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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시인의 산문집을 보고 다시 찾아 읽은 시집이다. 사둔 지 꽤 오래 되었을 테니, 분명히 몇 번 보았을 것이고, 그러면 낯익은 뭔가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제목말고는 기억에 새롭다.(이럴 때는 내 한심한 기억력이 다소 도움이 된다.)
작가의 산문을 못 보았더라면 몰랐을 시적 배경들, 시인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시들, 내게는 산문집과 시집이 묶이면서 이해의 폭 혹은 잔잔한 감동을 넓혀 주었다. 알아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바로 그 경험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한다면, 이 시집의 시들은 전체적으로 나를 끌어당긴 편은 못된다. 그렇다면 나는 지난 날, 왜 이 시집을 구해 놓았던 것일까. 그때는 그때대로 무언가에 이끌려 이 시집을 사서 읽었을 텐데, 아무 메모도 남아 있는 게 없고, 작가의 이름에 그냥 한 권?
마치 새로 산 것처럼 읽고 메모를 해 보았다. 그러던 중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시를 향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 나에게는 시 한 구절에 위로를 받을 자리가 남아 있구나. 나이 들어가는 만큼 삭막해지지는 않았구나. 시집을 펼쳐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니, 괜찮다, 정말 다행이다 하면서.
고즈넉한 풍경에 머물러 있는 시인의 눈을 나도 정말 따라잡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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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권이 넘는 시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책을 매장 책장에 '전시'해둬서 정작 주말에 집에 있으면서 읽을 시집 한권이 없던 시간.
다른 사람이 짐 정리하다가 전공서적과 함께 끼어들어온 황동규 시인의 '몰운대行'이라는 책을 읽었다.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었을지 잘 알기에 다른것도 아니고 시집을 읽고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역시나 나는 별로 황동규와 맞지 않는다.
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의 아들. 문학도로서 가장 좋은 배경을 가지고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자라온 작가. 그의 시에는 왠지 '뜨거움'이 없다.
즐거운 편지나, 조그만 사랑노래등에서 표현되는것처럼 아기자기한 글재주는 있을지언정 뜨거운 피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책의 본문중 "시인은 어렵게 살아야"라는 제목의 연작시가 3편이나 있지만 그 또한 내용상 꼭 그렇게 어렵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언어적 감수성에서는 물려받은 피가 있는지라 무시할수 없는 능력을 갖지만 다른 시들에 비해서 시의 주요 배경들이 개인의 여행이나 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강해서 일반 독자들과 공감대형성에는 성공하지 못하는듯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온전히 내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전체적인 별점으로는 3개 반정도...
책 본문의 시보다 1994년에 재발행하면서 적은 서문을 옮겨본다 "책상위에 있는 지구의의 기울어진 각도가 지구의 기울어진 각도만큼 마음쓰이게 한다" 1994년 8월 서문 전문 |
| 아직까지도 가장 가슴이 아픈 이야기 중에 하나로 남아 있는 '소나기'의 저자 황순원님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지금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자, 한국 문학계의 대들보이다. 나는 처음 이 시인의 엘리트 정신이 좋았다. 그의 배부른 유학길 이야기나 등따신 방황 이야기가 좋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우리 나라 시인들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에는 불만이 있다. 그렇게 배부르고, 무난한 사람은 진정한 시인의 눈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인은 배가 고파야 한다. 항상 부풀어 오르는 성기를 붙잡고 사투를 해야 한다. 나는 오로지 시적 기술 하나만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을 진정한 시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시는 터져 나오는 영감을 시적 기술로 다듬어 주는 정도여야 한다. 최근에 시인들이 갈수록 보수적이 되어가고, 스님이나 도인이 되어가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황동규님의 시적 기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시를 읽으면 알 수 있다. 다만 그 안에 동물적 본능 같은 투지가 느껴지지 않아 나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이 시집 안에 내가 좋아하는 시가 몇편있다. 비린 사랑 노래4, 브롱스 가는 길, 외지에서 3(맨뒤 서평부분에 있다)..등등..따뜻한 시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