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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에게든 의논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논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서 자료를 찾고 그러면서 생각하고 결정은 내가 내리고. 그렇게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대학을 입학할 때도, 취직했을 때도, 심지어 결혼할 상대를 찾았을 때도, 나는 의논이 아니라 통보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살면서 누군가의 탓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행동했으니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거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늘 말했던 것은 뭔가 의논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부모님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아이들만큼은 꼭 그랬으면 하는 바람.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나나 남편과 의논하려고 한다.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부모가 아니어도 세상 어딘가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만약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 보고 싶지 않은가?
오래된 번화가 구석에 위치한 선술집 요네다. 이곳은 전직 교사였던 부부가 함께 운영하던 가게였다. 남편이 죽은 후 아내 혼자 선술집을 꾸려가고 있다.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곳에는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이탈리안 요리사, 한때는 인기 있었지만, 지금은 한물간 왕년의 아이돌 스타, 어릴 적 가족의 해체로 가족의 역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남자. 그가 가정을 이루고 나니 집이 부담스럽다는 남편, 편식이 심하지만, 맛집 리포터 일을 하는 여자. 그들은 요네다 선술집에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해답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다시 요네야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 하지만 오네야 선술집은 이미 30년 전에 없어졌다고 하는데..
내가 본 것이, 들은 것이 꿈같을지언정 이렇게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할지도. 이만큼 나이를 먹으니 예전보다 더 내 고민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다. 더욱더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이만큼 나이 먹으면 뭔가를 선택하는 일이 적어질 줄 알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놀라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의 시간이 늘어나고 혼자의 시간에 남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짐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레이더가 타인을 향해 있었던 20대 30대와는 다르게 내 안의 나와 더욱더 많이 소통해야 하는 시점. 그렇게 나이 먹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노력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고민하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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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야라는 이름의 선술집. 남편은 오래 전에 죽었고 아내 혼자서 하는 곳이다. 남편은 생선을 잡았지만 아내는 그러지 못하고 그래서 이 집에는 남편이 잡았던 생선의 탁본은 많지만 메뉴에 생선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이곳에 주변 상점 주인들이 단골들 말고도 뜨내기 손님들이 찾아든다. 그냥 일반적인 사람인가 하지만 스마트폰을 보고도 요네야의 주인인 아키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처음부터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은 이 곳이 시간이 멈춘 곳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제목의 시간을 잇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게 된다. 과거의 요네야에 현재의 손님이 들어가는 것. 그리고 한번 그곳을 찾은 손님은 또 다시 그곳에 갈 수 없다. 현재의 요네야는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키호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음식을 제공해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것은 충고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이 되고 그렇게 사람들은 또 힘을 얻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된다. 아키호의 요리는 본문에서 언급하듯이 별거 아니라고 그런다. 불을 크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것들을 전자렌지에 데우거나 끓여서 내는 방식이다. 너무 무성의한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요리를 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 밑작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손이 가고 시간이 가는 일인지를 말이다. 그것을 다 해놓으면 그 다음에는 사실 별로 할 일도 없다. 혼자서 요네야를 운영하는 아키호는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서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지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으리라. 그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에 나왔던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을 각 에피소드 뒤에 편집해 실어놓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간단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요네야의 음식이 그러한걸. 이야기 속의 음식이라고 해서 그저 상상속의 음식인줄 생각할테지만 현실고증 가능한 음식이라는 걸 알려주는 방식이다. 선술집이라는 특성에 맞게 주로 안주가 되는 음식이지만 몇가지는 반찬으로도 응용가능해서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단 요네야의 가장 주력 음식인 전골은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지 않다. 더운 여름에는 이열치열이 될 것이고 바람이 삸쌀한 날에는 딱일 것 같은데 말이다. 나름 까다로운 입맛인 내게 아키호가 무엇을 추천해 줄지 사뭇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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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던 집이었는데, 이사를 하고 역병이 돌면서 정말 몇 년 만에 다시 찾았다. 배고프면 잠깐 들러 요기를 하던 곳,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당연히 여전할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녹슨 셔터는 한 여름 열기에 지친 집 지키는 개의 혀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위 아래는 물론이고 수평도 어긋나 있었다. 불 꺼진 내부는 잘 보이지도 안았지만 집기가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다른 곳으로 이사한 것도 아니고 그만 접은 모양이었다. 가게 앞에서 두리번거리자 바로 옆 부동산 아저씨가 나와서 거기 문 닫은 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아마 코로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모양이었다. 더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고, 괜히 바쁜 척 하는 것 같은 부동산 아저씨의 등 뒤에 더 뭔가를 묻고 싶지도 않았다. 뒤 돌아서다 다시 한 번 간판을 보았다.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세월의 풍파가 더께로 덮혀 있었다. 자비로 만든 것 같지 않은 간판 한 구석엔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 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겠지. 그 가게에 얹어둔 나의 추억 역시도. 어느 지역에선 일컫어 '다찌집'이라고 했다. 서있다는 뜻으로 서서 가볍게 한 잔 하고 가는 술집, 이를 순화해 선술집이라고 바꿔 부르곤 했다. 말그대로 집에 가는 길에 그냥 가면 심심하니까 잔 술로 한 두잔만 하고 갈 수 있게 마련된 곳, 과한 인테리어도 필요없고 무거운 술 안주도 필요치 않았다. 입가심이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안주들, 대신 좋은 재료를 써야 했고 그날 신선한 재료가 들어오면 가급적 그걸 권했다. '아무거나' 라는 메뉴도 있었다. "안주는 뭘로 드릴까?" "아무거나요" 그러면 주인은 좋은 재료 위주로 정말 자기 마음대로 안주를 뚝딱 만들어 내주었다.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었고 다음에 다시 그걸 먹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기에 그 아무거나에 기대를 하기도 했고 조금 부실해도 웃으며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먹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로 늦은 밤, 일차를 끝내고 아쉬운 마음에 속풀이용으로 들르는 곳이다 보니 대개는 단골들이 많다. 불콰하게 취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며 속상했던 일, 칭찬받고 싶은 일, 위로 받고 싶은 일을 털어놓았다. 마치 이 곳에서는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았다. 원래는 남편과 같이 하던 곳인데, 불의의 돌연사로 먼저 가고 안주인이 도맡아 하던 곳.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작은 선술집은 어딘가 비밀을 숨기고 있어 보였다. 선술집 이름이 왜 쌀집 이라는뜻의 요네야[米屋] 라고 한 건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쌀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단골들의 발길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곳. 다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찾아와 주었다. 그런데 낯선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언젠가 왔던 사람처럼 자신의 속내를 안주인에게 털어놓는다. 그건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 소설은 작은 선술집을 찾아와 그들이 풀어놓는 지금의 이야기와 안주인이 그때마다 알아서 내주는 작지만 맛깔난 안주들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힐링 소설이다. 이런 방식은 심야식당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시간의 간극이 그것이다. 장소는 분명 그곳이 맞는 것 같은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선술집, 어디로 간 것일까 술에 취해 위치를 혼동한 것일까. 설마 꿈을 꾼 것일까? 그렇다면 뭐든지 다 만들어주고, 뭐든지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얘기를 들어준 안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요리사가 되려는 아들, 아버지의 성에 차지 못할까 걱정이 많은 그는 이곳을 찾아와 힘을 얻어간다. 예전엔 인기를 먹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주는 곳도 없고 들어온 배역이 악역이라는 사실에 힘들어하던 아이돌 출신의 배우는 오히려 성격파 배우가 되는 것에서 길을 찾고 간다. 또 성공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오히려 집에선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어느 중년의 직장인도, 편식이 심한 맛집 리포터 역시, 이곳을 찾아와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다음에 찾아갔을 때 아무 것도 없었다. 요네야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 동네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당신들이 만난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친이었다고, 그리고 안주인 역시 더 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이 당신 앞에 나타나 맛있는 음식을 선사하고 당신들의 이야기를 정겹게 들어준 까닭은 세파에 지치지 말라는, 기성 세대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격려였을 것이라고. 지금 문을 닫은 오래된 가게, 아마 더 이상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곳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 주인이 설령 더 이상 그곳에 없어도, 그곳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행복해 하던 나의 모습을 미소로 기억해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필헌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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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 권선징악. 우리나라의 많은 이야기가 따르는 법칙이 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때론 지루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로부터 벗어나면 그다지 좋은 평을 듣기가 힘들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을 걷는다. 흥행 보증까진 아니겠지만, 적어도 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배워 다수 드라마의 플롯을 썼다는 내용이 작가 소개 글에 담겨 있었다. 글을 쓸 때 그가 어떠한 방식을 취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왠지 구조를 굉장히 중시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을 잇는 선술집’에 담긴 이야기는 동일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좌석이 딱 7석뿐인 허름한 가게인 ‘요네야’에 손님이 들어온다. 다들 꼭 이곳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목적 같은 건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경우가 다반사다. 50대 주인장 아키호가 내놓는 간단한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술 기운 덕인지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혼자 끙끙 앓던 이들에게 이는 치유의 기회로 작용한다. 듣는 이가 옳다 그르다 토를 다는 법 없이 이야기를 경청하는데다 연륜으로부터 비롯된 진심 어린 조언까지 건넨다.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던 요인은 고대로임에도 그들은 방금 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혼탁했던 앞길이 조금은 명료해진 거 같다. 좀체 낼 수 없었던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됐으며, 비로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어라는 확신 또한 생긴 듯 싶다. 이후 그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 저자는 말을 아꼈다. 삶이 180도 달라지는 일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므로 기대치 않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하도록 저자는 모종의 장치를 고안했다. 손님들이 한 번 더 요네야를 방문한다는 점이다. 도움을 받았다면 모름지기 감사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요네야는 여느 곳과 달라서 다음을 기약했던 사람들은 이내 놀라움과 마주하게 된다. 때론 제목이 모든 걸 암시한다. 이번 작품도 그러했다. 사람은 오로지 현재만을 살아간다. 과거를 그리워한다거나 다가오는 미래를 염려하는 등의 태도를 지닐 수는 있으나, 이 또한 현재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나의 삶과 너의 삶은 동일한 시간에 속하는 거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분절적인 시간에 갇힌 존재에 불과하다. 저자는 조각난 시간을 연결해 하나로 만들기에 도전한다. 등장인물들이 선술집 요네야에 입장하는 순간, 그들의 시간은 아키호의 시간과 중첩된다. 지금까지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이들 사이에 교감이 발생하는데, 이 교감은 이야기 안에 박제된 듯한 과거까지도 포괄하는 형태로 행해진다. 한 사람이 그려온 지금까지의 궤적에 충분히 공감하였기에 그들은 이제 결코 남이 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시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어지게 된다. 너무 단조롭다고 파악했던 걸까. 저자는 이어진 시간 사이에 시차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입체감을 더한다. 불과 며칠 전 만났는데, 나의 시간이 하루나 이틀 흐르는 동안 상대는 30년을 살아낸다. 쏜살같이 흘러간 상대의 시간은 아련함을 자아낸다.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모든 게 수렴하는 일을 방지하길 원한다면 인간을 넘어서 장소에도 이를 적용하면 된다. 엊그제 만난 사람 뿐만 아니라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 또한 30년 전 혹은 후에 속하게 되었음을 앎으로써 사람은 보다 복잡한 심경에 놓이고야 만다. 내가 겪은 일은 사실이 맞는가. 내 강렬한 바람이 자아낸 허구는 아닐까. 내가 나를 의심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와 너의 시간이 이어져 있음은 부인이 불가능하다. 단순함 안에 심오함이 담기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저자는 단순함 속에 산 자와 죽은 자, 상처 입은 자와 이를 치유하는 자 등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한 이들 간의 심오한 교감을 담아냈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이들이 어딘가에 생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아 행복을 누리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작품 속 살아 있는 인물들은 놓지 않는다. 한 번 이어진 시간이 끝끝내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로서는 부러웠다. 손님이 등장할 적마다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지곤 한다. 혼자만 잘 만들고 잘 먹으면 재미가 없다고 여겼던지, 저자는 아키호의 레시피를 아낌없이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손님들에게 제 음식의 비법을 거리낌 없이 발설하는 아키호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나, 지우지 못하게 활자로 인쇄해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는 일까지 동의했는지 여부는 알 길 없다.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여서 아키호가 손님들을 위해 행한 요리가 와닿지는 않아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아니었으면 야밤에 이를 읽으며 심히 괴로웠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