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부터 반해버린 배리 존스버그가 쓴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입니다 이 책은 호주의 인디북어워즈에서 최고의 청소년소설 최종후보까지 오른 책인데요 10대 청소년들이 읽으면 참 좋은 내용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와 인간을 해칠 수 있는 기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고 사회문제등에 대해서도 고민 해 보기도 하는데요 공상과학소설이나 이런 소재를 좋아한다면 이 내용은 더욱 더 좋아할 거예요 ![]() 요즘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피부로도 느끼고 있는데 그런 이상기후가 이 소설에도 나옵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나라의 지혀에까지 변하고 식량은 부족해지고 인류는 큰 위기를 겪지요 그리고 미래사회를 다룬 영화에서 본 것처럼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현상은 심각해지지요 ![]() 주인공 애슐리와 에이든은 쌍둥이로 같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요 그들은 특권층입니다 쌍둥이는 12살의 나이에 입학을 하는데 그 전에는 홈스쿨링을 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애슐리의 시점으로 이루어집니다 ![]() 쌍둥이동생 에이든은 그녀에게 정말 든든한 동생이었는데요 우연히 가게된 우범지대에 가게되고 사고가 생긴 애슐리를 동생이 구하게 됩니다 애슐리를 구하면서 에이든은 급류에 휩쓸리게 되는데 에이든이 발견되고 큰 수술까지 하게 되요 사고 후 달라진 에이든... 애슐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고.... 비밀이 밝혀지게 되요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요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저 또한 순식간에 읽었네요 이상기온이라든지 과학의 발전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요즘들어 느끼고 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이도 공상과학소설을 좋아하고 미래사회를 다룬 영화들도 즐겨보는데 정말 흥미롭게 읽더라구요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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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이 큰아이와 겹쳐 보입니다. 10대 소녀의 풋풋함을, 동시에 까칠함을 보여주는 사춘기 소녀, 애슐리와 큰아이가 왜 이리 겹쳐 보이는지 ^^ 사춘기 아이들을 생각하며 읽은 책입니다. ![]() ![]() ![]() 폭풍우가 치는 밤, 6년 전 이야기입니다. 남동생 에이든, 누나 애슐리 둘은 일란성쌍둥이입니다. 응? 일란성쌍둥이라고? "너희는 일란성쌍둥이야" "에이든 , 넌 애슐리가 넘어지면 붙잡아 줄 수 있게 언제든 애슐리 옆을 지켜야 해." 누나를 지켜달라는 엄마의 진지한 이야기도 일란성쌍둥이란 이야기도 어쩐지 마음에 걸립니다. 6년 후 두 아이는 좋은 환경의 학교로 전학을 갔고 애슐리를 유독 따르는 에이든 때문에 누나 애슐리는 무척 성가십니다. 12살 소녀에게 같은 나이 남동생의 존재가 귀찮을 법하죠. 같은 학교 같은 반 집에서도 둘은 같은 방을 쓰니 답답했을 애슐리입니다. 애슐리는 다소 철없는 모습입니다. 굉장히 부유한 집안환경, 모자란 거 없이 자란 티를 팍팍 내는 애슐리를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 멋대로 행동하긴 하죠) 이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성숙하게 변해갑니다. 이 남매의 이야기는 점점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거기엔 불편한 진실이 있었고 나밖에 모르던 소녀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황폐해진 세상에서도 전혀 타격감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과 온몸으로 버텨내 살아남은 사람들의 처절한 환경은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지만 진짜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은 버텨낸 그들입니다. 환경오염,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철없는 10대에서 성숙하게 커가는 아이의 이야기가 잘 녹여져 있는 소설입니다. 책 한 권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고 10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점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우리 청소년 아이들을 포함해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고 본인의 주관적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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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옆 실험실의 인도에서 온 박사후 연구원이 나에게 사진 한 장을 가져왔다. 나는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자신이 결혼하게 될 여자라며 연신 웃음을 보였다. 나는 얼마동안 그녀와 연애를 했는지를 물었고 그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얼마 후 인도에 다녀올거라는 말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게 말이나 되는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제아무리 부모님이 점찍어 놓은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존재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그 연구원은 아주 상류층에 속한 계급이었으리라. 그의 가족들 대부분이 의사라고 말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같은 계급으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인도민족은 계급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는 직업까지도 거의 세습이 되는 구조이다. 조선시대 우리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계급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계급을 중시하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가. 사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린 여전히 계급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AI에 친숙한 무리 (혹은 AI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무리)와 AI에 의해 끌려가는 무리의 이 계급말이다. 나는 작년 5월 Chat GPT 안정화 버전이 출시되었을 때 확실히 그걸 느꼈다. 여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영원히 끌려다니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 구단을 이긴 알파고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그때 그 대국이후로 단한번의 패배도 인정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 구글은 이미 바둑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얻은 셈이었고 더이상의 대국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좀더 강력한 것이 찾아온 듯하다. 몇 주전 내가 즐겨듣는 방송 EBS 모닝스페셜에서 들은 헤드라인은 AI에 대한 내용이었고 내용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AI 로봇에게 카지노 룰을 알려주고 학습을 시킨 후 실제 게임에 투입한 결과 당연지사 AI 로봇이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서 AI 로봇의 승리가 이 뉴스의 골자는 아니었다. AI 로봇은 카지노 게임을 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거짓말'을 했다. 그것이 그 뉴스의 핵심 포인트였다. 나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는 바로 이런 부분을 제대로 캐치하고 있는 소설이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성인인 내가 보기에도 아주 흥미로웠다. 책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정독을 해버렸으니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아마 내가 중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과학 선생님이라면 (아니 어떤 교과목의 교사라할지라도) 이 책을 가지고 여러 방면으로 토론수업을 진행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정말 다양한 문제거리로 앓고 있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는 우리의 먹을거리를 위협한다. 더운 기온에서 살지 못하는 생물종들은 이미 상당부분 사라졌다. 먹을 것이 없는데 인구 수가 너무 많다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마치 전래동화 놀부전에 나오는 흥부의 집이 연상되지 않는가.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언젠가부터 시행되었던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도 일리는 있다. (기온의 상승은 단지 식량부족으로만 연결되지는 않는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너무 힘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들로 이어진다.)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대체식량을 만들어내고 좀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AI를 개발해 낸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이 아름다운 결말로만 귀결된다고 생각하는가. 소설이긴 하지만 나는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에서 보여주는 것이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카지노를 하면서 AI 로봇이 허세를 부리고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 않나! 작년에 나는 국제백신연구소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전세계적으로 백신이 얼마나 많이 개발되고 있는지 현황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 많은 백신이 어디로 공급되는지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은 백신이 모두 어디로 가는지 아는가. 백신 개발사들은 백신의 가격을 있는대로 높이 책정하고 그 높은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국가에서 그 백신을 대부분 가져가버린다. 나는 그 보고서를 읽고 너무나 놀랐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백신시장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다양한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이다.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할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 일란성 쌍둥이인 쫑쫑은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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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주 인디북어워즈 최고의 청소년소설 최종 후보로 올랐으며~ 호주아동도서협의회인 CBCA의 주목할 만한 올해의 책으로 뽑힌 책 배리 존스버그의 [Catch me if I fall]의 천미나 번역가에 의해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줘]를 읽게 되었다. 324쪽으로 된 미래의 이야기로 삽화하나 없지만 책을 잡고 나서 순식간에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가졌다. 표지만 봐서는 해맑은 청소년소설이라고 느껴졌고~ 제목에서도 혹여나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삶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 책은 미래의 파괴된 지구의 고갈된 식량의 자원을 가지고 추방되고 지금보다 더 격차가 벌어진 최악의 인간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도로 발전된 기술력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인 나에게는 주인공인 애슐리와 에이든의 이야기가 더 깊이 들어왔다. 과연 얼마나 먼 미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현실에서 인공지능 AI를 통한 수많은 기술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영어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통역이되는 기술도 핸드폰에 적용되어 실용화 되고 있는 2024년에 살고 있다. 과연 기하급수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인간의 기술력이 정점에 도달할 일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 속에서는 미래라는 배경 속에 인간의 빈부의 격차는 더 커져보였다. 그리고 최상위층의 특권을 누리는 두쌍둥이와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중간층이 있다. 그리고 어느 보호도 받지 못하는 최악의 자연환경속에 살아가야하는 최하층이 존재한다. 크게 세분류로 나뉘어지는데 과연 이렇게 극심한 인간계층이 생길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먼 미래.. 아니 가까운 미래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인류~ 그리고 이야기 속의 미래의 세대의 주인공인 애슐리와 에이든의 쌍둥이! 먹는 것을 줄여 조금이라도 더 자연환경 파괴를 막기위해 산하제한이 있는 미래에서는 쌍둥이가 아니고서는 한가정당 하나의 아이만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육류의 섭취는 허용이 되지 않는다. 육류의 자원이 되는 동물을 키우기 위해 많은 자연환경이 파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려진 최하층민들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고 동물을 키운다. 이야기 속의 세가지의 계층이 확연히 구분되고 그 속에서 차별이 느껴진다. 최상층은 물론 스스로 부를 축적하고 누리고~ 중간층은 노동의 강도가 매우 세고 힘들다. 그리고 최하층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추방되어 떠돌이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상층 중에서도 최상층인 쌍둥이의 학교생활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하 문제,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인간의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것이 맞을까하는 많은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나보다 미래를 더 오래 살아야하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의식을 갖을 수 있는 10대라면 이 책의 많은 논제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이야기 끝을 향해 갈 수록 애슐리와 에이든의 가족의 갈등과 해결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윌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이라는 영화속에서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다룬다. 그 속에서 인류를 적으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로봇들과 싸우는 윌스미스가 굉장히 인상적이였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결국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인간이 지구에 유해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면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애슐리의 쌍둥이 동생도 엄마가 혼자 자라게 될 딸을 위해 쌍둥이 동생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만들어서 벌어진 이야기였다. 쌍둥이들이 학교에서 캠프를 갔는데 그 곳에서 카약을 타다가 돌풍에 의해 급류에 휩쓸렸다. 애슐리를 지키기 위해 에이든은 머리를 다치고 이 후로 모범생인 에이든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에이든은 언제나 누나 애슐리를 위해 존재했었는데~ 하지만 에이든의 이상행동과 함께 애슐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엄마는 작동을 멈추려 한다~ 처음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로 속도감이 빠르게 읽어져 내려갔다. 그래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복잡해서 나 조차도 다 이해가 안 돼. 하지만 미래는 밝아. 왜냐하면 내가 미래를 밝게 만들거고, 난 그렇게 할 수가 있으니까. 빈곤도, 불필요한 죽음도, 식량부족도 없을 거고, 인류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게 적합한 기후가 될 거야. 나를 믿어, 누나. 살아 있다는게 신나는 시간이 될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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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익숙해진, AI가 인간을 따라잡고 있는 이 시대.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복제인간이 생길 수 있는 이 시대에서 복제인간이 우리 인간의 인간다움인 ‘감정’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고 믿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책에서 에이든은 사실 복제인간이었다. 하지만 복제인간 에이든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서운함, 기쁨, 힘듦 같은 감정을 말이다. 그렇다면 AI는 감정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감정은 인간만의 특별한 것이라며 절대로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AI는 점점 발전한다. 그렇다면 결국 따라 잡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AI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일까?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인간다움은 ‘실수로 인한 성장’이다.
인간은 실수를 하며 성장을 하는 생물이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AI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리고 AI는 미래를 향할수록 실수는 잦아들고 더욱 완벽해진다. AI가 실수를 해도 성장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를 할수록 성장하고 더욱 완벽해진다. 즉, 완벽까지의 과정이 있고 완벽함을 얻어도 불완전하다. 하지만 AI도 실수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새로운 에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다움은 실수가 아닌, 실수로 인한 ‘성장’이다.
실수로 인한 성장이라지만 결국은 실수가 있다. 그렇기에 AI와 비교하면 무엇이 좋을까 싶지만, 나는 실수는 곧 도전적이기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그저 틀에 갇혀있다. 하지만 인간은 깨부수고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도전적이기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실패하는 과정. 인간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장하고를 반복해서 결국 AI도 발명해 냈다. 그렇기에 인간의 실수는 AI의 완벽보다 더 값지다 생각한다.
인간다움은 인간이 실수하고, 실수하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성장하는 것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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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푸른색 표지가 눈에 확~!!들어왔어요. 무더운 여름 시원함이 느껴지듯이~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줘>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의 이야기인데 정말 상상만해도 무울것 같은 복제인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이만한 단어와 주제도 없는 듯 해요. 중딩인 첫찌가 요즘 평행선과 복제인간 등 과학에 관심을 보여 청소년소설로 나무생각 출판사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답니다. 부자집에서 태어난 애쉬와 에이든 일란성 쌍둥이 아이들은 최고의 학교로 등교하게 된답니다. 둘은 사이가 좋았지요. 그런데 점점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둘은 점차 멀어져간답니다. 과연 복제인간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 책을 읽다 보니 알았습니다. 에이든이 사람이 아니라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런데 부모들은 왜 복제인간을 만들었을까요? 이야기는 애슐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어느날 세상이 엉망이 되고 숨겨진 모든 비밀이 드러납니다. 또 환경오염으로 이상기온이 계속되면서 긴장감은 더 빠르게 전개되는데.. 과학소설로 가볍게 시작한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줘 >는 우리의 미래에 있어 이상기온을 깊이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 도서였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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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의식이 있는 10대라면 이 책으로 토론을 할 수 있고, 호주에서 최고의 책으로 손꼽혔다는만큼, 심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 이야기가 담겼어요. 최상위 계급인 특권층에 태어난 애쉬와 에이든. 쌍둥이 남매인 그들의 세상이 어느날 통째로 뒤집히는데... 남매는 서로 지켜줘야 하는 법이니까, 애쉬는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냅니다. 도시가 물에 잠기고 전기공급도 차단된 미래. 혹독한 환경이지만 그 와중에도 운좋은 특권층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캠프에서 만난 돌풍은 그들의 모든걸 바꾸기 시작합니다.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고, 그만큼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더 인간적이고 더 희망적인 미래를 찾아보게 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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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 ![]() 청소년도서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는 복제인간과 사람과의 공존을 그린 영화가 생각나는도서랍니다. 이 도서에서도 복제인간이 나온답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복제인간이에요. ![]() 애쉬와 에이든은 일란성 쌍둥이로 살사는 최상위 계급인 특권층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되지만 최고의 학교로 쌍둥이인 애쉬와 에이든이 등교하면서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답니다. 집에서는 잘 지내선 애쉬와 애이든이지만 학교에 등교하면서부터는 자신만 바라보고 손을 잡으려는 애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 조금씩 멀리하게 되고, 그들에게 일상이 달라지는 사고가 난답니다. 에이든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애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서서히 우리에게 고민과 질문을 던진답니다. ![]() 파괴된 지구, 고갈된 식량, 추방된 사람들 특권층을 제외한 인류 대다수가 거리를 떠돌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 이야기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를 권해드립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무생각 #베리존스버그지음 #천미나옮김 #내가떨어지면나를잡아줘 #복제인간 #청소년도서 #초등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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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탁 트이게 해주는 선명한 파란색의 하늘과 그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은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낄수있는데요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질 것 같은 예쁜 표지의 이책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이상기후로인해 결국 나라의 지형이 변하고 식량이 부족해지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은 물론 인간들도 사망하게 된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12살의 애슐리는 에이든과 쌍둥이로 오랜 홈스쿨을 마치고 학교에 같이 입학을 했습니다 일로 바쁜 엄마와 집에서 애슐리와 에이든의 생활을 보살피는 아빠 이렇게 4명의 가족으로 이루어져있던 세상이 학교를 통해 넓어지며 애슐리는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학년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캠프에도 가게 되는데요 새롭고 즐거운 체험을 하던중 돌발적인 사건으로 애슐리가 위험에 처하고 에이든은 애슐리를 구해냅니다 상처는 금방 회복이 되었지만 어딘가 달라져버린 에이든으로 인해 애슐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에이든의 변화에 대해 엄마가 전해주는 진실은 충격적이기까지합니다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이 반쪽짜리일뿐만아니라 올바른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깨달음과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고민하는 애슐리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지구상에서의 공존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를 생각해보게하는데요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다우며 현실적인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남겨줍니다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은후에 쓴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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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을 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목차에 스포가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마 소개글을 읽지 않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같다. 초반부에는 단순하게 남매가 학교에 전학 가는 이야기가 조금 길게 이어져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의 메인 주제를 모르고 봤다면 더 재밌고 놀랍게 다가왔을 듯하다. 특히, 최대 반전은 말이다. 그러니 스포 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뒤로 가야 한다!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가 디스토피아 세상 속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아가는 두 남매의 이야기라는 점만 알고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다음부터 스포주의.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인상 깊은 구절도 많았다. 재미있기도 해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
에이든과 에쉬는 쌍둥이 남매이다. 그들은 멸망한 세상 속 부자이기에 식수, 식량, 전기.. 모든 것이 부족한 곳에서도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산다. 세상이 그렇게 부족하다는 것도 어쩌면 모른 채 살아간다. 불편한 것은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경비하는 이들은 말한다. "그건 옳지 않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이 능력이 있어 돈을 많이 벌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굶주릴 때 먹을 것으로 사치하며 놀고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는 게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옳지 못한 일일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약, 저 멀리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에게 "햄버거는 먹지마. 그건 사치야" 라고 말한다면 누가 과연 아, 그렇구나. 하고 반성할까.
그래서 처음에 에쉬와 그녀의 친구는 그들을 나쁘게 본다. 어쨌든 그들의 부모는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돈을 주는 이였고. 그러니 누리는 것들에 대해 이들이 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불편한 현실이면서 또 맞는 말이기도 하다. ![]()
이에 대하여 메레디스 선생님은 거미줄에 비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단순하게 힘을 지녔다는 것만으로 쉽게 거미줄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그 역시 맞는 말. 누구의 입장도 다 이해가 가고 맞기에 더 뭐가 정답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다. 책 내지에 거미줄 무늬가 왜 있나, 했더니. 소설에서 꽤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발생한다. 에쉬가 캠프에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그것을 에이든이 필사적으로 구해내지만, 오히려 그러다가 자신이 죽을 정도로 다치게 된다. 다행히 에이든은 수술을 받게 되지만, 그 후부터 무언가 달라진 듯하다. 이전의 에이든은 자신의 누나인 에쉬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수영 시합에서 이길 수 있으면서도 이기지 않고 양보해주고. 어디든 같이 가려 하고, 누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던졌다. 누나의 잘못마저 자신의 것으로 감싸준다. 과연 어느 사춘기 남매가 그럴까. 하지만, 사고 이후 에이든은 달라졌다. 그 사고 후 에이든이 훨씬 다쳤지만, 부모님은 모두 에쉬의 병실에 모여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에쉬는 물었다.
그 말이 조금 소름 돋았다.
사고 후 변한 에이든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누나를 구한 일을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일이고 누나를 사랑하지만, 에이든의 말도 맞다. 누나만을 위해 사는 일. 그리고 그렇게 강요하는 부모. 정상은 아니다.
두 사람의 생일 날 어머니가 선물한 로봇 개. 조로는 완전히 개처럼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개는 아니다. 또 로봇이라고 하지만, 개와 기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조로는 에이든을 닮았다. 모든 걸 알게 된 후에 에쉬는 변함 없이 에이든을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에이든 역시도 에쉬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
어머니는 에이든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자아와 주체를 지니고 생각하게 되었기에 자신이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해를 끼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이든을 죽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죽인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단순히 종료할 뿐이라고 하는데... 정말 누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에이든은 인간이나 누나를 해치는 것이 아닌 그녀를 살리기 위하여 인류를 구해보겠다고 말한다. 매우 감동적이었던 대사였다. ㅠ.ㅠ 결국, 에이든은 죽는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죽은 것은 아니지.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죽은 거였다.ㅠ.ㅠ. 나였으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신체는 죽었지만, 정신은 기계로서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는 인공지능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계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컴퓨터를 통해서 친해진 사람이 알고보니 컴퓨터였을 때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마지막에 신체를 잃게 된 에이든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전에는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행동을 했으나 이제는 그 마저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모습일까? 행동일까? 생각일까? 또, 우리는 기계나 컴퓨터를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인간만 사랑할 수 있을까. 기계나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기계와 동물로서일 뿐이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사랑이 될지.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해 보는 게 가능했다.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에서는 전적으로 거리의 사람들 편을 드는 듯 보였다. 에쉬는 거리의 사람들과 접하게 되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을 지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에쉬가 그들의 삶을 보지 않고 산 것은 맞는다. 하지만, 우리도 비슷하다. 굳이 굶주리는 아이들, 노인의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는다.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 때일 뿐이고 사실 나의 삶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기부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어느 정도 책임을 지고 있다 생각할 뿐. 나의 전재산을 모두 그들에게 줄 정도는 아니다. 작중의 에쉬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절 정도 자신의 기술력을 기부하기도 하고 공짜로 로봇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빈곤과 기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빈곤을 위한 연구를 하면서도 그녀의 집은 그 지역 가장 안전하고 아름답고 커다란 곳이며 그녀의 집 안에는 쓰지도 않는 누군가가 3달이 넘게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의 반지가 잊혀진 채 굴러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나쁘다고만 볼 수 있을까? 그녀가 얻은 것이 그녀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무조건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나누고 얻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만 살아야 할까. 에쉬는 자신이 누린 것에 대하여 미안해 한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굶주린 아이들을 봤다고 할 때. 내가 그간 음식을 남겨왔던 것에 대해 반성할 수는 있지만, 굶주린 아이를 향해 미안함을 느끼는 것일지 생각해 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아이들이 굶주리는 나라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 아니고 나 역시 단순히 굶주리지 않을 수 있는 국가에 태어나 살아갈 뿐임에도 말이다. 이렇듯. <내가 떨어지면 나를 잡아 줘>는 평범한 서민들 위에 있는 특권층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우리 현실과 닮았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는 특권층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매정하고 나쁜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다. 그 구조를 만든 건 내가 아니고 나는 단지 운 좋게 태어나 누리고 있었을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