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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를 접하면서 어떤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으로 읽었다. 화자의 논리에 순응하며 정신 없이 읽어내려간 후, 멍해서 다시 천천히 읽어야했다. 리뷰를 남겨달라는 페친들이 많았기에 의무감 같은 것이 있어서 지금 이리 글을 쓰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제도권 교회에서 전통적인 신앙생활을 해 온 나는 본서의 내용이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리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었다. 그래서 리뷰가 쉽지 않았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유다가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한 사악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지만 예수의 인류 구원의 계획에 꼭 유다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사용하여야만 했을까를 제기하고 있다. 12제자 중의 한명이었던 유다가 예수와 3년을 동고동락하였고, 신의 아들 예수라면 자신의 제자를 배신하게 내버려두었을까라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는 게 스승의 도리가 아닌가? 얼마든지 신의 방법으로 구원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기독교의 핵심이고, 예수의 십자가에서 유다의 희생이라는 지분을 인정함으로써, 유다가 나쁜 놈이 될수록 기독교가 사는 길 중 하나가 '더' 악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다를 향한 이성적 판단이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건 무려 2000년 가까이 지속된 기독교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약의 4복음서가 십자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구원의 드라마가 담긴 유일한 책이라고 한다. "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라면, 예수의 구원자는 가롯 유다다. 예수의 희생을 가능하게 만든 진짜 희생자는 유다다. 우리가 예수에게 감사한다면, 예수는 유다에게 감사해야한다. 유다에게 큰절이라도 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논리적이지만 가능하지 않다. 예수의 은혜와 사랑을, 공적을 누군가와 나눈다고? 여전히 기독교가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P 266 저자는 인류 역사에 발생한 가장 큰 비극은 예수를 역사로 만든 복음서의 등장이라고 말하면서 독자가 이야기를 이야기로, 신화를 신화로 보도록 하는 데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한다. 뱀발> 본서를 기독교 정통교리와 상반된 내용이라고 무조건 폄훼하지 말고, 누구든 신학 전공자가 꼼꼼히 읽어서 예의를 갖추어 논리를 전개하기 바란다. 그러면 배우는 입장으로 경청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