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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지의 섬은 어디에 있습니까 노벨문학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짧은 소설. 사마라구의 사상 속에 숨어 있는 진리의 추구의 길을 보여주는 글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찾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타성에 젖어 희망이나 사람이나 사랑이란 찬란한 보석에 먹칠을 하고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작품은 대개가 묵직하고 어두우면서도 희망을 주는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속성들이 하나씩 베일을 풀어헤친다. 우리는 아주 착하지도 아주 악하지도 않고,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의 나와 나의 가족이나 내가 생각하는 작은 그룹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착각이지만. 인간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그 해답은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지고 퍼져 나오는 답의 길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 길 위의 수많은 장애물과 좁은 문이지만 우리는 묵묵히 나아간다. 우리에게 희망이란 것은 미지의 섬과 같은 것 아닐까 우리에게 사랑이란 것은 미지의 섬이 아닐까 나에게 나는 미지의 섬이 아닐까 나 때문에 너를 보지 못하고 우리도 보지 못한다. 나는 나 속에 파묻혀, 나 이외 것들의 소중함을 할지 못한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들, 그 중에서 우리는 어떤 문에 앞에 서있고, 들어가려 하는지 청원의 문에 선 사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얼까? 선물의 문에 서 있는 왕은 무얼 바랄까? 끊임없이 들어오는 선물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들여온 색다른 소식, 물러나지 않는 청원자 그리고 청소부 여인, 그녀는 왕궁을 깨끗이 하며, 자질구레한 모든 일들을 떠 맡는다. 그녀를 기다리는 미래는? 그녀가 결정의 문에서 선택한 길은.. 미지의 섬은 없을 수가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 우리의 믿음은 굳건한 것인가? 민중들은 왜 그 사람에게 배를 주라고 요구하는 걸까? 누군가 그들의 꿈을 이루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 사람에게 내가 이루지 못해도 그가 이루기를 바라나 보다. 운명은 항상 우리 바로 뒤를 따라 다닌다. 내가 정말로 열어주고 싶었던 문이 이제 열렸기 때문이다. 사마라구의 신념을 볼 수 있는 "소유는 좋아하는 것을 최악으로 전락시킨 욕심" 인간은 이 욕심에 사로잡혀, 사람을 사랑을 희망을 보지 못한다. 단지 이루려고만 하고, 혼자 가지려고만 한다. 하지만 청원자는 "이 배를 띄우려 하지 않는 한 이 배는 내 배가 아니요.”라고 답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는 말에 청소부 여인은 자신에게서 벗어나라고 답한다. 인간의 집착 그것은 인간의 생존이 아닐까? 아집덩어리인 우리들이 삶이란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것도 나라는 아집과 신념이리라.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섬이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고, 항상 찾아 헤맨다. 그것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기에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지도. 그것은 그것이며 그것이 아니다. 항해를 함께 할 것 같았던 그녀도 그를 떠난다. 왜? 당신의 눈빛에는 미지의 섬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미지의 섬은 당신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기에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알아서인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얼까?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의 가치를 알 수 없는 것, 청원자와 청소부 여인은 각자의 길에서 비로소 사랑으로 하나된다. 그 순간 미지의 섬에 다다르지만, 그 순간 그것은 미지의 섬이 아니다.
* 작은 책, 짧은 소설.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지. 당신의 미지의 섬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고 행복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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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를 너무도 믿는 나. 역시 실망이란 없다. 책을 받아보고 우선 책두께에 놀랐고(^^) 천천히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건만 방금 뭐가 지나갔나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난 충격에 빠졌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 정말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만한 사건이다. 그제서야 옮긴이의 글이 생각났다. 동화처럼 순식간에 읽혀진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약간의 사색을 필요로 하는... 그러나 어렵지는 않다라는.
미지의 섬을 찾으려 배를 원하는 사내와 평생 성에서 청소를 하며 지냈던 여자. 이들은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려 한다. 그러나 남자는 바다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 섬을 보기 위해서는 그 섬을 떠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섬이라면서. 우리 자신에게서 자유로워 지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는 법이라며. 여자는 용기와 준비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자에게(옮긴이의 말을 빌리면) 관점의 차이를 말해준다. 이건 사랑이다. 이들은 사랑을 했다. 그리고 미지의 섬이 미지의 섬을 찾아서 바다로 나아갔다. [인상깊은구절] 한 남자가 왕의 성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배한척만 빌려 주시오 왕의 성에는 많은 문이 있었지만, 그 문은 청원을 위한 문이었다. 그러나 왕은 언제난 선물의 문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청원의 문을 두드릴 때마다 못 들은 척해 버렸다. -17- 정오쯤, 미지의 섬은 마침내 조류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미지의 섬이 미지의 섬을 찾아서....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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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성을 가진 책을 읽는 다는것은 나에게 조금 어려운 일이다. 이 책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정신적인 스승이 쓴 책이라는 것도 읽어보면 마치 하늘을 붕 떠있는 기분에 휩싸여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지경이다. 이 책은 정말 짧은 소설이다. 그래서 동화라고도 하는 분도 계시다. 동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나에겐 곤란하다. 이상하리만큼 난 왜 이런류의 책이 어려울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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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섬. 그 섬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 섬이다. 그 섬이 무엇이라 정확히 알 수 없다. 나에게도 여러게의 섬이 있을 것이고, 어떠한 때는 하나의 섬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으니까. 누구나 그 섬을 인식하고 칮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쉬운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미지의 섬을 찾아나서는 일. 난 어떤 미지의 섬을 찾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묻고 생각했지만 그 미지의 섬을 찾기란 어려웠다.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책을 덮고 잠에 들면 꿈속에서 미지의 섬을 찾아 항해를 했다. 꿈 속에서도 섬을 찾는 것는 어려운 모험이었다.
"사실, 우리 운명이 거의 언제나 그런 식이다.운명은 항상 우리 바로 뒤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혼잣말로 이제 끝났어, 이제 끝장이라구,알게 뭐야!라고 투덜댈 때, 운명은 우리 어께를 다독거리려 이미 손을 내밀고 있다." "그렇소.좋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소유의 형식이라 하겠지만, 소유는 좋아하는 것을 최악으로 전락시킨 욕심일 것이요." "당신도 단신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요." "섬을 보기 위해서는 그 섬을 떠나야 하는 법이요.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는 법이요." "꿈은 뛰어난 마법사이다. 사물간의 균형, 사물간의 거리를 뒤바꿔 놓는다. 사람들을 헤어지게 만들고, 서로 나란히 눕게도 만든다.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지만, 서로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최선의 방책은 유비무환이었다.토끼장 문을 열고 토끼의 귀를 잡아 꺼내기가 산골짜기를 헤매면서 토끼를 뒤쫓는 것보다는 훨씬 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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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어른들이 읽는 동화라고 분류하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은 재밌거나 감동적이거나 따뜻하거나 눈물을 쏙빼는 이야기거나. 여기 또 한편의 동화가 있다.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작가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미지의 섬>이라는 동화다. '미지(未知)'라는 단어는 '알지 못함'을 의미하지만 두 가지로 해석도 가능하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포기'한다는 의미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가끔 사람들은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겁쟁이'가 된다는 것이라고. 안전하고 편안한 삶에 익숙해지고 더 이상 인생에서 모험이나 도전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청원자가 다시 말했다. 미지의 섬을 찾아가려 합니다. 이제 미지의 섬은 없어. 폐하, 미지의 섬이 없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모든 섬이 지도에 있지 않느냐! 알려진 섬만 지도에 있을 뿐입니다. (p.29) <미지의 섬> 초반부에 나오는 왕과 배를 청원한 남자의 대화이다.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인생과 생활의 안일함만을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렸을 때는 호기심도 많고 뭔가 신기한 것을 보면 탐구하고 도전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도전'보다는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포기하거나 무시해버리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겐 지도에 있는 섬들과 대륙이 전부인 것이다.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모험과 도전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우물안에 자신을 갇히게 한다. 하지만 우물 밖에도 큰 세상이 있다는 것도, 지도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어딘가에 미지의 섬이 있다는 것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단지 도전하지 않을 뿐이다. 도전에서 오는 실패와 성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이라는 단 열매가 있긴 하지만 실패할 경우를 더 먼저 생각하고 높은 확률로 보기 때문에 도전을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인생이 행복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미지'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니라 아직 모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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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Saramago, [O Conto da Ilha Desconhecida (1997)].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은 또 하나의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우화이다. 어느 날 왕궁 앞에 한 청원자가 나타나 자기가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 배를 한 척 달라고 요청한다. 끈질기게 자리를 지킨 끝에 허름한 범선 한 척을 얻는데 성공한 그는 그와 함께 미지의 섬을 찾아가기 위해 따라나선 왕궁의 청소부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잠시 그녀가 그를 따라오지 않으리라는 우려에 시달렸지만 결국 둘이 함께 미지의 섬을 향해 나선다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이다.
코엘료의 작품과 함께 이 두 작품은 매우 닮은 데가 있다. <연금술사>가 코엘료가 쓴 자신의 자아찾기에 관한 우화였다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양치기 목동) <미지의 섬="">은 그에 대한 응답인 양 내놓은 사라마구의 자아찾기 (미지의 섬을 향해 닻을 올리는 항해자)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75세의 쓴 작품으로, 그는 실제로 이 책을 쓰기 5년전 리스본을 떠나 카나리아 제도의 한 섬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는 이 섬으로 이주한 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모든 이름들="">을 집필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연금술사>에 비해 인생에 대한 철학적 깊이가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지의 섬은 과연 아직 남아 있는가? 아직도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서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그런데 왜 항상 자아를 찾아 나서는 이는 남성뿐이고 여성들은 그들이 가는 과정에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를 따라 가거나 혹은 그를 기다리거나 하는 존재로만 묘사되는지.. 언제 한번 여성작가도 이런 우화 한 편을 써줬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섬이래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섬을 보기 위해서는 그 섬을 떠나야 하는 법이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는 법이요.연금술사>모든>눈먼>미지의>연금술사>연금술사> |
| 미지의 섬을 찾기위해 왕에게 배를 원하는 주인공, 평생 청소를 하며 살아왔지만 미지의 섬을 향해 훌훌 떠나는 청소부 여인. 이 두 사람이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이 책은 사랑의 얘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인생을 사는 지혜도 가르쳐 주는 듯하다. 뭔가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는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청원의 문, 선물의 문, 결정의 문...등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도 들어있어 좀 당황되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할 때, 인생에 커다란 모험을 할때, 즉, 미지의 섬을 혹은, 생의 목표를 찾아떠나는 여행, 거기에 힘을 주는 책이다. |
| 동화 같은 소설. 어금니 부인이 나오는 ‘짐 크노프 이야기’에 비길까. 이 애매모호한 소설. 분량도 문고본 80여 쪽에 불과한 책. 이런 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끌고 소설로서 성공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나 ‘깊이에의 강요’에 긍정하지 않는 것처럼 이 ‘미지의 섬’에도 긍정하고 싶지 않다. 쥐스킨트의 ‘향수’에 열광한 것처럼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에 긍정한다. 내가 책을 잘 못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써 고상하게 유명 작가에 아부하는 독후감을 쓸 생각은 없다. 작가의 메시지는 고작 나를 떠나야 나를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섬을 떠나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미지의 섬이며, 섬을 떠나는 순간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랑의 꿈같은 이야기인가. 실제 소설의 중반부 이상이 꿈 이야기다. 옮긴이의 말은 더욱 혼란스럽다. ‘단숨에 읽히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 쉽다.’ 그저 유명작가의 글이라면 무조건 베끼고 보자는 심사인가. 독자를 우롱하는 것은 아닌지. 2006. 8.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