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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1958년부터 1964년 사이에 씌어졌다.”로 시작하는 작가 서문은 제법 길다. 이렇게 긴 줄 알았으면 그냥 본론부터 읽을 걸 그랬다. 총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2. 소설집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소재나 배경, 스타일에서 분위기를 달리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입지는 유사하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단절, 고독, 권태, 무질서, 획일주의, 고갈, 파국, 죽음 등의 단어들이 연상된다. 3.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중 30권 째인 이 책을 통해 작가 토머스 핀천을 스터디하는 시간을 갖는다. 1937년생으로 팔순을 내다보는 미국의 현존 작가이다.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3년 첫 장편 『브이』를 발표하여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그해 출간된 최우수 데뷔소설에 주는 윌리엄 포크너 상을 수상하였다. 1966년 두 번째 장편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발표하여 리처드 앤드 힐다 로젠탈 상을 수상하였으며, 1973년 세 번째 장편 『중력의 무지개』를 발표하여 전미도서상을 수상하였다. 그밖의 장편으로 『바인랜드』 『메이슨과 딕슨』 『그날에 대비하여』 『고유의 결함』 『블리딩 에지』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는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 있다. 4.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네 편은 작가가 대학에 다닐 때 쓴 것이고, 다섯 번째 작품인 「은밀한 통합」은 습작생을 뛰어넘어 신인 작가의 작품에 가까운 것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작가가 이 단편들을 다시 읽었을 때 그의 첫 반응은 한 마디로 ‘오 맙소사’였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신체증상이 동반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들었던 두 번째 생각은 완전히 다시 쓰자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충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작가는 중년다운 평정심을 내세워, 그 당시 어린 작가였던 그를 이제 있는 그대로 봐줄 나이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로 했다. 5. 「이슬비」(The Small Rain)는 작가의 첫 단편소설이다. 작가가 해군에서 복무 중 육군에서 군 생활을 한 어떤 친구가 전해진 이야기가 테마다. ‘바깥의 중대 구역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익어갔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뜨겁다. 틈틈이 페이퍼백을 읽는 병사들도 묘사된다. 나 역시 군 생활 중 GI 들이 큼지막한 엉덩이 뒷주머니에 페이퍼백을 찔러넣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봤다. 섬에 위치한 크리올이라는 작은 마을이 허리케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대민 지원을 나간 군인들의 이야기다. 그 와중에도 역시 허리케인 같은 원 나잇 스탠드 사랑이 펼쳐진다. 6. 「엔트로피」는 단편 소설로 엮기엔 다소 무리한 소재다. 작가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며 작가로서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단편 덕분에 작가는 엔트로피에 대한 전문가처럼 알려지게 된 것을 쑥스러워한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이 단편은 『헨리 애덤스의 교육』 과 노버트 위너의 『인간의 인간적 활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단편에 비트 제너레이션을 그리고 있다. 비트 정신에 과학을 입힌 것이다. 인류의 절망과 죽음과 재앙에 대한 염려를 담고 있기도 하다. 소설 속 시간은 1957년 2월 초이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작가는 이런 말을 담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열에너지처럼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일종의 열역학적 죽음이 인간의 문화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일이 초래되는 이유는 생각의 각 지점들이 궁극적으로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갖게 되고, 그리하여 지적인 움직임이 중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 토머스 핀천에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십 년 동안 은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고등학교 때와 해군복무 시절에 찍은 두어 장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출판과 관련된 외부 업무는 모두 대리인을 통해 처리하므로 그의 외모나 거처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핀천이 공식적인 활동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생긴 일화가 많다. 유명한 일화로 『중력의 무지개』가 아이작 싱어의 소설집과 함께 전미도서상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그는 몇 차례 수상을 거절하다가 결국 공동 수상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상을 받기로 하지만 유명 코미디언을 시상식에 대신 보낸 일이 있다. 핀천이 이렇게 은둔 작가의 길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나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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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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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원제:Slow Learner)는 1984년에 발간된 토마스 핀천의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반의 초기 작품들을 모은 책이다. 다 써버린 책은 버려진 사자와도 같다는데, 작가는 다시 한 번 이 소설들을 읽고 출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끄러운 부분도 있고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결국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은 마음은 뭐였을까 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겨나갔다. 작가의 경고 아닌 경고가 맞아 떨어짐을 실감한 건 한 세 번째 소설을 읽을 때부터일까 난해하고 난해한 문장들을 읽다 보니 내가 문장을 읽고 있는 것인지 문장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의 대부분의 단편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문장은 간결하고 무채색이다. 전쟁 이후 무기력과 회색 빛으로 가득 찬 미국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상징하는 그 주인공들은 무엇에 대한 열망도 의지도 없는 듯이 살고 있다. 단편 소설 전체에 드리워진 이런 분위기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읽는 나도 같은 우울함에 붕 뜨게 된다. 사실 발버둥 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결말을 두고 주인공은 역시나 쉬운 결정을 한다. 인도의 속담이 생각난다. 잘못 탄 기차가 오히려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고. 그들은 이미 이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목적지도 없어 보이는구나. 조금 다른 분위기의 소설은 스파이들의 이집트에서의 추격을 그린 '언더 더 로즈'이다.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카이로에서의 그것도 스파이들의 이야기라니 소설 중간에 감초같은 변화의 역할을 해줬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단편 소설은 핀천이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 발표한 '은밀한 통합'이라는 작품인데, 확실히 소설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지고 문장과 문장들이 편하게 읽혀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종 문제에 대해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고 있다.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 후에 자신의 젊은 시절의 글을 다시 뒤돌아 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특히 처녀적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이 단편 소설들은 완전하지 않은 원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젊은 시절 작가의 글이 어떻게 깎여서 빛나는 보석이 되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에 호기심이 생긴다. 여전히 회색 빛일까 여전히 주인공들은 부유하고 있을까.
![]() 우리는 조금씩 부웅 떠있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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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핀천의 <느리게 배우는 사람>에 수록된 작품들은 토마스 핀천이 대학시절 습작으로 썼던 초기 작품들로 작가가 서문에서 고백하듯(‘오, 맙소사’)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이야기 하기엔 무리가 있다. 단편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등장인물들은 구구절절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지 등 자기 어필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느리게 배우는 사람> 속 단편들은 많은 부분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주인공은 이야기가 끝나가도록 캐릭터가 모호하고, 심지어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어수선한 경우도 있다. 또한 간혹 이 이야기가 태생이 단편이 아니라 사실은 ‘장편이 되지 못한’ 단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특히 엔트로피의 경우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다보면 레드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다. 3.78리터 짜리로..)
스무살이 넘고 고전이라 평가 받는 세계문학 작품들을 한 편씩 찾아 읽었다. 특히 지난 2년간은 영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처럼 피츠 제럴드,윌리엄 포크너, 에밀리 브론테 등 작가의 이름과 작품 제목만 너무나 익숙했던 영문학 고전들을 하나씩 읽어왔다. 이렇게 고전을 읽으며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초반 몰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마치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처럼 처음 얼마간은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읽다 보면 중반 이후부턴 작품 속에 푹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전은 도도한 아가씨처럼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더불어 문을 열고 들어간 이후에도 쉽게 나갈 수 없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책을 다 읽고 나면 여전히 황량한 사막의 한 가운데 혹은 빛이 약한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곱씹게 만들었다. 내가 읽은 고전들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거나 간결한 것이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 다시 읽고 싶어지고, 다시 읽었을 땐 처음 읽었을 때와 또 다른 감흥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어떤 작품에서건 등장인물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풍부해서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이 읽어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고전은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으며 세계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 또한 이전에 고전을 읽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는 몰입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지금 이곳이 어딘지,주인공은 누구인지, 또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작품에서 묘사되는 시대와 공간이 너무 낯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이 나도 여전히 허전하고 아득한 뒷맛을 남겼다. 그래서 몇 번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작품해설을 읽으며 이야기의 맥을 짚기도 하고, 작가 서문을 다시 읽으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그제서야 러바인이, 플랜지가, 임대차 계약을 깨는 파티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단편 <이슬비>에 등장하는 ‘러바인’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대에서 가장 게으르고, 뿌리내리는걸 두려워하고, 흙이 거의 없는 돌밭에 뿌려진 씨 같은… <느리게 배우는 사람>에 수록된 단편들에는 어쩌면 이런 러바인의 캐릭터가 계속 변주되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소설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처음 토머스 핀천이라는 대가를 만났다. 이 책의 뒤 표지에는 ‘핀천은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이다.’라는 에드워드 멘델슨의 극찬이 실려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토머스 핀천에 대한 에드워드의 평가에 대한 동의는 잠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집만으로는 핀천을 온전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핀천의 초기작을 읽었으니 이제는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장편을 찾아 읽어야겠다. 평가는(감히) 그 이후가 될 것이다. 어떤 소설들은 마지막 장을 덮음과 동시에 바로 중고서점에 팔아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명확하게 이해되고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반면, 어떤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어도 이야기가 끝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런 소설들은 시간이 흘러 다시 찾게 된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아마 오래도록 책장에서 나의 다음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