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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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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그래 저 십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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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 고정희,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우리 동네 구자명 씨는 맞벌이 부부다. 일곱 달 된 아기가 있는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 무섭게 아침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피곤하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은 항상 무겁다. 아침햇살이 차창에 반짝여도 잠에 빠진 구자명 씨는 꼼짝하지 않는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가는 길이다.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도 구자명 씨는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깨어나면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처럼 구자명 씨는 달콤하다면 달콤한 잠에 빠져 있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사계절 풍경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진달래꽃이 피어도 구자명 씨는 버스 안에서 졸고, 밤꽃이 흐드러져도 구자명 씨는 버스에서 존다. 피곤에 지친 현대인이라고 생각하면 구자명 씨가 벌이는 행동들이 모두 풀리는 것일까 

 

시인은 구자명 씨가 출근하기 전날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서술하고 있다. 우선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 있다. 아기가 어디 시간 정해놓고 젖을 찾던가? 새벽에 잠을 자다가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구자명 씨는 잠에서 깨어난다. 잠결에 아이를 안고 어르며 젖을 물린다. 아기는 조용히 엄마 젖을 빤다. 구자명 씨도 졸면서 아기가 젖을 다 먹길 기다린다.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도 구자명 씨가 감당한 몫이다. 맞벌이하랴, 아이 젖 물리랴, 시어머니 병시중 들랴, 몸이 세 개라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여기다 구자명 씨는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도 감수해야 한다. 새벽녘에 돌아온 남편은 아침이 되면 또 출근하기 바쁘다. 무엇을 위해 저리 술을 마셨을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직장에 다닐 수 없는 걸까? 맞벌이를 하는 구자명 씨 입장에서 보면 남편 하는 일이 참 답답하기만 하다.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한숨 쉬며 다짐해 봐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구자명 씨가 보여주는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삶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남편이 새벽녘이 아니라 밤에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질까? 남편은 잠을 자고 구자명 씨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것이다. 시어머니 약시중 드는 일도 구자명 씨가 할 것이다. 안팎에서 일을 하는 구자명 씨다 보니 잠도 제대로 잘 리 없다. 버스에 타자마자 이내 꿈 세계로 달려가는 구자명 씨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가? 이 시는 1980년대 여성의 삶을 시화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사는 삶은 참 힘겹기만 하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맞다. 남자들이 사는 삶이라고 힘겹지 않을 리 만무 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아빠는 잠만 자는가? 왜 며느리가 시어머니 병시중을 들 때 아들은 잠만 자는가? 왜 아내는 집에 일찍 들어와 집안일을 하는데, 남편은 만취해서 새벽녘에나 들어오는가 

 

시인은 구자명 씨가 빠져든 잠 속에서 “팬지꽃 아픔”과 “안개꽃 멍에”를 느낀다. 그녀의 삶속에는 아픔이 있고 멍에가 있다. 그 아픔과 멍에를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회피하려고 한다. 여자니까 그래야 한다는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이 논리가 가능하려면 남자니까 그래야 한다는 논리 또한 성립해야 한다. 시인은 구자명 씨의 삶에서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을 보고 있다. 여자가 무너지면 한 집안이 무너진다. 가부장제는 ‘가장(家長)’이라는 말로 남자를 집안 중심에 세우지만, 식구의 안식을 실제로 책임지는 존재는 언제나 여자이다. 여자가 없으면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리는 시간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을 여자가 들지 않으면 누구에게 그 시간이 고스란히 가게 될까? 만취해서 새벽녘에 돌아온 남편은 또 누가 챙겨야 하는가? ‘여자가 없다면’이라는 상황을 내걸면 가부장제는 전혀 유지되지 않는다. 이로 보면 가부장제가 여성을 착취하는 제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남성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한국사회는 여성 착취를 기반으로 형성된 가부장제 사회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시인은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는 진술로 이 시를 맺고 있다. 한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희생은 “아무도 모르게”라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구자명 씨는 왜 하고 있는 걸까? 죽음을 거부하는 마음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식구의 안식”을 위해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기꺼이(?) 한다. 여성이 하는 (집안)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한 집안에서 여성이 짊어진 이 짐을 외면하고 있다. ‘가부장’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에 무관심하다.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발상은 정확히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한다. 여자라면 구자명 씨처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신 마음속에는 들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남자가 구자명 씨처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또한 당신 마음속에는 들어 있어야 한다.

 

여성 해방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서는 여성들이 많은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이런 이분법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오늘도 구자명 씨는 버스 안에서 여전히 졸고 있다. 여자 하나가 버스 안에서 조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상관이 없다면 없고, 상관이 있다면 있다. 여자가 힘들 게 사는 사회에서 남자라고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여자를 한없는 공포에 빠뜨리는 사회를 남자라고 해서 공포 없이 살 수 있을까? 구자명 씨의 모습을 단순히 여자가 처한 상황이라고 한정할 수는 없다. 구자명 씨는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네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이분법은 가부장제가 즐겨 쓰는 논리이다. 그 논리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면 정작 우리는 반드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어느 영화의 제목에 한국사회가 가야 할 길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가부장제를 넘어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2. 사랑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 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길을 걷다가 시인은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을 문득 떠올립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을 때는 그저 우는 게 좋습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라고 시인은 얘기하고 있네요. 시인은 가슴으로 웁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뜬 채 저 가슴 밑바닥에 고인 슬픔을 눈물로 길어 올립니다. 낮은 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라고 시인은 쓰고 있네요. 첼로는 낮은 음이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첼로 소리를 들으면 가슴 깊숙이 숨은 슬픔이 살아 움직이는 걸 느낍니다. 온몸이 들썩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가슴 밑바닥에 고인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시인은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으로 온몸을 떱니다. 온몸이 첼로가 된 사람이 온몸을 떨며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얼마나 그리우면 이럴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합니다. 그리우면 우는 일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울고 울다 보면 어느덧 북받치던 그리움이 스러질 테니까요.

 

시인은 “너를 향한 기다림”을 ‘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은 영원히 타지 않습니다. 더 이상 태울 게 없으면 거침없이 타오르던 불은 이내 사그라지기 마련입니다. 시인은 불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바람으로 떠오를 거라고 하네요. 바람은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람이 된 시인은 어두운 들과 산굽이를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바람은 아무 데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바람은 허공을 떠돕니다. 머물 곳이 없는 허공을 떠돌며 바람은 스스로 잠들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깨우칩니다.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히기도 합니다. 바람이 이렇게 스스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람은 허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허공 또한 바람을 그냥 내버려둡니다. 바람이 부는 장소만 제공할 뿐, 허공은 바람이 어떻게 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바람이라고 다를까요? 허공이 바람을 얽매지 않으면 바람 또한 허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허공과 바람이 이루는 관계는 태양과 나무가 이루는 관계로 확장됩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에 따스한 햇살을 비춥니다. 나무 위에서 일렁이는 태양 빛이 느껴지나요? 태양은 나무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를 향해 따뜻한 햇살을 비출 뿐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날이면 부는 바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 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라는 진술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아침에 뜬 태양은 나무를 비추고, 꽃잎을 떨어뜨린 바람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숨결을 측백나무에 불어넣습니다. 시인이 부르는 사랑 노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아침에 뜬 태양이 그녀를 부르고, 마른 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이 그녀를 부릅니다.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시인은 누군가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간절한 목소리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안에서 갈무리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 남을 테니까요. 시인은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립니다. ‘빗장’이라는 시어에 주목해 보세요. 빗장을 자물쇠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시인은 그러니까 빗장이 채워진 장소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성에 갇힌 라푼첼이 생각나지 않나요? 라푼첼이 된 시인은 스스로 사다리를 타고 빗장 밖으로 내려옵니다. 안팎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 그녀는 눈에 비치는 온갖 사물들을 마음에 담습니다. 스쳐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드디어 시인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네요. 이제 마음속 풍경들을 현상하면 그토록 보고 싶던 임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빗장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려준 사람입니다. 마음속 빗장을 스스로 걷고 시인을 세상과 마주하게 한 사람입니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꿈을 현상하는 곳에 이르렀을지 이제는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라는 진술이 곧바로 나옵니다. ‘그러나’라는 시어 뒤로 ‘부재중’이라는 시어가 따르네요. 임을 보지 못한 사람의 절망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던 임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눈으로는 분명 어디에나 있는 임을 본 것 같은데, 확인해 보면 임은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시인은 아무 곳에도 없는 임을 그리워합니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보고 싶은 임이 그리워 하염없이 울기도 합니다. 아무 곳에도 없는 임을 그리워하고 눈물까지 흘리다니요? 시인은 부재하는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에 암시된 대로, 부재하는 임은 문득 나타났다가는 이내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입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계에 사랑하는 임이 있다고나 할까요?

 

부재하는 임을 찾아 어두운 들과 산굽이를 떠도는 존재를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임이 부재하는 상황을 잘 알면서도 그 사람은 여전히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습니다. 떠돌다 보면 임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날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는 태양에도, 허공을 맴도는 바람에도 임은 어김없이 들어 있습니다. 온몸으로 임을 느낄 수 있는데, 임이 부재하는 상황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래서 임이 그리울 때면 울음으로 그 마음을 씻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부재하는 임을 울음으로 맞이합니다.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어디에나 없는 임은 운명처럼 시인을 붙들고 있습니다. 사랑마저도 시인에게는 참 시적(詩的)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언어로 포착하는 존재입니다. 부재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이미 시심(詩心)이 들어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시인들이 사랑에 목을 매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o*****s 2018.09.19.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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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를 관통하는 이야기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이야기" 내용보기
고정희의 유고시집인 를 읽고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직설적인 듯하지만 깊은 속뜻이 있고, 여자이야기부터 신앙이야기까지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산 시집이 이다. 가끔 뒤적거려보다가 이번에 마음 먹고 한번 정독하기로 결심! 숲으로 구만리 하늘을 가리고 통곡의 폭포에서 물맞는 여자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수만 가닥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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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의 유고시집인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를 읽고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직설적인 듯하지만 깊은 속뜻이 있고, 여자이야기부터 신앙이야기까지 온 우주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산 시집이 <지리산의 봄="">이다. 가끔 뒤적거려보다가 이번에 마음 먹고 한번 정독하기로 결심! 숲으로 구만리 하늘을 가리고 통곡의 폭포에서 물맞는 여자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수만 가닥 길들이 고향으로 가건만 살아서 들어가지 못할 나라 아득히 굽어보며 떠도는 산바람에 그리움 사무치는 오호리 지리산 너로구나 무심히 황혼 속을 내려가는 사람들 허기진 가슴팍 무섭게 떠미는 오호라 지리산 너로구나 너로구나 - 지리산의 봄 8ㅡ백무동 하산길 중에서 책 제목답게, <지리산의 봄=""> 연작시가 담겨 있다. 이 연작시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자연의 묘사나 자연을 바라보고 느낀 말초적인 감동만을 나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생김생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수치와 오욕의 나날 속에서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을 아니다, 발음하는 씨앗이 삼천리 강토에서 싹이 나고 잎이 피고 하나로 주기를 뻗어 정의의 숲이라 이름하는 그날까지, 예, 아니오, 의 힘으로 여자의 가슴에서 차별을 뽑아내고 남자의 가슴에서 빗장을 벗겨내어 해방의 땅이라 이름하는 그날까지, 아무도 행진을 멈춰서는 안 되리 - 자유와 해방에 대한 구속영장ㅡ이천만 여성의 저항의 횃불 권인숙에게 중에서 또한 이처럼 시인이 살았던 그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단순히 문학인인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내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딱딱하게 사실만을 적어낸 신문기사보다 이러한 작품 하나가 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수많은 시들-윤동주, 박두진, 이육사 등의-을 보고 그 옛시절을 짐작해보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심정을 짐작해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 고백ㅡ편지 6 게다가 이처럼 요즘 애들이 말장난하는 것만 같은 귀여운 시도 담겨져 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으랴. 땅 이야기, 산 이야기, 사람 이야기, 여자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 그 솜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여성계에서 정말 존경받는 어른이 되었을 것 같아서, 지금 시인의 부재가 속상하기만 하다. 아. 감동.

[인상깊은구절]
모든 언어에 빗장을 지른 뒤 찔레꽃 향기가 심장을 가립니다 어둠뿐인 하늘에 당신을 그립니다 오늘밤은 이것으로 따뜻합니다
y********1 2005.06.03.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