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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강화를 품다 -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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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강화도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선택하게 된 작품이다. 우리가 보통 숙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TV 드라마 <동이>나 <장희빈>를 통해 알게 된 장희빈이나 영조의 어머니 숙원 최씨(동이=한효주)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숙종의 재위기간이 무려 46년(1674~1720)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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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강화도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선택하게 된 작품이다.

우리가 보통 숙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TV 드라마 <동이>나 <장희빈>를 통해 알게 된 장희빈이나

영조의 어머니 숙원 최씨(동이=한효주)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숙종의 재위기간이 무려 46년(1674~1720)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중 우리가 알면 좋을 굵직한 사건들의 키워드만 뽑아 보면 이렇다.

 

  

먼저 숙종의 여인으로 본 키워드는 장희빈, 인현왕후, 숙원 최씨다.

이건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룬 것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여기에 영조를 꼽사리~~끼우면...

숙종이 죽고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왕위를 이어 받았지만 몸이 약해 재위 4년 만에 죽게 된다.

숙원 최씨(동이)의 아들인 연잉군이 다음 왕이 되는데 이 왕이 바로 조선 제일의 장수왕 영조다.

 

상평통보(떳떳이 평등하게 널리 통용되는 보배)

유명무실했던 화폐유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현물 경제 시대를 마감하고 화폐 경제시대를 열었다.

 

단종과 사육신...

수양대군이 정변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세조)가 되었다...그 말은 이후 조선의 왕은

다 세조의 핏줄이라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단종의 핏줄들이 왕을 해야 하는 상황...

세조가 왕이 된 이후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가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

처형당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을 사육신이라 부르며 충신이라 칭할 수 있으나 세조의 혈육들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 아니라 역모를 꾀한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세조는 뭐가 되겠는가??

그래서 단종은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노산군으로 불렸고 사육신은 죄인으로 역사에 남아야 했다.

그런 노산군에게 단종이란 묘호를 주고 사육신을 복권시킨 왕이 바로 숙종이었다.

 

환국정치(경신, 기사,갑술)

숙종 초기 정권을 잡은 남인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를 넘어서게 되자 숙종은 경신환국을 통해

남인을 내치고 서인을 등용시키게 된다.

하지만 서인 역시 목에 힘을 주게 되면서 숙종의 일에 태클을 걸게 되고 결국 숙종은 기사환국을

통해 뻥~(기사환국을 통해 아들을 낳은 장희빈이 왕비가 되고 민비(인현왕후)는 쫓겨 나게 됨)

다시 남인(장희빈)이 정권을 잡게 되지만 변덕쟁이 숙종이 다시 민비를 다시 그리워하게 되면서

갑술환국을 통해 서인(장희빈)을 내쫓고 다시 남인(인현왕후)을 등용시키게 된다.

이처럼 숙종의 정치는 환국정치라 부를 정도로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유지한 왕이었다.

 

자...마지막으로 강화도...

몽골의 침략에 고려의 강화도 천도 항쟁...정묘호란&병자호란시 강화도 피신 등 강화도는 분명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다.

하지만 숙종 전까지는 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를 방치했다는 것.

이에 효종(북진정책=공격)과 뜻을 달리한 숙종은 수비에 치중하게 되면서 강화도를 요새화하기

시작하게 된다...재위 46년 내내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고...

오늘 날 강화도에 가면 볼 수 있는 유산은 다 숙종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능~~

 

이 작품은 숙종과 강화도...이렇게 두 파트로 나눠져 있다고 보면 된다.

숙종에 대한 부분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마구 얽혀 나오기 때문에 재밌는 반면 강화도에 대한

내용은 주야장천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는 내용만 나오기 때문에 좀 지루하다.

숙종에 대한 부분은 몰라도 강화도 요새화에 대한 부분은 걍 숙종이 만들었다~~정도만 알면

되지 않을까 싶다

p******s 2014.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숙종, 강화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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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면서 강화도 지역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의 항전을 포기한 이유는 강화도가 점령되면서 왕실 인물들이 잡혀가면서 입니다.이렇게 강화도는 조선 내내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강화도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가 있는데임진왜란에서 보통 TV에서 다루면서 일본이 철저히 조선을 조사했다는 점이 허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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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면서 강화도 지역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의 항전을 포기한 이유는 강화도가 점령되면서 왕실 인물들이 잡혀가면서 입니다.
이렇게 강화도는 조선 내내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강화도에 대한 단편적인 자료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가 있는데
임진왜란에서 보통 TV에서 다루면서 일본이 철저히 조선을 조사했다는 점이 허상인 듯하다는 점입니다.
조선은 물자를 운송하나는 주요 수송로는 하천등의 수로였고 이때문에 주요 하천에는 창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서전에 성공적으로 조선을 침공하면서 한양까지 함락했지만 강화도는 방치했습니다.

명나라 참전이후 평양성에서 남하하는 명나라 군대와 달리 조선군은 
권율장군이 이끄는 전라도군을 중심으로 한강을 따라 반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때 권율 장군의 군대는 병가에서 위험하다고 보는 군대를 나눠서 강을 건넜고 행주산성을 통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대단히 위험한 군사적 기동인데.. 한강을 주요 수송로로 본다면 전혀 달라집니다.
실제 행주산성 전투에서 경기 수영의 화살 보급으로 위험을 벗어나지요.
이후 한강을 따라 한양의 일본군 식량창고마저 불살라 버립니다.

김천일 장군의 의병을 따라가보면 초기 거병을 한 이후 북상하여 근왕을 위해 달려가다 
한양 인근에서 강화도로 들어가서 그곳을 방어 합니다.
왜 그러나 싶었지만 이후 권율 장군이 이 강화도를 근거지로 하는 지원으로 인하여 한양 공격이 가능해졌습니다.

실제 일본군이 강화도를 점령했다면 의주의 선조와 전라도의 권율장군과 이순신 장군의 연락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주요 수송로도 차단을 했을 것이지요.
이렇게 중요한 강화도를 일본군은 점령하려던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이 조선의 사정에 대한 제대로된 파악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로 계속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 청나라도 침공 후 먼저 강화도를 점령했고, 조선 말기 서양 세력들은 강화도를 제일 먼저 공격해 들어 왔지요.
이렇게 강화도는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는 지금 가봐도 많은 보와 진들 산성과 읍성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축성한 것은 바로 숙종입니다.
강화 전역을 요새화 하고 심지어 강화도를 감제하는 문수산성도 숙종이 쌓았습니다.
이는 선대의 강화도 함락에 대한 대책이고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진행된 이러한 대규모 공사는 숙종에 대한 평가를 달리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숙종은 북한산성도 쌓았습니다.

정조가 수원성 축조로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수원 화성을 쌓은 이유는 수도권 남부 지역에 대한 방어책의 일환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숙종조에 있었던 강화도 축성으로 서편의 방어가 완비되니 남부에 수원성을 쌓은 것으로 봐야 될듯 싶습니다.

향토사가에 의해서 이렇게 한 지역에 대한 연구가 있는 점이 의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가지 초반부 병자호란을 다루면서 강진흔 장군이 청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되어있는데
실제로는 선봉으로 용감히 싸우다가 주사대장인 장신이 도망가는 바람에 
청군을 막는데 실패했고 이후 그 죄를 물어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모든 장병들이 그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현재 강화도에 남아있는 각종 군사 시설들이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18.05.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