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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망이 있다”는 제목 속에 무언가 힘들고 어려운 고통과 아픔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제목 속에 ‘가정을 세우는 룻기 복음’이라는 부제를 달아 놓았다. 저자가 책에 대한 부제를 이렇게 정한 이유는 나오미의 실패한 가정을 하나님이 어떻게 성공적인 가정으로 세워주시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통한 나오미 가정의 구원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책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장은 엘리멜렉의 가정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해석의 실패이며, 2장에서는 모압으로 이주했던 나오미의 가정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오직 세 명의 과부만 남은 상황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잃어버린 것이 아닌 남은 것에 초점을 둔다. 3장으로 넘어가면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고백이 원망이 아니라 간증임을 말하면서 새로운 출발은 고백으로부터 시작하며, 4장에서는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 우연으로 가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다. 또 5장에서는 하나님의 가치기준을 가진 사람은 보아스이며, 6장에서 이러한 보아스로부터 룻과 나오미가 환대를 받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7장에서는 룻에게 신랑을 찾아주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나오미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보게 되고, 8장에서 보아스와 룻은 모두 헤세드를 소유한 성숙한 성품의 사람이며 결국 믿음의 가문은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9장으로 넘어가면 보아스가 룻에게 행한 긍휼을 나오미가 보면서 보아스에게 확신을 가지게 되고, 10장에서 룻을 책임지려는 보아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웃에 대한 책임임을 말한다. 11장으로 가면 보아스와 나오미가 어떻게 인생역전을 이루었는지를 말하는데, 결국 종으로 태어난 ‘오벳’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한 가정의 구속자가 되고, 그의 후손인 다윗을 통해서 한 나라의 구속자가 되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통해서 온 땅이 구속된다. 마지막 12장에서는 룻기에 나타난 나오미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을 통해서 나오미의 가정이 다시 세워지게 되는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만날때 진정한 인생역전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룻기를 통해서 복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룻기는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떡집’에 떡이 없어서 떡을 찾아 모압으로 갔지만 떡이 더 없는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자 다시 떡을 찾아 베들레헴으로 올라와서 어떻게 떡을 찾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룻기 이야기가 단순한 떡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즉 룻기 속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어떻게 한 가정을 세워가는가를 살펴보면서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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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문학의 정수, 룻기를 다시 읽다] (독서후기) 이인호의 <그래도 소망이 있다>를 읽고 ![]()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간 한 가정의 이야기. 10년 사이에 남자들이 그곳에서 다 죽는 바람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만 남은 상황. 다시 가나안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이 들려와 그래도 고향인 그곳으로 떠나려는 시어머니. 과부가 되어버린 며느리 둘을 차마 다 데리고 갈 수 없어,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고 기회를 준다. 한 명은 울며 그곳에 남고, 한 명은 기도하며 시어머니를 붙좇아 자신에게는 이방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성경 룻기다. 유대인들이 살던 가나안 입장에서는 나오미의 며느리지만 같이 상종해서는 안 되는 이방 여인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고, 모압 여인 룻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유대인들이 사는 이방 지역인 가나안 땅으로,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유형의 땅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둘 다 서로에게는 이방인인 것이다. 가정의 달 오월이 되면 교회에서 목사님의 단골 설교 메뉴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는 착한 며느리 룻에 대한 이야기다. 떨어진 이삭 낱알을 주워 생계를 연명하려는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들어가고, 보아스는 마침 우연히 그때 베들레헴에서 돌아와 룻을 보게 된다. ‘우연’과 ‘마침’도 설교 시간에 자주 들어본 터였다. 그래서, 홀리원북에서 이인호 목사님의 룻기복음 <그래도 소망이 있다>라는 서평단 모집 글이 올라왔을 때,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내가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인지라, 얼른 손을 들었을 뿐이다. 어떤 책을 읽어도 내게 손해를 주는 책은 없으니까. 내가 미처 몰랐거나,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니까. 내가 책을 읽으면서 교만하지 않고 마음을 충분히 내려놓는다면 어떤 책이라도 내게는 스승이 될 것이니까. 책 표지가 처연했다. 아마 룻일 것이다.(룻이 아니라면 나오미여야 하는데, 룻기복음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나이로 봐서도 룻일 가능성이 높다.) 풀들이 무성한 곳에서 어딘지 모를 저 멀리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뒤쪽 측면에서 그녀를 잡고 있기 때문에 룻의 표정은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주는 정서가 있다. 책 제목과 함께 어우러지는 정서. <그래도 소망이 있다>라는 말은, 현재로서는 소망이 한 톨 수준도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없지만, 어떻게든 찾아보면 저 쇼파 구석에서, 책장 아래 먼지 가득한 곳에서 소망 한 톨 찾아낼 수 있지 않겠니?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가보자, 찾아보자, 하는 그런 정서다. 그렇지만 역시 표지가 주는 정서는 아득함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 어디에 가나안이라는 이방 땅이 존재할 것이다. 룻은 자신이 정겹게 살던 모압 땅을 떠나 시어머니를 따라 이방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 남편도 없고 가족이라고 기댈 시어머니는 늙어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고 돈도 한 푼 없는 신세다. 어디 기댈 어깨조차도 없는 그런 곳으로 나오미를 따라 룻은 기어코 이방의 땅으로 들어간다. 예수님조차 이방 여인에게 '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런 구분이 훨씬 강했던 사사 시대에 그녀는 생계를 위해 타작마당에서 타작을 하고 떨어진 낱알을 주워 모아 시어머니에게 가져다는 생활을 한다. 마치 요즘 폐지를 주워서 고물상에 팔아 하루 3천원으로 생활해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빈궁한 삶이다. 여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고 어떤 소망이 있을까. 소망을 기대할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삶이다. 룻기는 총 4장으로 구성된 아주 짧은 성경이다. 이인호 작가는 이 짧은 이야기를 가지고 낱낱이 분해하여 깊고 어두운 곳까지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혼자 읽었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할 생명의 복음을 끄집어 낸다. 시원한 생명의 우물을 길어 올리듯이 룻기 복음의 정수를 캐냈다. 바로 환대 문학이다. 작가가 1장부터 6장까지 꼼꼼하게 룻기를 추적하며 따라 나선 흔적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좋은 글들이 많아 밑줄을 긋고 스티커를 붙이며 읽느라 속도가 느려졌다. 그 좋은 글귀들을 여기에 다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다 후반으로 접어드는 4장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설레는 마음이 되어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설교 시간마다 늘 들었던 ‘우연’과 ‘마침’이었는데, 그날 ‘마침’ 아침에 말씀을 읽고 묵상한 큐티가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의 물꼬를 튼 ‘보자기 환상과 고넬료 백부장집 방문’ 이야기였다. <그래도 소망이 있다>의 ‘우연과 마침’을 읽고는 우연히 마침 큐티를 하면서 <환대문학>을 접하게 된다. 이방인과는 밥도 같이 먹지 않던 시대에 베드로에게 찾아온 위기이자 기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자신을 데리러 온 이방인에게 ‘알았으니 돌아가시오. 내가 찾아가리다.’ 하지 않고 그들을 집에서 하룻밤 머물며 잠자게 한다. 이방인들을 환대한 것이다. 베드로 역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서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이방 여인 룻에게 일터가 생겼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자신을 환대하는 공동체를 얻은 것이요, 베들레헴에 설 땅을 얻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아스는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 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보아스는 참으로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가 있기에 룻의 사랑과 믿음이 피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환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낯선 성도가 찾아올 때 기쁘게 맞아 주고, 그가 이 공동체 안에 한 식구로 받아들여지도록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다락방 안에서 환영하여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는 참으로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88쪽) 저자는 말한다. 우리 교회들은 환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낯선 성도가 찾아왔을 때 기쁘게 맞아주고 공동체 안에 한 식구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위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사실 지금 우리 교회에 딱 필요한 말씀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저녁에 아내와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교회가 낯선 사람들을 환대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환대하는 교회가 어려운 이유는 첫 발을 들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성격은 어떤지, 이단 사람은 아닌지,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 교도소에 있다 나온 사람은 아닌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환대해야 하는데 있다. 요즘 세상이 워낙 무섭기 때문이다. 예전 분리 개척하기 전 큰 교회에서도 대낮에 강도가 들었고, 낮에 술취한 사람이 고함을 치면서 난동을 부려서 경찰을 부른 적이 있었다. 교회라고 해서 무조건 환대만 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우리 교회는 개척교회여서 성도가 많지 않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교회 예배실은 1층에 있디. 길쪽에서 문을 열면 바로 예배 공간이 나온다. 중간에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로비 같은 것이 없다. 수요 예배를 목사님과 드리고 있는데(목사님 내외와 우리 내외밖에 없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모르는 사람이 쑥 들어왔다. 예배 중이라고 말을 하고 같이 예배 드리자고 하니 서먹해하거나 어색해하는 표정이나 거절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자기가 어제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을 때 모두 움찔했다. 어릴 때 교회에 다녔는데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 왔다고 했다. 잘 곳이 없다고 했다. 오늘 하룻밤 잘 수만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겉으로는 예배를 드렸지만 속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답을 구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환대할 수가 없었다. 목사님에게는 어린 딸 세 명이 있었고 (그 남자가 무슨 해코지를 하지는 않겠지만 사모님은 매우 불안해 했다. 예전에 그런 경험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면 우리는 그 부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춥고 더러운 교회 바닥에서 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 큰 딸만 있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치고, 급히 현금을 구해서 택시비로 주며 찜질방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보내드렸다. 우리는 그런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분을 환대하고 우리의 공동체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어제 출소했으니 더 영적인 메마름이 있었을 것인데, 우리는 그를 잡지 않았다.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레미제라블 같은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설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제 출소한 그 사람을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보낼 것인가에만 신경이 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분 생각이 났고, 또 지금 성도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나오지 않고 있는 한 성도님이 떠올랐다. 우리 교회에는 지금 환대가 필요한 상태다. 정서적인 환대, 물질적인 환대, 감정적인 환대. 그 모든 것이 절실하다. "이 말씀의 원리를 신약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돌봐야 할 첫 순위는 교회 안 성도임을 알 수 있다. (91쪽) 그런데 성경은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녀가 식탁 공동체에 초대받은 것이다. 이는 낯선 동네, 이방인은 부정하고 차별하는 그 동네에서 경험하는 엄청난 환대였다. (108) 둘째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낭비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향해 달려와 입을 맞추고 안아주며 환대하고 잔치를 벌였다. 자격 없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열렬한 환대, 이것이 구원이다." (109) 환대가 바로 구원이었다. 내가 바로 하나님께 열렬한 환대를 받은 자였다. 하나님의 결혼잔치에 신부로 초대되어 환대를 받은 자였다. 환대는 자격 없는 자를 향한열렬한 마중이다. 환대는 신발을 신을 수조차 없이 뛰어나가 껴안는 반가움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바로 그런 것이다. 환대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버선발로 뛰어 나와 껴안아 주시는 것. 저자는 물론 이 책에서 다양한 것들을 찾아내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돕는다. 긍휼, 텅 빈 손, 고통과 절망에서 빚어내는 룻기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새롭게 구성되어 거룩하고 아름다운 가문으로 세워지는 가정, 룻과 보아스에서 연결되는 다윗과 예수님의 탄생까지. 짧은 4장의 성경에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과 다루어야 할 것들은 실로 무진장 많았다.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저자는 존스토트의 말을 몇 번 인용했다. 나 역시 지금 <존 스토트, 진정한 기독교>라는 책을 읽고 있던 터여서 그의 인용 글들이 반가웠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것이 죄의 본질이라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대신한 것이 구원의 본질이다. 오로지 하나님이 계셔야 마땅한 자리에 우리를 앉히시려고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친히 들어가셨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242) 또 저자는 이 책을 빌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내 인생의 룻은 내 아내이다. 아내가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확실한 긍휼의 증거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신다." (235쪽) 그렇다면 나도 이 후기를 빌어 내 아내 얘기를 해야겠다. 내 인생의 룻도 내 아내이다. 오늘 감기몸살로 힘없이 출근한 아내. 아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아내를 통해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축 처져서 아무런 웃음도 짓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미안한 오늘이다. 그저 빨리 다시 좋아지기만 기도할 뿐이다. 원래 독서는 또 다른 독서를 하게 만든다. 이것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할 것인데, 대개 저자는 한두 권의 다른 책을 인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인용하는 책들을 적어 놓았다가 기어코 그 책을 구입해 읽고 만다. ![]() 이 책에서는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가 언급되었다. <팬인가 제자인가>는 몇 년 전 교회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인데 실천적 믿음에 있어서 큰 충격을 받았던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책 <수용소 군도>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수용소 군도>를 펼쳐 들었다. 러시아 수용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낱낱이 해부한 그의 책. 넘기기가 쉽지 않지만 아픈 마음으로 읽고 있다. 이어령 교수님은 내가 워낙 존경하는 분이어서 그분 책을 다 수집하고 있는 중인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너무 유명한 책이어서 아직 손대지 못했다. <수용소 군도>를 마치면 넘어갈 것이다. 4장의 룻기를 이렇게 멋진 책으로 적어주신 이인호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출판사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환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다. "감독의 자격 중 하나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다. 나누고 섬기기 좋아하는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환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정말 좋은 사회는 낯선 사람이 잘 정착하도록 돕는 사회이다. 좋은 교회는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교회이다. 다문화인이나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환대하는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이다." (113) 이 말씀을 가슴에 꼭 새기고 환대를 잘하는 사람, 환대를잘 하는 교회가 되도록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물질을 구해야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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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의 소망을 모두 잃은 것 같은 인생에서 룻의 희생으로 시어머니를 긍휼히 여기고 보아스가 품어주어 해피엔딩으로 끝난듯한 룻기의 이야기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인호목사님의 통찰과 깊은 묵상으로 마치 룻의 이웃이 되어 그녀의 삶 깊숙히 들어가 그녀의 지혜로움과 인애를 제대로 맛보게 하는 시간을 주는 책입니다. 이인호목사님의 타도서에서 느꼈던 목사님 특유의 말씀에서 말씀으로 이어지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