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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을 자주 다녔다. 지금도 방학이면 틈나는 대로 여행을 가려한다. 그러나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여행에서 관광으로 점점 나의 여행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행은 관광과 다르다. 어느 여행가는 그 차이를 1미터차이라고 했다. 1미터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관광버스에 타고 있는 관광객과 그 아래를 걷고 있는 여행객의 차이를 말한다. 같은 시공간안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여행과 관광이다. 난 그림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보니 여행지는 미술관이 있는 수도나 대도시에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술과 역시 도시의 중앙부에 위치에 있기에 난 별도로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은 별로 하지 않았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그 느낌과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난 신자도 아니고, 순례자도 아니다. 2023년 1월 코로나가 끝나가던 시점에서 스페인을 자동차로 여행했던 경험이 이 책을 읽는데 무척 도움이 되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그런 고생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관심이 생기면 내면의 호기심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혼자 가상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다 그 호기심이 극한에 이르면 어느새 항공권을 결재하고 그로부터 여행은 시작한다.
낯선 길 위에서 저자는 무엇을 찾았을까? 하루에 몇십킬로씩 걸어가며 저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책은 의외로 그런 철학적인 물음과 의미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를 걷고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먹고 어디서 쉬었는지 순례자의 일상을 적고 있다. 꼭 옆에서 함께 따라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하루하루의 일정과 느낌과 소회를 적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일상의 기록에 있다. 걷는 그 과정속에서 내면과 대화하며 함께 걷는 자들과 교류한다. 낡은 알베르게의 숙소에서 중년의 몸을 뉘이며 인생과 삶에 대한 깊은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코를 골아 혹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 더 인상적이다.
저자는 걷는다. 이유와 목적을 적어두고 있지만 그것은 순례자의 발길을 걷기 위한 이유에 불과할 뿐 그는 걷고 또 걸으면서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다. 대화는 생경한 풍경과 육신의 고통과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에서 오감으로 전해오는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며 길을 지나면 다시 놓아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배운다. 걷고, 먹고, 마시고 쉬며 또 하루를 무탈히 보냄을 감사하면서 물집이 터지고 짓무른 발을 어루만지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짧은 단문으로 이뤄진 저자의 글은 담백한 맛을 지녔다. 책을 다 읽고 거창의 황강변을 걸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불러 한참을 걸었다. 점점 기력이 떨어지는 나는 상상해본다. 짐을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서라도, 내가 걸을 수 있을 만큼 간편한 복장을 하고서라도, 힘들면 주저앉고 쉬면서 남들보다 적게 걷더라도 저자가 걸었던 그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다.
목차 [프롤로그] 행복한 걸음
제1부 산티아고 길 위에 서다
제1화 산티아고 길 위에 서는 이유 제2화 도하(Doha)에서 파리(Paris)로 제3화 밤기차를 타고 생장(Saint-Jean)으로 제4화 피레네(Pyrenenes)산맥을 넘다 제5화 순례길에서 만난 냥이와 멍이 제6화 순례견 히끼를 만나다 제7화 천천히 걸어서 끝까지 제8화 아름다운 시로키(Cirauqui) 마을 제9화 이라체(Irache) 포도주 농장을 지나 제10화 환생에 대하여 제11화 걷는 속도만큼 삶도 느리게 간다 제12화 아침을 깨우는 소리
제2부 태양의 흔적을 따라 걷다
제13화 그라농(Granon) 마을의 일출 제14화 페드라자(Pedraja) 산을 넘어 제15화 아타푸에르카(Atapuerca)에서 알티미라 동굴까지 제16화 기적의 메달과 축복 제17화 산 안톤(San Anton) 수녀원을 지나 제18화 우리 몸에 새겨진 태양의 흔적 제19화 모든 길 위에는 사람이 있다 제20화 2,000km를 걸어 온 하르츠와 마리아 제21화 하프 순례증명서를 받다 제22화 알베르게에서 잠 못 드는 밤 제23화 20일, 470km를 걸어 레온에 제24화 혼자 걸으며 함께 걷는 길
제3부 단 하나의 소원을 빌다
제25화 배낭을 고쳐 메고 제26화 다시 레온(Leon) 제27화 가을에 걷는 산티아고 제28화 오르고 또 오르고 제29화 철십자가에 소원을 빌고 제30화 혼자인 시간에 사람은 그리워 제31화 우리 산을 닮은 발카르세(Valcrce) 제32화 가을 단풍의 애틋한 아름다움 제33화 아름다운 숲길을 걷다 제34화 비를 맞으며 함께 걷는 길 제35화 젖은 숲의 명령 제36화 숲과 인간의 숨, 생명의 환희 제37화 빛의 향기를 머금은 유칼립투스 제38화 단 하나의 소원
[에필로그] 또 다른 시작, 피스테라 [부록] 산티아고 순례길,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