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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플라톤의 향연은 익히 철학서로 유명하다. 아직까지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아직까지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여러 해석과 아직까지도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것들이 많다 그래서 그럴까? 향연은 읽는다면 여러가지 면모로 사랑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향연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유명한 일부중 하나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시공간적, 심리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저자 또는 독자와의 만남이다. 읽는 내내 껄끄럽고 곡절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은 막상 읽어 본다면 정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 좋은 책이란, 시대가 변화에 따라도 그 시대의 사회의 일부를 느낄수 있음과 동시에 현대사회의 고증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며, 또한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이 가능하다는게 매력일것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분명있다. 내가 현 사회의 선입견을 가지고 읽으려 한다면 그것은 고전을 읽기보다는 반항적으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항상 고전도서를 읽을때는 번역본을 어떤것으로 골를것인가를 고민한다. 영화 어벤져스도 그렇고 최근 영화에서 번역으로 인한 번역가들이 곤욕을 치룬다. 황석영선생님, 무라카미하루키 또한 번역일을 해오고 해왔다. 번역이란 단순히 우리나라 말로 글을 옮기는 것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정서로 옮긴다이다. 그렇기에 번역이란 말을 옴기는 것이아닌 사람의 마음의 전달과 같아서 난 번역본을 철저히 조사후 책을 선택한다. 이번 향연은 '정암학당'이라는 곳은 책 끝머리에도 있지만 사단법인이며, 그리스,로마분야 선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가르키는 곳이다. 정암학당은 2000년 이후로 7년여를 소장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플라톤의 작품을 읽고 번역하는데 매달리며 연구하고 그중 결실이 내가 선택한 플라톤 '향연'의 번역본이다. 향연의 대략 내용은 이러하다. 기원전 404년 전후로 추정되는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폴로도로스가 몇몇 동료들에게 받은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극 경연에서 첫 우승한 아가톤 집에서 벌어진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등 당대 지식인들이 사랑에대한 이야기에 궁금해하고 자신의 사랑의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굳이 글로 적지는 않겠다. 여러 철학적인 대립면이 많다. 이야기를 썼다가는 아마 하루종일 써야 할듯 하다. 그러나 이 책에대해 언급하는 것은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 보고 싶다면 얼마나 번역이 잘되어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것을 일러두고 싶다. 물론 이 책의 단점이라고 지적하자면 한가지뿐이다. 실은 단점이 아니다. 수 많은 주석들이 있어서 가독성을 겸비하여 쉽게 번역을 하였다 하더라도 수많은 주석으로 인해 가독이 어려운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책을 누가 가독성있게 읽을것인가? 어쩌면 당연한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암학당의 플라톤 서적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하나 더하자면 이 책은 정말 훌륭할정도로 설명이 잘되어 있고, 정말 번역이 잘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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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흔히 목도하는 것이면서도 규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랑의 광경을 보면서도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물론 ‘ㅇㅇ는 무엇인가?’는 식의 존재를 묻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이든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의 놀라운 힘에 대해 경험할 것이고, 이 신묘한 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일 정도로 사랑의 힘은 강력하다. 사랑은 알 수 없으면서, 강력하고, 매혹적이다. 플라톤의 <향연>은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어떤 축하 모임에서 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주고 받는다. 인물들은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각기 표현한다. 재밌는 점은 이 등장인물들의 연설 속에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상당히 녹아져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이 작품을 문학적으로 더 돋보이게 만들며, 다른 플라톤의 책들과 비교할때도 더 생생하고 재밌게 만든다. 이들을 단순히 조연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같이 생각하는 참여자로 고려한다면,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여러 관점이 담겨져 있기도 한다. 물론 소크라테스(혹은 플라톤)는 이들의 의견을 모두 변증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향연의 공간은 사랑에 대한 연설장이면서도, 사랑에 대한 철학적 출산의 구유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읽든 흥미로우며 작품을 풍성하게 느끼게끔 한다. 물론 독자에게는 이 책이 철학책인 만큼 각 등장인물의 사랑에 대한 연설을 철학적으로 검토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분명 소크라테스는 사랑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직관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사랑에 대해 100퍼센트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철학적으로 플라톤식 사랑은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본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 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도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우리는 결코 사랑의 앎에 대해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향연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신적인 것(완전한 진리를 깨달은 자, 아니면 신)과 가사적인 것(평범한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더 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앎에 대해 갈망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깨닫지는 못해도 최소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늘 존재하고, 중요하며, 우리에게 호기심을 끄는 어떤 것이니까. 그렇다면 <향연>을 읽는 우리의 의의는 향연을 읽음으로써 궁극적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서 사랑을이 무엇인지 답을 구하기위해 사랑의 사다리를 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향연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플라톤은 우리와 다른 시간, 공간의 사람이며 플라톤의 생각을 우리에게 이식(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이식이라고 했을 때)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끔찍한 면역반응을 겪게끔할 것이다. 철학을 전공했던 사람의 입장으로서도 처음 철학책을 읽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였던 기억이 난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이라고 말한다.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신이 향연을 읽는 과정, 향연과 사랑을 시도하는 과정은 낭만적이지 않으며, 하나의 출산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주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분명 ‘향연’을 읽는 과정은 출산처럼 새로운 무엇인가가 암시되어있다. 리뷰를 쓰는 사람 역시 향연을 읽을 때마다 무엇인가 새롭게 느껴진다. 조촐한 이 리뷰를 보고 향연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바란다. 여러 번역서가 있지만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책 곳곳(각주, 미주, 작품안내, 번역의 가독성 등)에 놓여있는 역자의 성의에 감사를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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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통해 덕에 이르는 실천적 사랑 아가톤의 집에서 파티를 즐기면서 에로스를 찬미하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 서두 혼자 덩그러니 노예의 시중을 받을때 "우스운 처지"라고 표현한것을
->앎과 질서에 대한 내용의 극적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순서바꿈이라고 한다.
이때 에뤽시마코스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또다른 농담을 할까 염려되어 이렇게 말하는데
♠ 이는 뒤에 나오는 "에로스의 사다리"(앎 자체를 직관하게 되면 참된 덕을 산출하게 된다)를 암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알키비아데스의 등장 전에 '에로스의 사다리'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에로스의 사다리는 연습의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연습이란 앎을 보존하는 것, 앎의 필멸의 방법으로서, 지혜를 사랑하는것(에로스)은 현재 지혜의 상태가 아니기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로스(지혜와의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연습을 통해 사다리를 올라가면 필리아(지혜와의 대칭적 관계=지혜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향연>의 맨 처음에 소크라테스가 하는말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네" 라는 부분은 소크라테스는 연습이 되어있다는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에로스의 사다리로써 연습의 중요성을 언급한 후 술취한 상태의 알키비아데스를 등장 시킴으로써 알키비아데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임을 암시하며, 연습이 안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곧 알키비아데스가 에로스를 찬양하지 않고 소크라테스를 찬양하겠다고 한것은 에로스의 사다리를의 한 사례로 소크라테스를 제시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에로스의 사다리> - 앎 자체를 직관(=선의 통찰)하게 되면 참된 덕을 산출하게 된다.(연습에 의해 덕의 상태가 되는것)
소크라테스의 말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찬미한 부분
♠정리 사랑은 아는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으로 연습을 거쳐서 덕의 상태에 이르는것이다. * 참고도서: 인문고전강의 -강유원- * 플라톤의 연애학개론 3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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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담은 대화편 향연이 제시하는 여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사랑과 이야기이다. 이 여정에서 두 가지가 서로 만나게 된다는 것,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말에서만 드를 뿐 하나임을 확인하게 된다. 틀 이야기에서부터 차츰차츰 준비되면서 하위 이야기들로 들어가는 과정은 사랑 이야기를 심도 있게 만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이야기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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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향연 - 지은이 : 플라톤 - 옮긴이 : 강철웅 - 향연은 소크라테스와 지인들이 함께 모여서 에로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에로스에 대한 탄생,정의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것을 들을것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이야기 하는 책이다. 에로스는 육체적일수도 있고 정신적일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정신적인 순수성에서 사랑을 하여 그 사랑의 결실로 자식을 낳은것이 예를 들면 예술가의 예술작품이라고 애기할수 있다. 일반보편적 사람들은 자신에게 충실하여 자신의 본연의 업무를 통해서 성과를 이루어 내면 그것이 에로스를 통한 결실이라고 애기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남녀의 육체적인 성욕에 의한 성행위는 에로스의 단계중에서 낮은 단계라고 애기할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성욕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에게 태어날때부터 죽을때까지 존재하는 본능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향연에서 남녀가 서로를 찾게 되는 이유로서 인간은 본래 하나의 원모양으로 된 생명체였는데 신에게 도전을 하였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둘도 쪼개 졌기 때문에 남은 한쪽을 찾아 헤매게 되는것이다 라고 애기한다. 그리고 남녀,남남,여여로 된 상태에서 쪼개졌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찾기도 한다고 애기한다. 이를 통해서 그당시에도 남남,여여 동성적 사랑이 만연하였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면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속에서 진행되는데 내용은 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점도 있으니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