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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리 이야기>를 읽고 제대로 꽂힌 부분은, 그러니까 5월 내내 곱씹고 곱씹은 부분은 이 대목이다. - 소설은 어떤 일부분을 가지고 모든 것을 말하거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척하며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숨길 수 있다. -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 “사람들은 드라마에선 조금만 아귀가 안 맞아도 난리를 치면서 자기 삶은 온통 미스터리로 남겨두고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과자집에서 살며 엄마가 오래전 잃어버린 누이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가족들. 독특하고 이국적인 이름, 딸기맛 웨하스를 본따 만든 환상적인 집. 설정은 동화 같지만 소설 속을 사는 인물들은 내가 본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물론 집에 찾아온 ‘메리 소이’가 진짜인지 따져보지 않고, 남들은 불륜으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인물은 현실에서 보기 드문 성격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중요한가? 주인공에게 이입하면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너무 집착하지도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는 양육 방식, 미지근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주인공이 있다. 독특한 점은 인형을 매일 돌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미숙하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질감을 느낄 뿐 내용이 전개되면서는 그런 설정 또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중요한 건 무엇일까? ‘삶은 온통 미스터리’하지만 그런 ‘내’가 동떠버리지 않게, ‘나’를 현실에 발딛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에게는 드라마 작가 마로니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왔다가 사라지는, 진짜로 추정되는 그 ‘메리 소이’보다도 마로니와 주인공이 친구가 되는 그 과정이 이 소설에서 가장 애틋하고 정이 간다. 당신이라고 똑똑히 부르는 지점은, 연극에서 제4의벽을 건드리는 것을 닮았다. 독자인 나를 주인공이 불러서 나를 현실에 안착시킨다. 독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몰입을 흐트러트리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마냥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책을 덮으면 멈추는 이야기로 느끼기 어렵다. 술술 읽고도 한달 내내 곱씹는 숙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면서 계속 움찔하다보니까 내가 겪은 일 같기도 하다. 상실을 겪은 이가 상대가 살아있다고 믿거나, 까마득한 기억을 의심 없이 믿어 종국엔 나의 정체성으로 체화하거나, 누군가에겐 사소한 문제가 나에겐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경우들. 또, 타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설명을 생략해버린 나의 이야기. 이 중 하나라도 당신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나는 중학교 때 사진을 전부 지워버린 뒤로는 그때 내 기억이 정말 맞던가, 의심한다. 내가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문제가 실제로는 왜곡된 게 아닌가.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이 문제가 풀리기를 기다려온 것 같은데……. 그 문제의 진위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나는 안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 출근하고, 밥 먹고, 근사하지도 대단히 신파적이지도 않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 다른 이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굳이 들추지 않는 것. 다만 무엇을 들고 있든 ‘그럴 수 있다’ 은은하게 믿는 마음. 그런 것이 중요하다. - 어떤 날엔 그런 생각을 한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올 것 같다고. 다시는 원더타운에서, 합정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발소리를 내며 걸어올 것 같다고. * 읻다 넘나리 활동으로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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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가족은 엄마가 잃어버린 엄마의 동생, 메리 소이를 기다린다. ‘미미제과’에 실린 메리 소이 광고를 보고 다양한 메리 소이가 찾아오지만, ‘진짜’ 메리 소이는 아니다. 메리 소이는 어디에 있을까? 동화 작가가 쓴 첫 소설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동화 같았다. 마을 이름도, 인물들의 이름도, 주인공 집 모양도! 마치 조그마한 세트장(혹은 인형의 집) 안에서 재생되는 이야기인 것만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일은, 그로 인해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아주 사실적이다. 이야기에는 큰 굴곡이 없다. 주인공은 메리 소이를 기다리고, 삼촌과 마로니와 수다를 떤다. 가끔 새로운 메리 소이를 만나고, 자주 원더마트에 간다. 그 점이 좋았다. 원더타운 사람들은 ‘나’를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아이로 기억하겠지만 누군가의 삶은 그렇게 한 줄로 정의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 중 아주 일부분일 것이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던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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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동화가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구역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에게 건넬만한 '장편 동화'이다. 주인공의 엄마는 메리 소이라는 여동생을 잃어버린 후, 웨하스 과자 공모전에 '메리 소이'에 대한 사연을 적어서 보낸다. 이 사연은 메리 소이의 실종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며, 기업까지 메리소이를 찾도록 도와준다. 주인공은 이 덕에 '메리 소이'를 찾는 가족으로 등극하며, '애달픈 가족'이 되어버린다. 현상금까지 걸려있으니, 가짜 메리 소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주인공의 엄마가 칭한 메리소이는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고 얘기하여, 모든 사람들이 빨간 망토를 가지고 메리 소이 행세를 하며 주인공의 가족들을 찾아온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른들의 동화'라는 말이 적절할 거 같다. 나는 너무 어두운 소설은 싫어하고, 또한 너무 가벼운 소설은 싫지만 이 두가지 요소가 섞여 있는 소설을 가끔 읽고 싶어 했다. 마치, '화려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러한 모순점과 극과 극을 잘 표현한 동화이다. '화려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두가지가 조화롭게 잘 어울리기를 원한다. 화려하기도 했으면 좋겠는데, 또 심플한 모습도 있었으면 좋겠는. 사실 이 말이 모순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어떠한 디자인을 원하는건지는 모두가 짐작할 수는 있다. 이처럼, 이 소설은 '무겁지만서도, 가벼운' 어른 동화이다. 너무 무겁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이다. 그럼에도, 이걸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아서 오히려 가볍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 동화를 '무겁지만 가벼운 어른 동화' 라고 칭하고 싶다. 메리 소이를 찾고 있는 기업에 대해 주인공은 어떻게 생각할까? 를 비롯하여, 메리 소이로 연결 지은 다른 인물들의 등장으로 주인공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며 발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과 친구에 대해 성찰하게 되며 우리 사회에 대한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친구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 거 같다. 이 책은 이런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적인데 현실적이야! 그런 동화야.' 라고 얘기하고 싶다. 정리하면,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데도 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동화. 무겁지만 또 가벼운 분위기의 동화. 라고 칭하고 싶다. 이런 부분을 가진 소설이 얼마나 있는가. 가독성 역시 좋다. 동화작가가 적은 소설이다보니, 오히려 소설보다는 어른 동화를 읽는 것만 같았다. 인용구를 적으며, 이 서평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만약 제리미니베리가 진짜로 엄마의 여동생이었다면 그녀도 여기 이 자리에 껴서 함께 해물찜을 먹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조금 슬퍼졌다. 어떤 존재는 생각만으로도 슬퍼진다.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제리미니베리를 생각하면 당당 울고 싶어졌던걸까? 이 책은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넘나리 2기> 활동을 통해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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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는 어릴 때 잃어버린 엄마의 여동생 ‘소이’를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제과 회사 ‘미미제과'의 홍보로 엄마의 사정은 전국에 알려진다. 회사는 소이를 찾는 광고를 딸기맛 웨하스 포장지에 붙이고, 집을 웨하스 모양으로 바꿔버린다. 그후 광고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자신이 메리 소이라고 말하며 문을 두드린다. 과연 ‘나(은수)’의 가족은 소이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 이상하지만 왠지 모르게 평범한 소설이다. 그간 한국소설에서 봐왔던 전개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인물이 무던하면서도 별난 성격을 보인다. 인생은 예상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평범하지만 괴이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걸까? 소설의 형태를 띠는 다큐멘터리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렸다. 주인공들은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의 대상은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책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까.’, ‘누군가와의 만남을 오랫동안 고대한다는 삶은 어떨까.’ 송미경 작가는 기다림의 의미를 독자에게 물어보는 듯하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른 독자들이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대답에서 그들이 살아온 여정과 겪어온 경험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본 게시물은 읻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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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잃어가도 매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채운다면>
『메리 소이 이야기』는 엄마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 ‘메리 소이’라 자처한 첫 번째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매 둘이 유원지로 놀러 갔다가 화장실에서 동생을 잃어버린다. 열세 살이었던 엄마의 말은 ‘정말’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의심을 받았지만, 세월이 흘러 2019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미미제과에서 창사 30주년을 기념해 과제에 얽힌 추억을 주제로 백일장을 열었고, 엄마는 잃어버린 동생 이야기를 쓴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동생과 딸기 맛 웨하스로 과자 집을 지으며 놀았던 에피스드는 대상을 받게 해주었고, 부상으로 3년간 매일 과자를 먹을 수 있게 된다. 마케팅 팀장의 아이디어로 과자상자에 잃어버린 동생의 얼굴이 실리는 등 사연이 퍼지면서 보상금을 노린 듯한 여러 명의 메리 소이가 집으로 찾아 온 것이다. 소설은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방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엄마는 동생이라 거짓을 말하는 이들을 내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주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잃은 엄마의 딸 ‘나’는 동네 아울렛 ‘원더마트’에서 매일같이 무언가를 사며 뭔가를 채우려 애쓴다. 마케팅 팀장은 어느 고객의 부재를 마케팅 전략으로 채우며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A를 잃은 자리에 비슷한 모양의 B로 채우는 것은 채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대체로 잃어버린다. 기억을 잃고, 시간을 잃고, 사람을 잃는다. 잃어버린 후엔 구멍이 난 듯 빈 공간이 생긴다.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구멍을 메꾸려고 부단히 애를 쓰기도 한다. 소설 속에 인물들은 부지런히 구멍을 메꾸려 한다. 그것이 반드시 잃어버린 것 되찾지 않아도 비슷한 모습을 한 것을 합리화하며 말이다. 그런 모습에 우리가 비난할 순 없다. 구멍이 난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고이기도 하고 아픔이 고이기도 할 테니, 어떻게서든 채우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소설은 뚜렷한 서사나 갈등 없이 원더타운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운다. 환상적인 분위기는 공허함을 다루는 데에도 마냥 슬프게만 다가오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작게나 크게나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야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지, 이야기는 오히려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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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_송미경 2024년 94번째 메리 소이는 엄마가 어렸을 때 동생 ‘소이’와 단둘이 유원지에 갔다가 읽어버린 동생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동생은 증발해 버렸고 그 후로 엄마의 사연은 제과 회사 ‘미미제과’의 딸기맛 웨하스에 사람을 찾는다는 마케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웨하스에 실린 사연은 나의 집을 웨하스 집으로 바꾸었고 어느 날부터 자신이 ‘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중에 ‘제리미니베리’가 집에 찾아온다. 송미경 작가는 『어떤 아이가』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작가의 전작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처음에는 진짜 메리 소이를 찾을 수 있을까였는데 중반으로 갈수록 메리 소이는 찾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이 책은 메리 소이를 찾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200 우리는 어쩌면 사는 데에 기댈 것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에게는 잃어버린 소이를 기다리는 게 그런 것이고 그런 엄마나 집 분위기에 적응하고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내가 기댈 곳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독특한 사람으로 가득해 보인다. 가짜 메리 소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부모님이나 인형 놀이에 빠져 있는 나나 삼류 막장 드라마를 쓰는 마로니나 그 외의 인물들도 보통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빠져드는 건 내 안에는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면면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서 인간미가 보인다. 작가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진짜 관심을 보여야 하는 대상이 아닌 동정의 대상에게 관심과 연민을 보이는 요즘 세태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나도 뭔가 찔리는 느낌이 들어서…… 말할 수 있는 슬픔과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이 책과 더불어 작년에 읽었던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도 같이 읽기를 추천해 본다. 제리미니베리는 “드디어 왔구나”라고 말하며 덥석 자신을 안아준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메리 소이, 즉 엄마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68 성인의 인형 놀이는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고 성인의 옷 사기는 사회성과 연관되어 있어 보이지만, 내가 그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옷 사기는 인형 놀이와 큰 차이가 없었다. 86 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124 다만 내게 어느 누구보다 마로니와의 기억이 많은 건 마로니의 옆에 오직 나만이 있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그랬다. 가족 외에 혹은 가족을 포함해도 마로니가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마음의 무게는 기억을 조작한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곱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의 시간이 모두 통편집된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의미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155 나는 마로니에게 “오래 함께한 개를 말하지 않은 건 꽤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서 그 정도 일은 너무 사소한 일 같다”고 말했다. 마로니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기 때문에 조금도 사소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4년을 사귀는 동안 함께 사는 생명체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이유로 무언가를 숨겨야 했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매우 수치스럽거나 말하기 힘들어서 그랬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냥 무관심해서거나 거기에 아무 이유도 없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말해지지 않는 집 안의 턴테이블이나 윙 체어 같은 존재로 전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덧붙였다. 189 나는 마로니의 죽음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만 내 삶 어딘가에 영원히 열 수 없는 문이 하나 생긴 기분이다. 나는 그 문을 이따금 보지만 아주 오래 그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에게 메리 소이가 그런 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할 있는 슬픔보다 더한 슬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할 뿐이다. 마로니와 함께한 몇 가지 순간을 적는 것. 아무렇지 않게. 마치 완전히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처럼. 196 #메리소이이야기 #송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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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갸우뚱하기도, 반전에 놀라기도 하였으나 결론은, 이 책은 환상적이다. 어느 한 사람의 일기장을 타인인 내가 읽는 기분이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본다 해도 내가 그 남을 제대로 아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잘 안다고 믿었나 보다. 주인공 '나(은수)'의 엄마에겐 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동생이 있다고 말했고 엄마는 그 동생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주인공 가족은 동생 메리 소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내내 그를 기다린다. 위 과정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메리 소이를 기다렸건 기다리지 않았건 메리 소이를 끝없이 기다리고 살았던 것은 내 삶에 굉장한 안정감을 주었다고. 늘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이었다고." 소설을 읽으며 붕 떠있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모든 일을 담담하게 서술해서 그런가.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은, 정말 작은 어른을 위한 차갑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는데,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다시 읽으니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마냥 귀엽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인물의 이름이라던가, 주인공의 집이 웨하스로 꾸며져 있다던가, 메리 소이들의 모습이라던가... 자꾸만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쩐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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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일곱 살 아이처럼. 진짜 메리 소이처럼. P.64"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그따위 일들이 벌어지길 원치 않거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욕할 만큼 매정하지도 않아." P.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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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수)’는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웨하스 과자 집에 살고 있다. 뭔가 멋지고 유명한 일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어릴 적 놀러 간 유원지 화장실에서 잃어버린 소이 이모때문이다. 미미제과의 창사 30주년 기념 백일장에 엄마가 사라진 이모와의 이야기를 쓴 글이 대상을 받고 미미제과의 마케팅에 사용되면서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미미제과는 엄마와 소이 이모의 추억 속 과자인 딸기맛 웨하스 상자에 소이 이모 사진과 이모를 찾는 광고를 싣고, ‘나’의 집을 웨하스 모양의 지붕을 한 과자 집으로 바꾼다. 광고가 나간 뒤 사진과 같은 빨간 코트와 흰 모자 차림의 “메리 소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하고 어느 날 엄마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옷차림의 ‘제리미니베리’가 웨하스 집을 찾아온다. <메리 소이 이야기>는 어릴 적 잃어버린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 중 ‘나’의 엄마를 제외하고 실재로 메리 소이를 본 적도 없고 그 존재조차 실재했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족들뿐 아니라 이웃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메리 소이가 돌아오길 진심으로 기다린다. 소설 속에는 성인이지만 특별히 하는 일없이 인형 미사엘을 돌보는 일이 일상의 대부부인 ’나‘와 막장 드라마를 쓰며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만 개의치않는 작가 ’마로니‘와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는 ’삼촌‘ 등이 등장한다. 과자로 만든 집이라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가족 모두 일정한 수입이 없는 것 물론 아빠는 엘피바를 차렸지만 망하기 직전이고 엄마는 메리 소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제리미니베리가 끼니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집을 나갔다 다시 찾아와도 내쫓거나 탓하지 않는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그리고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P52) 악착같지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이 부럽다. ‘진짜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나‘를 위해 카드를 주고 옷을 사는 것을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 눈에는 쓸데 없어 보이는 젠탱글을 배우게 한다. ”내가 무엇이든 하고 있기만을,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기만을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p86) 조금은 부족한 듯 현실에 부적응한 듯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절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냥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아빠는 엄마가 다른 삼촌을 그대로 인정하고 엄마는 찾아오는 메리 소이를 의심하지 않으며 ‘나’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있기만을 바란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게 인생인데 너무 악다구리를 부리며 사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친엄마와 진짜 엄마 중 진짜 엄마를 갖고 있고 사랑했던 이를 다시는 못 봐도 여전히 미사엘을 돌보는 욕심없고 무해하기까지한 ‘나’가 문득 세상 누구보다강인해 보인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넘나리 2기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엄마가 유원지에서 동생 '소이'를 잃어버리고 그를 찾기 위한 이야기. (이렇게만 말해도 될까?) 이야기의 후반부로 향할수록 소이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건 아주 적극적으로 말하고, 그렇지 않은 건 과감히 함구하고 있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장인 '10장'을 좋아한다."제대로 된 이유 같은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즉흥적으로 뭔가를 제시하면 우린 평생토록 웨하스를 먹어야 하고 지붕을 웨하스로 덮어야 하고 집 앞에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야 했다." (53쪽) 딸기맛 웨하스로 만든 집. 제과 회사 미미제과의 마케팅 방침으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가족은 그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호소하는 사람 한 명 없이, 미아 이야기를 간직한 가족 구성원으로 꾸역꾸역 잘 살아낸다. 잘 살아낸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존재는 생각만으로도 그저 슬퍼진다.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제리미니베리를 생각하면 당장 울고 싶어졌던 걸까?"(115쪽) 그러다가 자신을 메리 소이라고 말하는 제리미니베리가 등장해도 '나'의 가족은 그리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독백의 문장에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나'는 제리미니베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에겐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아무 이유도 없이 존재하는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141쪽) 삶은 개연성이 없어서, 제리미니베리의 등장은 이 가족을 크게 뒤흔들진 않았지만 '나'는 기억이 중요하고 그런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해줄 다른 무언가, 이를테면 "웹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사진들은 남아 있"는 그런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아마 덤덤하게 끝난 이 이야기가 시시할지 몰라도, 우리 주변에 어딘가에 있을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언젠가 만날 "장엄한 풍경" 같은 거나 "동네 사람 모두가 동시에 날아올라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소설" 같은 사연이 내게 닥쳐와도 괜찮아 하는 '나'처럼, 이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하루라고 여기는 '나'와 당신처럼. 재밌게 읽었고 남명현 PD 님의 말처럼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것이 분명한 이야기 같다. 뻔뻔하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스러운 베레모 쓴 소녀가 새로운 챕터를 넘길 때마다 따라왔듯이 뭉근하게 끓여 먹는 스프처럼 내 머릿속에서 느리게 사라질 이야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