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분한테 실례가 되겠지만, 요즘 무슨 책을 들었냐는 아내의 물음에 '올리버 색스'라는 저자 이름을 댔고 아내는 이름이 야하다고 실소를 하였다. 하긴 실제 내가 책을 접한 것도 어느 이웃님의 소개였고 이름 때문에 먼저 뚫어져라 보았던 건 사실이다. 아내나 나나 참 예외 없이 배움이 없었다. 저자는 신경과 의사다. 세상에 없으신 분이다. 돌아가셨으니. 의사였다가 맞나. 아무튼, 책은 저자가 진료를 담당했던 환자의 기적과 같은 얘기와 저자의 통찰을 엮은 책이다. 24명의 환자가 소개되어있다. 그 중 첫 번째 환자의 얘기가 책의 제목이다. '시각인식 불능증' 이라는 의학적 병명인데 굳이 병명은 연구자가 아니라면 독서에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일반 독자라면 '이런 증상도 있구나' '정신병이 아니라 어느 특정 뇌 신경에 이상이 있어 그렇구나' 정도로 읽는 거다. 기적 같은 환자 24명은 모두가 평소 접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접하기 힘들다는 건 적어도 일반적이라는 얘기이지 혹, 주위에 신경 관련 질병을 겪거나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기도 하겠다.
저자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상 실 - 뇌 신경 어느 부위가 기능을 상실한 이야기다. 기억상실, 인식불능 등 과 잉 - 반대로 특정 뇌 신경이 도드라져 넘치는 이야기다. 기억과다, 인식과다, 과다운동증 등 이 행 - 과거의 기억에서 머무르거나 붙잡고 있는 이야기기다. '과거로의 이행' '몽환상태' 단순함 - 쉽게 지적장애, 지능발달이 지체된 이야기다.
하나하나의 사례와 그 뒷얘기를 하는데 끊김없이 유기적이고 연결되어 있다. 가령 앞에 누구는 이러이러했는데 누구는 이렇다는, 앞선 사례가 구체성을 잃은 것이라면 이것은 구체성의 과잉'이라는. 제목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P 환자'는 책을 마칠 때까지 얘기가 되는 사례로 저자도 처음 접한다 할 정도로 특수한 경우라고 한다. 인식함에 있어 감정, 구체성, 개인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단순화 추상적인 것만 남았던 환자라고..... 'P 환자'는 아내를 볼 수 있다. 모자로 보고 찾는다. 아내를 보면 머리에 쓰는 행동을 한다. 책을 접하면서 느낌은 저자가 환자를 대하는 접근법에 과학적이다. 뭐 직업이고 증상의 원인을 밝혀서 호전되도록 할 의무가 있어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적어도 일반인으로 보는 나는 소위 '정신병'이라고 받아들일 것을 책을 통해 뇌 신경의 변화 여부에 따라 이런 증상이 있다는 과학적 접근을 깨달았다. 또 한 가지 저자가 환자를 대하는 접근법이 따뜻하다. 환자의 사례에 호기심과 흥미를 보고 싶다면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비록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고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서 인간을 찾으려고 한다. 글 속에서 애정과 가슴 찡함을 느낀다.
책은 1985년 첫 출간 되었다. 지금 책은 개정 1판으로 84쇄 찍었다. 오래전부터 많이 사랑받은 책이고 방송에서 소개도 되었다. 내가 실제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어느 블친님의 저자의 다른 책을 소개한 글에서 이력에 호기심(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이 나서였다. 동성애자였으며 유대인 집안에서 어릴 때 밝힌 커밍아웃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 책이 주는 저자의 인간애가 아마 이런 이력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지막 '간질'환자 사례 이야기에서 한참 머무르기도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생 고생했던 병마가 '간질'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이라는 첫 출간, 이 나라에 번역서는 1993년이었다. 내 나이 고3 때. 책 읽기를 어려서 많이 했다라면 어쩌면 이 책을 만났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를 더 이해했을 것이고 고치지 못할 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오래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떠한 시도라도 하지 않았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내게 이 책은 과거의 뉘우침이요, 불효에 대한 용서요, 내일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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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제목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솔직히 일고십에서 만나기 전에는 책 제목이 어떤 상징을 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아내를 모자인 줄 알고 서 있는 아내를 머리에 쓰려는 듯한 남자가 등장한다.
소설이 아니다. 요즘 말로 실화이다.
이렇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말고도, 자신의 옛날에 머물러 있는 사람, 자신의 다리를 보고 시체의 다리라며 던지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람, 음악이 계속 들린다고 하는 사람 등 믿기지 않는 이들이 등장한다.
사고로 인하여 뇌에 이상이 생겼거나 원래부터 뭔가 좀 달라 소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현재의 상황을 인지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소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저자 올리버색스
저자 올리버 색스는 공감능력도 뛰어나고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의사로 보인다. 그가 만난 환자들이 왜 그런 상황에 놓였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록하고 학계에도 알리고, 그러면서 또 그 환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각도에서 해결법을 찾아나가는 모습이 책임감 있으면서도 훌륭한 전문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비해 의학기술은 훨씬 많이 진보했다. 그래서 그가 이 시대의 의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환자의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곘다. 하지만, 그의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그 어떤 의학기술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특히 소수를 게임 삼아 즐기는 쌍둥이 형제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환자를 단순히 나에게 치료 받아야하는 사람들로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훌륭한 어른의 모습이 보여 감동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걔한테 말 걸어봤자 소용없어요라고 했던 폭력적 성향을 가진 자폐아이 호세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의 그림에서 빛나는 면을 찾아내는 모습에서 또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그의 눈은 병을 가진 자라기 보다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이로 인식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치료가 되어 병이 사라진 것이 그에게 행복일까? 불행일까?까지 고민해 보는 모습도 마음에 남는다.
p.12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우리로서는 그런 불가사의한 나라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나라는 그만큼 불가사의한 나라이다. 그들의 인생과 여행에는 탁월한 소설적 요소가 숨 쉬고 있으며 그 때문에 나는 오슬러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비유해 쓴 글귀를 책 첫머리의 인용문으로 골랐다. 그리고 그 바로 그 때문에 임상 보고뿐 아니라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이러한 영역에서는 과학적인 것과 신비로운 것이 함께 얼굴을 내민다. 사실과 꿈 같은 이야기의 뒤얽힘.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생애를 특징짓는 것은 그 둘의 뒤얽힘이다.
2. 평범함이 주는 안정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평범하게만 잘 자라다오가 아닐까 한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와 비교를 하며 아이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아 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의 기준에서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다. 바깥의 기준으로 당신은 평범하지 않아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예요라고 하지만, 실제 본인은 그것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자신이 이상하다고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희극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실제로는 누군가가 겪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그런 현실을 빠져 나오느라 병을 앓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또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병'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보통 때는 몰랐다가 결핍이나 과잉이 나타는 순간 이전의 자신이 될 수가 없다. 그 상황이 오히려 행복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엇이 인간이게 하는지, 인간의 행복인지 계속 고민해보게 했다.
종교는 없지만, 이러한 일들은 어쩌면 신이 인간에게 던져주는 질문이 아닌가 한다.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불행이 행복이 되기도 행복이 불행이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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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모든 환자는 뇌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꽤나 인지하고 있다. 이런 뇌에 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는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길 잃은 뱃사람>에 나오는 지미와 같이 기억은 없지만, 종교활동 등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확인한 듯 합니다. 이 때 우리는 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이 책을 두고 느끼는 점은 모두 비슷했던지, 휘연은 신기하게도 내가 읽고 받아적은 문장들을 예시로 담아두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질문했다. 난 독서를 끝내기전에는 질문을 읽지않는데 (그것에 얽매인 독서를 할까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사람이 지미였다. 지미처럼 기억이 무너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었고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남들이 종교에 대해 물으면 "누군가 믿고 의지할 곳이 있다면 평온하잖아요." 라는 말을 많이해왔는데 아마 지미같은 상황이라면 새롭게 종교를 가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과거의 종교를 붙들 수는 있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정의에 대하여 물은 휘연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그 모든 인간들은 정도만 다를 뿐 “결핍”이나 “과잉”을 가지고 때론 음울하고 때론 행복하며, 때론 생각이 많고 때론 일부밖에 보지 못하며, 때론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사는 선택하는 동물이라고. 이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관련하여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해보자 먼저 나는 도널드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입장을 피력하고 싶은데, 그 스스로가 정원손질을 하면서 마음이 포근하다면 그는 감히, 건방지게 정원을 손질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고 본인은 마음이 편하기 위해 정원을 손질한다고? 나는 그것을 시작으로 존엄성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확하게는 도널드의 존엄성은 이미 위배되었으니, 지켜질 필요가 없다. 나의 존엄은 상대성이기때문에, 누군가의 존엄성을 위배한 순간 사라진다. 그런데도 그는 정원을 손질하며 자신의 위안을 찾는다니. 난 살인범들은, 아니 죽게 만든 모든 이들은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절대 위안을 얻거나 평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잊을 권리조차 없다. 그들은 평생 기억하며,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악몽처럼 되씹어야 한다. 호세의 경우는 실제 보았던 사례가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퍼즐 등을 맞추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지만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 그들이 나갈 세상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직업 훈련을 받았고 원하지않아도 그 일을 해야했다. 물론 그들도 먹고 살아야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겠지만 하고싶지 않은 일을 반복 지속적으로 시키는 것은 그들의 존엄성을 위배하는 부분 아닌가. 그 상황들이 자꾸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다. |
P선생은 오랫동안 뛰어난 성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이다. 그는 지방의 음악 교사로써, 음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P선생은 이상한 증상을 겪었다.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눈앞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람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소화전이나 주차요금 자동 징수기를 보면 마치 아이들의 머리라도 본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가구의 장식을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재능은 더 빛을 발하고 달리 아픈 데도 없었고 건강이 전보다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3년 후 눈이 안 좋아사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시력 검사를 했지만 시력은 상당히 아주 좋았다. 그는 사물을 보는 데 아무런 이상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특이 사항을 못 찾고 있다가 그가 검사 후 일어섰을 때 그는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도저히 손써볼 도리도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한 것일까? 그는 정말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이 이야기는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맨 처음 이 이야기를 읽고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누구나 이 이야기를 읽으면 정말 황당하고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해 라며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가볍게 웃고 넘어가거나,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라며 이상한 이야기로 판단하며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24편이 있다. 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뇌기능에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우울증이 단순히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닌, 호르몬의 분비 문제라는 것을, 그것은 하나의 질병이고 약을 먹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뇌기능 장애도 마찬가지이다. 뇌 신경에 이상이 생겨 기묘하고 이상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뇌기능 장애에 따라 올리버 색스는 그들의 이야기를 '상실', '이행', '과잉', '단순함의 세계' 4개 부분으로 나누어 사례들을 제시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상실의 이야기에 해당한다. P선생은 '얼굴' 이라는 것을 상상하거나 인식할 수 없었던 극적인 시각인식불능증 장애가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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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무서웠다. 이런 병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저자의 깔끔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편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각 환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무서웠다. 어릴 때 병을 앓아 애초에 장애가 있는 삶이 생활이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 들어 뒤늦게 자신을 잃는 환자들을 보니,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뻔하지만 나의 건강한 신체에 감사하며, 소중히 해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신경학자가 쓴 이 책은 그가 진료했던 환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일반인들도 접근하기에 좋게 썼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볼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틱’을 가진 경우도 있고(특히 아이들), 자폐아 문제는 여러 차례 조명되기도 했다.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신비로움을 등에 업었지만..) 흥미롭기도 하고, 마냥 낯선 분야가 아니라 더 관심이 갈만한 책이다.
뇌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알아 낼 수 있을까? 일반 사람들도 뇌가 중요하며,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앞으로 1.4킬로그램의 신비로움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되진 않을 듯하다. 인간들은 결국 그 신비로움을 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무언가로 만들어 우리의 삶을 바꿀거라 생각한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를 기준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많이 바뀔 테니까.
-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 (11)
- 의사는 (중략)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24)
저자의 자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단지 한 명의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한다는 점이었다. 인용한 부분들은 맥락으로 볼 때 그는 신경학자로 한정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런 신경증적인 증상이 나타난 것은 어떤 하나의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세상 일은 단 하나의 인과 관계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가 발생할 수 없는 상황들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린 것은 단순히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사실로 볼 것이 아니라, 손을 안 씻었을 수도, 감염 되었을 수도, 혹은 건조한 상황에서 생활했을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치료가 일어나기 전에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의사는 그런 것을 한다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의사가 아니니까 아예 불가능하겠지만) 한 명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그 주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는, 의사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 쌍둥이 형제를 테스트한다는 생각과 연구를 위한 ‘대상’으로 삼는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깊숙한 내면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춘다든지 시험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려고 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조용히 관찰해야 한다.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며 둘이서 조용히 무얼 하고 있는지를, 설령 그 모든 것이 기묘하게 여겨질지라도 오히려 공감하는 마음의 자세로 지켜보아야 할 따름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을 신기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필시 근원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어떤 힘이요, 심연이다. 그들을 안 지도 벌써 18년이 되었지만 내게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25)
- 자폐증 환자는 원래 좀처럼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적으로 살아갈 ‘운명’에 놓인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에게는 독창성이 있다. 우리가 만일 그들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의 독창성은 내부에서 생긴 것,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완전히 내부로 향하는 존재, 독창성이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378)
- 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있을까? 과연 ‘본토’가 그들을 특수한 존재로 받아들여줄까? (379)
자폐증 환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증 정신병(?) 환자들도 그렇겠지만,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나오기 꺼려하는 이유도 있을테고, 사회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주는 분위기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투렛 증후군을 지닌 이들도 마찬가지일 듯.) 내가 생각하는 그들은 고요하고, 고독한 이들이다. 그 어떤 누구보다 고독함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에게 내몰려서 혼자 된 외로운 그들이 아니라, 그저 그들 스스로 문을 닫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자의든, 병적인 요소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힘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리라. 고독함을 기반으로 생긴 그들의 독창성은 그런 고독함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쉽사리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입 대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는데, 그들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에 나온 쌍둥이 형제는 ‘본토’에 적응시키기 위해 강제로 함께 생활하던 섬을 폭파시켜 ‘본토’로 영입시켰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섬은 사라졌고,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하등한 인간 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그들의 존엄성을 살려 주는가? 그들은 그들만이 지니는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살아 있는가? 그저 살려두기만 하면 그 존재로서의 가치가 살아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위한 것일까
- 기적은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법 (173)
저자는 약이 듣느냐 안 듣느냐, 그리고 그 약을 통해 어떤 것까지 가능해지느냐의 의도로 한 말이지만, 이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점을 생각해보고, 적용할 수 있으리라. 아픔도, 질병도, 그에 대한 치유도, 치료도 그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기적이리라. 그리고 그 기적이라는 것이 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씩 모으고 모아서 가능하게 만든 무언가가 되리라는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위한 순간을 위해 모아야 하는 것들을 잘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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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연님의 질문
1. 이 책의 모든 환자는 뇌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꽤나 인지하고 있다. 이런 뇌에 문제가 생기면 그 상태는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69) - 정상적인 인간은 그저 계속해서 변화하기만 하는 감각의 집합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개체 혹은 자아에 의해 통일을 유지하는 확고한 존재이다. (215)
1번에 대한 답만을 준비했다. 2번도 있는데, (아래 글 참고) 2번은 중복된 얘기가 될 것 같아 생략한다. 책 얘기를 하라고? 미안하다. 책은 못 읽었다. 그래도, 이렇게 책의 일부가 정리된 휘연님의 글이 있으니, 안심하고 리뷰용 답글을 남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정보는 가늠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만의 생각이라고, 빠져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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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인데 최근 방송에 한번 나왔다더니 터무니 없는 비싼 값이네요. 논술 교재라서 어쩔 수 없이 샀지만, 양장판 밖에 없다니 좀 어이가 없네요. 발품을 팔아서 중고본을 구할 걸 그랬어요. 막상 책을 받아보니 양장판 답게 어찌나 표지가 두껍고 화려한지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 과대 제본을 줄이고 문고판도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 놔둘 자리도 없는데 두께가 두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책 제목부터가 궁금증과 흥미를 가져다 준 책이다. 사전지식 없이 온전히 제목이 이끌려 구입해 그날 바로 읽은 책이기도 하다. 세상엔 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며 존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중에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잘 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는 많은 환자의 기록이다. 신체의 기능 중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무언가가 과잉되거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구체성이 사라진, (기억의 상실이라는 문을 부수는) 회상의 이야기. 병을 앓으면서 인간은 육체적인 상실뿐 아니라 정신적 상실 또한 경험하게 된다. 참 암담했다. 평범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예고조차 없이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살아가게 된 그들이니까. 하지만 올리버 색스 박사가 이 책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다.
뇌기능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현대 뇌의학연구를 한 단계 나아가게 하고,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사고의 확장을 제공한 기념비적 작품. 1부와 2부에서는 주로 뇌(특히 대뇌우반구) 기능의 결핍과 과잉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3부와 4부에서는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발작적 회상, 변형된 지각, 비범한 정신적 자질 등 현상적인 징후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각 에피소드마다 ‘뒷이야기’ 코너를 삽입하여, 저자가 만난 같은 증상의 다른 환자에 대한 경험들을 덧붙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들과 치료 여부조차 미지수인 신경질환 환자들의 임상 기록을 이야기를 들려주듯 독특하게 기록한 이 책의 방식은 의학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성장과 적응을 모색하며 자신의 감추어진 능력을 일깨워나가는 환자들. 그들의 모습을 저자는 신경학자로서의 전문적 식견과 따스한 휴머니즘, 인간 존엄에 대한 애정과 신뢰 가득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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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과 의사의 얘길 읽었는데, 이 의사가 부임해보니 병원에,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환자가 있더랍니다. 본인은 입을 닫았고, 간호사들도 한번도 얘길 나눠본 적이 없더래요. 그래서 그 의사가 그 환자 옆에서 며칠을 조용히 같이 앉아있었답니다. 그랬더니 며칠이 지나서 그 환자가 조심스럽게 의사한테 이러더라는 거예요. “저…당신도 버섯인가요..?” 마음이 아픈 것이 가장 힘듭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병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무엇보다 마음을 먼저 지키자구요. |
이 책은 신경과학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색슨이 쓴 자신의 환자들에 대한 임상의 기록과 관련된 글이다. 신경학적인 손상이 있는 다양한 환자들의 기괴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쉽게 듣거나 접할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례로 등장한다. 읽다보면 소설이나 영화의 모티브가 될만한 소재다 싶을정도로 놀라운 환자들의 사례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경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다. 환자의 사례별 증상과 그것에 대한 치료과정을 기술한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환자들 각각의 상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감탄을 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경험한 사례 하나하나를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환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에서 환자를 환자로만 대하는 많은 의사들과 다르게 환자 이상의 인간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 한사람의 따뜻한 의사를 만나게 된다.
1부 상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신체를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인한 일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제육감으로 표현되는 고유감각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장애가 아닌 이런 증상의 장애라면 주위에서 인식하기도 어렵고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몸의 모든 움직임을 의지를 가지고 인식해야 움직일수 있는 상태라는게 어떤것일까 계속 상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 아무런 의식없이 움직일수 있는 팔 다리 신체의 부분들이 모두 하나하나 움직일 의지를 가지고 각각의 신체부위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억지로 움직여줘야 하는것이라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크리스티너는 그 부분을 상당한 노력과 연습으로 어느 경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몸을 잃어버렸다고 표현되는 이런 결함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극은 남는다.
제일 첫 사례로 나와있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편은 p선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람과 모든 사물에 대해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그것이 생긴 모양새를 말할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기능을 가진 사물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알아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역시 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기에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로 읽혀졌다. 어떤 물건과 사람을 특징으로 분류짓고 그것을 다시 종합적인 판정으로 연결짓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이 문제이고 어떻 기제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것이 다른 사례들보다 불분명하다.
저자가 이 글을 쓸 무렵부터 4년전에 만났던 p 선생은 그후로 진료를 위해 만나지는 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인다.
1980년대 이야기 이기에 그 이후로 거의 30년가까이 흘렀기에 이 병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의 방법이 나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참 그러고 보면 의학과 과학이 지난 한세기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왔음에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의 메커니즘과 신경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처럼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상실편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바로 두번째 에피소드 길잃은 뱃사람 편이었다. 다른 이야기보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도 가끔 사용되어 지는 기억상실과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더 친숙하기도 하고 더 흥미롭게도 했다.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뱃사람 지미는 1947년 이전의 기억만 살아 있으며 그 이후는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진료의 모습들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바로 메멘토였다.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몇초전의 사실을 까먹는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범인을 찾기위해 단서가 되는 일들을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펜으로 기록한다. 몇초면 찾았던 증거나 기억을 까먹기에 바로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책의 지미도 역시 메모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치명적 오류가 아닐까 생각했던 부분이 주인공이 자신이 단기기억상실이기에 끊임없이 메모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영화전체에서 기억한다는 모순된 사실이다. 사실 단기 기억상실이라면 그 자체도 잊어버리는게 맞는데 말이다.
물론 그렇게되면 영화가 진행이 안되기에 어쩔수 없었을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의 지미의 모습을 보면 그런 일상의 맥락없는 글들의 파편들으 보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상이나 사건을 그저 기계적으로 늘어놓는 존재, 흄이 말한 분별없는 존재로 전락한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저자의 글에 깊은 공감이 느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려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일이 실제로 있을수 있을까.
2부 과잉 과잉은 말그대로 결손과 결핍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교적 최근에서야 연구되고 고려되어지기 시작한 증상이다. 과잉에서는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가 지나치게 발현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적증세들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틱이나 투렛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증상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윌리엄 톰슨의 이야기는 읽고 있으면서도 웃음이 날 정도로 기가막힌 사례였다. 어떤일이든지 몇초가 지나면 잃어버리는 톰슨은 1부 상실에 등장한 지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점이 바로 이 잃어버린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낸다. 온갖 거짓 혹은 가짜 이야기들을 능숙하게 지어내면서 그 상황을 지나가려고 하는점이 다르다 올리버 색슨은 톰슨의 이런 상태를 관찰하고 진료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다.
'우리는 각자 오늘날까지의 역사, 다시 말해서 과거라는 것을 지니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각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인생이야기, 내면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기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p. 193)
이 부분을 읽으며 '공각기동대'의 메이저가 떠올랐다. 다른사람의 몸에 뇌를 이식한 메이저는 그곳에서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뇌를 이식했기에 과거의 기억이 지워졌음에도 원래의 메이저라고 할수 있을까. 박사가 말한 나를 정의하는것은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을 삶답게 만들고 나의 정체성을 규정할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수 있으며 나의 의지대로 할수 있고 나의 과거와 현재의 행동들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그 기억들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이 나이고 그 파편들이 모여 일련의 의미를 갖는 나의 정체성과 삶이 되는것이 아닐까. 그런 일들을 할 수 없을때 그것을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확한 손상부위와 원인을 모르는 p 선생같은 경우와 크리스티나처럼 다발신경염이라는 정확하 병명을 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중 무엇이 더 나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누가 더 낫고 말고 말하기도 힘든 환자들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우리몸의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1985년에 나온 이 책은 그 이후로 뇌의 병변과 신경학 치료에 대해 얼마만큼 진화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과학과 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에 지금 이 책에 나온 병변들과 증상들의 치료방법이 더 다양해지거나 개선되진 않았을까 싶다. 물론 뇌와 신경의 영역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밝혀진게 미비하기에 아직도 갈길이 먼 미지의 분야에 가깝다는 사실을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너무도 재미있고 빠른속도로 읽혀지지만 읽고나면 금새 잊혀지고 마는 그런 책이 있는가하면, 읽을때에는 그렇게까지 큰 감동과 재미는 아니었는데 다 읽고 덮고 난 후에 자꾸만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일상에서 생각이 나는 그런 책이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바로 그런 책인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떠오르고 일상의 어떤 모습들 속에서 자꾸만 연상이 되면서 책의 내용이 생각나게되는 그런 책인것 같다.
읽은지 두달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은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이 많이나는 희안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 신경과학자의 정성스럽고도 따뜻한 통찰력과 세심함으로 탄생된 이 책은 단지 진료를 하면서 적어 남기는 임상 기록으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다양한 신경손상으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우리 상상밖의 증상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증상들을 통해서 우리는 뇌와 신경이라는 미지의 영역과도 같은 신비한 과학과 의학의 세계를 일부 들여다보는 것 뿐만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이유와 신경손상의 장애가 있는 이들이 살아갈 이유와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힌트같은 책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완치나 새로운 치료법의 시도만 고집하는것이 아니라 장애와 병을 가진 이들이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조언과 시도를 한 올리버 섹스같은 의사를 만난 환자들은 참 운이 좋은 환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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