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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일(화) 늦은 7시, 성균관대학교 앞 풀무질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21돌 기념 잔치를 함께하는 자리였다. 나는 잔치를 열기 30분 전에 도착했다. 미리 풀무질 식구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풀무질은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가 함께하는 서점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곳이다. 글을 쓴 은종복을 비롯하여 아버지, 어머니, 작은형님이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저자의 서명을 받고 세 배 값을 드렸다. 어머니한테 다가가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읽으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좋은 기분을 더해 드리고 싶어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버스 회사 겉옷을 벗고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셨다. 강금선 어머니는 1936년 음력 11월 4일에 태어났으니 올해 79살이다. 어머니는 해방을 맞이하고 경북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난 뒤 평생 학교 근처를 가지 못했다. 19세에 옆 동네 은상기 님과 화촉을 밝히고 빈손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아들들을 위해 살아왔다. 4명의 아들을 둔 어머니는 79살인 지금도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동네에 있는 폐지를 모으려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자식들이 주는 돈은 모아 두었다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준다. 자식 이름을 부를 때면 첫째 이름부터 차례로 불러 나간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책은 셋째 아들 은종복이 어머니 강금선의 삶을 듣는 것에서 비롯한다. 은종복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어머니 집에 찾아 가서 어머니가 하는 말씀을 듣고 글을 썼다. 아들이 글을 쓴 것이 제1장이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이 제2장이다. 책에는 은종복의 소설도 한 편 들어 있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신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와서 아들 넷을 낳고 모두 장가들게 하고 집까지 사 주었으니 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악착같이 살았고 성과도 있었다. 아들이랑 종종 충돌도 있었다. 특히 셋째 아들이 어머니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대학에 들어가 데모를 할 때는 어머니가 직접 학교로 쫓아가 말리기도 했다. 총학생회실에 들어가 임수경 사진을 확 뜯어버리기도 했다. 니가 김귀정이가 죽었다고 또 데모하러 집에서 몰래 나오려고 했지. 나도 따라 나섰다. 지하철에 데모하러 온 학생들도 수북했지. 나는 소리 질렀어. “아니, 계집애 하나 죽었다고 이 난리야!” 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학교에 들어갔지. 학교엔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렸어. 나는 그날 니를 따라서 명동성당까지 갔어. 날이 어두워 밤 9시가 넘었는데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픈 거야. 나는 어디 가도 먹지 않으면 못 배기거든. 물이라도 한 컵 먹어야지 살지. 내가 너 따라 갑자기 나오느라 돈도 챙겨 오지 않았지. 근디 니가 어디 가서 빵과 우유를 사오더라. 그래도 아들이 제일이다 싶었지. (160 - 161쪽) 한참 데모를 하던 20대 때에도 은종복은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진 어머니를 무시하지 않았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밀고 나갔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다른 어머니의 뜻도 살필 줄 알았다. 은종복의 사람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들 형근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때도 어머니는 반대했다. 어머니는 잠도 못 자고 아프고 밥도 한 이틀인가 굶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대안학교에 안 보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은종복은 끝내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낸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가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들도 의젓하게 자라고 있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멋지게 중재를 하는가 하면 엄마가 힘들게 일할 때 해결책을 내놓기도 한다. 형근이의 슬기로움 속에 아버지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