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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가 중원의 나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친교를 한 반면, 고구려는 부여 뿐 아니라 외세와 끊임없이 부딪치고, 정벌하거나 침략당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큰 위협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질이 다르다기보다 관계와 상황에 따른 입장 차이인 것이다. (-35-) 부여에는 독특한 특산물이 많았다.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명마, 적옥, 담비 가죽, 원숭이 가죽, 대추알만 한 아름다운 구슬 드이라고 기술되어 있다.특히 말 기르는 기술이 뛰어나 '부여의 말' 이라 하면 모든 주변국이 탐을 냈다. (-40-) 부여의 관습 중 하나가 '형사취수제(兄死聚嫂制) '다. 부여의 형사취수제는 흉노, 선비, 몽골 등 북방 기마민족의 습속과도 같다.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에까지 남아 행해지던 습속이기도 하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남은 형수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자식까지 거두는 제도로,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초기까지 그 자취가 남아 있다. (-41-) "일전에 천신이 소신에게 강림하여 이르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건국하려 하니 너희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아 도읍할 만하다' 라고 하였나이다." (-74-) 홀본의 국경은 말갈부락과 연접했다.삼국이 건국되던 초기, 나라마다 가장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 말갈의 빈번한 침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갈은 만주 동부 지역과 연해주 일부, 한반도 북부 일대에 거주했던 기마종족이다.계통상 현재의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통구스 계통으로 추정된다. (-119-) 추모는 오이 등 상소를 올린 근신들을 불러들였다. "현명한 아들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종묘사직에 주요한 일이다. 지금의 비류는 어질고 덕이 있으니 내 어지 사사로이 소생을 세울 수 있겠느냐?' 그럼에도 근신들은 계속해서 추모를 부추겼다. (-154-) "아군은 현재 지형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위에서 그들의 상황을 살필 수 있고,원치 않으면 성문을 닫고 싸움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옵니다. 성안에는 먹을 양식이 많고 물도 충분하지만 성 박은 동절기 막바지여서, 벌판에 씨나락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옵니다. 양식을 찾아 쳐들어온 적이옵니다. 그들이 스스로 굶주림에 지쳐 무러날 때까지 퇴각로를 열어놓고 기다리시옵소서. 적이 달아나는 바로 그때 뒤쪽을 치면 아군은 피를 보지 않고도 적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197-)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에,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다. 그 당시 한반도 땅에는 여러 부족국가들이 있었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부족국가들이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 포섭될 수 있었다. 삼국 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시대에서, 소서노의 위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북방 기마민족의 문화적 특성으로, 소서노의 첫째 남편이자 부여왕족 우태에서 태어난 비류와 온조 백제의 시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추모(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며, 드라마 주몽에 나오는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 창업에 힘써왔다. 그러나 우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년 2월 20일) 에 가려져서, 소서노의 업적이나 자료가 거의 현존하지 않는 상태이며, 북방 기마민족, 동부여의 역사 애서 주요한 역할을 소서노가 차지하고 있다. 소서노는 홀본(졸본) 연타발의 딸, 소서노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비류를 백제의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소서노는 비류,온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책 『나는 소서노다』의 참고도서에는 김시습의 『삼국사기』,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 『정사 삼국지 위서』, 『아방경역고』, 『조선상고사』, 『한국 생활사박물관』, 『구비문학』, 『백제서기』, 『백제왕기』, 『고구려사략』 이 추가되어 있으며, 소서노에 대한 역사적인 논문이 다수 나오고 있다. 그만큼 소서노의 존재감에 비해,그녀의 업적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지 않으며, 북방 기마민족 말갈족, 만주족 특유의 남성 중심사회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앞으로, 소서노의 자료는 추가될 것이다. 시대가 앞으로 달라지고 있으며, 나라를 창업한 최초의 여성으로서 소서노의 중추적인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리더로서, 남다른 그릇을 가지고 있는 소서노의 삶과 업적을 대부분,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사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소서노의 역사 뿐만 아니라,인생 전반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앞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면, 드라마 소서노가 방영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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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가 중원의 나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친교를 한 반면, 고구려는 부여 뿐 아니라 외세와 끊임없이 부딪치고, 정벌하거나 침략당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큰 위협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질이 다르다기보다 관계와 상황에 따른 입장 차이인 것이다. (-35-) 부여에는 독특한 특산물이 많았다.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의 대표적인 특산물이 명마, 적옥, 담비 가죽, 원숭이 가죽, 대추알만 한 아름다운 구슬 드이라고 기술되어 있다.특히 말 기르는 기술이 뛰어나 '부여의 말' 이라 하면 모든 주변국이 탐을 냈다. (-40-) 부여의 관습 중 하나가 '형사취수제(兄死聚嫂制) '다. 부여의 형사취수제는 흉노, 선비, 몽골 등 북방 기마민족의 습속과도 같다.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에까지 남아 행해지던 습속이기도 하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남은 형수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자식까지 거두는 제도로,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초기까지 그 자취가 남아 있다. (-41-) "일전에 천신이 소신에게 강림하여 이르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건국하려 하니 너희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아 도읍할 만하다' 라고 하였나이다." (-74-) 홀본의 국경은 말갈부락과 연접했다.삼국이 건국되던 초기, 나라마다 가장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 말갈의 빈번한 침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갈은 만주 동부 지역과 연해주 일부, 한반도 북부 일대에 거주했던 기마종족이다.계통상 현재의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통구스 계통으로 추정된다. (-119-) 추모는 오이 등 상소를 올린 근신들을 불러들였다. "현명한 아들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종묘사직에 주요한 일이다. 지금의 비류는 어질고 덕이 있으니 내 어지 사사로이 소생을 세울 수 있겠느냐?' 그럼에도 근신들은 계속해서 추모를 부추겼다. (-154-) "아군은 현재 지형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위에서 그들의 상황을 살필 수 있고,원치 않으면 성문을 닫고 싸움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옵니다. 성안에는 먹을 양식이 많고 물도 충분하지만 성 박은 동절기 막바지여서, 벌판에 씨나락 한 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옵니다. 양식을 찾아 쳐들어온 적이옵니다. 그들이 스스로 굶주림에 지쳐 무러날 때까지 퇴각로를 열어놓고 기다리시옵소서. 적이 달아나는 바로 그때 뒤쪽을 치면 아군은 피를 보지 않고도 적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197-)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에,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다. 그 당시 한반도 땅에는 여러 부족국가들이 있었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부족국가들이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 포섭될 수 있었다. 삼국 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시대에서, 소서노의 위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북방 기마민족의 문화적 특성으로, 소서노의 첫째 남편이자 부여왕족 우태에서 태어난 비류와 온조 백제의 시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추모(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이며, 드라마 주몽에 나오는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 창업에 힘써왔다. 그러나 우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년 2월 20일) 에 가려져서, 소서노의 업적이나 자료가 거의 현존하지 않는 상태이며, 북방 기마민족, 동부여의 역사 애서 주요한 역할을 소서노가 차지하고 있다. 소서노는 홀본(졸본) 연타발의 딸, 소서노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비류를 백제의 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소서노는 비류,온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책 『나는 소서노다』의 참고도서에는 김시습의 『삼국사기』,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 『정사 삼국지 위서』, 『아방경역고』, 『조선상고사』, 『한국 생활사박물관』, 『구비문학』, 『백제서기』, 『백제왕기』, 『고구려사략』 이 추가되어 있으며, 소서노에 대한 역사적인 논문이 다수 나오고 있다. 그만큼 소서노의 존재감에 비해,그녀의 업적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지 않으며, 북방 기마민족 말갈족, 만주족 특유의 남성 중심사회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앞으로, 소서노의 자료는 추가될 것이다. 시대가 앞으로 달라지고 있으며, 나라를 창업한 최초의 여성으로서 소서노의 중추적인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리더로서, 남다른 그릇을 가지고 있는 소서노의 삶과 업적을 대부분, 일본과 중국의 역사적 사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소서노의 역사 뿐만 아니라,인생 전반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앞으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면, 드라마 소서노가 방영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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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나는 00이다" 시리즈 중 고대사 건국 여제 소서노를 다룬 <나는 소서노다>를 읽었습니다. 소서노라는 인물은 사실 역사 수업시간에는 듣지 못했던 것 같고, 처음 이 인물을 접했던 계기는 드라마 <주몽>에서 였었던거 같아요. 주몽의 헌신적인 아내로 나왔었던 소서노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쓰여진 책이 이 <나는 소서노다> 였어요. 사실 드라마에서 그려졌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 고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고구려와 백제 건국을 이루어 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특히 주몽과의 이야기가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게, 주몽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유리를 태자로 삼았을 때의 위기감과 아들을 지키기 위한 백제 건국 이야기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소서노는 우연히 주몽을 만난 여인이 아니라 졸본부여의 공주였으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국의 왕자와 가출을 감행했던 여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부여의 여왕이 될 자리에 있었으나, 평화와 양국 관계를 위해 남편을 왕에 올리기도 했고, 유리가 태자가 되었을 때에도 다툼이 아닌 새로운 나라 건국이라는 방법으로 전쟁을 최대한 피했던 지혜로운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고대사에 등장하는 출생 신화들도 서로 시기별로 연결되어 더욱 재미있게 이해가 되더라구요.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었고, 강인했으며 지략에도 능했던 소서노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게 해준 책이었어요.!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건국의 여제의 소서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밝은 주황색으로 만들어진 표지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국인물 500인인 선정위원회 추천도서로 선정된 이책은 졸본부여의 왕재로 태어나 추모와 함께 고구려를 건국하였으며 다시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 소서노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내이자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로서 우리는 그녀를 '킹 메이커'로만 알고 있지만 소서노는 우리 고대사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개국하고 쇄신하는 어려운 환난을 모성애로 극복해가는 소서노의 왕도 정치와 덕치를 통해 오늘날까지 참다운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 윤선미님은 '맹자의 왕도를 펼친 고대사의 건국 소서노의 열정'으로 소서노를 평가하면서 개인적인 욕망에 앞서 자식을 위하여 같은 백성들끼리 피 흘리며 전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왕좌를 내주어야 했던 소서노이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끝내 왕도를 펼쳐 새 나라를 굳건히 세운 그녀의 강인한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고 합니다. 저도 왠지 뭉클해지면서 이런 멋진 소서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은 사이즈가 딱 적당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기 좋습니다. 글도 어찌나 흡인력이 있는지 금방 읽어집니다.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꼭 한 번씩 읽으시면 좋을듯합니다. ![]()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 현재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을 신라의 제27대 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으로 적시하고 있다. 기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서소노’를 건국 시조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실례다. 선덕여왕과 소서노가 왕위에 오른 시기가 70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한 명은 인정조차 받지 못했던 바, ‘최초’라는 면에 방점을 둔다면 분명 소서노가 우위에 있는 것이 맞다. - 저자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 시대의 중.고대사를 이끄는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의 시작이 소서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많은 역사서에 소서노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 그 당시 부권이 더 강화된 시기였기 때문에 여자인 소서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기 힘들다. 부계 중심, 강력한 부권으로 다소 폭력적이지만 필연적인 질서, 그렇게 성장한 남성의 우월성을 당연시하는 사관이 지금껏 사회에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소서노 또한 남성인 국조왕에게 가려질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삭제되고 평가 절하된 그녀의 역사를 바로 보게 된다면, 홍익인간 사상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위대함을 더욱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민하는 마음으로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기를 버렸던 소서노, 그럼에도 폭풍처럼 몰아 붙이는 운명에 굴하지 않고 다시 새 나라 백제를 건국한 진정한 리더이자 킹 메이커인 소서노의 인생을 소환시켰다. 그녀의 인생을 따라가며 위기의 순간에 발휘한 기지나 지혜, 위민하는 마음으로 선택했던 수 많은 행동들에서 여러면을 배워가면 좋을 것 같다. 소서노는 부여계 국가 중 하나인 졸본부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졸본의 왕은 아버지인 연타발이었고, 그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었다. 그 중 소서노는 둘째였다. 소서노가 개중 가장 아름답고 영특하였기에 왕은 그녀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키웠다. 부여의 여인은 사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았기에 부계 상속이 당연시되었다. 그러한 와중에 동부여국의 왕손 ‘우태’가 졸본으로 찾아와 ‘소서노’와 만남을 가지게 되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서노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할 수 없었지만 둘 사이에 비류라는 첫 아들이 태어나게 되면서 둘의 관계를 인정 받게 된다. 연타발은 우태에게 왕위를 내어준다. 왕의 자식인 소서노가 왕권을 물려 받는 게 도리였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나 외부적인 이유로 소서노는 우태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하여 왕좌를 물려주게 된다. 이후에 안정적으로 지내오다 우태가 갑자기 죽게 된 이후 홀로 지내던 소서노는 동부여에서 도망하여 홀본(졸본)으로 온 추모가 우태의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반갑게 맞이한다. 그를 빈당에 모셔 두고 후하게 대접한다.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추모와 정을 통한 이후, 딸을 낳게 되면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때 부여의 관습 중 하나인 ‘형사취수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형사취수제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남은 형수를 아내로 받아들이고 자식까지 거두는 제도이다. 이와 같은 제도로 첫 번째 남편인 ‘우태’가 죽고 나서 배다른 동생이었던 주몽과 혼인은 당연히 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소서노는 우태가 죽고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을 때 혼자의 힘으로 운영하는 것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추모가 큰 힘이 되었다. 점차 그의 세력이 커지게 되고 추모도 야욕이 생기던 찰나 서소너는 그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옆에서 조력하기로 다짐한다. 그 뒤로 추모가 왕권을 쥐게 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서소노가 향년 61세로 떠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내용 중간마다 역사서마다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다양한 역사서를 교차로 확인하면서 사실과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현재 소서너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해석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고구려 백제 건국 시기에 존재했던 다른 나라의 정보도 함께 알 수 있어서 유익했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공부할 것이 많은 책이었는데 반복해서 읽고 체화시킨다면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ㅡ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인스타 #하놀 @hagonolza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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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경우 김부식이 유학자이고 남성이기에 소서노에 대한 충분한 기록은 볼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성 중심의 역사가 고대부터 고착되어 왔기에 아무리 훌륭한 여성이 있었을지라도 후대의 역사는 그녀들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고 할수 있겠죠. 고구려의 시조라고 하는 주몽의 아내이자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비류의 어머니인 소서노. 하지만 그녀를 단순하게 아내나 어머니로만 아는 것은 극히 그녀에 대한 일부를 아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수 있었는데요. 그녀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주몽이 죽은 후 배다른 아들인 유리왕이 고구려를 통치하게 되자 과감히 그곳을 버리고 남하하여 아들들과 함께 백제를 건설할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더라구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부여, 고구려, 백제 모두 부여라는 국명을 한동안 사용한 적이 있고 부여에서 지내는 제천의 풍습 역시 고구려, 백제에도 공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소서노의 경우 부여의 한 일족인 홀본지역을 다스리는 왕의 작은 따로 태어났지만 당시의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어쩔수 없이 왕의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 초기의 역사나 백제 초기의 역사의 경우 상상력으로 이해해야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이름이 고구려와 백제의 성립에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그녀는 보통의 여성이 아닌 건국의 능력을 가진 강인한 정신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볼수 있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