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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누군가 꿈에서나마 보았으면 하는 인물이 없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간절하게 그리워해 본적이 없을 정도였으니, 어쩌면 허울 뿐인 감정일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떨까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는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생시처럼 같이 대화하고 시간을 보냈던 어머니를 꿈속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고, 다시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 했지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만약에, 딱 하룻밤만 어머니가 정말로 돌아오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에 대한 답이라고 했다. 저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돌아온다면?에 대한 상상, 또는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다룬 글이다.
이제 칠십대가 된 해럴드 하그레이브와 그의 아내 루실에게 50년전에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 제이콥이 죽었을때의 그 나이로 돌아왔다. 제이콥은 여덟 살 생일파티를 하던 날, 혼자서 빠져나갔고,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런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해럴드와 루실의 아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죽은자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죽은 자들은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고, 돌아온 자들을 사람들은 귀환자라 불렀다.
TV에서 귀환자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며 귀환자들을 악마라 불렀던 루실은 돌아온 아들 제이콥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그때처럼 아들을 보살핀다. 한참 뛰어 놀 여덟 살의 아들이라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아들이 돌아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에 반해 해럴드는 다른 감정이 앞섰다. 분명히 아들은 죽었고 땅에 묻었는데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들이되 아들이 아닌것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귀환자들이 돌아온 만큼 그들이 머물 장소가 필요했다. 귀환자들을 수용소처럼 한 곳에서 머물게 했다. 마음대로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고,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보니, 오래전 책과 영화로 본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혼돈이 찾아오기도 했다.
책 속에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우리처럼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누군가를 간절하게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살아있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아주 간절한 바램이, 그리움에 대한 염원이 이 책으로 나타난 것 같다. 세상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므로, 또한 이러한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것 같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되도록이면..나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맘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죽음으로 인해 이별했던, 사랑했던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는 꿈속에서 12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에 남아 정말 딱 하루라도 그리운 이들과 만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죽은자들이 귀환한다는 설정.. 그것의 의미를 이야기 위한 물리적인 방법들은 아무리 소설이라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원칙보다 그리운 이들과의 재회를 통해 함께 하지 못한 그 아쉬움들에 대한 나눔을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50년전에 강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던 8살의 아들 제이콥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어떻게.. 라는 것을 생각하기 전 엄마인 루실은 아들 제이콥이 그저 반갑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인 해럴드는 그 아이를 제이콥의 모방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아이를 외면할 정도의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제이콥과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귀환.. 이라는 것이 이 가족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현상으로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곳곳에서 죽었던 자들이 귀환하고 정부에서는 그것을 일련의 사태라 판단하여 그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을 하게 된다. 결국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닌 그들을 격리하게 되고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간의 갈등이 증폭된다. 이부분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원인 모를 질병으로 눈이 멀고 그런 사람들이 한 장소에 격리 수용된다. 남편을 위해 눈이 보이는 아내가 함께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안에서 살아나고자 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귀환자들은 그들과 같은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그저 상황을 수용하기는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런 처우를 받아야하는지 그것에 대한 설득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들은 질병등으로 인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어떤 위험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는 의미에서 격리가 되는 듯 했다. 그들의 귀환으로 인해 다시 재회를 하게 된 가족들의 심정을 고려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야기될 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예방이었다는 생각이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해럴드, 루실 부부 그리고 아들인 제이콥.. 이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대했다. 생일 파티를 하던 도중 없어진 아들.. 그리고 강가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아들.. 그렇게 갑작스럽게 보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는 것.. 그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시간들을 보내게될지..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용시설에서 루실과는 격리된 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해럴드는 비록 온전한 제이콥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자신이 지켜주어야하는 아들.. 그리고 아내라는 생각에 그들을 지켜내려 한다. 귀환자들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점점 난폭해지고 결국 폭력과 함께 수용시설은 붕괴가 되고 귀환자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해럴드의 집은 귀환자를 반대하는 프레드에 의해 불에 타 버리게 된다.
끝까지 제이콥을 지켜내려했던 루실과 해럴드..예전 처럼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아들을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은 제이콥을 그 폭동속에서 지켜내려했다. 아마 제이콥은 그들이 다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아들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게 하려고 다시 돌아왔던 것 같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들 곁을 떠나버렸던 어린 아들.. 그 아들은 50년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돌아왔고 해럴드와 루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그 아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 아들과 이별을 하지만 이제는 그 뒷모습을 웃으며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상황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이별을 한 사람들 그들과의 재회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시간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극적인 요소들은 설득력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환자들을 수용하는 정책. 그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과정 또한 극히 표면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귀환자를 반대하는 프레드의 경우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변해버린 그가 그렇게 까지 귀환자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해럴드와 밸러미 요원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인가 그 의미는 충분이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이야기의 중간 중간 귀환자들의 이야기를 삽입시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다양한 상황과 시각들을 전개한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꽃 같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났다. . 이 책을 읽으며 이 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야기속의 귀환자가 아닌 살아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맘이 계속 떠나지 않았다. 소설속의 이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기에 치유니 회복이니.. 이런 의미를 부여했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그것보다 우선이 되는 것이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시 한번 지금이라도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소망해본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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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지금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함을,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가치 있게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어바웃 타임>이 생각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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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싶으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지난 인생이 남들보다 더 혹독했다거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을 건너뛴 다른 시공간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 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지금의 사람들이 좋을 뿐이다.
제이슨 모트의 소설 <더 리턴드(The returned)>는 죽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되살아나는 상황을 가정하여 쓴 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은 벗어나기 힘든 감정이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점차 흐릿해지게 마련이고, 우리가 사는 동안 그러한 체험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소중함을, 삶의 의미를,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상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카디아는 미국에 있는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그곳에는 일흔이 넘은 노부부 루실과 해럴드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제이콥이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이콥은 1966년 여덟 살 생일에 강에서 익사하고 만다. 오랜 세월 동안 부부는 제이콥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들의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고 있었다. 이렇듯 평온했던 부부의 삶을 뒤바꾼 것은 아들 제이콥이 여덟 살의 나이로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악마 - 그들의 특정한 악마 - 가 눈물이 글썽이는 갈색 눈동자에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부모와 헤어져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아이 특유의 안도감을 가득 담은 채 여전히 작고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그들의 현관 앞에 나타났을 때,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살아난 루실의 단단히 닫혔던 마음은 사무국에서 나온 잘 차려입은 남자 앞에서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p.21)
그러나 죽었던 사람이 이 세상으로 귀환하는 것은 비단 제이콥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귀환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고, 이 전대미문의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또한 그 누구도 왜, 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이 기적인지, 또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급기야 국제 귀환자 사무국이 결성되었고, 정부 차원에서 귀환자들을 관리하게 되었다. 아카디아의 초등학교에 귀환자들을 모아 놓고 감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귀환자 수용소가 세워진 셈이다. 해럴드는 어린 제이콥을 수용소에 혼자 둘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청하여 수용소에 남는다. 그 순간에도 귀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새로운 귀환자들은 사무국 요원들과 군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난다. 사람들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귀환자의 가족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마찰과 갈등도 심해진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마음은 제이콥이 1966년 8월의 그 여름날 물에 빠져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녀석이 말을 하면, 내 귀는 그가 내 아들이라고 말해. 내 눈도 마찬가지고. 그 오래전, 까마득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해럴드는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p.222)
귀환자 사태는 세상이 의도하고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해럴드와 제이콥이 떠난 빈집에 홀로 남은 루실은 그들을 위해 매일 음식을 준비하여 날랐다. 그러던 중 1963년에 죽었던 윌슨 일가족이 귀환하여 루실의 집에 함께 머물게 된다. 윌슨 일가는 루실과는 먼 친척뻘이었다. 귀환자 사태가 지속됨에 따라 귀환자의 수가 증가하고 수용되지 않은 귀환자도 증가하면서 산 사람들과의 마찰은 점차 심해졌다. 이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귀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렇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한 까닭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정부도, 성직자도, 과학자도, 그 누구도.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이렇다. 귀환자의 가족이면서 귀환자에게 우호적인 해럴드 가족,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무국 요원 벨러미와 윌리스 대령, 성직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피터즈 목사, 정상인들을 지지하며 귀환자를 적대시 하는 프레드 그린 등. 나는 소설의 뒷부분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소설일 뿐이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 단지 그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어떤 것들이 한순간에 뒤바뀌었을 때의 혼란과 갈등, 그 속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탐욕과 비열함은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부의 역할도.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정부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기적의 치료법을 제시해야 하고, 필요하면 단호한 군사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p.80)
우리는 죽음 저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다만 모름으로써 죽음을 그저 수용할 뿐이다. 예컨대 죽음 저편의 세계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 만약 우리가 상상하는 지상천국이라면 현실의 삶을 서둘러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속출할 테고, 만일 그것이 불구덩이 속의 지옥이라면 사는 내내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죽음에 대해 모름으로써 기대와 공포의 중간자적 입장에 놓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절묘한 신의 한 수이다. 그렇다면 죽었던 자의 생환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인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작가 제이슨 모트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우리에게 또 하나의 철학적 난제를 던져준 셈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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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턴드]를 배송 받은 것은 지난 목요일, 세월호 사고가 있던 바로 하루 뒤의 날이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른 상태에서 받은 지라 귀환병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출판사에서 같이 보낸 홍보문구들을 보니 그제서야 소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정말 망치로 뒤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시기가 이런 때에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죽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부쩍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내가 만 4살이 되자마자 야속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 몽골에 출국하던 날 돌아가셔서 결국 상을 치르고 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던 외증조 할머니의 부고. 그리고 21년전, 서해 훼리호 사건 때 돌아가신, 지금의 나와 동년배의 고모부.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부터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제이슨 모트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그리움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 그리움이 바로 이 책을 쓰게 한 동기가 아니었을까 짐작 해 본다. 저 세상으로 떠나간 사람들. 그들을 그리워하며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 그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어떻게 해서든 귀환자들을 막아보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하는 사람들. 혼란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결국 갈등이 터져 나오는 사람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그 어떤 말로도 이 책을 설명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그리움의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슬펐고, 하필이면 세월호 사건으로 매일 밤 잠 못 이루고 눈물로 기사를 검색하는 시간들이 슬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슬펐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을 제이슨 모트가 어째서 썼는지, 누구를 위해 썼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상처의 치유, 관계의 회복, 그리고 성장이었다. 이 마지막 장이 없었다면 계속 이 책을 읽는 것이 슬픈 일이 되었을 것 같다.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정말 흡입력이 대단하고, 소재가 과감하며 도전적이다. 좀비가 되었다가 살아 돌아오는 소재의 영국 드라마가 있었는데, 얼핏 소재를 보고 그와 비슷한가 싶었지만 풀어나가는 전개방식은 다르고, 2014 신작으로 방영된 미드가 있다 하여 에피소드 첫 화를 보았는데 각색이 된 부분들이 있어서 따로 즐겨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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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누군가를 잃으면 마음의 문을 닫아건다. 또 어떤 이들은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추억과 사랑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내버려둔다. 어쩌면, 그게 정상일지도 모른다고, 해럴드는 생각했다. 모든 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446쪽)
비가 내린다. 가뭄 끝의 비가 반갑지 않다. 슬픔의 눈물이 모여 거대한 빗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 더 나중에 내려주기를 바랐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도예배가 있는 날이다. 오후엔 가족들이 모여 할머니를 생각할 것이다. 짧게 자른 머리, 손목에 머물렀던 아름답지 않은 팔찌들, 작은 요구르트를 마시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병상에 누워계셨던 긴 시간 덕분에 나는 할머니를 많이 기억할 수 있다. 반면 엄마는 다르다. 갑자기 닥친 죽음이었기에 엄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몇 달 전의 모습만 생각났다.
제이슨 모트의 『더 리턴드』 를 읽으면서 책장에 놓인 엄마의 낡은 사진을 자꾸 바라본다. 왜 이 소설을 지금 만났을까. 책과의 만나에도 어떤 운명 같은 게 있을까. 소설의 내용처럼 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엄마가 내 앞에 홀연히 나타난다면 오랜 시간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엄마의 얼굴을 매만지고,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
소설 속 해럴드와 루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50여 년 전 여덟 살 생일날 죽은 아들 제이콥이 국제 귀환자 사무국 직원 벨러미 요원과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을 때 두려움이나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젊은 부모가 아닌 해럴드와 루실은 제이콥을 만난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루실은 아들을 그대로 인정했지만 해럴드는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럴드와 루실의 제이콥으로 인해 변화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흘렀고 해럴드는 점점 제이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소설에선 세계 곳곳에서 죽은 자의 귀환이 있었다. 이상한 건 죽은 자 모두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여, 그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관이 있었다. 제이콥도 그들의 관리 대상이었다. 해럴드와 루실이 사는 아카디아에 귀환자를 학교에서 수용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이 등장한다. 숨어 있는 귀환자가 늘어났고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학교로 옮겨졌다. 해럴드와 함께 제이콥도 학교에 수용되었고 루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귀환자를 반겼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들을 적대시했다. 그건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폭동이 일어났고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귀환자들은 가족과 함께 있어야 했다. 아니, 그들이 왜 돌아온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것이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소설엔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할 시간도 없이 떠난 이들이 많다.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비밀과 같은 죽음 말이다. 그로 인해 남겨진 이들은 미안함과 자책의 시간을 보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족과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 채 말이다.
죽은 자의 귀환을 다른 많은 소설과 이 소설이 다른 이유다. 좀비나 유령의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죽은 당시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온 귀환자들은 다시 떠난다. 가족과 만나 전하지 못한 말들을 전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기적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쑥스럽다는 이유로,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뤘던 말들...
눈물이 모여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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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한참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시끄러울 때 이 책을 읽게 되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지난 달에 13년동안 함께 하던 애견을 보냈고 그 전에도 친정아버지와 또 다른 애견을 보낸 일이 있어 가끔은 '다시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씩 해보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 하루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아니 정말 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본 듯 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에 딱 하룻밤만 어머니가 정말로 돌아오시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만약에 죽었던 이들이 아니 나의 소중한 가족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
어느 날 갑자기,죽었던 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해럴드와 루실에게는 8살된 아들 제이콥이 있다. 제이콥의 여덟번째 생일날에 그들은 제이콥을 잃고 말았다. 모두 생잎파티를 하고 있는데 제이콥이 혼자 강가로 간줄 누가 알았을까.제이콥은 그렇게 익사하고 말았다.그리고 50년이란 시간이 흘러 그들은 칠십대의 노파가 되고 루실은 제대로 된 잠을 자보질 못했다.그런 그들 앞에 '귀환자' 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그때 그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젊은 시절의 부모가 아니라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에게 어린 아들인 귀환자는 악마일까? 다시 한번 그들에게 찾아온 기회일까?
믿음이 강한 루실은 제이콥이 나타나기 전에는 귀환자를 악마라 하였지만 자신의 아들이 나타나자 '축복'이라 여긴다. 그는 힘에부치지만 제이콥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여 살뜰하게 보살피지만 해럴드는 귀환자 제이콥을 아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사람이라 할 수도 없는,분명히 자신의 손으로 제이콥의 시체를 건져냈고 묻기까지 했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갈등을 하게 된다. 마을에는 제이콥 뿐만이 아니라 무척 많은 귀환자들이 생기게 되고 그들은 한꺼번에 가둘 시설로 학교를 택하여 그들을 한곳에 두려 하는데 해럴드는 제이콥과 그가 죽었던 그 장소에 갔다가 그를 아들로 받아 들이게 되면서 시설에도 함께 들어가게 된다.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귀환자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자신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들은 그 시절 그대로 그들이 즐겼던 수수께끼 문제도 할 줄 알고 그야말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을 나눈다.
한두명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귀환자가 생긴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 귀환자들로 넘쳐나는 곳이 마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고 그들도 똑같이 사람처럼 먹고 자고 감정을 느끼는데 그에 드는 것들이 많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환자'들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죽은 가족이 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풀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왜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거나 죽는 순간 가족과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귀환자들은 꼬였던 실타래를 풀 듯 가족과 나누지 못했던 것들을 풀며 그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고 있다. 시설에 갇힌 남편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루실은 죽음에 이르고 그들이 평생 함께 했던 집도 화재로 잃게 되지만 해럴드는 소중한 아들과의 시간및 아들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제이콥은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되면서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을 하기 위하여 귀환한 것인데 너무 많은 귀환자들로 인해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인데 자신의 생을 다하고 간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제이콥처럼 삶도 다 살지 못하고 갑자기 사고로 죽게 된다면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많을 듯 하다.죽은 이나 보낸 이나 모두 마찬가지 상황일 듯 한데 그런 시간이 누구에겐 필요하지만 그런 시간을 원치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칠십대의 노파에게 어린나이에 죽은 아들을 아들로 인정하기란 어렵다. 살아 있는 자들은 과거의 시간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죽은 자들은 과거의 그 순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나쁘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좀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만약에 친정아버지가 하루만 다시 돌아와 내게 시간을 준다면 무얼해야하나? 가끔 꿈속에 아버지는 살아생전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는데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소중한 존재의 상실로 인해 생긴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어떤 죽음에나 미련은 남게 마련이겠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좋은 것도 있겠지만 정말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것.어떤 이들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그 상실감에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아픔이 너무 커서 벗어나지 못하고 굴레처럼 지고 가는,해럴드가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평생 쥐고 있던 십자가처럼 그런 십자가 가슴에 하나씩 묻고 있는 이들도 있다.저자가 던진 질문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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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덮기를 반복한 끝에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각각 ‘복수’와 ‘부조리’를 다룬 소설이었는데 전자는 두꺼웠지만 잘 읽혔고 후자는 예전에 펼쳤을 땐 얇았음에도 읽다 포기했는데 이번엔 잘 읽혔다. 두 권 모두 할 말이 많은 소설이었는데 리뷰를 쓰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세월호 참사 앞에 흩어졌다. 소설보다 더한 비극, 소설보다 더한 부조리가 현실에 있었다. ‘귀환’이라는 단어가 간절한데 응답은 없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실종자의 귀환이 간절한 이 시간, 죽은 자들의 귀환을 그린 『더 리턴드』를 읽었다. 미드 <Resurrection>의 원작소설이라고 한다. 제목만 보면 작가는 죽은 자들이 집,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돌아왔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 같고, 드라마는 그들이 살아 돌아온 사실에 중점을 둔 걸로 보인다. 해럴드와 루실 앞에 50년 전 여덟 번째 생일에 죽은 제이콥이 나타났다. 죽었다 돌아온 이들을 귀환자라 불렀는데 루실은 제이콥이 돌아오지 않았을 땐 악마라고 생각했다가 제이콥이 돌아오자 기적이라 말했다. 해럴드에게 제이콥은 이미 자신의 아이는 죽었으니 돌아온 제이콥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보낼 수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죽은 후부터 깨어날 때까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제이콥이 집에 온 것은 해럴드의 말처럼 인간의 지닌 본능이었다.
“만약에 딱 하룻밤만 어머니가 정말로 돌아온 상황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런데 사실은 어머니만 돌아오신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제이슨 모트는 소설은 친구의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명확히 알 순 없지만 삶에 혼란이 올 거라는 건 분명하다.
귀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 함께 사는 것이지만, 세월이 흘러 귀환자들의 기억하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사는, 간신히 그들의 잃은 슬픔을 지우고 살아가는 그들에겐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루실은 죽은 아들의 귀환을 기적이라 했지만 윌리스 대령은 귀환한 아버지와의 만남을 거절했다. 벨러미에게 돌아온 어머니는 누군가의 복사본일 뿐이었고 프레드는 귀환자들이 정상인들의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의 귀환은 무의미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더러는 밤이 되어 사방이 캄캄하고 조용해지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녀석이 살그머니 일어나서 내 침대로 올라온단 말이야. 올라와서 내 옆에 얌전히 웅크리고 눕는 거야. 옛날에도 악몽을 꾸거나 하면 그런 짓을 했어. 더 힘든 게 뭔지 알아? 때로는 그저 내가 그리워서 그러는 것처럼 보인다고. 녀석이 내 옆에 웅크리고 누우면… 제기랄… 나는 어쩔 수 없이 팔을 뻗어 녀석을 안아줄 수밖에 없어. 옛날에는 그랬던 것처럼. 그런 것 알아, 벨러미?” “무엇 말입니까, 해럴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게 정말 몇 년만인지 모르겠어. 비로소 내가 온전해진 느낌이야. 이제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해럴드는 기침을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더러는 그런 느낌에 집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벨러미 요원이 말했다. 해럴드는 그 대답이 정말로 놀라운 기색이었다. “그가 나를 변화시키고 있어.” 해럴드가 한참 만에 덧붙였다. “빌어먹을. 녀석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고.”(222쪽)
그들의 귀환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고 없이 닥친 죽음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못한 이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빌지 못한 이들에게 고백할 기회를 주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귀환자와 남겨진 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알게 된다. 잔인한 생이었지만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죽은 이들은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대상임을.
존재하는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어이없는 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비극은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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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작가의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기억력이 저질인 내가 깨알같이 기억하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이다. 이 책도 잊혀지지 않을 책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놀랍도록 충격적인 내용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잃다' 라는 뜻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잃다. 라는 뜻을 안고 있다. 그 사람이 다시 한번만 돌아올 수 있기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만이라도 마주할수 있기를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는 꿈에서라도 볼수 있기를 말이다. 요즘의 세월호 사건과 겹쳐져서 더 가슴아프게 아려온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게 현실이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 그것도 몇십년 후 언제일지도 모르는 시간에..
죽은 아들 제이콥이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그것도 8살 아들이 죽은 뒤인 50년이 지난 시간뒤에 아버지인 헤럴드씨와 어머니인 루실의 앞에. 이 부부에게서만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이 일로 곤경에 처하고 있다. 죽은 사람들이 수많은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들을 귀환자라 불렀다. 죽은 사람들은 죽게 된 그 시점의 나이로 다시 찾아왔다.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일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했지만, 어떠한 사람들은 잘못된 일이라며, 그들은 사탄의 회귀라고도 했다.
제이콥의 부부는 이미 늙어 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 앞에 8살 아들 제이콥은 죽기 전 그때와 똑같은 아이였다. 해럴드씨는 다시 돌아온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서슴없이 50년전과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아들을 보면서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행동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을 느끼며, 지금껏 보내왔던 생활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러던 와중 대통령은 귀환자들에게 외출 금지 명령을 내리게 되고, 귀환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게까지 한다. 수용소를 드나드는 트럭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세상에 산 사람들보다, 죽어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를만큼 귀환자들은 늘어만 갔다. 헤럴드씨는 수용소에 갖히는 아들과 함께 하기 위해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고, 어머니인 루실은 그들을 보기 위해 매일 면회를 간다. 산 사람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게 된다. 귀환자들을 죽여야 한다는 쪽과, 함께 해야 한다는 쪽. 세상은 뒤숭숭해지고 조용해지기 힘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온다면? 이라고 책의 처음에 쓰여져 있던 물음에. 참 좋겠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의 답에 경종을 일으켜주었다. 세상의 질서를 깨트리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이 작품은 정말이지 놀랍다. 집중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오래도록 이 작품의 내용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원래 기억이란 건 그런 것 아니던가? 세월이 갈수록 녹이 슬어 자기한테 유리한 기억만 남게 마련이었다. (p.55)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지금도 여러 가지 두려움을 안고 있어요. 텔레비전에서 본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심지어 이번 사태가 시작되기 전에도, 끝나고 난 뒤에도 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두렵지 않아요.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혹은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요. 그 이유는 이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선한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할 때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말아야 해요.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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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가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 혹시 이런 상상 해보지 않으셨어요? 공상을 많이 하는 저는 솔직히 이런 상상 해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상상에 의한 이야기를 실제로 만들어 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죽은 이가 돌아온다면? 그것도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몇십년이 흘렀지만 전혀 나이를 먹지 않은 그 상태로 돌아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렇다면 죽은 그 사람은(여기선 그들을 귀환자라도 부릅니다.) 사람인걸까요? 아니면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인것일까요?
미드를 보면 이런 소재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나오는데,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로는 좀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죽은 이의 부활이니 그렇겠지요. 하지만, 좀비는 산 사람과는 엄연히 구별됩니다. 영화 <웜 바디스>에서 나오는 좀비들은 그나마 산 사람들과 비슷한 좀비-조금 인간적인 좀비-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딱 보면 좀비구나? 싶은 좀비들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대체적으로 좀비라고 하면 구부정한 자세로 비틀거리며 와서는 인간을 물어 뜯어 먹는 괴이한 존재로 그려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 <더 리턴드>에서는 '귀환자'들은 그런 좀비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죽은 이의 부활이라...죽은 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던 이에게는 분명 축북이고 반가움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무서움과 동시, 많은 숙제를 안겨다주는 존재겠지요? 이들은 대체 누구인걸까요? 그리고 왜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현재 2014년 3월 ABC에서 TV시리즈로 방영을 시작한 이 소설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미드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글로 보는것보다, 영상으로 보는 편이(기회가 되면 미드를 찾아 보고 싶습니다) 더 재미있을것 같긴 합니다. 죽은 이의 부활이라는 미스터리소재로 단순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소설이 아닌, 인간의 심리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귀환자들은 결국 수용시설로 보내지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화속에서 우리와 다른 존재들이 등장하면 이렇게 수용시설로 보내졌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나 <연가시>에서처럼 말이지요. 물론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수용수로 보내지는 이들은 앞이 안보이는 이들이지만, 이것이 전염되기에 격리된것이고, <연가시>에서의 이들은 물로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요. 보통은 이렇게 큰 이유-대부분 전염-가 있어 격리를 시키는데, < 더 리턴드>의 귀환자들은 이렇게 전염시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존재도 아닌데, 그 부분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물론, 책에서처럼 죽은이의 부활은 반가움에 앞서 더 큰 문제와 갈등을 야기시키니....
죽은 이의 부활을 보고서 처음에 루실은 그들을 악마라고도 했습니다. 나와는 먼 이야기에서 그들을 보면 분명 그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느껴질껍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는 먼 일이, 내 일이 되었을때 그들을 악마라고 부르던 미실은, 제이콥(어렸을적에 죽은 아들이 8살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다시 이들 부부에게 왔을때)을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제이콥, 그리고 그외의 귀환자들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그들이 갑자기 이렇게 나타난 이유가 있을껍니다. 미스터리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인간의 심리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는 <더 리턴드>.소중한 존재의 상실과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세월호 사건'으로 더 많은 생각들이 오갈것 같습니다. 저역시 그랬으니까요.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겠지요.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소설, 흥미로운 소재와 함께 즐겁게 읽었던 < 더 리턴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