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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러스킨, 그리고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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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하여 공부하는 과정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의 일러두기를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 가운데 그의 예술론이 잘 나타나 있는 것들을 옮긴이가 골라 번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두 여덟 편의 산문 가운데 두 편은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 서문으로 적은 것이고, 나머지 여섯 편은 샤르댕, 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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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하여 공부하는 과정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의 일러두기를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 가운데 그의 예술론이 잘 나타나 있는 것들을 옮긴이가 골라 번역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두 여덟 편의 산문 가운데 두 편은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면서 역자 서문으로 적은 것이고, 나머지 여섯 편은 샤르댕, 렘브란트, 와토, 귀스타브 모로, 모네, 로세티 등 당대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프루스트의 관점을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러스킨이나 화가들 모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어 이들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게 되면 책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사실은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깊이 있는 시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러스킨에 관한 산문에 중점을 두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러스킨에 대한 두 편의 산문은 역자의 서문치고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든 <참깨와 백합>의 서문으로 쓴 ‘독서에 관하여’에서 프루스트의 책읽기의 유래로부터 책읽기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3년에 천권의 책을 읽다보면 손에 잡히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보면 일찍부터 다양한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루스트가 어렸을 적에 얼마나 책읽기에 빠져있었는가를 알려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방에서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공원에 가야만 했다. (…) 아직 다시는 손대면 안된다고 명령받은 내 책과 함께 풀밭 위에 놓였다.(20쪽)” 프루스트는 병약했다고 했습니다. 병약한 아이가 책에 빠져 지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한 어른들이 일부러 책읽기를 금하였던 모양입니다. 책읽기도 어렸을 적부터 이 정도는 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겠지요?

 

또한 프루스트의 독서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러스킨은 독서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주장한다.(29쪽)” 하지만 프루스트는 “독서는 대화와는 다르게 혼자인 상태에서, 즉 고독한 상태에서 지적인 자극을 계속해서 즐기고 영혼이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작가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에게 욕구를 불어넣는 것이다.(33쪽)”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산문 ‘러스킨에 의한 아미앵의 노트르담’은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를 번역하면서 쓴 역자 서문입니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러스킨을 기리는 여행의 순례자처럼 아미앵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고자 한다.(61쪽)’라고 시작한 프루스트는 “그는 역에 당신을 마중나올 것이다. (…) 그는 당신에게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뿐 아니라, 당신의 시간적 여유에 따라 이 길이 더 좋은지, 저 길이 더 좋은지도 말해준다.(65쪽)”라고 사설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yes24.com/document/7199988>의 독특한 서사구조가 떠오릅니다. 즉 보통이 찾아 나선 여행지를 과거에 그곳과 연관이 있는 안내자가 나서서 함께 여행을 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미앵의 성서>가 그런가 봅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하여 설명하듯이 아미앵에 있는 성당에 이르는 길부터 밖에서 본 모습 그리고 성당의 내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안내자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번역을 하신 유예진교수님은 여기에 더하여 산문에 나오는 건축물이나 그림의 도판을 말미에 더하여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무려 85쪽에 달하는 역자해설을 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y*****2 2014.06.1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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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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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책읽기는 어떤 방법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 하고 있고 책 읽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읽기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인 취향 탓에 책장이 술술 잘 읽히는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편중된 독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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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책읽기는 어떤 방법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 하고 있고 책 읽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읽기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인 취향 탓에 책장이 술술 잘 읽히는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편중된 독서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로서 자신의 예술론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한 책이 나와서 그의 독서법은 무엇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솔직히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는 습관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책을 접할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설령 이런 환경이 아니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확 잡아끄는 한 권의 책으로 인해서 인생 전반에 걸친 독서습관,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영국의 대문호 존 러스킨을 7년이란 오랜 시간을 두고 탐독한다.  한 명의 작가에게 빠져 그의 작품을 완전히 탐독한다는 것 자체부터 흥미롭겐 느껴졌으면 마르셀 프루스트니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러스킨을 중심으로 토대로 독서에 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러스킨은 독서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지혜롭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허나 푸르스트는 이런 러스킨의 이야기가 현실속 대화에서는 일치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마침으로 작가는 이야기를 끝내지만 독자는 그 때부터 이야기의 시작을 경험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작가의 생각이 창작을 통해서 탄생한 책을 통해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고 삶이 총족해짐을 느끼게 된다.  

 

러스킨의 책을 통해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더 높은 예술적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아미앵의 성모상은 어떤 느낌일지 솔직히 많이 궁금하고 실제로 보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긴다.
 
책은 두 개의 단락으로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러스킨의 작품들을 두고 이야기하는 부분과 뛰어난 미술작품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화가들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루이 15세 통치 시기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장식적이고 화려한 미술 양식을 활동할 당시 로코코 양식의 대가로 꼽는 사람 중 한 명인 '장 앙투안 와토'... 와토를 두고 푸르스트는 자신에게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화가라고 한다. 와토의 사람됨을 이야기하는 가발에 얽힌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육체적인 고통과 절망감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힘든 와토의 상태에서 진실함과 용기를 말하는 이야기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 자신의 작품에 담아 낸 작품들을 보며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모네의 작품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장소가 어디든 직접 보고 싶어 한다.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과 그녀를 캠버스에 담아 낸 로세티의 사랑과 결혼, 죽음... 이 매력적인 여성이며 예술가였던 엘리자베스 시달과 러스킨과의 인연, 로세티와 시달의 사랑은 푸르스트의 관심을 끈다.  
 
 독서가 가진 힘은 크다. 정신을 살찌우는 양식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책 읽기는 사람들에게는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주는 요소다. 푸르스트가 들려주는 독서에 관한 이야기... 러스킨을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깊이 있게 담겨진 책이라 여겨지면 역자해설을 따로 뒷부분에 마련되어 있어 저자는 물론이고 궁금한 인물에 대해 찾아볼 수 있게 세심하게 담겨져 있다.
 
위대한 생각 시리즈의 은행나무에서 계속해서 나올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의 1번째 책으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작품을 만나 너무나 즐거웠고 서양고전문학과 인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만족할 거란 생각이 든다. 생각처럼 독서에 관해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고전이 가진 매력과 인문학이 주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나올 위대한 작가들은 누굴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q******5 2014.04.27.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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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 예술에 대한 눈부신 직관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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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거대한 실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천재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에세이 모음들이다 그러나 제목은 독서에 관하여라는 특정 한정 분야이지만 사실은 독서에 관한 에세이는 약간이고 그가 존경했던 그러나 결별했던 스승 러스킨에 관한 번역서적 서문들과 화가들에 대한 미술비평이다 제발 이렇게 호도하는 모호하고 어리석은 제목 짓기는 더 이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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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거대한 실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천재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에세이 모음들이다

그러나 제목은 독서에 관하여라는 특정 한정 분야이지만 사실은 독서에 관한 에세이는 약간이고 그가 존경했던 그러나 결별했던 스승 러스킨에 관한 번역서적 서문들과 화가들에 대한 미술비평이다

제발 이렇게 호도하는 모호하고 어리석은 제목 짓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출판사들이 이런 실수를 자주 하는데 선택에 있어 혼선과 오판을 하게 만드니까

어쩌면 이런 제목 짓기의 전략적 부재와 오용이 사실은 한국 출판계와 지성계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오죽 작품을 직관적이고 총체적으로 통찰하고 규정할 능력이 없으면 뜬금없이 이 책을 이렇게 "독서에 관하여"라는 자신 없고 한심한 인식을 한단 말인가

그 정도로 작품에 관한 이해가 없고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굉장히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놀고 먹는 백수였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그저 부유한 부모님의 지원으로 편히 놀고 먹는 그런 팔자 핀 고급 인텔리로 사교계에 들어가 그 당시 파리의 살롱의 그 우아하고 퇴폐한 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러고도 한참인 후였다

그러나 그 동안 그는 무슨 노력을 하고 무슨 준비를 한 것인지 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거의 심리학자 수준의 인물들의 심리 해부와 정교하고 명석한 예술기법으로 격조 높은 소설의 극치를 완성했다

사실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만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들을 사 놓고만 있지 읽지는 않았다

엄두가 안나다고나 할까

그저 주워 들은 내의견도 아닌 남의 평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무튼 그런 그의 예술에 대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을 볼 수 있단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화가들을 좋아하고 미술에 대한 글을 남겼으며 독서론을 피력하였고 또 그는 소설을 직접 그것도 어마어마한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쓴 소설가니까

 

그의 독서론은 매우 선진적이고 급진적이며 또 주체를 독자에게 두어 사못 신선한데 그래서 미리 다가올 미래의 비평가들의 주춧돌이 되었다

독서는 그렇게 굉장한 것이 아니라는 독서에 대한 신화를 완전히 깨뜨리는 도발적인 선언이다

그런데 이 비판이 굉장히 통찰력이 있는 것이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고 해도 그것은 받아들이는 주체인 독자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무리 불멸의 고전이라고 해도 사실 그 책은 난해하고 관념적이며 특수한 사상을 기반으로 하기에 중학생들이 파우스트를 읽어 봤자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그런 여중생들에겐 차라리 엑소의 루민 팬픽이나 로맨스 소설 해를 품은 달이 몇 백 배 감동적인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중대한 문제이다

즉 독서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작품 완성은 1차적 문제이고 작가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며 2차적 폭발은 독자에게 달려 있으며 이 독자의 반응과 경험이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현명한 혜안이다

그렇지 않을까

사실 나는 위대한 개츠비 읽고 이게 도대체 왜 미국에서 그렇게 성스러운 책이 되었을까 굉장히 의아했다

아마 가장 미국적인 특질이 개츠비라는 인물과 소설에 새겨져 있기에 그럴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미국인이 아닌 나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만남이었다

그건 호밀밭의 파수꾼도 마찬가지였다

문장들이 익살스럽고 잼있다는 건 알겠는데 왜 콜필드가 그렇게 방황하는지 감정이입은 커녕 동의도차 되지 않아 결국 아무런 화학작용도 없이 마지막 장을 덮었던 씁쓸한 기억이 난다

차라리 더 먼 시절 학창 생활을 다룬 헤세의 수레 바퀴 밑에서가 훨씬 더 몇 배나 감동적이었다

다 개인차겠지

되고 싶은 인물로 콜필드를 꼽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

 

아무튼 그런 독서론과 입이 딱 벌어질 놀라운 미술 비평들이 나머지이고 그리고 자신이 거의 흠앙했던 스승인 러스킨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들이다

러스킨은 톨스토이도 존경하고 감화를 받았을 정도인 그런 위대한 인물인데 시간이 지난 지금 톨스토이와 프루스트는 성좌에 등극하여 여전한 광채를 발하지만 러스킨은 어째 잊혀진 노래가 되고 말았다

러스킨을 누가 알까 내 주위에는 러스킨의 책을 읽었다는 사람은 차치하고 러스킨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도덕주의자인데다가 민중주의자였던 그래서 굉장히 숭고해 보이는 이 청교도적인 사상가이자 예술가와 프루스트는 결국 끝에 가서는 방향을 달리 한다

왜 그래서인지는 책에 나와 있으니 내가 잘 하지도 못하는 언급 보다 책을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미술비평들

세계 최고인 프랑스 화단의 당대의 유명 작가들을 이야기하는 프루스트의 페이지들은 자못 찬란한 섬광으로 번쩍인다

어찌나 아름답고 신비한지

그런 화가들의 예술혼과 그걸 알아 보고 분석하여 비평하는 프루스트의 천재적 감성과 직관적 지성은 대다나다 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아마 두고 두고 읽어도 그 화가들의 본질을 잘 모를 것 같은 경건한 경이가 있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아름답기는 한데 만연한 수식어로 치렁치렁 늘어지고 요점이 숨겨지는 독해시의 난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내용들도 심오하고 차원을 달리하는 예술론적인 언급들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프루스트의 지나치게 풍성한 나뭇잎들이 달린 문체로 인해 나무의 줄기들과 가지가 그래서 좀 잘 언뜻 언뜻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류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저술을 출간하여 격이 다른 사고를 전달한다는 이 출판사의 이 시리즈의 목적에 역시 명실상부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드높고 단숨에 예술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섬광같은 통찰력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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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잃어버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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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인권 선언이란 것이 있는데, 그중 제7조 항목에 이런 말이 있다. 「백수는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 사회는 백수의 문화생활 진작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나도 백수이긴 하나, 또 하물며 백수라 해도 문화생활을 누릴 만한 정신적 여유는 가져야 온당하다. 특히 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공공의 미(美)라고 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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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인권 선언이란 것이 있는데, 그중 제7조 항목에 이런 말이 있다. 「백수는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 사회는 백수의 문화생활 진작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나도 백수이긴 하나, 또 하물며 백수라 해도 문화생활을 누릴 만한 정신적 여유는 가져야 온당하다. 특히 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공공의 미(美)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독서에 관해 설파한 것과 달리 내겐 '잃어버린 10년'이 존재한다. 십대 중반부터 이십대 중반 즈음까지, 교과서와 강의에 쓸 것이 아니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읽지 않았다는 것은 두루뭉술한 표현이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 권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주 고리타분하고 청맹과니 같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꽤 무서운 일이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도서관이란 것을 처음 보았고 그때부터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규모가 더 큰 도서관이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던 이 습성은 내게 한 가지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이 세계에 있는 책,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죄다 내 방에 들여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장소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입지로 보건대 어느 쪽도 충족하지 못했던, 책이란 것은 모름지기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졌을 시절의 발상이었다. 때문에 나는 일종의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고 그때부터 부러 책을 읽지 않았다(일종의 시위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와 책 제목, 출판사, 출간연도를 적는 메모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물론 그 시절과 달리 꽤 책을 많이 읽고 있다. 내 '잃어버린 10년'이란 그때의 우울감에서 발생했다. 지금 당장 여력이 없으니 리스트를 만들어 어른이 되었을 때 모조리 다 읽어보자, 하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나는 절판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대체 한번 만들어진 책이 왜 사라진단 말인가? 어릴 적 만들었던 메모를 지금 펼쳐보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누구도 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줄 수는 없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프루스트가 쓴 「독서에 관하여」는 실은 존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며 쓴 역자 서문이다. 서문치고는 꽤 장문이나 그가 책과 독서라는 행위에 관해 적어놓은 생각들이 정겹기만 하다. 「독서가 그것 없이는 들어가지 못했을 마법의 열쇠로서 우리 내부에 위치한 장소들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독서는 우리의 삶에 유익하다.」 도대체가 나는 스스로 내 인생에서 10년(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이라는 시간을 지우고 뭘 했단 말인가? 내 감성에 불을 켜 줄 마법의 열쇠를 스스로 마다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프루스트가 독서를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만 했던 길디긴 점심식사를 저주하는 것만큼이나 나 역시도 독서에 관한 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 말을 걸어 독서를 방해하는 것에서 그가 보였던 반응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말대로 독서란 적어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우정이고 그 대상이 죽은 자, 사라진 자라는 점은 사심 없음을 증명해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이므로ㅡ 덧붙여 그는 독서를 추한 면을 보이는 다른 우정들에 비해 자유롭다고 말한다. 책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독서라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자신과는 다른 영혼이 개입하되 혼자 있을 때 그것을 받아야 하는 것(p.37), 그리고 게으른 정신을 가치 있는 세계로 영구히 끌어들이는 임무를 띠는 것이다.(p.35) 내가 지나칠 정도로 수상쩍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잃어버린 10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내 게으른 정신은 여전히 그때의 어린 꼬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어릴 적 프루스트는 길었던 점식식사를 뒤로하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야 만다. 그러고는 자신의 안에서 오랫동안 벌어진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 안인지 밖인지 어디에 시선을 고정시켰는지 모른 채로 일어나 침대를 돌며 걷는다. 내일이면 잊힐 페이지 위의 어느 이름에 불과할 존재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탐닉하던 책을 무사히 끝장 보았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하고 대단한 일인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이루는 날들 중에는, 우리가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고 여겼거나 좋아하는 책과 같이 보낸 날들만이 어쩌면 진정으로 충만하게 보낸 날들이다.」 프루스트가 쓴 글의 첫머리이다. 맙소사, 내게 있어 진정으로 충만했던 날들은 언제였었나?



사족) 그런데 참 희한하지. 어째써 한번 빌려준 책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일까?

u******o 2015.04.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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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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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로 유명한 프루스트가 역자로서 쓴 역자서문과 그림에 관해 쓴 글들의 모음이다. 책 제목으로 쓴 <독서에 관하여>는 존 러스킨의 저서 <참깨와 백합>의 역자서문의 제목이라서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표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역자 서문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세 페이지의 글로 짐작했는데, 프루스트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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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로 유명한 프루스트가 역자로서 쓴 역자서문과 그림에 관해 쓴 글들의 모음이다. 책 제목으로 쓴 <독서에 관하여>는 존 러스킨의 저서 <참깨와 백합>의 역자서문의 제목이라서 책 전체의 분위기를 대표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역자 서문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세 페이지의 글로 짐작했는데, 프루스트는 역자서문도 단편소설 하나 정도의 분량을 쓰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왜 그렇가 긴지 알 것 만 같다. 프루스트는 책의 첫 부분을 어린시절에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회상하는 데 바친다. 프루스트는 독서는 책 속의 인물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오직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지적 자극과 영혼의 희열 상태를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것이 아름다운 책들이 갖는 위대하고 뛰어난 특성들 중 하나로 작가에게는 '결론'이고 독자에게는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작가의 지혜가 끝날 때 우리의 지혜가 시작됨을 느끼고, 작가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은 우리에게 욕구를 불어넣는 것이다.(p.33)

 

  <참깨와 백합>의 역자서문은 독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더 강하게 말하고자 하였다면,  아미앵의 성서>에 바친 역자서문은 그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소명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프루스트는 아미앵의 노트르담을 자신이 직접 방문하여 존 러스킨이 얼마나 그 성당의 아름다움을 잘 이해했으며, 잘 묘사하고 있는가를 독자들에게 다시 증명해보인다. 프루스트는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는 존 러스킨을 성당에 조각상이 세워진 네 명의 대선지자들과 동일한 반열에 올리고 싶어한다. 자신의 마음에 세운 사원에는 존 러스킨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고백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이어지는 화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글들은 더욱 작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돋보인다. 프루스트는 샤르댕의 작품 속에서 훌륭한 화가의 그림 속에서는 어떻게 사물들이 생기를 얻게 되는 가를 발견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이어 램브란트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작품 속에서 빛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 가를 증명해보인다.  

  와토를 설명하면서는 순진하고 연약한 예술가의 슬픈 삶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힌다. 모네의 풍경화를 보면서는 그 그림 속의 장소를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며 감탄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그림에 대해서는 그의 영원한 모델이었던 엘리지베스 시달에 대해 이야기하며 작가에게 영감을 주며 예술성을 끌어올려주는 특별한 뮤즈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글이 끝나면 이제 프루스트의 이 글들을 번역한 역자의 글을 또 만나게 된다. 역시 프루스트를 연구한 사람답게 긴 호흡을 가졌는지, 그의 글 또한 길다. 이 책 속의 프루스트의 글들이 프루스트의 글쓰기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프루스트의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퍼즐들의 발견이라는 것을 긴 해설을 통해 읽을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l*****a 2014.05.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