늘 냄새가 나지 않고 '칼' 그대로의 '칼'이다. 큰엄마 나쁜 년이라고 서슴없이 욕설을 내뱉던 나를 안아다 아프게 목욕시키고 쑤루메국을 끓여주던 큰엄마. 악감정에 치받혀 끝내는 아파버린 나에게 감미로운 '잠밥'을 먹여주던 큰엄마가 지금 이 순간에 애틋해진다. (p. 110) |
| 2003년의 새해가 밝아오는 벽두, 광주 근처의 소쇄원을 답사하는 길에 광주 시내의 외곽에 자리한 5.18 묘지를 들른 적이 있다. 그저 막연한, 또는 추상적인 아픔으로만 다가오던 광주의 상처는 막 광주 시내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상처의 흔적도 많이 아물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묘지에 다다랐을 때는, 비록 내가 저항과 투쟁의 피로 얼룩진 시대를 살아낸 세대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시대의 후손으로서 어떠한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전 세대에게 갚을 길 없는 무거운 빚을 진, 일종의 부채 의식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여전히 올바른 역사와 정의가 세워지지 못한 현실 속의 일상적인 회의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이었다. 정의롭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전두환이 (5000억에 이르는 벌금도 묵묵부답 내지 않은 채) 별 탈 없이 살아있고 민정계 인사들이 국회에서 소리치는 상황에서 최소한 진실이 이 땅에 반듯하게 설 수 있는 날은 언제 오느냐고 자조인 한탄을 성급하게 허공에 뿌리는 것도 잠시, 중요한 것은 살면서 최소한 내가 지켜야 할 양심은 과연 어떤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총 9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이번 소설집은 '광주'라는 화두가 배면을 관통하고 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또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회적인 방법으로 소설은 광주의 언저리를 유령처럼 배회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설은 광주를 둘러싼 주변의 목소리를 향해 있다. 광주 항쟁에 직접 참여한 투사의 영웅적 이야기가 시민군을 남편으로 둔 아내라든지, 먼 친척이라든지, 지인이라든지 소설 속의 등장 인물은 직접적으로 광주와는 연관이 없다. 하지만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광주의 상처는 자기 안에 투사되어 까닭없는 증오와 분열증으로 고착되어간다. 그들의 삶은 서서히 파편화되고 그들의 몸과 정신은 혹독한 현실 논리에 의해 제각기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여성 화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성의 결핍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군사 정권의 억압 속에서 희망의 싹이 자랄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해버린 시대적 현실과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무능력하기만 사회에 대한 불신을 감추고 있다. 적은 분명한데도 민중의 삶은 상처가 미쳐 아물기도 전에 내부의 불화와 갈등으로 조각나고 울분과 회한으로 한 세월을 멀거머니 보낼 따름이다. 그런 것이 역시 인생이란 말이던가, 인생은 역사의 지옥이었던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상처를 정면으로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던가. 광주 이후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가 희생자라는 사실에 연민을 느끼고 서로 화해를 해야 하지 않았던가.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금 절실한 것이, 우리는 미쳐 화해하기도 전에 이미 한 시대가 훌쩍 기억의 담을 넘어 지나가 버렸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질긴 목숨줄을 이으며 어디선가 꽃을 피우고 있을 수선화처럼 광주의 아픔을 속내 깊이 담고 있을 이들에게 언젠가 맑은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피어라 수선화』와 같은 소설이 있기에 광주의 아련한 향내는 우리의 주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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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선옥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의 탁훨한 글솜씨에 질투를 느낀다(?). 칼로 후벼파고 송곳으로 찌르는 어휘 속에 리얼리티가 살아 넘쳐 꿈틀거림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전율하는 아픔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사생활이라도 일컬어지는 작가의 개인사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공선옥의 삶은 단 한부분도 닮고 싶지 않을 정도다. 또,광주의 아픔을 알지만 느껴볼 기회는 갖지 못하고 그저 소설이나 신문기사, 방송을 통한 간접 경험이 전부인 나에게 그녀의 체험은 눈물겨운 슬픔과 함께 그 고난을 이겨낸 강한 여심을 엿보게 되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연약한 한포기 풀처럼 삶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으로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누군가가 내게 '인생'을 이야기해온다면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진정 인생을 아느냐고. 나는 일곱살 그해 겨울, 캄캄한 변소간 속에서 우리 인생에서 일컬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아 알아버렸노라고.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나는 그 순간에 다아 알아차려버렸노라고. 심지어 살의의 유혹도 물리치는 방법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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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하면, 거친 숨결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그야말로 밑바닥 삶 속에서 그래도 한번 살아보자고 발버둥치는 여자의 거친 숨결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좋아한다. 화려한 문구도 완벽한 구성도 아니지만은 그녀의 체취와 호흡이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8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목숨'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작품 속 화자인 혜자. 그녀는 집 나간 남자의 아이를 임신중에 있다. 기약없는 남자의 외출이었고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의 현재 생활 또한 평탄치 않다. 하지만 뱃속에 잉태된 아이로 인해 질긴 목숨을 연명하고자 하는 희망을 품는다.
아이를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은 여성성의 상실이라할 수 있다.과거에 창녀였던 그녀는 여러번 낙태를 했기 때문에 매번 임신을 했지만 자연유산을 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감싸주는 남자의 아이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비록 남자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르나 뱃속의 아이로 인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강한 모성애를 갖게 된다. 또한 그 남자의 아이, 홍이까지 제 새끼라고 보듬는다.
여권신장과 함께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모성애 또한 방해물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혜자라는 여자를 통해 공선옥 자신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맑게 피어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여성이라고 감히 나는 말해본다. [인상깊은구절] 혜자는 새삼스럽게 아랫배를 슬며시 눌러본다. 바로 그것인가. 뜬금없이 들어차서 얼마간 혜자를 놀래켜주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게도 했던 생명. 이제부터는 제가 있어줄테니 절대로 쓸쓸해하거나 눈물짓지 말라고 가만히 혜자 자궁 속에서 속삭여오는 또 하나의 목숨. 혜자는 뜨거운 밥냄비를 발 밑에다 놓고 냄비째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쩐지 밥을 많이 먹어야 튼튼한 애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배가 불러오자 뱃속으로부터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것은 은밀하고도 미세한 움직임이다. 꿈틀거리는 생명체. 저도 오랜만에 포식했다는 표시인가. 배가 불러오자 그때서야 여독이 느껴졌고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혜자는 제 배를 따스하게 감싸안고 잠이 들었다. 잠속에서 꿈을 꾸었다. 뱃속의 아이가 이미 태어나 조잘대었다. 아이가 둘었다. 큰아이, 작은아이, 홍이와 홍이 동생이었다. 혜자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꿈 속에서 혜자는 행복했다. 습기 먹은 상현달이 무거운 구름장을 재빠르게 벗어나와 혜자의 조그만 들창 안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달아났다. 달님이 들여다보는 줄도 모르고 잠든 혜자 얼굴이 어둠 속에서 달빛처럼 말갛게 떠올랐다. |
| <수수밭으로 오세요>를 읽고 공선옥이 좋아져서 그녀의 초기 작품집을 주문했다. 뒷장을 들쳐보니 94년 11월 초판 발행... 94년이라....그해 7월에 북한의 김일성이가 갑자기 죽어버렸었지. 날씨는 또 왜 그렇게 숨막히게 더웠던고.... 그러고보니 벌써 7년 전 일이다. <피어라 수선화>에 실린 단편들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광주항쟁의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 92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난 다음 한동안 망연자실하던 사람들....공선옥의 최근 작품인 <수수밭으로 오세요>를 먼저 읽고 난 다음에 초기작을 읽어서 그런지, 확실히 책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작가의 글솜씨가 덜 숙성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뒤로 갈수록 구성의 긴밀성을 잃고 서사를 놓쳐서수필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선옥의 글은 동갑내기인 다른 63년생 여성작가들과는 구별되는 면모를 초기작부터 가지고 있었다. 다소 거칠게 구분 짓자면, 공선옥의 주인공들은 신경숙의 주인공들처럼 여릿여릿한 순둥이도 아니고 공지영이나 김인숙의 주인공들처럼 커리어가 짱짱한 인텔리 여성도 아니다. 그녀의 인물들은 정이 많고 헤프기도 하고 그래서 인생이 고달픈 여자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들은 생활력 강하고 성깔 있고 오기도 있어서 상대에게 기운껏 뻗대보기도 하고 쓴 소주를 마시고 씩씩하게 대거리도 한다. 그들의 직업은 가리봉동의 버스차장 언니나 구로동에서 미싱을 밟는 노동자, 창녀나 작부 노릇을 하며 밥을 먹고 산다. 그녀들의 이름은 혜자, 필순, 경님, 정례, 순예.....이런 식.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혜리라든가 영채라든가 영욱이라든가....왜 산뜻하고 상큼한 이름들도 많잖은가. 그런데 공선옥의 인물들은 오지게도 심란한 팔자를 가진 사람들, 초친 인생들, 볼짱 다 본 인간들이 등장한다. 의도적으로 공선옥이 不遇하고 궁핍한 인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이 그런 군상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자신이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5월 시민군 남편과 이혼하고 딸 둘을 데리고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사는 삶의 편력을 가지고 있으니, 독자로서는 경험을 길어올려 쓰는 소설과 작가 자신을 겹쳐놓을 수밖에. 또 한 가지. 공선옥의 소설에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지하 방이나 비닐로 바람막이 친 봉창 아래에서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다. 빨래를 널어놓는 장면이나 평화로운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에 대한 묘사라든가 아이를 들쳐업고 돈을 빌리러 가는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 또 "...어미된 자로서..."이 말은 그녀 소설에 많이 나오는 말이다. <수수밭으로 오세요>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소설집을 다 읽고 나서 계속 나의 입가를 떠나지 않는 노래가 있다. <목숨>이라는 단편에 끼워져서 배경음악처럼 깔렸던 그 노래.....그 누구인가, 불어주는 휘파람소리. 행여나 찾아줄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마음 허무해라......임희숙의 <진정 난 몰랐네> 나도 그 노래를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