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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 동일시'의 사회,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변질된 자본주의 강남불패의 명성은 강남 부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남 입성을 꿈꾸는 강남 밖의 사람들의 욕망이 강남불패의 신화를 더 높게 쌓아 올렸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은 없는 자들의 '강자 동일시' 바람을 여실히 보여줬다. MB의 747공약(연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은 부자 되길 꿈꾸는 국민들의 욕망을 기가 막히게 자극한 캐치프레이즈였다. 이런 부자 되길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어쩌면 진실은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자본주의의 망령이 우리에게 세뇌시킨, 강요된 사고에 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을 철저히 이용한다.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삶으로, 돈 없고 집 없으면 실패한 인생으로 스스로를 재단한다. 부의 정도로 계급을 나누는 우리의 무의식 밑바닥에는 변질된 자본주의가 차갑게 자리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교도 정신에서 시작된 건강한 자본주의는 이제 서민들의 인생을 갉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때론 이런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Occupy 운동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 신자유주의의 탐욕에 저항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모두 답이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월가를 점령해도 무엇을 할지 몰랐다. 아무런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맞서 싸운 마을 마리날레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의 원제는 『The Vilaage Against The World 세상에 맞서는 마을』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값진 승리를 이뤄낸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마을, 마리날레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저자인 댄 핸콕스는 직접 마을에 들어가 8년간 그들의 역사와 문화, 관습, 축제, 인간관계, 권력 구조, 1년의 사이클 등을 조사했고 모든 것이 땅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였다. 프랑코 정권과 대지주들의 횡포 속에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들은 농사지을 토지를, 생존을 위한 땅을 원했다. 이를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그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와 투쟁을 벌였다. 노인과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단식에 동참했다. 그렇게 9일, 마침내 그들은 정부로부터 땅을 쟁취해 낼 수 있었고 그 땅을 시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혁명이 벌어졌다. 무상복지,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을 전면에 내세웠다. 주거 문제는 월 15유로만 내면 살 수 있는 마을 공동 주택으로 해결했다. 학교는 무료였고 마을의 복지시설과 의료시설 역시 대부분 무료이거나 최소한의 관리비만 내면 모두가 사용이 가능하다. 마을 협동조합을 설립해 농장을 공동으로 경작했다. 수입은 똑같이 나누고 이윤은 일자리 창출에 재투자했다. 마리날레다의 실업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워졌다. 무너져만 가는 스페인 경제, 청년 실업률이 50%가 넘어가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마리날레다에 일어난 변화는 기적 그 자체였다. '강자 동일시'가 아닌 '이웃 동일시'를 꿈꾼다 마리날레다의 투쟁은 작금의 대안이 없는 신자유주의, 상위 1%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변질된 자본주의 시대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한다. 없는 자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강자 동일시’가 자본주의의 성벽을 공고히 했다면,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행복해하는 마리날레다의 ‘이웃 동일시’는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아나키즘을 기반으로 한 마리날레다의 공산주의식 경제 모델을 대도시와 국가 시스템에 적용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 생존의 위기가 코앞에 닥친 지구의 미래에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강자 동일시가 아닌 이웃 동일시, 서로 양보하고 힘을 합쳐 승리를 얻어낸 마리날레다 주민들의 연대의 마음에 있다고 책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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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마을 이름을 되뇌어봅니다. 마리날레다! 마치 우리말을 이어놓은 것처럼 매끄럽게 입안을 맴돕니다. 말이 날래다.. 마치 말을 빨리 한다 혹은 달리는 말이 빨리 달린다는 말처럼 마을 이름이 금세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도대체 어떤 마을이기에?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치게 합니다.
인구 2,700여 명, 우리나라로 치자면 7,800세대 아파트 단지 하나 정도의 규모, 시골로 치면 작은 소촌 규모의 이 마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유는, 자본이 맹위를 떨치는 시대에 인간과 자유, 노동과 휴식을 지향하는 색다른 세상을 만들어 놓고, 모두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세상을 실현하기까지 그들이 오랜시간 싸웠다는 걸, 지금도 그 싸움은 진행형이라는 걸 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싸움의 결과로 얻어 낸 것들을, 자본의 힘으로부터, 시간으로부터 지켜낸다는 게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욕망하는 동물이라,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는 삶이 권태롭거나 갑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동네에서 '집'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고,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매월 일정액의 임대료를 지불할 뿐, 그것으로 시세차익을 얻거나 물려주는 '재산'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생의 목표가 되고 있는 '내집마련'이, 그들에겐 그저 헛된 일일 뿐입니다. 만일,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서 우리도 집을 향해 뻗어 있는 모든 욕망을 거두어 들인다면, 아마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풍요롭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현불가능하다고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책 속에서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뼈 속가지 깊이 박힌 자본주의의 흔적들을 지우는 작업,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실천들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마리날레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마리날레다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기까지 시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우리로 보면 동네 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산체스 고르디요라는 탁월한 리더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결속력과 투쟁력이 원천이었다고 봅니다. 책 말미에 산체스 고르디요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마리날레다에 대한 위기를 기록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잘 이겨내고 끝끝내 마을을 지켜낼 수 있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설사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을이 자본에게 함락이 된다고 해도 이미 세계 곳곳에 또 다른 마리날레다를 위한 씨앗은 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싹이 트면 세상 곳곳에서 셀 수 없는 마리날레다가 생겨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들처럼 공동으로 농장과 공장을 소유하고, 다 같이 노동하고 다 같이 나누는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삶과 노동, 배움이 함께 하는 마을 적어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꿈꿔봅니다. 때만 되면 이삿짐을 싸고 다시 낯선 동네로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닌, 동네 이웃들과 수 십년을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시간의 기억을 공유하는 그런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단절이 본질인 아파트가 문제라면, 동네 광장에서라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그런 마을이라면, 세상은 정말이지 살 만 할 것 같습니다. 소유물로 나를 드러내는 게 아닌, 그저 인간존재 자체가 존중이 되는 세상이라면, 돈이 없어서 굶거나 고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이웃의 가난이 나의 수치'가 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마리날레다와 같은 해방구들이 자본주의 세상 곳곳에 민들레처럼 퍼져나가길 소원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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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는 악독했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순간 삶은 평온해졌을 수도 있으나 양심은 심히 저렸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저항했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그 결과로 인해 파시즘은 무너질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경험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이외의 무언가는 용납되지 않는 듯한 분위기이지만, 그들은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걸음으로써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길 고대하는 듯하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남쪽에 위치했다. 따스한 지중해성 기후를 만끽할 수 있지 싶은 이 곳에서 마드리드를 논했다가는 큰코다치지 싶다. 우리보다도 어쩌면 더욱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스페인이다. 언어가 다르고, 민족도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개인만 놓고 보면 최고의 능력치를 선보이는 스페인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그 동안 명성에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그보다 조금 더 격하지 싶은 바스크 지역에 비했을 때 안달루시아는 어떨까.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아직까지 없는 걸로 보아 딱히 주목할 만한 곳은 아닐 것도 같다. 하지만 그 곳에는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라는 긴 이름을 지닌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안달루시아 지방 마리날레다라는 곳의 시장으로, 외모만 보았을 땐 철들지 않은 선동가를 닮았다. 외모만 그랬더라면 잠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진면모는 그가 일으킨 변화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의 실업률은 60퍼센트를 육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빈부의 격차가 극심했다. 땀흘려 일하는 이들 대다수가 제 명의의 토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굶는 일이 잦았다. 프랑코 정권의 붕괴는 마리날레다에만 긍정적인 무언가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여느 지역에 비해 마리날레다는 변화의 폭이 컸다. 대지주와 싸워 땅을 주민의 것으로 만들었다. 공개적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한다는 목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그 결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던 실업률이 뚝뚝 떨어졌다. 스페인 곳곳이 경기침체로 신음하고 있는 동안에도 마리날레다 만큼은 승승장구를 했다. 급기야 타 지역에서 마리날레다로 향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긍정적인 변화를 목도하면서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하는 것을 느꼈다. 돈의 놀라운 힘에 감탄하면서도 사람보다 돈이 중시되는 상황이 무서웠던 터이다. 남북으로 갈린 상황이 공산주의에 대한 긍정을 허락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즈음이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체제의 존재 가능성을 논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감지됐다.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고르디요가 있었다. 천성적으로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듯한 이 인물은 어떻게 언론을 다루는지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말 한 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이벤트에 가까운 시도들도 심심찮게 행했다. 그는 하나의 상품이었다. 혁명전선에서 영원히 투사로 남길 택했던 체 게바라가 제 뜻과는 별개로 혁명을 상징하는 훌륭한 상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게 쏠리다보니 부정적인 현상도 발생했다. 엄연히 존재할 수도 있는 반대의 목소리가 마치 반역과도 같이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고르디요는 고인 물이 되어갔다. 흐르지 아니하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마리날레다가 지향한 공동체의 핵심은 고르디요가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고르디요가 없을 지라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의 강렬함은 상처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마리날레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고르디요는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집권했고,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들을 이끌어냈다. 이를 토대로 고르디요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하지 못한다면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닐지라도 고르디요에 의한 독재로 후대에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변화를 갈망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뜨거웠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수차례 뜨거운 기운이 있었다. 아직 난 고르디요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와 같은 인물도 하나 정도는 필요하지 싶다. 우리에게 고르디요는 존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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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문외한이거니와 ‘대안 경제’에 관한 주제의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었다. 판형이 작고 페이지 수도 적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내용 역시 저자의 관점에서 본 스페인 안달루시아 마을 관찰기라 책장이 금방 넘어가는 편이다. 책을 읽으며 헬라나 노르베리 호지의『오래된 미래』가 오버랩 됐다. 내가 생각한 이 도서의 키워드는 대안 경제, 인류학, 마을(푸에블로), 고용, 금융 자본주의, 유토피아, 무정부주의(아나키즘)이다. 인류학적인, 마리날레다는 관점에 따라 공산주의적 유토피아가 실현된 공동체, 실패한 공산주의 체험 마을 등으로 평가가 나뉜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는 전자의 관점이, 이들을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후자의 관점이 해당할 것이다. 댄 핸콕스는 마을을 방문하고 고르디요 시장을 비롯한 주민과 함께 지냈다. 이들을 심층 취재해 묘사하며 마을의 지지자와 반대자의의견을 두루 담아 균형을 이루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인류학적 접근 방식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그의 중립적 관점은 이 글을 마리날레다 마을에 대한 인상평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의 시선과 언어가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어떤 분석이나 생각 등이 드러나지 않아 주장이 선명한 글을 읽어왔던 내게는 낯설었다. 아나키스트? 책을 읽다보니 얼마 전 국제 뉴스 지면을 채웠던 그리스 국민 투표가 떠올랐다. 이 투표는 트로이카로 일컬어지는 EU, IMF, ECB의 압력과 그리스 민주주의의 대결로 비춰지기도 했다. 국적이 없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투기적 금융 자본은 그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 시민들의 의사와 상관없는 ‘구국의 결단’을 내린다. 이 책에서도 마리날레다 주민들은 마드리드와 브뤼셀에 있는 비민주적 권력 집단을 탓하며 때로는 아나키즘적인 모습을 보이며 스페인 정부와 관官에 대한 적대심도 드러낸다. 하지만 ‘국가’란 그리 단선적,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다. 마리날레다와 국가의 관계는 기이하게도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국가의 개입을 혐오하고, 국가가 그들의 자유와 권리, 지역 문화를 짓밟고 역사적으로 푸에블로의 자율성을 적대시한 것을 혐오한다. 그러면서도 중앙정부에 호소하고 지방 정부에도 호소한다. 게다가 단호하게 상당한 금전적 요구도 한다. 금전적 요구와는 별개로 국가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며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경계한다. 댄 핸콕스는 이를 안달루시아 고유의 아나키즘으로 일컫고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다른 모든 것 위에 놓고, 모든 종류의 권위적 인물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국가에 대한 이중적/양가적인 관점은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국가는 복지(선별적이든 뭐든)를 확충하고 제공하며 나를 보호해야하지만 감시하거나 사찰해선 안 된다. (블라블라) 하지만 이 마을에도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의 존재가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다. 투쟁으로 이뤄진 마리날레다 역사의 정점이며 (산체스 고르디요는 마리날레다 이야기를 확고한 형태의 내레티브로 정착시켰고) 강한 카리스마적 집권은 아니더라도 상징적으로 마을 주민들의 리더로 남아있다. 이를 읽으며 대다수의 현실 공산주의 흥망의 원인인 1인 체제의 위험성에 기시감(데자뷰)이 들었다. 모든 푸에블로는 저마다 독특한 전통과 개성, 정치로 이루어져서, 서로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안달루시아 푸에블로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들은 이웃을 모방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웃과의 차이로 자신을 정의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에 의하면 푸에블로pueblo는 독특한 스페인 단어로 마을이나 시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지시하기도 한다. 곧 “마을은 곧 사람”인 것이다. 체제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수단과 목적의 전도로 우리는 체제 그 자체의 존속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고 있다. 이 체제의 자리에는 자본주의, 금융, 시장, 부동산 등이 들어갈 것이다. 칼 폴라니는 상품이 아닌 것들의 상품화로 인한 폐해라 표현했고, 피케티는 방대한 수치 자료로 빈부격차를 증명했다.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하는 특수성이 있으나 마리날레다에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를 꿈꾸며 투쟁했고 그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에도 공동 육아, 협동 공동체인 성미산 마을이 있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 마을 공동체 논의가 활발해지고, 협동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여기, 지금의 가치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리날레다 마을의 경험의 축적이었다. 한국 사회에 조명 받지 못했거나 혹은 없을 수도 있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역사’ 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투쟁의 산물이야.”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들이 단단해 보여 좋았다. 다른 세상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치 그런 세상이 이미 와 있는 것처럼 사는 용기가 필요한 때 ‘위기’는 순간이 아니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불쾌한 사건도 아니다. 그것은 상태다. 그들은 패배할지언정 결코 포기하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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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들은 유난히 내집마련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평생의 꿈이 내집마련이라고 할만큼 '내집'이라는 개념은 자신의 소유물이자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을 공간이라는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집'으로 인해 남은 인생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그런데 만약 월 15유로만 내면 내집을 가질 수 있고 자식에게 물려 줄 수도 있다면 어떨까? 아등바등 가족들과 절약하며 모은 돈으로 내집을 마련하고 나면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다. 경제의 악화로 젊은층의 실업률도 높아 자식들을 대학교 등록금으로 힘들어하지만 공부가 대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취직을 할 때까지 몇 년을 더 공부해야 할수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계속되게 된다.
하지만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은 이런 걱정이 없다. 내집마련에 대한 걱정이나 실업을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 등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유토피아(Utopia)'적인 마을이 있다. 인구 2700명의 소도시 '마리날레다(Marinaleda)'는 1979년부터 계속해서 한 명의 시장이 선출되었다. 그의 이름은 '산체스 고르디요'로 마리날레다 마을에 무상거주, 무상의료, 실업률 0%, 직접 민주주의 등을 표방하며 오랜 세월 시장으로 일하고 있다.
약 35년을 한 곳의 시장으로 일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시장이 주목받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고르디요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며 대형 마트에서 식료품을 가득 싣고 나와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 일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도 한다. 징역 7개월을 선고받지만 처음이 아니었다. 시장으로 재직하던 중 수차례 징역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다. 이 사건으로 고르디요는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지만 시민들에겐 박수를, 정치가들과 사회지도층들에겐 비난을 받았다.
전세계는 금융위기로 대부분이 실업률의 증가와 무역수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의 실업정책으로 실업률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시민들이 공감하고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리날레다의 시민들만큼은 일하고 싶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자신들의 먹을 것을 해결한다.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닌 더불어, 함께 이웃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이 '마리날레다' 마을의 목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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