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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한줄평 : 나와 다름 없는 그, 그는 내 속에 있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메시지가 명확해서 아이들 동화책으로도 많이 편역되어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완역본으로 읽으면서 어른은 역시 어른의 생각으로 이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하이드 씨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를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어른은 결국 그 하이드 씨가 거부하거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자신임을 처절하게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심히 불편하고, 속이 더부룩하고, 하이드 씨가 어떻게 되나, 하는 궁금증보다 어서 빨리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애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는지도 모르겠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를 읽을수록 우리는 작가가 파놓은 자기 내면의 함정 속에 빠져 버린다. 마지막에 지킬 박사조차 통제할 수 없는 하이드 씨의 출현에 아연실색하며, 나는 나를 얼마나 잘 통제하고 있는가, 내 욕망, 내 탐욕, 내 탐심은 과연 내 통제권 안에 있는가,를 심각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럴 수 없는 나라는 걸 잘 알기에, 어른이니까 이제는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임을 알기에. 항간에 인기를 끌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이혼숙려캠프>라는 게 있다. 여기에서 중간에 드라마심리 치료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천사와 악마 역할을 하는 두 연기자가 출연자의 양 옆에서 욕망과 절제를 부추긴다. 결국 자기 마음을 더 주는 녀석이 승리한다. 그것이 천사든 악마든. 악마의 부추김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는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있다. 물론 그것을 악마의 부추김으로 볼 것인가, 내면의 욕망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악마의 부추김 역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다를 바가 없다. 지킬 박사가 만들어 낸 하이드 씨. 바로 자기 자신임에는 틀림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산책하다가 우연히 런던 번화가의 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거리는 좁고 조용한 편이었으나 평일에는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곳 상인들은 다들 잘사는 편인데 모두들 더 잘살고자 아등바등했고, 벌어들인 돈은 외관을 멋들어지게 치장하는 데 썼다. (19) 사람들은 외관을 중시한다. 그래서 옷도 멋지게 차려 입고, 새 신발도 사서 신고, 머리도 비싼 돈을 들여 치장한다. 옷과 신발과 머리에 투자하는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면 꽤 많은 책을 살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책보다는 아직 외모가, 사람들에게 비쳐지고,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더 높은 가치가 있고 우선순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책은 아무리 읽어봤자 겉으로 표가 하나도 안 난다. 외모는 사람들에게 '스티그마(낙인)'을 안긴다. 낙인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다. 긍정적인 것으로는 우선 창세기에서 가인 이마에 새겨진 낙인이 있다. 가인이 동생을 시샘하여 살인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할 때, 하나님이 선의로 베푼 이마의 표를 만들어 주어 살인을 면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의 표식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하는 이중적인 것이긴 하지만 단순 원리로만 따지자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또 하나는 <해리포터>에서 해리포터 이마에 난 가느다란 상처다. 이 상처는 취약한 부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천적 볼드모트로와 겨뤄 살아남은 자라는 승리의 표식이다. 그래서 보기 흉한 외모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와 연대감을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반면 일반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새겨지는 낙인은 매우 부정적이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처럼 흉칙한 외모는 그 자체로 바로 낙인이 된다.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없고 늘 따돌림을 당하는 심각한 자아 불균형의 상태로 이끄는 근원이 된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외모라는 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외면에 풍겨지는 것은 내면이 꽉 차 오르는 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근거 없이 추측해보자면, 인류는 궁극적으로 다양하고 이질적이고 독립적인 개체의 집합체일 뿐이다. 내 경우에는 성격상 어김없이 한 방향으로,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나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즉 본래의 인간성 안에서 철저하고도 근본적인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의식의 영역에서 다투는 두 가지 본성 중 어느 하나를 나라고 한들 틀리지 않는데, 이는 내가 근본적으로 그 둘 다이기 때문이다. (104쪽, 헨리 지킬의 진술) 아무리 옷으로 감추고, 장신구로 나를 빛나게 해도, 정작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부족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외면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티그마를 두려워하는 마음, 다른 사람들과 최소한의 비슷함을 유지하기 위해 아둥바둥 쫓아가는지 모르겠다. 내 직장은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가. 어떤 차를 모는가, 어떤 아파트 브랜드에 사는가. 자녀들은 어떤 직장에 다니는가. 연봉은 얼마 수준인가, 주식으로 돈을 좀 모았는가. 노후 대책은 잘 하고 있는가 같은 것들 속에서 늘 피곤하다. 한쪽 얼굴에서 선이 환하게 빛났다면, 다른 쪽 얼굴에서는 악이 폭넓고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악은 (나는 여전히 악이 인간의 치명적인 면이라고 믿는다) 이 육체에 기형과 타락의 징후를 남겨놓았다. 그럼에도 거울에서 그 추한 형상을 보았을 때 혐오감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웠다. 이 또한 나 자신이므로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 영혼을 눈앞에 생생히 구현한 것 같았다. 여태껏 익숙하게 나라고 여겼던 불완전하고 분열된 얼굴보다 정확하고 꾸밈없는 형체였다. (107) 이제 나를 직면할 때가 왔다. 남은 인생이 얼마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더더욱 조바심을 낸다. 특히 요즘처럼 주식 시장이 활활 불타 오를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열차에 승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금까지 버텨 왔던 나를 내던져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추장이 해가 지기 전까지는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만 자신의 땅으로 인정해준다는 그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바훔은 안타깝게도 힘들게 돌아와 피흘려 죽음으로써 자기 몸뚱아리 하나 누일 무덤밖에는 얻지 못했다. 땅만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던 바훔의 결말은 지킬 박사와 많이 닮았다. 그도 악마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주고 말았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큰 그릇도 결국에는 채워지는 법이다. 내가 악마에게 잠시 선심 쓴 것이 결국 내 영혼의 균형을 파괴하고 말았다. (119) ~~~~~~~~~~~~~~~~~~ 현대지성 출판사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는 이 작품 외에도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다룬 다른 세 작품이 더 있다. 세 작품 모두 하나씩 따로 떼내어 얘기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기가 막힌 작품들이다. <병 속의 악마>는 정말 악마적인 설정이 혀를 내두른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시체도둑>의 인간성은 또 어떠하며, <마크하임>은 또 어떤가. 그들의 존재가, 그들의 본성이 나와 다르다고 거리를 두지 말자. 거리를 최대한 좁히고 책 속으로 다가갈 때, 인물 한 명 한 명이 나와 다를 바 없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깨닫게 될 터이니. 그것으로 작가는 모든 작업을 다 이룬 것이리라. 아,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를 안다고? 누가 나를 알 수 있겠어? 나는 나 자신을 조롱하고 비하하면서 살아왔을 뿐인데, 난 나의 본성을 속이며 살아왔어. 누구나 다 그렇잖아. 사람은 누구나 그가 쓰고 있는 가면보다 나은 존재야. 가면은 점점 커져서 그를 숨막히게 만들지. 사람들은 다들 삶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어. 만약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살 수만 있다면, 그때 그들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영웅이나 성자처럼 환하게 빛날 거라고! " (243쪽, 마크하임 중에서) |
|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를 포함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몇몇 작품을 엮어 낸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뮤지컬로 먼저 접했는데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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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윌리엄 하터렐, 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 저/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 그림/서창렬 역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선집 리뷰입니다 유명한 작품이라 미디어믹스로는 자주 접해봤지만 책으로는 처음읽어보는데요 중간중간 삽화 보는 즐거움도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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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는 선량한 의사지만, 하이드라는 악한 인격에 의해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 두 인격의 충돌과 이중성은 점차 극대화되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악과 선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끝내 끔찍한 비밀이 드러난다. 긴장감 넘치고 심리적으로 강하게 몰입되는 작품이었다. |
| 인간의 이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다룬 대표작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어요. 인간의 이중성, 너무 재밌어 보이는 소재 아닌가요? 책도 아주 재밌었답니다. 삽화도 엄청 많이 첨부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거 같아용. 주석 특수문자 오류가 조금 잇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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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가님과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 윌리엄 하터렐, 아치볼드 스탠디 하트릭 그림 작가님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리뷰입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어떤 내용의 책인지 몰라서 막연하게 읽어봐야지 하다가 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대여했다. 그냥 이중성이 있는 이중인격자로만 알고있었는데, 의식과 무의식, 인간의 선과 악, 이성과 광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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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에서 출판된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입니다. 동 출판사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읽고 도서 리스트가 나쁘지 않은것 같아 한권씩 사 보는 중입니다. 어릴때 아동용 읽어보고 원전은 읽어본적이 없네요. 커서 읽는 같은 소설은 본인의 성장을 느끼게 하는 맛이 있죠. 잘 읽겠습니다. |
| 이 책이 나온지가 언젠데... 울 아이들 세대까지 아직도 필독이다^^ 그리고 지금 읽어보는 아이들도 한 인간에 다른 인격체가 있는 것도 신기해 하면서 내용으로 보여지는 선악의 구조에 빨려들어가 어려워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재미있어 한다. |
|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글쓴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저/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윌리엄 하터렐,아치볼드 스탠디시 하트릭 그림/서창렬 역 출판사 현대지성 작품리뷰입니다. 삽화도 있어서 좋았어요. 단편들의 내용이 강렬해서 많이 기억에 남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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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지킬박사와 하이드 정작 내용은 몰라서 주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중인격, 선과 악, 인간의 내면 현대에 들어서는 흔하게 쓰이는 소재이지만 이 책은 그 소재들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도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