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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여행기지만 빛바라지 않은 이야기.
"오래 된 여행기지만 빛바라지 않은 이야기." 내용보기
이번엔 1988년 여행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더 이상 과거로(저자의 과거가 아닌 나의 과거) 내려가는 일은 없겠지 싶었다. 그런데 1988년이라니. 난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학교가 파하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봤던 기억만 희미하다. 코흘리개인 내가 어영부영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14년 뒤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알게
"오래 된 여행기지만 빛바라지 않은 이야기." 내용보기

이번엔 1988년 여행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더 이상 과거로(저자의 과거가 아닌 나의 과거) 내려가는 일은 없겠지 싶었다. 그런데 1988년이라니. 난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서울 올림픽이 열렸고, 학교가 파하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봤던 기억만 희미하다. 코흘리개인 내가 어영부영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14년 뒤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알게 될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는 그리스와 터키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29년 뒤에 마주하고 있었다.


개정판 전에는 동행한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이 실려 있지 않았나 보다. 이 책에는 사진이 실려 있는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거의 속옷에 가까운 짧은 바지를 입고 있는 하루키의 사진에 시선 둘 곳을 몰랐다. 하루키는 젊었고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아이지만 척박하기 그지없는 그리스, 터키 여행을 읽고 있자니 <시드니!>와는 또 다른 나를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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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아이들, 시간을 어찌할 바 모르는 남자들, 삶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모습이 잠깐씩 드러났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저자를 따라 낯선 땅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건 1988년의 나도 그런 모습이었을 거란 데서 오는 동질감이었다. 두메산골의 9남매로 태어나서인지 오래전부터 나보다 몇 십 년 차이나는 어른들과 어릴 적 얘기가 자주 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야 아궁이가 아닌 보일러와 싱크대가 집에 들어왔고, 20분 거리에 큰 도로가 생기고 포장이 되었다. 한 시간이 넘는 학교와의 거리를 걸어 다니기도 했고, 아침을 굶고 갈 때면 엄마가 가마솥에서 긁어 준 누룽지를 손에 쥐고 간 적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라는 게 낯설다고 하는데 88년도의 하루키가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봤다면 사진 속에서 만난 터키 아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 같지 않아 이상하게 오버랩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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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개인적인 호기심과 열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리스와 터키 여행기를 읽고 있으면 이렇게 힘든 여행을 왜 했을까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사진에서 본 저자의 젊은 모습이 낯설었던 것처럼 젊었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을까? 특히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여자가 한 명도 없는 아토스 반도의 수도원 기행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지켜본 입장에서는 희극에 가까울 정도로 생고생이 가득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수도사들이 수행하는 곳이기에 편안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형편없는 식사에 좌절하고, 배고픔에 인간의 본성을 보기도 하고, 궂은 날씨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을 지나야 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무사히 저 섬을 나올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섬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정해져 있었고 헤매다가 결국 배를 못 타게 되었을 때는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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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함께 경험한 것처럼 생생한 이야기들 속에서 정말 진지하게 드러난 생각이 너무 웃겨서 혼자서 킥킥 대기도 했다. 양 문화 중심의 터키에서 양 냄새에 질린 나머지 화폐로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아토스의 험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도사들이 가까이 오기 전까지 ‘승려인지 거지인지 큼직한 원숭이인지 가까이 올 때까지는 구별할 수 없다’는 체념 섞인 이야기를 할 때면 저자의 고생은 저만치 날려버리고 그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라 실컷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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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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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빛바랜 여행기라 느끼면서도 생생히 살아 있는 기분이 드는 건, 그 안에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어쩜 기억 속에 갇혀 있던 공기를 꺼내고 기억해 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거의 30년 전의 여행기를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것도 그저 신기할 뿐이고, 완전히 동떨어진 나를 새롭게 반추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s****m 2017.05.31.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