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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 중에는 그를 설명할 어떤 수식 어구가 필요 없이, 이름 그 자체로 수식어가 되어 대표성을 지닌 상징적인 존재가 된 인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는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자유주의자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에밀 졸라’입니다. 내게 ‘에밀 졸라’는 단순히 유명 작가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글과 만날 요량이었다면, 나는 그의 대표작 <목로주점>과 <나나> 그리고 <제르미날>을 차례로 읽기를 계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밀 졸라’와의 첫 만남이 그의 이름을 알린 소설이 아닌 그가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뛰어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2014.04.16. 은행나무)》이라는 점은 그에 대해 갑작스럽게 생긴 궁금증으로 설명해야겠습니다.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은 1894년 10월 15일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국가반역죄로 체포되고 그가 독일스파이라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음에도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되어 같은 해 12월 22일 군사법원 재판부의 만장일치로 유죄선고를 받은 사건, 일명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한 에밀 졸라의 투쟁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반유대주의 정서를 이용한 음모와 술책에서 비롯(p.50)’된 드레퓌스 사건은 1897년 11월 25일자 <르 피가로> 지에 졸라의 첫 번째 기고문이 발표될 때까지 정치, 언론 등 사회 전체가 하나가 되어 드레퓌스를 반역자로 몰아가는데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후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프랑스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1898년 1월 7일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기고문까지 네 차례 더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 ’에스테라지‘를 보호하여 희생자로 소개하기로 공모하였고 1898년 1월 10일⦁11일 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에스테라지에게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이에 졸라는 1월 13일 <로로르>지에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고발한다...!’를 기고합니다.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서 졸라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적들로 하여금 자신을 법정에 세우게 함으로써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와 목표(p.175)였습니다. 며칠 후 국방부 장관이 졸라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하여 재판이 진행되면서 졸라가 원했던 의도대로 전개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재판은 복잡하게 흘러가고 온갖 위협과 모욕, 봉변을 견디던 졸라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후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졸라가 고발했던 내용들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밝혀집니다.
1899년 7월 1일 드레퓌스가 프랑스로 돌아온 뒤 재판이 재개되지만 그의 반역죄 혐의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와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타협이나 포기 없이 투쟁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졸라는 드레퓌스가 누명을 벗고 무죄를 선고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02년 9월 29일 사망합니다.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에 실린 졸라의 글은 모두 읽을 가치와 의미 있는 글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글을 꼽으라면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와 1898년 2월 22일자 <로로르>지에 실린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진술’을 선택하겠습니다. 진실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걸어 나가려는 에밀 졸라의 확고한 신념이 가장 잘 나타난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밀 졸라의 인터뷰 기사들’도 꼭 읽으면 좋을 글입니다.
진실을 위한 투쟁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야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행동이라면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진실과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에밀 졸라’의 행동이 지금까지도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에밀 졸라’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으로 《에밀 졸라 : 전진하는 진실》을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책 읽기를 마친 지금,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보다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제 드디어 졸라의 작품과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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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영혼을 책임지듯 진실을 책임지고 있다.매일같이 조금씩 커져 가는 작은 불꽃을 우리 손에서 꺼뜨릴 수가 없었다.진실은 폭풍우 속을 헤치고 운반해야 하는 신성한 작은 등 불과도 같아서,우리는 거짓에 열광하며 이성을 잃은 군중의 분노와 맞서 그 진실을 지켜 내야 했다." 에밀 졸라 '정의' 중에서
생각 보다 두꺼운(?)책에 놀라 과연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런데 책 서문에 씌여진 '정의'에 관한 졸라의 글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 가는 느낌이 받았다.그리곤 정신 없이 읽어 버리고 말았다. 마치 진실과 정의 에 대해 우리의 졸라선생께서 마술을 부린 것 같았다. 오래전 부터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그리고 늘 찾아봐야지 하는 마음만 있었을 뿐이였다.그러다 고전작품들 마다 언급되는 드레퓌스 사건을 만나면서 더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 졸라선생의 역작'전진하는 진실'을 찾아 읽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읽는 동안 여러번 놀랐고,수없이 감탄했던 것 같다.남의 나라 역사를 이렇게 쉽게 이해하며 읽을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그런데 재미(?)나게 읽을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책에서 졸라 선생도 언급했지만 드레퓌스 사건 보다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이들에 대한 고발이 졸라 선생의 진정한 목적이란 것을 알았기때문은 아닌가 싶다.물론 억울한 누명을 쓴 한 인간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고자 함이 단초가 된 것은 맞지만,그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프랑스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반유대주의 정서,사법적 오판에 대한 문제였다.말도 안되는 말로 시종일관 거짓보도를 했던 언론에 대한 글은 놀랍지도 않았지만.
"사법적 오판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법관들이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도 있고 군인들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그런데 어째서 이 일이 군대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일까?그들이 만약 어떤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면 즉시 그 잘못을 바로잡는 것만이 그들이 당당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97~98
최근 벌어진 우리나라 부대내에 문제들 그리고 여전히 미제로 남은 채로 홀로 곡은분투하고 있는 김훈중위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니라 있을수 있는 일이다는 것 그러나 바로 잡지 못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것,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졸라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부럽기만 하던지...문학으로 읽을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졸라선생의 목소리를 들은 기분이였다.고전 작품 속 작가의 목소리는 과연 따뜻함이 있을까 싶었는데,'전진하는 진실'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에밀 졸라 선생이 너무 멋있구나 싶었다.예술이 사회를 꼭 대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가 사라지고 진실이 묻혀가는 세상을 흔들어 주는 곳에 누가 있어야 하는가? 졸라 선생의 '나는 고발한다..'가 말해주고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으나,그보다 더 깊은 졸라 선생의 신념을 만난 기분이 들어 좋았다.미완으로 남아 버린 '진실'과 '정의'에 관한 글이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그리고 조금은 천천히 읽어야지 했던 '제르미날'을 당장 찾아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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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0월 5일, 에밀 졸라가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히기 직전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아직 뚜껑을 닫지 않은 묘혈 앞에서 그를 떠나보내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를 부러워합시다. 그는 어리석음과 무지와 사악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모욕의 더미 위에 모두가 우러러볼 높다란 영광의 탑을 우뚝 쌓아 올렸습니다 (...) 그를 부러워합시다. 그의 운명과 그의 용기는 그를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적 양심의 위대한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졸라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가해진 크고 작은 테러와 살해 위협으로 미루어보건대ㅡ 졸라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물증 없는 확신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또 드레퓌스 사건이 완결된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에밀 졸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단 <나는 고발한다...!>라는 처절한 격문인데(그 외에 『목로주점』 정도가 있을까) 진실의 최종 관문을 보지 못한 채 수상쩍은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 자신과 드레퓌스, 그를 지지했던 시민들 그리고 진실을 원했던 이들에게 내려진 불행임에 틀림없다. 『전진하는 진실』은 드레퓌스 사건의 내막,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한 일련의 글들, 그의 생전 인터뷰와 사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으레 [졸라 = 드레퓌스 사건]이란 그림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만큼 언제나 세간에서는 드레퓌스는 단지 희생자일 뿐이며 진정한 주인공은 졸라 자신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명을 쓴 드레퓌스 대위가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면 졸라마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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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비극과 참사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왔지만, 지난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버린 수많은 생명들 만큼이나 가슴에 깊이 파고든 사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탄식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었고, 믿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못난 자화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건의 전말보다도 더 우리를 좌절하고 분노케 했던 것은 하나의 "진실"을 두고 난무했던 여러가지 억측과 "카더라 통신", 그리고 이 일을 기화삼아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많은 이들의 저질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끔찍한 현실보다도 더 끔찍했던 사후의 여러가지 해프닝과 사건들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잃어버리게 했으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더이상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지 못하게 된 혼돈의 시대. 지난 한달 반간 우리가 견뎌온 시간입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읽게 된 책이 있습니다. "대지"의 작가로 잘 알려진 에밀 졸라의 특별한 글을 모아 새로이 발간된 <전진하는 진실(은행나무 출판사)>이었는데요,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답니다. 583 페이지의 책을 읽는 동안 동시에 세월호 사건과 그 후의 셀 수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서 마치 한 권의 예언서(?)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는데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 생각을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면밀하게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고 되돌이켜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드레퓌스 사건을 말하다
드레퓌스 사건은 사실상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몰려 수 년동안 고통 속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된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를 둘러싼 프랑스의 정치적 스캔들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전반에 펼쳐져 있던 반유대감정으로 인해 드레퓌스 대위는 제대로 된 재판도, 변호의 기회도 갖지 못한채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섬으로 유배당하게 됩니다. 문제는 진짜 간첩이었던 에스테라지 소령을 감싸려던 세력과 드레퓌스에 대한 억지 판결을 정당화하려는 세력 모두 당시 프랑스의 막강한 정치 세력이었기에 그의 무죄는 정치적 거물들의 유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힘없는 대위 한 사람이 대항해야만 하는 적은 너무나도 거대했기에 그의 무죄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그가 다시 세상에 나와 빛을 볼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의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진실을 주장하고 요구하고 나섰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에밀 졸라입니다. 존경받는 작가였던 에밀 졸라는 우연한 계기로 드레퓌스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 이후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한시도 펜을 놓지 않습니다. 자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통해 진실을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사건이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이죠. 물론 이같은 행동에는 엄청난 결과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작가로써의 삶이 한 순간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은 물론 사회적 거물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재판을 받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가 발표한 1898년의 <나는 고발한다…!>로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하고 4년 뒤 의문의 가스중독으로 사망할 당시에도 타살 의혹이 제기되는 등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진하는 진실>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하여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집필한 수많은 기고문과 공적, 사적인 편지, 인터뷰들을 모은 것으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연대별 사건 기록일지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졸라가 사망한 뒤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장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의 발단서부터 그가 다시 풀려나 오명을 벗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내하고 그를 위해 싸웠는지 읽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에밀 졸라는 어떻게 드레퓌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이렇게나 확신할 수 있었을까?"였습니다.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하더라도 사건의 전말과 관련인물(그리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했는지까지)에 대해 세세하면서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의아했고, 자신이 직접 보지 않은 (전해들은) 사실에 대해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을까 놀라웠습니다.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그의 무죄를 주장한 이후로 졸라의 삶 역시 180도 변화했습니다. 정치적 우세에 있었던 반드레퓌스파의 계속적인 공격과 살해 위협을 감내해야 했고, 급기야 영국으로 망명하자 가족들과 하인들마저 그들의 표적이 되어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졸라는 반드레퓌스파에게 제거해야 하는 반동분자일 뿐만 아니라 - 어쩌면 - 드레퓌스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1898년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공개된 뒤 졸라가 무죄판결은 받지 못했었어도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게된 것 역시 졸라와 무관하지 않을테니까요. 드레퓌스 사면 이후로도 막강했던 반드레퓌스파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졸라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1900년 12월 말 기고된 이 편지에서 졸라는 더이상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기고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실제로 이 글은 <전진하는 진실>에 수록된 졸라의 마지막 기고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졸라는 의문의 가스 중독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의 사랑하는 부인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의 아들은 마지막까지도 졸라가 정치적으로 살해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주면서까지도 지키고자 했던 "진실". 졸라가 죽은지 4년 뒤인 1906년 드디어 알브레드 드레퓌스 대위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다시금 육군에 복직하여 소령으로 승진한 뒤 제 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그는 1935년 지병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일반 군인들처럼 생활했다고 합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기록될만큼 충격적이었던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참 아이러니한 결말이 아닐까 생각했씁니다. 자신을 그토록 끔찍한 고통에 처하게 한 국가를 위해 끝까지 목숨을 바쳐 일했으니까요. 정의는 없다? 진실은 언제나 저 멀리에… 세월호와 함께 진실마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린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더이상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요. "저것만은 분명 진실이겠지" 믿었던 것마저 우리들을 철저히 배신하면서 실망과 한숨은 분노로 변해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던 19세기 말의 프랑스 역시 지금의 우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치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졸라가 우리들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졸라는 대중의 관심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언론들에게도 일침을 가합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중 "관종(관심종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명 "관심병 환자"라고도 불리우는 이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이들이죠.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나 관종이 많았는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지지도를 올리려는 정치인들이나 사건을 이용해 매출을 올리려는 기업들은 물론 전혀 무관해보이는 일반인들마저 단지 "관심"을 받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을 만드는 것을 보면 탄식마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았더라도 의혹과 음모를 환영하는 다수의 무분별한 "퍼다 나르기" 역시 그들 못지 않은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죠. 문제는 이렇게 거짓과 억측이 난무하다보니 한 줄기 진실마저도 오염되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로써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거짓과 함께 진실 역시 묻혀버리고 있지 않을까요? SNS와 발달된 기술로 인해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믿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기술의 눈부신 발전마저 진실을 가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졸라의 다른 글에서도 지금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먼저는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졌던 독립투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민주주의를 위해 꽃다운 청춘과 인생을 바친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만큼이나 평범한 시민이었을 그분들이 어떻게 그런 거대한 사명과 책임감을 가지고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놀랍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직접적으로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우리들은 너무 쉽게 좌절하고, 실망하고,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비판하거나 탓하기만 좋아했지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때가 아닐까요?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만,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더욱 좋은 방향으로 돌리는 일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힘겨운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진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19세기 말의 졸라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21세기 초의 우리들에게까지도 간곡히 부탁하는 말일 것입니다.
깨끗한 눈처럼 새하얗던 책 표지가 이곳 저곳 들고 다니며 읽으면서 점점 때가 타고 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받았을 때의 깨끗함은 사라지고 페이지 곳곳에 까만 때가 꼈습니다. 책을 지저분하게 보는 편이 아닌데 왜 유독 이 책만 이렇게 더러워졌을까 속상하려던 찰나, 이 책이 아무리 더러워진들 그 안에 담겨진 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담겨진 강력한 메시지의 위력이 덜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실도 이와같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의 입과 손을 거쳐 때가 묻고 처음의 순결한 자태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그 "진실함" 만큼은 바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수많은 세월이 지나 결국 많은 사람앞에 드러났을 때에 그 힘을 여과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에밀 졸라가 주장한대로 속도는 조금 느릴지라도 "전진하는 진실"임을, 간절하게 믿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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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게 무얼까.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유대계 프랑스인이기에 당해야 했던 억울한 인종적 탄압,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졸라는 정의로운 진실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위협은 물론 작가로서 자신이 이루어온 "내 걱정은 하지 말길 바라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쓰고 있는 중이라오. 졸라는 언젠가 프랑스가 자신에게 나라의 명예를 지키는데 기여한 것에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은 너무도 생명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책이다. 단 한사람을 위해 나라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던 위대한 작가.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를 묻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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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정의와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라고 주장하지만, 의외로 기나긴 역사속에서 그러한 가치관은 여러 다른 가치관에 의해서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어 왔다. 특히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국가'라는 개념이 그러한 정의의 개념을 파괴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변명거리가 되어 왔는데, 이른바 '국가의 위신' 이라는 개념은 지금도 국가와 국가, 국가와 개 인이라는 광범위한 갈등을 만들어내는 존재로 남아있다.
예전의 왕조국가에서 지금의 민주제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많은 가치관들이 바뀌 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서도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한다. 라는 국가관만은 그리 큰 변화 가 없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통적 가치관 중 하나로서,예나 지금이나 많은 국가들이 그러한 개 념을 '애국' '호국' 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교육해오고 있는데, 그 결과 실제로 한반도에서는 그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삼아 타국의 침략 이나 지배, 그리고 국가 내부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 공동체주의는 예상 의외의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 고 있기도 하다. 바로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 는 지배집단의 이데올 로기 등이 바로 그것인데, 자...과연 그러한 개념이 국가에 있어서 어떠한 재난으로 다가오는가? 한번 1894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 그 실체를 파해쳐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드레퓌스 사건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국가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과 권리 를 침해한 사건' 이라 할 수 있다. 1894년 프랑스 정부는 적국 독일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죄목으로 당시 포병장교였던 드레퓌스 대위를 체포했다. 그 체포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권위있 는 언론들은 군부의 신속한 대응과 조치를 칭찬했고, 대중들은 국가 반란자를 체포했다는 언론 의 제보에 고양되어, 트레퓌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국가에 요구하며 스스로 민족주의로 단결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뿐인가, 민족반역자 드레퓌스가 유대인인 덕분에 카톨릭교회는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공격해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얻었고, 프랑스 정부 역시 모처럼의 결속력 을 보여주는 국민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독일제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대한 법안과 같은 여러 가지 의제를 신속하게 처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정부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바로 트레퓌스 대위를 스파이 로 처벌하기에는 그 증거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실제로 그는 무죄였다) 는 것이였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사법적으로 트레퓌스는 석방되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언론은 기사를 정정 하고, 군부는 다시 수사를 시작해 진짜 반역자를 체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 나 군부는 '군대의 사기' '국가의 체면' '만약 사실이 드러나면 (적국)독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 다는 불안감' 이라는 자신들의 이유를 들어, 결국 그를 유죄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군사법원 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군부는 증거를 위조했고, 언론에게 압력을 넣었으며, 정치 계의 협조?를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 한 사람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러한 대의명분에 의해서 결국 군부, 정치계, 언 론은 하나로 단결 하고야 만다. 물론 '정의' '진실'을 위해서 이에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다. 양 심적인 정치가, 군인, 언론인, 학자... 이 모두가 드레뷔스의 무죄를 주장하고, 한 순간의 이 익을 위해서 정의를 져버린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국가적 차원에서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민족 . 국가의 단결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적국(독일)의 이익을 가져다 주 는 반 국가적 혼란을 가져오는 무리들로 규정되어 국가차원에서의 탄압을 받는다.
물론 이 책의 주제인 문학가 '에밀 졸라' 또한 그러한 탄압을 받은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개 인적으로 드레퓌스를 알지도 못했고, 정치적인 욕심도 없는 단순한 작가에 불과했으나, 신문에 ' 나는 고발한다' 라는 제목의 기고를 올리며, 당시 프랑스가 저지르고있는 잘못에 대한 반성을 촉 구한다. 때문에 그는 결국 지위, 재산 모두를 잃어버린다. 국가는 군부와 정부를 비방한 졸 라에게 '명예 회손'의 이유를 들어 엄청난 벌금을 물리고, 심지어 은근한 협박을 일삼았던 것 이다. "철가면을 기억하라" 이는 분명히 저항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매장 할 수 있다는 권력 자의 자신감의 표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졸라는 끝까지 저항한다. 수 많은 법정공방, 국가의 방해, 언론의 소심함 그 모든 방해 물을 뛰어넘으며, 그는 민중, 학생, 대통령, 정부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를 끝임 없이 적어 올렸던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 라는 유럽 최고의 가치관을 가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이름을 더 럽히는 모습을 보이는 프랑스의 오늘을 보면서, 졸라는 그야말로 눈을 뜨라! 라는 격려와 질타 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그 질타는 의문의 질식사로 그의 목숨이 다하는 그날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었으며, 결국 오늘날의 프랑스는 드레퓌스를 포함한 인물들의 명예를 복권하고, 또 보상을 하였음은 물론, 당시의 졸라의 가치를 '범 국가적인 교훈'으로 삼고있다. 오늘날의 프 랑스를 보라, 그들이 너무나도 '개인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는 사고방식이야 말로. 진정 건강한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사고방식이라 믿 고있다. '아닌것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는 민중을 기르는것, 그리고 그것을 수용 할 수 있는 정부야 말로 진정 세상에 필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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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거두 에밀 졸라(Émile Zola)는 문학을 통해 사회를 수술하려 했던 실험가이며 진실을 위해 권력에 맞선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이 유전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과학적 관점으로 소설을 썼으며, 이를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명명했습니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남긴 명언,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La vérité est en marche et rien ne l'arrêtera)"는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와 정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문장 중 하나입니다. 이 문장 뒤에 숨겨진 긴박한 역사적 순간과 그 인문학적 가치는 한계가 없습니다. 드레퓌스 사건1894년, 프랑스 군 정보국은 유대인 출신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독일의 스파이로 지목합니다. 증거는 조작되었고, 당시 프랑스 사회에 팽배했던 반유대주의가 그를 범죄자로 몰아갔습니다.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군부는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이때 에밀 졸라가 목숨을 걸고 전면에 나섭니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1898년 1월 13일, 졸라는 일간지 《로로르》 1면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발표합니다. 그는 조작에 가담한 군 간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나는 고발한다"고 외쳤습니다.대문호로서 누리던 명예와 안락함을 모두 버리고 감옥에 갈 각오로 쓴 글이었습니다. 각성이 글은 프랑스 사회를 '진실을 찾는 자(드레퓌스파)'와 '국가 권위를 우선하는 자(반드레퓌스파)'로 양분시켰고, 결국 재심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진실이 전진한다"졸라가 이 말을 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낙관적인 희망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전진(Marche) - 진실은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투쟁과 실천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불가항력 - 한 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진실의 힘은 어떤 거대한 권력(군부, 국가)으로도 다시 덮을 수 없다는 확신시간의 힘 - 당장은 거짓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승리하는 것은 결국 진실이라는 믿음 세상의 온갖 화려한 수사와 권위가 진실을 가리려 해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뼈대가 바로 본질입니다. 에밀 졸라는 그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의 체면'이라는 가짜 껍데기를 깨부수고 '한 인간의 무고함'이라는 본질적 진실을 선택했습니다. 졸라는 의문의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지만(일설에는 반대파의 암살이라고도 함), 그가 전진시킨 진실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가짜 뉴스나 진영 논리가 진실을 가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졸라의 이 말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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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을 읽고 나서, 이 책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부조리와 졸라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특히,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 서한은 졸라의 강한 정의감과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느끼게 해줬다. 졸라가 드레퓌스의 결백을 주장하며 싸우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그가 얼마나 끈질기게 진실을 추구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책에 잘 녹아 있었다. 또한, 그의 글들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전진하는 진실"은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운 한 사람의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의 열정과 신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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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진실...
이책은 너무도 유명한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에 관련된 책이다. 굳이 이야기 한다면 자료집이라고 해야할까? 드레퓌스 사건에 관련된 각종 자료의 취합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자료뿐만아니라 '그레퓌스 사건'에 대한 설명도 많이 첨부되어 있지만.. 이책을 이해할려면 먼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서 알아본 후에 책을 읽으면 훨씬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책속에는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시간대별로,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프랑스군의 유대인 장교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유출한 간첩 혐의로 '종신 유형'을 선고 받고 계급을 박탈당하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진실인줄 알았던 이사건은 수많은 조작과 은폐된 진상들이 존재하고 진실이 외곡되어 있는 사건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었던 드레퓌스 필적감정도 일치하지않다는 전문가의 결정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비공개 군법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하게된다. 이후 끊임없는 재심의 요구가 빗발치자, 군에서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면서 드레퓌스를 석방한다. 그리고 대통령에 의해 1899년 사면을 받고 재심끝에 1906년 무죄선고를 받게된다. 이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뿌리깊은 차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책 전진하는 진실에서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에밀 졸라의 글과 그의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에밀 졸라는 광산 노동자의 파업을 그린 소설 <제르미날>의 작가인데, 프랑스에서는 진보적인 지식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책은 에밀 졸라가 사건에 관련되어 신문투고와 팜플렛, 편지등을 통한 글들과 각종 인터뷰기사등을 모아서 정리한 책이다. 에밀 졸라의 글은 하나같이 힘있고 설득력있게 대중을 사로잡는 글로써 드레퓌스의 무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힘이된다. 특히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되는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는 많은 프랑스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드레퓌스의 무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시 이 편지를 실었던 신문 <로로르>지는 1896년이라는 시절에 몇시간만에 30만부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120년이 더지난 과거 역사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나타난 '현대판 드레퓌스 사건'은 얼마나 우리나라 정치후진국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강기훈이라는 젊은 청년은 유서대필이라는 어이없는 죄로 유죄를 받고 백발이 성성한 23년이지난 후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다 . 또한 국정원에 의해서 조작되었다는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본다. 언제까지 이땅에 이런 드레퓌스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는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에서 주장한 글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으로 거듭 외칩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 땅 속에 파묻어 버린 진실은 그 속에서 차곡차곡 엄청난 폭발력을 쌓아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날, 진실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리게 될 것입니다"
제목: 전진하는 진실 저자: 에밀 졸라 발행일: 2014년 4월 16일 1판1쇄 출판사: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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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으로 유명한 에밀 졸라가 ‘앙가주망’ 정신의 선구적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과 비견되는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터지기 전까지는 에밀 졸라는 내게 영감을 주는 소설가로 기억될 뿐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처음 기사로 접했던 것은 지난 2월 유서 대필 사건을 통해서였고, 그 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해 다시 접했다.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의 전문을 읽고는 100년 후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 역사를 바탕으로 이런 책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우선 나는 이 책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든다. 책의 제목처럼 진실은 전진한다는 증거이며, 100년 전 정의, 신념,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전진하는지, 상식이 통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는 내게 희망 같은 책이 됐다. 책을 읽으며 나는 때로 감정을 이입했고, 작금의 상황을 대입했다. 에밀 졸라와 같은 앙가주망을 실천하는 지식인은 누구인지, <로로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언론은 어딘지, 에밀 졸라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누구인지를 대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진실도 아주 느리지만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의 유대인인 드레퓌스 대위가 독일의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드레퓌스가 독일의 간첩으로 지목된 증거는 명세서에 사인된 필적이었는데, 재판부는 필적 감정도 없이 증거를 인정해 버린다. 사건은 유대인 혐오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가라는 문제를 통해 발생했고, 에밀 졸라를 비롯한 지식인들과 사회적 반향을 통해 드레퓌스는 8년만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사건은 너무 쉽게 요약되지만 경과들이 담긴 책의 내용은 절절하다. 선하고 정의로운 프랑스가 잠깐 길을 벗어난 것을 되돌리자는 애국심, 진실한 프랑스를 후대에 전해주자는 외침 등 에밀 졸라의 글에는 진심어린 분노와 자성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책을 덮고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다시 읽었다. 어딘가 닮아 있었고 너무 천천히 전진하는 진실에 대해 감정을 표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책 모두 선하고 정의로운 프랑스 작가들의 책이다. 나는 선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두 책을 나란히 꽂아두었다. 너무 천천히 전진하는 진실에 실망하면서도, 내가 고발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면 진실이 멈출 것 같아서 이 책들 옆에 더 많은 책들을 꽂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