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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나의 길이 ‘맞는 것’인지, ‘옳은 길’인지,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수없이 내 자신에게도 묻게 된다. 그럴 때 수많은 조언이나 위로의 말 보다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무언가를 늘 갈망해 왔던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무너져 버리는 날 ‘그저 바라보는’ 그림 한 점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 『그림이라는 위로』를 펼쳐 들었다. “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그저 내 그림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책의 시작에서 만난 앙리 마티스의 말이 책을 덮은 순간까지도 계속 남아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또 그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때로는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 수고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면 서운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마티스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낄 밝은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그 문장을 읽으며 문득 스치듯 나를 돌아본다. 내가 지금까지 애써온 시간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 곁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어쩌면 삶의 진정한 가치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 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이 누군가에게 어떤 마음으로 전해졌는가에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낡은 물건 하나라도 또 다른 쓸모가 있는 것처럼,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갈 힘은 분명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을 것입니다.”라는 그랜마 모지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위로와 응원으로 다가왔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보다 익숙한 것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젊을 때는 다가올 새로움과 가능성을 바라봤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지금껏 쌓아 온 것과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리게 된다. 하지만, 지나온 나의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 버린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선택과 실패, 기쁨과 아쉬움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시간들이 앞으로 나아갈 힘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살아갈 힘이 내 안에 쌓여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온다. 내 스스로를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기보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 자신에게 먼저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뭉크의 「태양」에 관한 이야기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불안과 절망을 표현한 화가로 익숙했던 뭉크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밝고 힘찬 태양을 그렸다는 사실이인상 깊었다. 어쩌면 그 태양은 상처와 절망 속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밝아올 내일을 향해 걸어 나가려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불안, 고통과 절망이 있다. 때로는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발목을 잡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픔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더라도, 그 아픔을 안고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기꺼이 선택하고, 상처받고, 아파하세요. 그리고 또다시 선택하세요”라는 사르트르의 이 문장 또한 묘하게 뭉크의 말과 겹쳐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에는 기쁨이, 또 다른 선택에는 후회와 상처가. 그렇다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다시 자신의 삶을 한걸음씩 내딛어보는 ‘용기’가 아닐까. 지금까지 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그중에는 자랑스러운 결정도 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깊은 남는 순간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을 것이고, 그 선택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수많은 선택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결국 우리에게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남는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정답이 없는 세 가지 질문은 고갱 스스로가 평생 답을 찾아 헤맸던 일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생의 자신의 의지로 살 때만 의미가 있는 거야. 얼마나 강한 의지로 살았는지가 중요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판단에 아닌 내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맞닥뜨린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낸다면 그 또한 내 스스로에게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예술가들이 발견한 ‘일상의 아름다움’이었다. 마르크 샤갈은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보여주는 색채를 사랑이라고 이야기했고, 칼 라르손은 아내와 함께 꾸민 집과 가족에 대한 추억이 담긴 그림들을 자신의 인생 최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 말들을 접하며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우리는 때때로 행복을 멀리 있는 어떤 목표처럼 생각한다. 조금 더 성공하면,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갖추게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작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순간들은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족과 함께 나눈 평범한 저녁 식사, 소중한 사람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 별다른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어느 하루의 기억들. 그런 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인지. 예전부터 눈여겨봤던 페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다시 만났을 때는 마치 늘 그리워했던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은 애틋함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오래 바라보게 된다. 꼭 나와 어떤 관계여서가 아니라, 그저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그런 느낌을 준다. 세상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도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겉으로 드러난 성취나 모습만으로 판단하기는 쉽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빛나는 순간과 소중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는 마음이야말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출발점이 아닐까. 그림을 통해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열심히 견뎌온 나의 시간을 조금은 따뜻하게 인정하고, 지나간 상처와 후회에 오래 머물지 않으며, 무엇보다 내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내가 위로하고, 다가올 새로운 선택을 이어갈 용기를 얻었다고 할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 속에 이미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 모두는 늘 밝은 날만 보낼 수는 없다. 때로는 불안하고, 지치고, 마음속의 빛이 희미해지는 순간을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결심이나 특별한 깨달음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 오래된 기억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 지금까지 잘 버텨온 자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만으로도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위로란 삶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앞으로의 삶 또한 계속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부정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 곁의 사람들과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마음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에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소녀’의 눈빛을 다시 바라보면서. 삶은 여전히 살아갈 만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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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작가님의 [그림이라는 위로] 리뷰입니다. 이 책은 그림 앞에 선 한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며, 미술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은 순간들을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윤성희 작가는 화가의 삶과 작품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일상의 언어로 따뜻하게 엮어내며, 그림을 ‘보는 것’을 넘어 ‘느끼는 것’으로 확장시킵니다. 고요한 감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잔잔한 에세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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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지음, 빅피시 출판, 『그림이라는 위로』 리뷰입니다. 이탈리아 미술품 복원사이자 공인 문화해설사인 저자가 선정한 100편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있던 화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건네는 책입니다. 실제로 보기 힘든 명화들을 사진으로라도 접할 수 있어서 눈이 즐겁습니다. |
| 힘들때 찾게된 그림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이렇게 그림을 통해 위로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또한 미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위로받고 있는 것이 공감되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