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한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 나비의 꿈의 주인공인 윤이상 선생님은 '음악'이란 무기를 생존의 도구로 사용하신 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윤이상 선생님에게 음악이란 단순히 영감을 얻고, 즐기는 나약한 도구가 아닌 선생님이 전 생애에 걸쳐 선생님을 투쟁하며 살아가게 한 원동력이 이었다. 그리고 식민지 백성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국의 백성이란 이유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선생님의 재능이 느껴두각을 나타난 것도 어쩜.. 식민지국의 백성이기에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먼 독일에 가서도 음악 공부를 하지만. 항상 조국의 감성과 정서를 잊지 않고 음악에 반영하려는 모습에서 선생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엿볼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생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조국에서는 원수로 갚았다. 박정희 정권이 선생님을 간첩으로 내몬 것이었다. 난 이책을 읽기 전에 선생님이 독일로 귀화한 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은 독일로 귀화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동백림 사건이후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공권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늘 통영의 바닷가를 그리워하고, 고향마을에 발을 디디면 부모님의 묘소에 성묘를 한번만이라도 하고픈 소망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결국 선생님이 저 세상으로 가실때 까지 고향땅을 밟지 못했던 분이시다. 먼 땅 이국에서 언제나 저제나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것만 바랬던 분이..결국 이렇게 떠나버리신 것이다. 아마도 선생님은 하늘 나라에서 선생님의 고향을 바라보고 계실 수 밖에 없으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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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모 (한길사, 1996)
나비의 꿈 (전2권)
소설가 윤정모 님의 이름자를 거론하면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고삐"를 떠올리실 겁니다. <나비의 꿈>은 윤정모 님의 대표작 "고삐"와 같은 선상에서 읽힙니다. 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소설 <나비의 꿈>을 읽기를 이번이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한때 정부에서 그의 소설을 판금조치한 것에 대해서도, 그 전말에 대해서도 굳이 알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독서로 <나비의 꿈>은 거대권력집단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 한 개인의 인권이 처참히 무시당하고, 핍박을 받는 모습을 문학적으로, 소설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나비의 꿈>으로 이해합니다.
<나비의 꿈>은 윤이상 작곡가의 일대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전기체 소설입니다. 그의 생몰을 다루면서 그와 연관된 인물들, 가까이는 가족과 멀리는 우리 민족 전체. 윤이상 작곡가가 바라던 음악적 세계에 대해서 소설의 양식을 빌어 역전적 구성으로 씌어졌습니다. 소설가 윤정모 님의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그리고 현대소설의 양식이 그러하듯 <나비의 꿈> 역시 역전적 구성방식으로 총 2권에 나뉘어 집필되었습니다. 소설 이외에 윤정모 님의 글을 대하지 못한 터라 소설가 윤정모 님의 문체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갖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소설 몇 권을 읽었을 따름입니다. 단지 억압받는 소수를 대변하는 그의 글에 경외심을 가질 뿐입니다.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알고자 하는 분께, 윤이상 입문서로서 유익하게 학습될 만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 덕분에 저는 윤이상 선생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평전<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을 읽고 있습니다. <나비의 꿈>이 윤이상 선생의 삶을 극적으로 표현한 반면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은 논문형식으로 선생의 음악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과 논문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두 책 간의 비교는 불필요합니다. 인간 윤이상 선생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나비의 꿈>은 좋은 읽을거리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술수에 휩쓸려 불운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걱정한 우리 동포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남한 사회에서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을 정권이 교체되기 전 동백림 사건의 주모자, 간첩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치자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지금 우리는 그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서 또다른 윤이상 선생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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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윤이상의 전기적 소설이다. 후기나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 거의 사실에 가까운 전기라는 보는 것도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사망한 세계적 음악가의 일생을 다룬 내용이라 100% 허구의 소설 못지않게 흥미롭고 재미있다. 더구나 저자가 그려나가는 서술은 윤이상에 대한 존경과 흠모 그리고 안타까움 등이 도처에 배어 있어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았고, 문체도 유려하고 푸근하며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왜 그렇게 다 슬프고 허무한 것일까. 사람은 슬프기 위해서 태어나고 괴로움을 만들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한데 자신이 원하는 예술은 또 무엇일까. 한을 기쁨으로 승화한 판소리가 그러하듯 예술의 목적도 결국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머잖아 그는 깨닫게 될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생리적으로 슬픔을 타고난 사람들이며 예술혼이란 남보다 더 깊이 타고 끓는 고통의 핵이며 그 결정체란 것을.”
인터넷을 여기저기 찾아 추천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어느 기관에서 추천한 책이라 선택한 책이다. 찾아보니 절판되어 중고책으로 구해서 읽어 나갔다. 이 책이 절판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음악가 윤이상에 대하여 이만한 책이 있었던가? 소설의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저자가 자료와 인물들을 충분히 취재하여 정리한 내용으로 어느정도 사실에 입각했을 것이고, 다만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작가의 상상과 판단이 어느정도 가미되었을 수준인데, 꼭 절판됐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윤이상의 삶은 참 복잡하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남과 북의 어느 편에도 설수 없었고, 결국 그렇게 그리던 자신의 고향을 밟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소설의 말미에도 결국 그의 한국행이 불발되고, 그 아쉬움이었는지 대마도를 통하여 최대한 통영 인근까지 접근하려는 안타까운 장면이 서글프게 그려지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그의 음악적 성취와 노력이 어느정도 평가받고는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죽기 전까지 고향땅 한번 잠시나마 밟지 못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던 것일까하는 의문이 있다. 위에도 잠시 인용되긴 했지만, 그의 예술적 판단과 행동은 이념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었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결국 편협한 그 이념적인 문제를 우리 역사가 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하기사 2024년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면 그런 편협한 이념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긴한다. 과연 윤이상이 현재까지 살아 있다면 그가 고향 통영 땅을 밟을 수 있었을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던 그리운 고향, 가족...그 안타깝고 소중한 기억들이 책을 통해 전달되어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하여 경험했던 윤이상의 삶이 특별하고, 기구하고, 서글펐다. 그의 예술가적 성취는 책에서 말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인간적인 윤이상의 고통과 삶이 고스란히 정리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엉엉 울었고 명애가 삽짝에 떨어진 어머니 신발을 주워와 그 옆에 놓으면서 함께 훌쩍훌쩍 따라 울었다.”
눈물나고 서글픈 묘사다. 시종일간 책을 덮고 있던 감정이 한문장에 스며들었고 나도 울었다. |
| 윤정모, 실망스럽다. 세계적인 재독 음악가로 알려진 고 윤이상 선생에 대한 작가의 경외와 감탄이 마치 어느 재벌의 자서전처럼 읽힐 수 있다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문체나 형식에 대한 작은 견해라고는 해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계몽사나 금성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법한 위인전보다 나을 것이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자서전들을 밴치 마킹 해달란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감을 지녔던 윤이상,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걷는 윤이상, 그리고 한 때의 시련으로 등장하는 동백림 사건, 하지만 이것에마저도 굴복하지 않는 윤이상,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윤이상... 이렇게 연대기적으로 주루루 나열되는 줄거리야야말로 도식적인 위인전 쓰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여기에 윤이상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윤정모 특유의 리얼한 감정 과잉의 묘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 절박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윤이상의 신화를 지하로 끌어 내린 듯하다. 진정한 전기 작가가 가져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