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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의 삶"이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의 나이든 여자의 사진, 그리고 "괴벨스의 비서"라는 말. 괴벨스의 비서가 아직 살아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치 전범들은 거의 재판을 받고 사형이거나 무기여야 할텐데, 괴벨스의 비서라면 전범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근데 책을 썼다?! 그래서 읽은 책. 책을 읽는 내내 두려웠다. 이 책을 읽고난 나의 한줄 소감이다.
일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서 한나 아렌트가 독일, 유대인 모두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악의 평범성"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그 '악'(사실은 이런 의미가 아니였다고 하지만)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며 조금 이해 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악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생각, 실체에 대한 사유가 없이 살았을 때의 결과가 악으로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폼젤은 아이히만 처럼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이는 아니나, 그녀는 괴벨스의 비서 중 하나였고, 그녀의 일은 적으라는 것을 적고, 보내라는 것을 보내는 하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인물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나치가 어떤 일을 하는지, 히틀러가, 괴벨스가 그토록 잔학한 일을 벌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자신은 그런 문서를 본적도, 볼 권한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처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는 내내 변명이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에게 돌을 던질수 없어졌다. 그녀는 알수도 있었다. 어쩌면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국에 그녀의 말은 알고 있었던것 같다. 구체적으로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까지는 몰라도, 지금 유대인에게 어떤 박해가 가해지고 있는지, 나치가 무슨짓을 벌이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가 중요했고, 그녀가 무엇을 한들 바뀌지 않는다는 변명뒤에 숨어서 말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던 시기 독일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였다. 민주주의고 뭐고 어서 빨리 지금 상황을 해결해 줄 말그대로 구원자를 찾아야했고,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심리를 모두가 가졌던 시기. 그 때 히틀러가 나타났다. 그리고 히틀러는 다수의 독일인을 위해, 유대인이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조차 사리분별할 수 없던 시절 말도 안되는 선동으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나치의 등장의 이유는 한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모든 상황, 이유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이고, 그런 나치가 2차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짓을 벌이기 까지 다수의 독일인은 그를 지지했다. 몰랐으니까. 그렇게까지 할 줄은. 그 댓가는 끔찍했다. 외면의 댓가가, 무지의 댓가가,
우리는 지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없을까? 전세계에서 난민이 발생하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건 나와 상관 없는 일일까? 전쟁과 아무 상관 없던 미국에서는 어떻게 트럼프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유럽은 극우 포퓰리스트가 나타나 말도 안대는 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30%이반의 득표를 하는 지금 우리는 제 2, 제 3의 히틀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히틀러><나치>라는 악을 만들어낸 것은 외면과 무지의 결과이다. 우리나라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종교와 정치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이 수면위에 올라와 득세하고 있는 지금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두려웠다. 제 2,3의 히틀러를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폼젤처럼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모른다는 변명뒤에 숨어버릴까봐... 한나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뜻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내가 지금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해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은것. 그 사유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결과를 우리는 아주 오래전도 아닌 가까운 과거에 보았다. 그리고 반성했음에도 그 시절이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더 두렵다.
"완전히 잘못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호도한 나치 자신들, 즉 나치 지도부만 빼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어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나 계층만의 무관심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날에도 늘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무관심을 말하는 거에요." p.216
#yes24올해의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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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멍해질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실제로도 그렇지만) 대부분 쓸데없는 잡생각이라 치부할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믿는다. 일이라는 게 ? 특히 조직의 일원으로 수행하는 경우라면 더욱- 나의 의지에 따른다기보다 조직이나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는 경우가 더 많다. 멍해지는 지점, 그 순간 이 일이 내 일인지 아닌지, 내가 그저 부속품으로 일하는지가 결정된다. 아니면 최소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일의 방향성과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방향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반드시 가치평가를 동반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가치평가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과 고민. 그래야만 더 나은 결과를 ? 최소한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결과를 - 얻을 수 있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운동은 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우리는 늘 가던 길로, 익숙한 방법으로 생각 없이 행동한다. 이런 습관적인 생각 없음이 모여 내 삶이 되고, 나와 비슷한 삶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인간의 (편하고자 하는)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거대한 역사라고 다르지 않다.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의 비서 브룬힐데 폼젤의 삶을 보고 떠오른 말이다. “우리는 그저 시대에 끌려다녔을 뿐이에요!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p.240”라 외치는 그녀의 삶은 지금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나치 지도부만 빼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어요. p.285” 자신의 책임을 희석하려 하지만, 우리는 나치가 저지른 결말을 잘 알고 있다. 폼젤 개인의 성공에 대한 욕망. 정치나 주변에 대한 무관심이 모여서 유래없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런 비극의 역사 무대 한가운데 있던 본인이지만, 이 멍함의 순간을 지나친 결과는 어떤가. 시대에 끌려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는 변명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생각하지 않음에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순간. 이 멍함의 순간을 무시할 때 비극은 싹튼다. 브룬힐데 폼젤의 삶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한다. “현재 관찰되는 국민 상당수의 극우화는 난민 문제가 불거지기 한참 이전에 이미 약자들에 대한 연대감을 상실한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이 부른 결과 p.385”라고.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자주 나 자신을 역사의 한 사건에 대입해 본다. 일제 강점기였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저 무지한 소작농이었을까. 간도로 이주한 독립운동가였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소극적인 친일파였을까. 이도 저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신세 한탄하며 술만 마시던 사람이었을까. 하나 확실한 것은 ‘무관심’하고자 애썼을 것이다. 그 길이 살아남는 길이라 믿었을 테니까. 지금도 수많은 생각을 무시하고,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 꿇고 있으니. 분명 내가 폼젤의 자리에 있었다고 다르게 살 자신이 없다.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에 대해 보편타당한 대답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각 개인이 얼마나 성찰하고 각성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p.24~25”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행동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주저함이 필요하다. 그 순간, 무관심 하지 않는 것. 작은 눈길이라도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일. 정치에, 주변에, 내가 하는 작은 일에 멈칫하는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침묵한다면, 결국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에 대해 보편타당한 대답은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각 개인이 얼(p.24)마나 성찰하고 각성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p.25) ... 공감 능력과 연대감의 상실을 수반하는 광범위한 시민 계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의 비상과 성공을 부른 한 원인이었다. ... 폴란드 작가 안드르제이 스타시우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유권자들이 불안에 떨수록 우리는 더 큰 겁쟁이들을 뽑게 된다. 그러면 불안을 관리해야 할 이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p.27)와 우리 나라, 우리의 유럽 대륙을 제물로 삼는다.> p.28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p.224)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평생 그랬죠. 당시도 물론이었고요. 그 일이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어요. ... 당시 난 항상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휴,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구나. ...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런 생각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그게 위안이었죠. p.225 우리는 그저 시대에 끌려 다녔을 뿐이에요!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p.240 완전히 잘못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호도한 나치 자신들, 즉 나치 지도부만 빼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어요. p.285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연대의 힘으로 그것을 지켜 내려는 부단한 시도였고, 또 그 시도이다. 만일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면 개인들의 권리부터 박탈해 버릴 것이다. p.320 브룬힐데 폼젤이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그녀가 우리를 다음과 같은 것에 주목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우리의 불안, 힘겹게 피로 얻어 낸 자유에 대한 자만과 경시, 세계화의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연대 해체와 야만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무시가 그것이다. p.339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한답시고 국가 사회주의를 상대화시켜서는 안 된다. 핵심은 일대일로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극단적인 경향들의 위험성을 그 징후부터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p.358 세대 분석의 문제점은 항상 다른 세대의 시각으로 평가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p.370 극우적 입장들은 갑자기 사회 중심부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 깊숙한 곳에 잠복되어 있었다. 문제는 국민의 몇 퍼센트가 극우적 견해에 동조할 것인가만 남았을 뿐이다. 극우의 성공은 불만과 불안에 떠는 사람들의 항의 분위기와 정치적 여론 조성의 비합리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존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일종의 신호, 즉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의 극단적인 요구를 그 자체로는 명확하게 지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포퓰리스트들에 대해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p.374) 일이다. 이제 분노와 굴욕은 팩트 따위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지점을 넘어섰다. p.375 현재 관찰되는 국민 상당수의 극우화는 난민 문제가 불거지기 한참 이전에 이미 약자들에 대한 연대감을 상실한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이 부른 결과다. 브룬힐데 폼(p.385)젤 역시 자신의 시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히틀러 이전 궁핍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문제들은 외면했다고. p.386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편한 진실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 정당들의 임무다. p.394 온갖 방향의 우익 포퓰리스트와 독재자들은 과거든 현재든 문제를 평화적이고 인간적이고 장기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음을 조금도 증명하지 못(p.402)했다. 그들의 힘은 결국 거의 예외 없이 소수자들의 희생 위에서 자국민들을 혼란과 폭력, 전쟁, 탄압으로 이끈다. p.403 잉게보르크 라포포르트 <비정치적인 사람은 위부의 영향을 받기 쉬워요> p.405 브룬힐데 폼젤과 잉게보르크 라포포르트의 파시즘이, 그리고 사람들의 무지와 수동성, 무관심, 기회주의가 독일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한 세대의 어쩌면 마지막 경고라는 점이다. p.406 <행복이라는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p.407 사회적 연대의 경험은 인도주의적 민주 사회의 엔진을 돌리는 연료와 같다. ... 연대의 해체에는 항상 휴머니즘의 해체가 뒤따른다. 공감과 연대 같은 인간적 본능이(p.407) 배척되는 사회는 더 이상 어떤 민주주의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추악하다. p.408 이제 온건한 시민층과 모든 사회 엘리트들은 과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증명해야 한다. p.414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선전 방식을 적극 활용한다. 팩트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본능이나 편견을 자극해서 가짜를 진실처럼 믿게하는 방식이다. 2016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이런 현상을 <탈진실post-truth>이라 칭하며 탈진실화를 현재의 시대적 특성으로 진단했다. p.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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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의 비서로 나치의 수뇌부에서 근무한 폼젤의 이야기.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쓴 글이라면, <어느 독일인의 삶>은 그 개념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스며들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하는 한나와 오버랩 되기도 하면서,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폼젤의 항변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정치적인 이슈들에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대하는가에 대해서 숙고하게 만든다.
책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품젤의 인터뷰를 가지고 2016-2017년 사회적 이슈로 그 사고를 확장한다. 높은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을 영위하는 보통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상, 극우/극좌 혹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대해 깊게 사고하지 않는다. 그저 한 정당의 하나의 기치로만 대강 보아 넘긴다. 지금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의 현실이 더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서서히 많은 사람들이 극우의 진영논리에 물들어 간다. 이는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정치/사상/이념/지역 감정을 배우고 극단적인 반정부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과 그 결이 비슷하다. 책에서는 난민 이슈를 중심으로 터키, 미국, 유럽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정치적,경제적,환경적 난민이 발생하면서 유럽에는 무슬림 난민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우 정당들은 난민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으며, 국경폐쇄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폼젤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행동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도 동조하는 것에 하나이지 않을까. 그녀는 과연 정말 몰랐을까, 괴벨스의 연설을 속기로 받아내고 선전부에서 근무하면서 정말 눈과 귀를 막고 있었을까. 극우 극좌의 대립에 피곤해져서 더 이상 정치 뉴스를 읽지 않는 오늘의 나와 그 시대의 폼젤이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오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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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비서의 증언을 통해 나찌시대를 돌아보려는 기획의도는 좋았다고 본다. 히틀러시대를 리뷰하는 대부분의 도서나 영화, 다큐멘터리들이 모두 나찌와 독일군의 피해자 입장에서 제작된 것들이기에 그 반대의 시각에서 바라본 당시의 상황도 한번 쯤은 접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룬힐데 폼젤은 군인이나 정치인이 아니었고 직접적으로 전쟁과 정치에 참여한 것도 아니기에 그녀가 회상하는 히틀러 시대의 모습에는 한계가 있다. 브룬힐데는 주로 일반적인 독일인이 전쟁과 유대인 학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하는 부분을 설명해 준다. 브룬힐데의 증언은 독자들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거론했던 악의 평범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책의 구성에 있어 아쉬운 점은 이 책을 기획한 저자 토레 D. 한젠의 개입이 너무 과하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판단은 브룬힐데의 증언을 접하는 독자들의 몫임에도 저자는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마치 브룬힐데를 고발하는 검사의 입장에서 그녀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찌시대의 독일인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유럽과 영미권의 정치사정까지 언급해가며 장황하게 정치비평을 하는 부분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마저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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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독일인이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음을 알려 주는 책. 이 책은 어느 독일인의 삶이 그리 특별하지 않음을...,,,, 생각하기를 멈추고 현실에 안주하는 모든 이가 그리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부디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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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일인 이야기'를 읽고 제목이 비슷한 이 책을 알게 되어 이어서 읽었습니다. 책의 구성은 히틀러 집권시기의 독일 선전부에서 속기사로 일한 저자의 인터뷰를 통한 살아온 이야기를 본문으로 하고 편자의 평과 역자의 짧은 글로 마무리됩니다. 저자는 본인의 인생을 술회하며 전쟁범죄에 연관된 부분에서의 일관된 변명과 기만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 의지 또는 행동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진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며 살아온 본인의 삶을 순진 또는 무지의 결과로만 치부하는 저자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지만 편역자의 글을 통하여 삶을 살아가는데 큰 깨우침을 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현대는 탈진실의 위험에 빠져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개인은 이기주의를 버리고 냉철한 현실인식을 통한 참여의식이 요구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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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전직 비서 겸 속기 타자수였던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다. 본인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난 책임이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걸 스스로 세뇌하는 느낌? 읽으면서 좀, 짜증났음. 내가 정치를 안다고 해서 내 상황이, 내 생활이 뭐 나아지겠어?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 반성중. p.20 폼젤의 이야기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공감 능력과 연대감의 상실을 수반하는 광범한 시민 계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의 비상과 성공을 부른 한 원인이었다. p.229 결국 그녀가<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는 것은 <알 수가 없어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뿐이다. p.302 현재 우리가 무지와 무관심으로 이 사회의 우경화에 책임이 크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의외의 주장이 아니다. 나치 정권의 가담자들은 무지해서 그랬다고 변명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알고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더 잘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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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의 비서로 나치의 중추에 있었으나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정치적 관심 같은 건 없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브룬힐데 폼젤의 증언에 대한 책입니다. 사람의 기억을 백퍼센트 믿을 수 있을 수는 없는 데다 이 사람이 정말로 죄인인가 아닌가를 따지기에 앞서, 이 사람의 증언 자체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거악을 인지하면서도 개인의 이기심을 위해 그것을 무시하거나 침묵하거나 외면함으로써, 즉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는가. 우리는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 일로 괜히 심적인 부담을 안기도 싫었고요. 배급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다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굳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에도 먹고사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고 어떤 '시끄러운' 사안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을 저술한 토레 D. 한젠의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는 흥미롭습니다. 저자도 옮긴이도 말하고 있지만 히틀러만 '온'게 아니라 사람들도 '갔'습니다. 결국 시대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중이고 사람이 모여 대중이 됩니다. 알고 생각하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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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책이기에, 책을 파악하는 것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글을 읽고 있지만, 마치 그녀가 나레이션하는 음성을 듣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책의 대부분은 그녀가 그 시대를 어찌 살아왔는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에 대해 그녀 스스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 후반부에서야 저자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합니다. 어찌보면 엄청나게 긴 서론을 듣고 간략한 결론을 듣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결론도 간략하고, 주제를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결국 이 책은 그런 시대를 살았던 폼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악한 인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지했기에, 본인 스스로 무지하기로 결심 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폼젤은 자신의 어렸을 적 가정 생활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런 성격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고 어찌보면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린 모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자도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의 선택이 모이고 모여 그 괴물 같은 시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자는 그런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싶어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각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 책에서의 아쉬움은, 저자가 너무 브룬힐데 폼젤 다큐멘터리에 의존하고 있어 자신의 서술 부분이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그 점을 제외하다면 접근하기 힘든 영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읽기 편한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립니다. |
| 독서모임에서 추천된 책이라 별 기대를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흡입력있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큰 것 같아요. 정치적 무관심이 오히려 제일 이용되기 쉽다는 것.. 저도 많이 반성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든 정치적인 이슈에 견해를 갖고 있기는 쉽지 않잖아요. 이런저런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정치에서 멀어지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몇 권 더 구매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