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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음악 천재의 좌충우돌 성장기 (분더킨트, 2014)
"어린 음악 천재의 좌충우돌 성장기 (분더킨트, 2014)" 내용보기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너무 감명깊게 보고 읽었다. 음악에 관한 작품들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주곤 한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밀회>라는 드라마에서도 피아노 천재 청년을 소재로 삼고 있다. 가끔은 드라마 내용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피아노 연주가 너무 좋아서 그 드라마를 보거나 견디는 경우들도 있다.       <분더킨트>는 그리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어린 음악 천재의 좌충우돌 성장기 (분더킨트, 2014)" 내용보기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너무 감명깊게 보고 읽었다.

음악에 관한 작품들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주곤 한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밀회>라는 드라마에서도 피아노 천재 청년을 소재로 삼고 있다. 가끔은 드라마 내용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피아노 연주가 너무 좋아서 그 드라마를 보거나 견디는 경우들도 있다.

 

 

 

<분더킨트>는 그리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463쪽의 방대한 내용도 그렇지만 스토리가 1980년대 냉전시대 동유럽의 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나라와 시대, 이념으로 천재 소년, 소녀들을 쇄뇌시키려는 예술학교의 시스템, 그리고 우리 문화와 비교해서 매우 자유분방한 이들의 삶이 약간은 낯설고 불편했다.

 

이 책의 저자인 니콜라이 그로츠니는 실제로 전통 깊은 불가리아 국립 음악학교인 루보미르 피프코프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 영재였다. 아주 어린 나이였던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열 살에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따라서, 어쩌면 분더킨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중간중간에 매우 섬세하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나온다. 음악을 생활에 비유하는..

 

 

 

저자는 음악도 출신답게 1987년 11월 3일부터 시작하여 연대기처럼 쓰여진 이 소설의 각 장의 제목을 피아노곡명으로 붙였다. 예를 들면 1장은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op. 34, no. 14>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인 1989년 11월 27일, <쇼팽, 에뛰드 C단조, op. 25, no. 12>로 끝난다.  피아노 음악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조금은 덜 느끼고 덜 이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칼리제>는 대중적인 곡이다. 영화 <샤인>에 삽입된 OST로도 유명하지만, 보칼리제란 성악가들의 일종의 가창 연습곡으로 여러 작곡가들이 작곡한 보칼리제가 많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 매우 유명하다. 즉, 1장..시작을 말하는 <보칼리제>로 작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장인 <쇼팽, 에뛰드 C단조, op. 25, no. 12>는 2/2 박자의 알레그로로 양손 아르페지오 연습곡이다. 키 큰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음형이 연결된 곡으로 전체적으로 비장함이 느껴지는 아르페지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마도 저자가 마지막 장의 제목으로 선택한 곡인가 보다.

 

아래 연주를 감상해보자.

아마도 저자의 의도와 분위기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이 성장소설 속에는 억압적이고 답답한 학교, 그러나 헌신적인 스승과 천재 연주가들인 어린 소년소녀 제자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지만 그의 천재적인 재능때문에 용서받는다.

 

그러나, <분더킨트> 속의 콘스탄틴은 모두가 인정하는 하늘이 내린 천재는 아니다. 콘스탄틴은 자신이 견디기 어려운 환경을 끊임없이 음악을 이야기하고 연습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결국 그것이 이 소년에게 자유를 주지는 못하지만.. 콘스탄틴은 자유분방하다. 물론 우리의 눈으로 말이다. 담배도 피고 술도 먹고 틴에이저인데 여자와 자기도 하는 것으로 방황하고 자기 인생에 저항한다.

 

음악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음악이 있어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멋지게 성장하고 잘 이겨내고 성공하는 다른 성장소설과 다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저자의 자전적인 성격이 짙은 소설이라서 그런지 음악의 섬세함과 아름다운 연주가 녹아든 것 같은 느낌이다.

 

워낙 성장소설도 좋아하고 음악에 관한 소설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런 소설을 좋아하지만, 원래 예상했던 순수 음악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끝내 자유를 찾으려는 콘스탄틴의 성장하는 모습은 방법은 좀 다를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b*****k 2014.04.21. 신고 공감 4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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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꽃을 잊어버리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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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데 무슨 욕심이 돋았는지 책에서 음악을, 작곡가를, 피아니스트를, 첼리스트를,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왜 그러지. 예술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 범주에 음악도 분명 있었건만 어느새 까맣게 잊고 마치 낯선 세상에 떨어진 양 멀찍이 서서 물끄러미 응시하는 중이다. 한때 피아니스트나 작곡가의 꿈을 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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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데 무슨 욕심이 돋았는지 책에서 음악을, 작곡가를, 피아니스트를, 첼리스트를,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왜 그러지. 예술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 범주에 음악도 분명 있었건만 어느새 까맣게 잊고 마치 낯선 세상에 떨어진 양 멀찍이 서서 물끄러미 응시하는 중이다. 한때 피아니스트나 작곡가의 꿈을 꾸기도 했는데. 예술중, 예술고를 거쳐 음대에 들어간 이웃집 언니의 재능을 부러워도 했는데.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마구 눌러본다. 조율을 하지 않아 '미'와 반음 '레'는 소리가 변해있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잡아본 적도 없지만 관심도 없다. 나는 줄곧 피아노 선율을 가장 좋아해왔다.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는 <음악의 기쁨>을 사서 뒤적이고, 브람스와 바흐, 모차르트와 베토벤, 스트라빈스키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장 쉬운 언어로 씌어진 클래식 에세이를 찾아본다. 그래본들,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안 먹던 밥이 입맛에 맞을 리 없으니. 노력은 해볼 생각이다. 학창시절엔 장르 가리지 않고 음악을 좋아한 듯한데 스물 다섯을 넘기면서 음악 듣는 시간을 그다지 즐기지 못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생각이 멈추는 지점을 불안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음악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것. 인정하기 쉽지 않다. 베토벤 교향곡 한 악장이 끝날 때까지의 쉼조차 용납하지 않는 뇌는 또 얼마나 과부하가 걸려 있을까. 그저 예민하고 똑똑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이 나오는 단순한 스토리의 성장소설이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성장소설을 즐길 만큼 순수한 어른도, 추억할 만큼 늙은 어른도 아니다. 아직은.

 

작가는 불가리아 소피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소설가다.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글을 쓰든 <분더킨트>는 그의 체험에서 우러난 사유가 극대화된 소설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황홀한 문체로 씌어졌다. 동구권 특유의 핍박, 자유를 향한 갈구, 이데올로기와 정체성 혼란, 사랑과 욕정을 착각하는 나이. 소피아 영재음악학교에 다니는 십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때는 1987년. 베를린 장벽과 소련(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질 즈음이다. 각각 2년 후, 4년 후 두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가장 예민하고 영리한 소년소녀들이 모인 학교에서, 가려야 하는 욕망과 드러내야 하는 천재성 사이에서, 자유에 대한 무궁한 열망과 공산주의라는 거인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억척같은 아이들의 성장은 불완전하고 애처로워 보인다. 상대를 향한 파괴, 자신을 향한 비하로 이어지는 억압은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과 강요당하는 순수를 오가며 한없이 맴돌다 추락하기 일쑤다.

 

수많은 선율이 문장과 문장을 배회한다. 브람스, 스크랴빈, 쇼팽, 차이콥스키, 멘델스존, 리스트, 라벨, 슈만, 드뷔시,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등 음악을 사랑하다 음악 속에서 죽어간 천재들의 영혼 사이로 이야기가 지나다니는 느낌이다. 이 잔인한 세상의 이데올로기는 아이들마저 허무와 공황으로 밀어넣는다. 레슨과 수업과 연주와 우정과 사랑과 증오와 배신과 두려움 사이를 수도 없이 넘나들어야 하는 아이들의 세상에는 그들을 인도할 무언가가 없다. 어른은 어른의 세상에, 아이는 아이의 세상에, 각자 골몰하면서 의미와 흔적이 사라진 시간을 유령처럼 이끌고 다니기 시작한다. 음악을 글로 표현한다는 난제는 콘스탄틴의 의식을 따라가다보면 완벽히 해갈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순종은 자발의 반대말이고 자발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만이 예술의 가치와 상통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떠나는 것을 보는 고통은 콘스탄틴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자괴감과 경멸마저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라는 것을 본인은 알지 못한다. 반항과 일탈은 청소년기의 특권. 음악의 적은 복종. 이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투르크 족 및 공산주의 투쟁과 모스크와 잿빛 하늘과 숨막히는 공기가 공존하는 도시 소피아. 상처와 슬픔으로 가득한 한 시절을 노스텔지어로 회상하는 작가의 섬세한 문체는 색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감각적이고 완벽하다. 비겁함과 자괴감 속에서도 열정을 희망하고 야망보다는 순수를 꿈꾸는 마음은 소년소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감동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답다. 돌아가고 싶다. 한번쯤은, 기꺼이.



s*****d 2014.05.30.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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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묘사가 압도적인 성장소설《분더킨트》
"섬세한 묘사가 압도적인 성장소설《분더킨트》" 내용보기
분더킨트 Wunderkind 저자 니콜라이 그로츠니 | 역자 최민우 | 다산책방 | 페이지 463    분더킨트란 음악, 문학, 예술계의 신동을 뜻하는데 작가 니콜라이 그로츠니 본인도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열 살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을 가진 분더킨트였다고 합니다. 소설 《분더킨트》는 1980년대 불가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보낸 10대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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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Wunderkind

저자 니콜라이 그로츠니 | 역자 최민우 | 다산책방 | 페이지 463 

 

분더킨트란 음악, 문학, 예술계의 신동을 뜻하는데 작가 니콜라이 그로츠니 본인도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열 살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을 가진 분더킨트였다고 합니다. 소설 《분더킨트》는 1980년대 불가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보낸 10대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입니다.  

 

 

소설 《분더킨트》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이년 전, 불가리아의 영재들을 위한 소피아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열다섯 살인 주인공 콘스탄틴은 일곱 살 때 이곳에 들어가서 현재 방황하는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불가리아라는 역사적 배경상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이 그의 방황을 더 깊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 이리나와의 사랑, 천재 피아니스트 바딤에 대한 존경심, 예술가들 간의 묘한 적대심, 학교체제의 반발심 등 십 대 소년다운 감성과 미성숙한 까칠함과 일탈이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 나라가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그저 그런 방황을 거치고 회개하듯 벗어난다 식의 성장소설이 아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시원한 기분은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소설 《분더킨트》의 묘한 매력이 더 오래 가슴속에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콘스탄틴의 담당 선생님인 카티야의 경고는 허투루 들을 수가 없네요. 경주에서 제일 먼저 탈락하는 건 재능 있는 아이이고, 두 번째로 떠나는 건 야망 있는 아이이고, 오직 로봇 같은 아이만 끝까지 버틴다고. 그게 대부분의 피아노 음반이 견딜 수 없이 형편없는 이유라고요.

 

『 아침, 오후 심지어 한밤중에도, 나는 건반 하나를 누르고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사용하여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허공에 울리는 소리의 반향에 맞춰 내면의 존재를 조율하며 그 목소리의 비밀스러운 원천을 찾아 헤맸다. 』 - p47

 

『 음악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경험된다. 지금 당장도, 나중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다. 』 - p58

 

콘스탄틴에게 피아노 연주는 절망을 드러내는 행동이자 자신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가다듬으며 표출하는 행위입니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육체라고 합니다. 힘줄에 불이 붙을 때까지 연주하고 나면 허기와 탈수로 혼미해질 정도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었고, 음악의 성전에서 산다는 건 선물과도 같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퇴출당한 바딤과 이리나. 콘스탄틴조차도 그 길을 걷게 되는데 음악의 성전에서 퇴출당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 자체가 음악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내 버린 것인지......  로봇처럼 반복 훈련만 한 근시안적인 연주가들과 대립하는 이 아이들은 음악 안에서 진실해지고 음악 안에서 자신을 정화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졌기에 그만큼 바깥으로부터의 충격과 괴리를 오히려 이겨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은 걸 이해하는 동시에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기계적인 순종형 인간이 되길 거부하는 방황하는 사춘기를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안타깝습니다.

 

 

『 우리 내면의 삶은 아직 국영화되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고, 그래서 이를 광적으로 지켰기 때문이리라. 심지어는 연인의 눈으로부터도 방어막을 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남몰래 악취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 - p284

 

 

《분더킨트》는 예술가적 감성과 문학적 자질을 겸비한 작가 특유의 문체가 독특한 소설입니다. 첫 문장 '소피아의 하늘은 화강암이다.' 화강암이 주는 그 빛깔과 무게감이 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쇼팽의 화음에 마호가니 색이 감돈다', 'B단조는 빨간색이야. 가을에만 나타나는 빨강이지. 갈색도 섞였고 마호가니로 덧칠도 했어.' 처럼 소리를 이미지화하는 표현도 신비로웠어요. 대신  '삶이란 쇼팽의 프렐류드를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무엇이었다.'처럼 그 음악의 감성을 모른다면 단번에 이해하기 모호한 문장도 있습니다.

 

목차도 이색적이에요. 25개의 목차는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의 피아노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쇼팽을 특히 좋아했는지 쇼팽의 곡이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고 쇼팽의 곡에 관한 소설 속 주인공의 생각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피아노곡들 속에 숨겨진 사연은 무엇일까?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궁금해집니다. 그 곡의 이미지와 해당 챕터 사연이 적절히 어우러지니 이왕이면 곡을 들으면서 읽기를 권해드려요. 곡을 들으며 읽다 보면 그 곡의 느낌을 그 상황에 접목해 섬세하게 묘사한 문장들이 찌릿 와 닿을 겁니다. 피아노 선율을 문장으로 시각화해서 읽는다는 그 느낌이 정말 묘했어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느껴보세요.

 

 

 

 

 

l****5 2014.04.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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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없는 이카루스 후예들의 WUNDERGESCHICHTE!
"추락없는 이카루스 후예들의 WUNDERGESCHICHTE!" 내용보기
분더킨트(Wunderkind). '놀라운 아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우리나라로 치면 신동을 뜻한다. 모차르트가 어린 나이에 놀라운 그의 재능을 발휘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 때부터 주로 예술적 방면의 신동들을 흔히들 '분더킨트'라고 부르는 게 관례가 되었다.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첫 장편 소설 제목이 바로 '분더킨트'다. 소설의 배경은 아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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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더킨트(Wunderkind). '놀라운 아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우리나라로 치면 신동을 뜻한다. 모차르트가 어린 나이에 놀라운 그의 재능을 발휘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 때부터 주로 예술적 방면의 신동들을 흔히들 '분더킨트'라고 부르는 게 관례가 되었다.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첫 장편 소설 제목이 바로 '분더킨트'다. 소설의 배경은 아직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전, 80년대 말의 불가리아.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다.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에 대한 의무를 중요시여겼던 그 곳에서 그보다 더욱 규율과 엄격한 훈련을 강조하는 음악원에서 공부해야 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콘스탄틴, 이리나, 알렉산더, 바딤. 남들과 다른 재능으로 일찍 다른 궤도의 삶을 걸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 찰리 파커는 말한다. '재능은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과연 그 말 그대로 파커는 범죄와 맞서 세상을 구할 재능을 얻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저주를 받았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남들과 다르기에 짊어져야 하는 굴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선 그걸 '카인의 표지'라 부른다. 남들과 다르다는 그 표식은 외적으로는 타인들의 경탄을 받아 우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질시로 인해 고독을 무릅쓰게 되기도 한다. 반면 내적으로는 끝없는 갈망을 낳는다. 이만한 재능이 있는데 어찌 남들처럼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낮은 울타리 속에 안주하는 평범한 이들을 깔보며 자기에겐 그와 다른 삶이 허락되어 있다고 여긴다. 더 높이 날아오르려 애를 쓰고 그럴 힘 역시 자기에게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비상은 오로지 소수에게만 허락되고 대부분은 밀납으로 만든 날개가 되어 결국 이카루스처럼 추락하고 만다.


 무당벌레가 내게 경고한 적 있었다. 경주에서 제일 먼저 탈락하는 건 재능 있는 아이이고, 두 번째로 떠나는 건 야망 있는 아이라고. 오직 로봇 같은 아이만 끝까지 버틴다고. 그게 대부분의 피아노 음반이 견딜 수 없이 형편없는 이유라고. 재능 있는 동시에 야망에 넘칠 수는 없다고. (p. 58)


 천재에 대한 이카루스의 비유는 적절하다. 이카루스의 비행은 어리석음의 활공이 아니다. 사실은 주체성의 확장이다. 그건 세상이 가해오는 중력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자신을 장악하려는 세계로부터 멀리 탈주하여 온전한 주체가 되려는 '도주선'. 하지만 거기에는 저주가 뒤따른다. 세계가 나눠 받던 책임을 이제 스스로 온전히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울타리가 더욱 크고 유혹적으로 보이는 때는 언제나 그 울타리의 바깥에 있을 때다. 지금까지는 사회라는 비행기 꼬리 날개에 가만히 앉아서 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순수하게 자신의 두 날개로만 움직여야 한다. 광활한 하늘의 자유가 몽땅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되는 것이다. 이카루스의 비행은 필연적으로 아틀라스적 책임으로 향하게 된다.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현명하다. 위대한 힘엔 반드시 커다란 책임이 뒤따른다. 온전한 주체가 되게 만드는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쉽지가 않다. 너무 곧은 대나무는 쉬이 부러진다. 이카루스는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 추락한다. 한껏 뻗어나간 주체성은 제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꺽어진다. 사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있다. 자유와 책임 사이. 주체화와 공존 사이엔.


 '분더킨트'의 아이들은 이카루스의 후예들이다. 독립적이고 진정한 자신이 되어 보려 했으나, 그걸 이루어줄 수 있는 자유를 꿈꿨으나 결국 좌절된 이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 무대가 몰락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천재가 상징하는 한껏 뻗어나가려는 주체성과 그걸 가로막는 사회의 대립을 선명하게 강조하기 위해서다. 소설은 첫 문장부터 이것을 암시한다.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의 하늘은 화강암이다.(p. 11)


 도시는 돌의 이미지를 가지고 음악원은 감옥의 이미지를 가진다. 화자 콘스탄틴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과 활동하는 삶에 대해 내내 그런 이미지의 단어들을 남발한다. 학교가 시키는 교육을 그저 잘 따라가는 아이들은 모두 멍청한 로봇들이고 자신은 '자유의 조건적 본성을 이해하는 예외적 지혜를 타고난 실험실 쥐'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그것을 지배하는 어른들에 대한 콘스탄틴의 어조는 꽤나 신랄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른들은 녹턴을 연주할 수 없다. 그들의 연주를 따라해 보라. 루바토, 말문이 막히는 화성 해결. 거짓된 좌절, 연출된 신랄함. 토악질이 나온다.(p. 70)


 이건 투쟁이다. 자신의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끝없이 달려드는 사회라는 가시 덤불을 헤쳐나가는! 450페이지에 이르는 '분더킨트'의 여정은 그 기록이다.


 그런데 발터 벤야민은 정말로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비유했다. 그는 언젠가 지인 게르숌 숄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화 하나를 추신으로 덧붙였다. 그게 바로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야기였다. 미녀가 진리고 가시 덤불을 헤쳐나가는 왕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진리는 그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는 어디까지나 적극적인 구애의 순간 끝에라야 간신히 눈을 뜨는 존재다. 깊은 잠에 빠진 미녀를 알랑한 키스 정도로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잠든 자를 깨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 양 어깨를 잡고 마구 뒤흔들거나 때리기도 한다. 그렇다. 발터 벤야민은 말한다. 진리는 때려서 자기 말을 듣게 해야 하는 존재라고.


 진리가 하이데거가 말했듯 존재가 드러나는 틈이라면 결국 주체가 온전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 소설의 이카루스 후예들이 걸었듯이 투쟁말고는 답이 없다. 헤겔이 말했듯이 노예가 계속 주인으로 있으려면 항구적인 노동 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날아가는 새에게 죽음은 언제 오는가? 바로 그 날개 짓을 멈출 때라고. 결국 소설에서 그들의 추락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그 싸움을 스스로 멈춘 때가 아니었던가? 사랑을 멈춘 때가 아니었던가?


 콘스탄틴이 모든 희망을 잃고 무덤과도 같은 지하로 잠적했을 때조차 역사는 계속 움직이고 투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90년,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순간은 찾아오고 만다. 그 마지막 장에서 콘스탄틴의 자유를 뜻하는 쇼팽 에튀드 C단조는 찬란히 울려퍼진다. 이 소설이 남들이 말하듯이 실패의 기록인지 잘 모르겠다. 내게 이 소설은 부단한 투쟁만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 소설 장의 구분이 그렇다. 이 소설은 장의 구분을 음악가로 하고 있다. 1장은 라흐마니노프, 2장은 쇼팽 이렇게. 음악가마다 상징하는 것이 다르다. 어떤 음악가는 세상이 가하는 억압을, 또 어떤 음악가는 절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쇼팽은 바로 콘스탄틴의 자유(세상과 싸워 획득한다는 의미에서)를 상징하고 있다. 그가 자주 연습하는 쇼팽의 에튀드는 그야말로 자기 주체성의 상징이다. 차례를 보면 쇼팽이 참 많이 나옴을 알 수 있다. 그건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콘스탄틴이 그 숱한 사회의 위협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소설은 읽는 순간 어느새 내게 상황을 핑계대지 말고 억압에 굴하지도 말며 시대가 아무리 절망을 주더라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분더킨트'는 신동이 아니라 원래 뜻 그대로 놀라운 아이로 보였다.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놀라운 아이. 콘스탄틴.


 한 가지 이 소설을 말하는 데 있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소설의 문장들이 너무 좋다. 작가 자신이 원래 피아니스트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들이 참 감성이 넘친다. 표현도 독특하고. 어쩐지 아슈케나지의 월광 소나타를 듣는 듯도 했다. 그가 연탄하는 음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한 색채로 선명하게 다가오듯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문장들도 그랬다. 일요일 오후 기제킹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프렐류드라고 해도 무방할듯. 정작 콘스탄틴은 드뷔시 같은 인상주의파를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콘스탄틴은 원래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 소설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불가리아 음악원을 다닐 당시의 자전적 이야기다. 동구권이 몰락했을 때 그는 이제까지 배운 것을 모두 포기하고 재즈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버클리 음대에 들어갔지만 졸업을 코 앞에 두고 이번에는 티벳과 인도로 떠나버렸단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콘스탄틴이 그랬듯 그는 계속 뻗어나가고 있다. 발없는 새처럼 머무르지 않으며 자기만의 비상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이 다음의 이야기가. 그것도 부디 우리나라에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l****1 2014.04.24.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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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이야기- 분더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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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들어본 생소한 단어 분더킨트란 ?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도을 일컫는 말 이라고 한다.   요즘 김희애 유아인 출연의 드라마 밀회가 이슈다. 40대 유부녀와 20대 청년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나 그 후로 더욱 사람들이 드라마에 주목하게된데에는  두 남녀가 함께할때마다 등장하는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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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들어본 생소한 단어 분더킨트란 ?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도을 일컫는 말 이라고 한다.

 

요즘 김희애 유아인 출연의 드라마 밀회가 이슈다.

40대 유부녀와 20대 청년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나 그 후로 더욱 사람들이 드라마에 주목하게된데에는  두 남녀가 함께할때마다 등장하는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 한두번쯤은 배워보았던 악기이기에 친근한 악기. 중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들 왈 초등학교 당시에  피아노를  배울때는 재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 피아노가 치고싶다고 한다. 아마도 그렇게 조금씩은 건반을 두드려보았고 음악적으로도 무슨 연주인지는 모른 채 친근한 선율이기 때문이려니...

 

분더킨트는 천재피아니스트라는 대목에서 그러한 밀회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방향은 전혀 다르다. 단지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큰 획만 같을뿐 같은것이 있다면 자기 감정에 충실한 감정...

 

이야기의 시작 전  앞부분에서 읽었던 문장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옥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사랑한 능력이 없는 데서 오는 고통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처음엔 왜 이 문장이 여기에서 나와야 하는지 몰랐으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만나다보니 어렴풋이 그 문장의 의미가 떠오르기도 했다....

 

 

 

 

 

 

 

1989년 11월 10일 독일을 둘로 나누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 한참 전 불가리아는 소렴의 무력에 의해 점령당했고 소련에 등에 업은 디미트로프가 불가리아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출범하였으며 배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여전까지 공산당의 억압된 사회주의 국가였다.

 

분더킨트는 1980년대말  그러한 불가리아 배경으로  음약영재들을위한 불가리아 소피아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7살에 피아노와 청음 테스트를 통과한 후 15살이 된 1988년까지 쭈욱 소피아음악학교에 재학중인 콘스탄틴의 이야기로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 신동의 이야기는 목차부터가 남다르다.

라흐마니노프, 쇼팽, 브람스등 피아노 연주곡이 목차가 되고있는 모습이니

 

 

 

 

 

 

일반인들보다 더욱 감각이 발달한 음악인들의 이야기 거기에 일생에 가장 민감한 시기의 청소년기에 도래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살얼음판을 딛는것같은 하루하루의 일상이 펼쳐진다, 헌데 억압된 사회구조속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오죽하랴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을 포함하여 선배 바딤 여자친구이자 아름다운 바이올리스트 이리나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그들을 이해해주는 이는 헌신적인 카디야선생님뿐....

 

 

 

 

 

 

 

드라마 밀회에서 피아노 선율이 감미롭게 다가왔던건 사랑의 장면에 오버랩되는 실제 연주를 들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면에서 분더킨트는 음악가의 집중력과 성향 곡에 대한 해석을 풀어간 필력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에도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만나면 더욱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60페이지에 이르는 제법 방대한 분량이 전혀 지루하지가 안다.

 

 

 

 

 

학교도 사회도 가정도 너무도 억압되어있는 분위기속에서 너무나  감정적인 아이들은 그안에 수용되기가 너무 힘들어보인다.

 

음악적 기질을 타고났으니 그에 순응하여 꼭두각시 연주자를 양성해내려는 체제에 반기를 드는 아이들 하여 그들의 하루하루는 반항으로 점철되고있다. 천재음악가를 모티브로  청소년기 아이들의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정신적 성장의 그 수위가 최고조에 이른다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음악가를 키워내는 학교였으나  체재속으로 억압하려는 학교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는 음악의 아름다움과는 매우 상반된 모습을 하고있다.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하고 술을 마시며 폭력까지 일삼으니..... 그러다 결국은 퇴학처분

 

체제의 순응이냐 반항이냐에 따라 대비되는  여러형태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그려지고있던 분더킨트는  사회주의와 천재들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하였으나  정녕 지금까지의 성장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화두를 적나라하게 끄집어내어주고 있었음이다.

 

네겐 선택권이 없어 넌 일생을 음악가로 살게 될 거야

안 그려면 스스로를 파괴하겠지...

 

아님 이와 같이 이미 결론을 만들어놓고  기성세대가 그 상황을 종용하는 비겁함을 보여주거나....

  

 

 



d****0 2014.04.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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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선율이 들리는듯한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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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_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 신동, 영재, 천재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특별히 한가지 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나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을 그저 부러워만 했는데  이 소설은 피아노 영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을 들여다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목차부터 보통의 소설과 다르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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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_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


신동, 영재, 천재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까?

특별히 한가지 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나 영재라 불리는 아이들을 그저 부러워만 했는데 

이 소설은 피아노 영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을 들여다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목차부터 보통의 소설과 다르다.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해 쇼팽, 바흐, 베토벤등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피아노 배경음악으로 듣는듯 전개가 된다. 

음악 신동인 아이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를 묘사해 놓은 작가의 글솜씨는 

마치 한편의 피아노 음악을 영상으로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까지 한다. 

이 책을 쓴 이가 다름 아닌 피아니스트여서 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속의 주인공 콘스탄틴은 꽤나 반항적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힘겨운 사춘기를 겪고 있다.  

제일 먼저 학교를 박차고 나갈거 같은 주인공보다 먼저 학교를 하나둘 떠나가는 친구들때문에 힘겨워하고 

선생님의 교육방침에 대한 불만을 피아노 연주를 통해 해소하는가 하면 

육체적인 성장을 통제하지 못해 꽤나 문제아처럼 행동하게 된다. 

작가의 글이 참으로 적나라하고 꽤나 까칠하게 묘사 되어 있어 그 아이들의 내면속에 들어앉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책이 쉽게 술술 읽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장벽 붕괴이전 세계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어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대에 갈등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된 아이들!

감옥 같은 학교에서 자신들은 원하지 않는 교육을 받으며 친구들과 무한 경쟁을 하며 성장하는 사춘기 천재들, 

그래도 뜻이 통하는 선생님이 있어 위험한 선을 넘기지 않도록 위로 받기도 하는가 하면 친구들에게 마음을 의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쨌거나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는 이 아이들 또한 보통의 아이들처럼 사랑에 설레이고 상처받고 

또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있어 많은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 반갑게 여겨진다. 

꽤나 철학적이고 고상할거 같은 그들의 성장통이 우리의 성장통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아픔과 갈등속에 고통받는 이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체제의 갈등속에 남다른 예민한 감각으로 멋지게 성장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음악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k*******7 2014.05.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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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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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니콜라이 그로츠니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피아니스트. 1973년 소피아에서 태어났고,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음악학교인 루보미르 피프코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네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았고, 열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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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



니콜라이 그로츠니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피아니스트. 1973년 소피아에서 태어났고,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음악학교인 루보미르 피프코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네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았고, 열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찾아들자 재즈와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음대에 진학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음악가의 길을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티베트와 인도로 떠났다. 사 년 동안 다람살라의 승가대학에서 승려 교육을 받으며 인도에 체류한 뒤 펴낸 회고록 [거북이의 발]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펴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부인인 소설...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피아니스트. 1973년 소피아에서 태어났고,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음악학교인 루보미르 피프코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네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았고, 열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찾아들자 재즈와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음대에 진학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음악가의 길을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티베트와 인도로 떠났다. 사 년 동안 다람살라의 승가대학에서 승려 교육을 받으며 인도에 체류한 뒤 펴낸 회고록 [거북이의 발]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펴냈다.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부인인 소설가 대니얼 트루소니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 [분더킨트]는 영재 피아니스트로서 음악학교에서 청춘을 보낸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몰락해가는 동구권 체제의 숨 막히는 분위기와 권위적인 학교 행정당국, 음악에 대한 천재의 헌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의 압박 속에서 반항과 일탈을 일삼으면서도 오직 음악에 대한 사랑만은 버리지 못했던 한 천재 소년의 슬프고 아름다운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가 불가리아 소피아의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다.
 ♣

 

 요즘 JTBC의 <밀회>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20세의 피아노 천재와 40세의 유부녀의 아슬아슬한 사랑이야기(정확히 말하자면 불륜이지만)를 다루고 있다.

음대와 아트센터 등이 연결되어 있고 주인공이 모두 피아노 전공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유난히 피아노곡과 클래식 음악들이 드라마 전체를 감싼다.

드라마이기에 시각과 청각을 모두 만족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가 아닌 책으로 그 피아노의 선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있다.

 

「분더킨트(니콜라이 그로츠니)

 

과연, 책으로 듣는 피아노 선율은 어떤 느낌일까?

 

   。

   。

   。

 

(출처: 인터파크)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이 책은 불가리아 출신의 파이니스트이자 소설가인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목차를 모두 곡명으로 대신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출신의 저자이기에 가능한 제목이 아닌가싶다. 총 2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프롤로그

1장 -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2장 - 쇼팽, 스케르초 B단조
3장 - 쇼팽, 에튀드 C장조
4장 - 브람스, 인터메초 E♭장조
5장 - 쇼팽, 에튀드 E♭장조
6장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단조
7장 - 쇼팽, 발라드 2번 F장조
8장 -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4번 C단조
9장 - 쇼팽, 스케르초 3번 C#단조
10장 - 쇼팽, [영웅] 폴로네즈 A♭장조
11장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C장조
12장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F단조
13장 - 바흐,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1번 B단조
14장 - 쇼팽, [화려한 왈츠] A♭장조
15장 - 쇼팽, 에튀드 A♭장조
16장 - 쇼팽, 에튀드 G#단조
17장 - 쇼팽, 즉흥환상곡 C#단조
18장 - 쇼팽, 마주르카 1번 B장조
19장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단조 3악장
20장 -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단조 1악장
21장 - 브람스, 발라드 op
22장 -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단조
23장 - 무소륵스키, 닭발 위의 오두막
24장 - 무소륵스키, 지하묘지
25장 - 쇼팽, 에튀드 C단조

옮긴이의 말

 

(출처: 인터파크)

 

 

 

마치며

 

이 책 「분더킨트」 역시 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인 1980년대 말의 불가리아에 있는 음악영재들을 위한 소피아 음악학교가 그 배경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하는 냉전시대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천재소년들의 성장기와 그들의 삶을 통해 흐르는 근대사가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다. 소년들의 성장이야기와 음악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이 궁금했다. '분더킨트'라는 말은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열다섯 살의 콘스탄틴이라는 피아노 신동을 가리킨다. 저자의 분신이라고할 수 있다. 저자 자신이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열 살에는 국제 피아노콩쿨에 입상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이제 장편소설로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으니 그는 말 그대로 '분더킨트'라고 할 수 있다.  

 

각 장은 쇼팽, 베토벤, 바흐, 브람스, 무소록스키 등의 곡 제목으로 되어 있고 장의 시작에는 날짜가 적혀 있다. 화자인 '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리나, 천재 피아니스트 바딤, 삼촌 일리야, 무당벌레 등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한 피아노 천재가 겪어야 하는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성장통은 그 어느 시대, 그어느 누구보다도 크다. 냉전체제 속에서의 조국 불가리아의 모순을 담아내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나와 같이 피아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전공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시절 피아노 좀 쳐봤다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추억을 돋게 해주는 책이다. 잡지의 인터뷰도 아니고, 제3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써내려가는 자전적 소설이기에 색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을, 피아노를 사랑한다면, 지금 바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소설이다.

 

(출처: 인터파크)

 

 

 


 

 

 

피아노천재의 성장일기 - 「분더킨트」(니콜라이 그로츠니) -

calamis

(http://calamis.tistory.com)

 

 

 






c*****s 2014.04.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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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기교가 아닌 세계였다. 스스로를 온통 뒤흔들어놓는 음악. 나를 비워야만 진정 음악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사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너무 안타까웠다. 단지 나의 상상력에 비추어야만 한다는 것이. 함께 공감하며 나의 감상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음악을 전공한 자는 이 책을 또 어떻게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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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기교가 아닌 세계였다. 스스로를 온통 뒤흔들어놓는 음악. 나를 비워야만 진정 음악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사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너무 안타까웠다. 단지 나의 상상력에 비추어야만 한다는 것이. 함께 공감하며 나의 감상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음악을 전공한 자는 이 책을 또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목차만 봐도 그렇다. 라흐마니노프, 쇼팽, 브람스, 바흐, 베토벤, 무소록스키의 곡들로 가득한. 목차만 보고 음악을 딱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요즘 JTBC '밀회'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김희애와 유아인이라는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주연 배우의 치명적인 불륜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 그들의 관능적인 음악적 교감. 음악의 힘은 정말 위대하구나,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정말 대단하구나 하던 차에 이 책을 접하면서 왠지 그들이 더욱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음악 그 자체가 이미 자기 자신이며, 생존의 이유인 것이다. 저자가 음악을 묘사하고 풀어내는 예민한 방식 또한 그러하다.

 

쇼팽의 작품에는 항상, 그가 만년필을 내려놓고 손수건을 들고 창가로 걸어가 어떤 애매함도 장식도 속임수도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순간이 있었다. 인간이 처한 조건을 한순간에 휑뎅그렁하게 드러내는 예상치 못한 정직의 순간. 모든 낡은 질문에 대한 무언의 대답. (...) 어떻게 한낱 음조에 불과한 것이 모든 실존적 곤혹스러움을 달래고 모든 역설을 풀어헤칠 수 있었을까? (P 61)

 

'열정'은 본질적으로 어둡고 악마적이었으며, 뇌를 영원히 왜곡시킬 수 있는 곡이었다. 그거야말로 베토벤의 천재성이었다. 그는 강을, 수선화가 핀 들판을, 하데스의 문을, 탈출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도 갖게 놔두지 않고 보여줬다. 그게 현실이었다. 절대 바뀌지 않을. 심지어 달콤한 향기가 흐르는 광대한 정원과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하얀 햇살을 보여주는 안단테 콘 몰토 악장조차도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을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건 지혜였을까, 아니면 귀먹은 자의 최후의 판결이었을까? (p 252~253)

  내가 어떻게 저런 기분을 느끼며 해석해 낼 수 있을까? 단순히 음악으로 위로받고, 가끔 어느 순간 음악이 나를 어느 시공간, 그 때로 휙 데려가 주는 정도의 경험만 해 본 나로서는. 때로 그 음악에 취해 마치 나 혼자 세계와 단절되어 홀로 오롯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음악의 위대함을 언제나 느껴왔었는데, 전공자가 풀어내는 음악 이야기는 실로 더 위대했다.

 

  게다가 억압된 사회 분위기, 답답한 학교, 엇나가며 방황하는 주인공, 음악에 대한 열정 만큼이나 어쩌면 강렬한 성적 욕구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은 어쩌면 그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그러하듯 사회에 대한 비아냥과 학교에 대한 조롱을 서슴치 않고 행동으로 옮겨낸다. 그러지 않으면 질식할 거 같았을까. 그의 재능을 아끼는 선생님이 그에게 하는 충고.

 

지금 네겐 선택권이 없어. 넌 일생을 음악가로 살 거야. 그러지 않으면 도중에 스스로를 파괴하겠지. (p 162)

  그래서 바이올린을 잃은 이리나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 걸까. 결국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미처 처음부터 깨닫진 못했지만, 사랑했던 이리나의 자살도 목격하게 되고. 학교를 나오며 연주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재능들은 그에게서 사라지고 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빛나는 재능은 숨길 수 없으니까. 숨기려 들면 들수록 그를 옥죄어오며 살 수 없게 만들 테니까.

 

  나도 언젠가 곡이 내게 내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오감을 통해 전해 오는 수많은 세계의 이야기들을.


 

k*****u 2014.04.14.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하여...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하여..." 내용보기
오래전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보면 무술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난이도의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 수 있다는 경고를 만나게 됩니다. 주화입마란, “(수련과정에서 운기조식할 때 외부에서 충격을 받거나, 심마 같은 마음의 큰 동요가 있을 때, 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과하게 영약을 복용했을 때 몸 안에 도는 기를 통제하지 못하여 내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하여..." 내용보기
 

오래전 유행하던 무협소설에 보면 무술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난이도의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 수 있다는 경고를 만나게 됩니다. 주화입마란, “(수련과정에서 운기조식할 때 외부에서 충격을 받거나, 심마 같은 마음의 큰 동요가 있을 때, 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과하게 영약을 복용했을 때 몸 안에 도는 기를 통제하지 못하여 내공이 역류하거나 폭주하는 현상을 일컫는다.”라고 엔하위키 미러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수의 경지에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이겠지요.

 

불가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소설가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장편소설 <분더킨트(Wunderkind)>를 읽으면서 ‘주화입마’라는 무술계 용어가 생각난 것은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록 넘어야 할 험한 산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 일찍 재능을 보여 신동이라고 주목받던 이가 정작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꾸준한 훈련을 통하여 재능을 꽃피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신동(神童)이라고 옮기는 독일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한 <분더킨트> 음악에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선발하여 훈련시키는 불가리아의 소피아 음악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영재들, 특히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콘스탄틴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콘스탄틴의 삶에서 특별한 날에 생긴 일을 연대기(年代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곡으로 그 제목을 삼고 있는데 아마도 그날의 사건분위기 혹은 그날 주인공의 기분을 잘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잘 살려낸 얼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5개의 에피소드에는 피아노곡의 제목을 달아두었는데, 어쩌면 에피소드의 분위기 혹은 그때 상황에서 콘스탄틴의 느낌을 잘 표현하는 곡으로 고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문에서도 곡의 느낌을 자세하게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3장의 ‘소팽, 에튀드 C장조, op.10,no.1’에서는 이런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쇼팽을 연주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음악만이, 음악의 환영만이, 음악의 환영이라는 환영만이, 기억된 소리와 주제와 과거를 떠다니다가 다른 주제와 다른 화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음조의 붓놀림들로 이루어진 흐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 에튀드의 반복 부분은 항상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그 부분에서 타오르는 과정된 불꽃, 의기양양한 절망, 맨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우레 소리 같은 도 음정, 내 육체를 태운 불꽃을 태워버리고 모든 원자와 기억과 예견된 미래의 모든 순간을 절멸하는 그 도 음정, … (75~76쪽)” 피아노곡을 잘 알면 작가가 전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붙들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제가 피아노곡에는 전혀 문외한이라서 아쉬움이 더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1987년 11월 3일 시작되어, 89년 1월 23일까지는 한 달에 서너 번도 적었다가 두세 달을 건너뛰기도 하다가 마지막 두 개의 에피소드는 9달 가까이 건너뛰기도 합니다. 꼭 한번 열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7년 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음악학교의 저학년 때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험을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어쩌면 작가 자신의 경험을 적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앞서 주화입마의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소피아 음악학교의 학생들 특히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동들의 경우 튀는 행동을 해서 학교운영진을 곤란에 빠트리곤 하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결국은 퇴교조치까지도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해야 할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제약을 깨트리는 짓을 서슴치 않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신동의 재능을 완성하는데 제약이 되는 주화입마에 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은 절친 바딤과 이리나에 이어 콘스탄틴까지도 퇴교조치를 당하게 되고, 특히 이리나의 경우 교장의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아서 읽으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퇴교당한 콘스탄틴이 다시 음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소피아 음악학교의 교육시스템에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은 그런 고민에서 자유로운지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y*****2 2014.04.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분터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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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인 '분더킨트'는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밀회>에서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소재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예술계에 있어서 천재성을 타고난 인물들은 신비롭기까지하다. 나는 어릴때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깨가 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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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인 '분더킨트'는 '음악, 문학, 예술계의 조숙한 어린 천재나 신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밀회>에서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소재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예술계에 있어서 천재성을 타고난 인물들은 신비롭기까지하다. 나는 어릴때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깨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서 피아노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가정형편도 피아노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만큼의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그 당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된 계기를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피아노를 그만두던 15살의 나에게 피아노 선생님은 '너가 언젠가 피아노를 그만둔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물론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내 나이에 나는 갑자기 피아노를 치고 싶어졌다. 학창시절 피아노를 치면서 분출했던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은 까닭은 예술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 <분더킨트>는 나의 피아노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으로 기대되었던 작품이다. 더군다나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의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인 니콜라이 그로츠니는 불가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네 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았고 열 살의 나이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찾아들자 재즈와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음대에 진학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음악가의 길을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티베트와 인도로 떠났다. 현재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았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부인인 소설가 대니얼 트루소니와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인 니콜라이 그로츠니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실제로 11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불가리아 국립 음악학교인 루보미르 피프코프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영재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이 책은 영재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청소년기를 담아낸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2년 전인 1980년대 말, 온통 잿빛인 동구권 불가리아의 도시 소피아의 하늘. 그 아래, 음악 영재들을 위한 학교인 소피아 음악학교가 있다. 열다섯 살의 피아노 신동 콘스탄틴은 이 특별한 음악 감옥에서 피나는 연습과 피 튀기는 경쟁 속에 유년기를 오롯이 보냈고, 이제는 방황하는 사춘기를 맞고 있다. 온 세계가 동과 서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소련과 미국으로 나뉜 냉전시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모은 소피아 음악학교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기계적인 체제 순종형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낡은 이념을 아이들의 머리에 강제로 주입하려 한다. 체제의 꼭두각시인 선생들과 그들의 뜻에 양처럼 순종하는 아이들로 이루어진 학교, 아들이 음악에는 천재인 동시에 체제에는 순종적이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부모, 이 둘 모두를 끔찍이 경멸하고 증오하는 콘스탄틴은 오직 음악을 통해서만 위안을 얻고 해방감을 맛본다. 그와 그의 패거리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반항심을 품은 채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여학생을 꾀어 다락에 숨어 섹스를 하는 등, 저항들을 일삼으면서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그와 뜻이 통하는 이들은 헌신적인 피아노 강사 카티야 선생과 그 밑에서 함께 배우는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일 년 선배인 바딤, 그리고 집시의 피가 흐르는 이리나라는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 소녀뿐이다. 그리고 가끔은 강제노동수용소를 전전하다 겨우 생존한 일흔일곱 살의 먼 친척 일리야 삼촌을 만나 불가리아의 참혹한 근대사의 장면들을 듣고 분노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콘스탄틴은 공산주의만 증오하는 게 아니다. 그가 보기에 동과 서는 모두 미치광이들이 판치고 있는 지옥일 뿐이다.

이 책에서 기계적인 연주자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피아노를 치는 주인공 콘스탄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콘스탄틴이 음악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부분들이 눈길을 끈다. 또한 콘스탄틴은 '콩크루란 음악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박제 기술과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연주했다. 계속해서 반음계와 온음계를, 아르페지오와 화성 진행을, 나만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완벽하게 가다듬었다. 나만의 목소리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천 명의 연주자 중 겨우 하나나 둘 정도만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 애들은 심지어 열 살이라 해도 라흐마니노프를 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오로지 목소리만을 요구하는 가장 어려운 곡들은 느린 작품들이었다. 녹턴, 프렐류드, 스케르초와 발라드의 나직한 악절들, 아침, 오후, 심지어 한밤중에도, 나는 건반 하나를 누르고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사용하여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허공에 울리는 소리의 반향에 맞춰 내면의 존재를 조율하며 그 목소리의 비밀스러운 원천을 찾아 헤맸다."

"이미지는 단숨에 눈에 들어온다. 반면 음악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경험된다. 지금 당장도, 나중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다. 하지만 누군가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세계로 보내버리는 힘은 누가 가졌는가."

소설 <분더킨트>를 읽으면서 저자가 쇼팽의 다양한 곡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쇼팽을 매혹적으로 그린 장면 장면들이 훌륭하다.

"쇼팽을 연주할 때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음악만이, 음악의 환영만이, 음악의 환영이라는 환영만이, 기억된 소리와 주제와 과거를 떠다니다가 다른 주에와 다른 화음으로 모습을 바꾸는 음조의 붓놀림들로 이루어진 흐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무언가의 형태와 윤곽을 아름답게 세공하려 하자마자 그것은 바르러져 사라졌다. 살아가야 하는, 날마다 흐르는 우둔함과 슬픔과 모욕과 경멸의 급류를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분명 이 황홀한 상태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 상태 속에서 내 숨결은 쇼팽의 숨결에 동조했고, 신성함을 드러내는 비밀 암호가 허공에 쓰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곤 손가락을 건반 위로 옮겨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고, 그러면 문들이 활짝 열렸다. 만약 피아노 음반을 듣는 일이 사람들이 와인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콘서트에 참석하는 일이 와인을 마시는 거라면, 그렇다면 마시고 취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령 같은 세상은 뒤에 버려두고."

"쇼팽과 다른 작곡가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는 1인칭으로 작곡을 하고 다른 이들은 3인칭으로 작곡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베토벤, 모차르트, 리스트, 라벨, 슈만, 드뷔시, 그들 모두 다른 사람, 나라, 사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말했다면 오직 쇼팽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거야말로 쇼팽의 악절에 깃들어 있는, 그를 나머지 모든 작곡가와 따로 뗴어놓는 적나라하고 뜨거운 정직이었다. 하지만, 음악에서 그렇게 정직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피아노에 앉아 화음과 진행을 가지고 놀다가, 외부에서 온 무언가가 아니라 건반과 자신의 손가락이 바로 영혼의 가장 깊숙한 본질인 양, 모든 생각과 감정이 솟아오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인 양 어떤 가식이나 조급함 없이 곡을 써내려간다는 것은. 이런 직접적인 표현력을 얻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야 하는 걸까? 가식, 선동, 자기 변명에서 벗어나려면 결핵으로 죽어가기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공인 콘스탄틴을 통해서 획일화된 음악교육 방식 뿐만 아니라 1987년 당시 공산국가인 불가리아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통렬히 비판한다. 특히, 저자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더욱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색 하늘, 멀리 보이는 음침한 산맥, 도래할 사회 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찬양, 팸플릿과 슬로건들, 뇌에 매독이 걸린 수염 난 소비에트 난쟁이를 묘사하는 현수막들, 행진하는 덜떨어진 군인들, 생각 금지령, 전쟁에 대한 역겨운 매혹, 뚱뚱보 정치국원들의 승리, 범속한 인간들의 환희, 마치 악마를 봉인이라도 하듯 죽은 자의 무덤을 수호하는 빨갛고 녹슨 별 모양의 오각형들이. 이 저주받은 현실을 영속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다른 사람이 만든 음악을 연주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생각과 두려움을 체험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만약 이런 행위가 공감 능력을 키우는 거라면, 타인을 사랑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는 법을 배우는 거라면, 어째서 음 하나하나를 짚을 때마다 주변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 속에 있는 추악함을 더욱더 견디기 힘든가?"

"모두가 죄수인 나라에서 산다는 건 얼마나 편안한 일인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지시를 받는 달콤한 부담, 공익을 위해 살고, 공익을 위해 먹고 일하며, 공익을 위해 섹스를 하고, 물러터진 흙 속에 편안히 눕는 것. 그리고 구름처럼 자욱한 차가운 네온 불빛들과 더불어 종말이 왔을 때, 우리를 종말로 인도하는 것들은 바로 이런 로봇같은 인간들, 체제가 확실히 작동하도록 보장받는 인간들이자 법을 준수하고 그들에게 퍼 먹인 모든 거짓말들을 믿는 인간들일 것이다."

소설 <분더킨트>에는 주인공인 콘스탄틴과 함께 천재 피아니스트인 콘스탄틴의 선배 '바딤'이라는 인물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바딤이 '음악이 무언가 진실한 걸 말해주길 원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음악은 진실을 통해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딤은 다른 인간이었다. 그는 한 작곡가가 우연찮게 시간이라는 거울을 통해 들여다본 자신의 경험 전체를 요약한 선율구를 써내려갈 때의 순수함과 순박함으로 곡을 연주했다. 그는 음 몇 개를 잘못 짚거나 손가락이 부서져라 움직여야 하는 악절을 뭉개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연주할 때 작곡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딤이 진짜로 신경 쓰는 건 선율의 호흡을 열정적으로 , 확고하게 따르는 것이었다. 첫 마디에서 숨을 들이쉬고 오백 마디째에서 숨을 내뱉음으로써 반음계 하강과 카덴차를 꿰뚫는 맥락을, 폭발과 고요의 순간이 이어지는 가닥을, 마치 지구 표면을 뒤덮을 정도의 사과 껍질을 얇고 길게 깍는 고행 수도자처럼 추적함으로써, 바딤은 화음을 잊어버린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새 화음을 만들어 작품의 나머지와 연결되도록 조를 바꿔버렸다."

"그 사람들이 만드는 음악들은 삶을 창조하지 않아. 그냥 모방할 뿐이지. 나는 음악이 뭔가 진실한 걸 말해주길 원해. 환상도 과학소설도 원하지 않는다고. 난 예쁘장한 화음도 관심 없고 그로테스크한 걸 다루는 이따만 한 광상곡에도 관심 없어. 신기함에 대한 강박이 없단 얘기야. 신기하려면 새로워야 하고, 희한해야 하고, 괴상해야 하고, 어딘가 좀 망가지고 왜곡돼 있어야 하고, 전에는 한 번도 생각 안해봤던 것이어야 하고, 그렇잖아. 하지만 그딴 건 없어. 진실을 말하고 있으면 있는 그래도 말하면 돼. 안 그러면 사기를 치는 거야. 브람스를 봐. 화음 네 개, 진짜로 소박하지. 하지만 핵심을 제대로 짚는다고. 너한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지."

'무당벌레'라는 별명을 지닌 카티야 선생님은 콘스탄틴과 바딤을 가르쳤다. 21살의 나이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연주 일주일전 심장발작을 일으켰던 카티야 선생님은 그 후로 음악적 경력은 끝이났다. 카티야 선생님은 사춘기의 방황을 일삼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콘스탄틴을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카티야 선생님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로의 꿈과 예술혼을 제자를 통해서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건반 위에서 눈물을 닦으면서 엄마를 불러대는 한심하고 찌질한 남자들처럼 연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음악엔 자기연민이 설 자리가 없어. 네 의지를 다 써내려간 것처럼 연주해야 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해서 더는 증명할 것도, 승리하거나 패배할 것도 없는 사람처럼 연주해야 해. 할 말을 다 하고 할 일을 다 하면 네 마음이 몸에서 찢겨나가서 그 둘이 유리병 안에 따로 따로 보관되리라는 확신을 품고 연주해야 해."

"지금 네겐 선택권이 없어. 넌 일생을 음악가로 살 거야. 그러지 않으면 도중에 스스로를 파괴하겠지. 피아노는 말이지, 여전히 널 이 악몽에서 빼내 줄 유일한 티켓이야. 언젠가 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게 될 거야. 프랑스건 미국이건. 음악가들은 정부와 국가의 광기에 엮이는 일에서 면제돼. 음악가들을 보통 사람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할 수 있어. 음악가들은 이 세상의 추함에서 벗어나 숨을 수 있다고."

바딤과 콘스탄틴이 좋아하던 이리나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콘스탄틴까지 결국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바딤은 군인이 되고 이리나가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콘스탄틴이 이리나에 대해 생각했던 '음악 안에서 진실해졌고 음악 안에서 만났고 음악 안에서 서로 사랑했다'라는 글귀가 아른거린다.

"나는 한두 시간 만에 모두 배웠지만 왈츠에 깊이 빠졌다. 다른 곡은 칠 수가 없었다. 그 곡에는 내 생존에 절실하게 필요한 순수하고 미숙하며, 사람을 열중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절대 가져본 적 없는, 어인 일인지 나는 왈츠 속의 소녀가 이리나를 닮았다고 상상했다. 물론 그녀는 이리나와는 예절도 도덕도 교육 수준도 달랐지만 소질이라는 면에서는 완전히 똑같았다. 이리나가 저지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바이올린 외에 숨을 곳이 있었다면,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부정당하지 않았더라면, 점점 야비해지는 식으로 자신을 벌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을 테고. 하지만 우리는 항상 음악 안에서 자신을 정화했다. 음악 안에서 진실해졌고 음악 안에서 만났고 음악 안에서 서로 사랑했다. 그림자가 빛 속에서 사라지듯 우리의 유령 같은 육체를 불태운 다음, 음악의 공간에 자아를 비우고 형태를 없애고 미래도 지운 채 들어갔다."

'때가 와서 커다란 거울을 지나칠 때, 거울 속에서 낯선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던 일리야 삼촌. 콘스탄틴은 멀리서 온 여행자였던 것일까. 용서보다도 우선시 되야 할것은 바로 이해라고 말하던 일리야 삼촌의 말이 떠오른다. 책 끝부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소란스러운 혁명에서조차도, 사람은 시간의 바퀴에 글자가 새겨지는 소리를, 우리 없이도 계속되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던 콘스탄틴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돈다.

"콘스탄틴. 정의는 탁상공론을 지껄이는 몽상가들, 소파에 파묻힌 혁명가들, 아마추어 예언자들을 위한 거란다. 정의는 오로지 진자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네가 정의를 세우겠다며 자기 목적에 맞춰 우주의 균형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야. 바로 그래서 전쟁이 멈추질 않는 거다. 정의야말로, 저도 알다시피, 모든 폭력의 근원이다. 설사 네가 어리다 해도 그건 알아야 한다. 유령들을 쫓고 모든 악의 근원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보내지 마라.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절대 책임을 지지 않는 이유는 사실 누구도 자기가 저지르는 일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야. 책임 따윈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폭력과 권력의 대리인일 뿐이란다.
아니. 용서 안 했다. 왜냐하면 용서 역시 정의의 산물이니까. 내가 일생 동안 애써온 것이 있다면 바로 이해다. 나는 물론 무엇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 할 수는 있지. 그리고 이해의 시작은 질문을 멈추고 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란다. 이걸 단지 말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단다, 아가야. 네가 복수를 하고야 말 때가 올 게다. 네 눈에 다 보여. 너에게 못된 짓을 할 사람들을 처벌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때 기억해라. 내 말을 기억해..... 그게 전부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14.04.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