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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과서의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 나올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었는데 요즘들어서는 교과서에서 봤던 내용을 이렇게 다시금 접하게 될때 그때 이렇게 제대로 이런 이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 배경도 함께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책을 보면서 다윈이 쓴 종의 기원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는 다윈의 출생부터 종의 기원이 나오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교과서 속의 인물로만 생각되었던 다윈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종의 기원이 어떤 의미로 그 당시에 다가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말하고자 한것은 자연환경에 따라 적응하며 같은 종이라도 생김새가 달라지고 자연환경에 맞는 종이 살아남기 쉽다는 것으로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을 잘못 해석한 것이 적자생존인것 같다. 이 둘은 참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게 해석해서 힘있는지가 살아남는다 라든지 우열한 종만이 존재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으로 변하게 된것이 안타까웠다. 본래의 의미를 생각지 않고 자신들 생각하고 싶은대로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종의 기원이라는 이론을 다윈만이 생각한 건 아니었고 그당시 이런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도 되었고 다윈을 도와주는 친구들과 지인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이론이 되었구나 하고 그 배경도 알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만 알았던 딱딱한 느낌의 인물이 이렇게 그 사람의 삶과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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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엔 현대의 과학 발달이 이정도인데 아직도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책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했을때 미국인의 50%가 넘는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을 믿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윈의 '종의기원'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책은 어느정도의 다윈에 대한 평전의 형태가 갖추어져 있어서 종의기원에 대한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저자는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놓았다.또한 저자는 다윈의 생애에 대한 전기를 두번이나 집필한 경험으로 자칫 '종의기원'내용의 진화론에만 촛점을 맞출수 있는 딱딱함을 책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로 인해 '진화론'의 논쟁이 어떻게 전개가 되었으며 '창조론'과의 대립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는지를 시대상화에 맞춰 설명해 놓았다. 이책을 읽다보니 다윈의 '종의기원'에 관한 책을 썼다는 사실만 알았는데, 여러가지 다윈에 대한 알려지지 않았 던 사실들을 알수 있었다. 우선 다윈의 친할아버지는 초창기 진화사상가 였다는 사실과 집안의 부유함도 다윈이 마음껏 공부 할수 있는 환경이 도움을 준듯했다. 하지만 다윈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던것은 그가 성공회 성직자가 되고자 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연에 대한 경이감이 그것을 만든 신에 대한 경이감으로 바뀌어 '창조론' 을 신봉하게 되었고 한때 성직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에맞춰 다윈의 아버지는 다윈이 새와 곤충 같은 벌레에 빠져 있던 시절을 보고 매우 실망 했다고 하니, 그가 꿈꾸었던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면 위대한 '종의기원'은 세상 에 빛을 보지 못했을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5년간 항해를 할때 탔던 비글호는 원래 목적이 자연탐사의 목적이 아니라 국가적, 상업적, 군자적 이유로 계획된 것이었다고 한다. 덧붙여 비글호의 항해에 승선하려고 했던 사람이 애초에 다윈이 아니었다고 한다. 여러명의 교수들이 다른 일 때문에 거절하는 바람에 다윈에게 까지 순서가 온 것이었다. 다윈의 아버지는 아들의 비글호 항해를 반대했다고 한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가 없었다면 우리는 다윈 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종의기원'책이 진화론에 관한 당시의 첫번째 책이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1859년 다윈의 '종의기원'이 나오기전 1858년의 자연학자 월리스가 쓴 진화론의 논문은 다윈의 출판을 앞당기도록 자극을 주었다고 한다. 다윈의 진화 론에 대한 책보다 먼저 그에대한 책을 낸 사람이 있는데 왜 다윈만 아직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책에서는 그당시 신분을 중요시 하는 사회풍요의 영향이 컷다고 한다. 다윈의 신분은 부유한 집안에 의사 집안이었고 학맥 또한 다윈의 '종의기원'을 부각 시키는데 큰 몫을 한것이다. 과학이 발전한 현재도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의 두가지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진화론이 맞다는 생각이 들 면서도 과학으로 설명이 모두 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점도 많다. 역시 창조론은 무신론자들 에겐 헛소리라고 코웃음을 칠수도 있다. 앞으로 어느것이 진실인지는 더 시간이 지나면 알수 있겠지만 중요한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지 결코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도 자연에 감사하고 겸허함으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논쟁보다 더 중요한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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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결정적인 책을 단 한 권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느 대기업 면접 질문이었다고 한다.
신문에서 저 대목을 읽다가 나는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성경? 국부론? 기사는 이런저런 대답을 나왔다며 면접자들이 답한 여러 책들을 소개했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책들은 매우 고리타분하고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으므로 결국 보기좋게 미끄러질만한 대답이라고, 별 필요도 없는 해설을 더했는데) 그 중에는 이 책도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약 1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 이후로 사람들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사람"이라는 개념에서 확고하게 벗어나 종의 변이와 변형을 거친 진화를 과학적인 즉, 논리적이고 타당한 사실로 받아들였으며 오늘날 현대를 풍요롭게 (혹은 위태롭게) 만드는 수많은 세부적인 과학 (의학) 분야가 이로부터 기원했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참 대단한 책이고 인류의 역사에 이보다 더 멋진 발판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책이건만, 기독교 신자들로부터는 최근까지도 상당히 곱지 않은 눈총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떼어낸 책들 중의 하나이므로.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눈총을 따갑게 받은 것은 오히려 현대의 일이다'라고 한다. 누가? 이 책의 저자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김일성이 대단한 기독교 집안의 후손이라는 것, 히틀러 역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해온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지리학과 생물학에 걸친 꼼꼼하고도 집요한 실험을 통한 결과를 논거로 제시한 찰스 다윈 역시 한때는 목회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었던 신앙인이다. 여기서 신앙인이라고 한 이유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는 끝까지 신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종교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윈에 대한 대단히 신뢰할만한 평전을 두 권이나 펴낸 작가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의 기원 이펙트]는 보통 사람들이 찰스 다윈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들을 확실한 사실을 근거로 뒤엎고 새로운 다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가 깨달은 과학적 개념들이 정립되도록 도운 라이엘과 같은 사람들이나 본의 아니게 같은 과학적 개념들을 가지고 경쟁하며 결국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게 만들었던 학자 월리스, 평생 다윈을 도왔던 신실한 신앙인이자 좋은 동역자였던 아내 에마와 그의 아이들, 인간적인 다윈의 면모들 등 이 책은 [종의 기원]을 읽기만 혹은 듣기만 했던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인간 다윈의 진실을 알려준다.
다윈이 살던 시대는 이미 신학 특히 성경이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서의 힘을 잃고 이미 상징적인 이야기로 치부되기 시작한 때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특히 산업혁명의 핵이었던 영국에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가열찬 에너지로 사람들을 끌어안고 있었고 세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이 책에서 이야기한 대로 다윈만의 획기적인 깨달음이나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 다윈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동시대에 있었지만 결국 [종의 기원]의 주인공이 된 과학자는 다윈이었다. 그 집착에 가까운 실험과 연구가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론의 아버지가 되게 한 것이다.
종종 대단한 사람들이 남긴 책은 그 자체로도 커다란 유산이지만, 대단한 책을 쓴 작가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빛나는 다른 유산들을 발견하게 된다.
[종의 기원 이펙트]의 저자 역시 또 다른 다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무신 혹은 불신이라고 막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과학자의 유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오히려 그로 하여금 다윈의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그리고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게 한다. 이러한 책들이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주고 지적 재미 뿐 아니라 많은 사유의 여지를 남겨주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가 뒤집어쓴 막연한 사고의 장막을 걷어내고 명확한 모습을 제대로 보게 만든다. 마치 다윈이 종의 진화를 연구해 과연 우리 생물은 오늘날까지 어떻게 존재해왔는가에 대해, 막연한 신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명확한 과학적 사실을 보게 만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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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종의 기원 이펙트 너무나도 유명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초점으로 쓴 찰스다윈의 이야기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대단이 유명하고 위대한 책이 나오게 되는 배경과 신을 믿지 않는 이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으로부터 사랑받았던 찰스다윈의 생애와 함께 버무려서 굉장히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한다 종이기원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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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펙트 - (재닛 브라운/세종서적)
1859년 11월 런던의 존 머리 출판사에서 '종의 기원'이 발간되었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 영혼과 도덕관념에 관해 믿었던 많은 것을 의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였다.
저자 재닛브라운은 이런 종의기원의 발간 전후를 중심으로 다윈 그리고 주변인물 시대적배경을 제법 상세히 써놓았다. 천동설이 의심할 바 없는 확고한 진실이던 시대에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다윈 또한 창조론을 부정한 진화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다윈의 경우 실제 종의 기원에서 제시된 개념과 주제 중 많은 것들은 그 당시에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그의 서술방식은 매우 온건한 편이였다. (실제 그는 자연학자 월러스가 보낸 논문이 자신의 견해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발간하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종의 기원'출간은 분명히 기원문제에 대한 본질을 바꾸는 크나는 사건임이 틀림없다.
다윈이 전면에 등장하기 휠씬 전부터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계몽운동 이후로 성서 연구는 실제 일어난 일의 기록이 아닌 설득력있는 비유로 받아들이도록 부추겨왔다. 그가 책을 내기 이전부터 이미 진화론의 기틀은 어느정도 출현하였다. 많은 오류와 함께 너무나 진보적이고 획기적인 내용으로 인해 많은 중산층은 도덕과 사회안정을 수호하는 교회의 역할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비판을 가하게 된다. 종의 기원에 나온 내용은 다윈이 작성한 방대한 양의 자료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출간할 생각을 포기할 정도로 미루던 그가 월러스등 주변 시대의 흐름에 결국 많은 부분을 수정하여 초판을 낸다. 초판이후 제6판까지 꾸준히 수정하는 종의 기원은 다윈의 온건적인 생각과 (초판에 그는 동물에 대한 진화만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간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였다.) 사실주의에 입각한 많은 지식인들의 다윈주의 동참, 급속한 기술발전과 경제팽창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중심에 설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 한 것은 진보적인 진화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선택)을 현대의 자유주의, 2차세계대전 파시즘, 히틀러 ,우생학, 민족주의적 열정,편견에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당화에 영향을 준 것만은 틀림이 없다. 개인적으론 이 책으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신을 향한 고독한 도전이 아니라 서구 사상의 변화기에 크나큰 중추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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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기원 이 짧은 말에서 풍기는 단호하고 강력한 기운. 역사에 획을 긋는 생각들에 단연 1번으로 손꼽히는 책이 아마도 다윈의 종의기원이 아닐까 싶다. <세종서적>에서 기획한 <10 그레이트 이펙트>는 역사에서 생각을 바꾼 책들 10권을 선정하여 출간을 기획하였는데 그중 한권이 재닛 브라운이 지은 종의 기원 이펙트이다. 다윈에 대한 일대기를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잘 묘사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읽었으면 하는 바램으로인해 책을 처음 읽는 동안 좀 지루하다는 생각도 했다.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우리를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우를 범한 꼴이었다. 다윈의 일대기를 <시작>으로 다윈에게 있어 운명을 바꾸어 놓은 [비글호 항해기] 등 처음 자연학자로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이 그려졌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이론>에서는 19세기 초 영국의 실상을 통해 종의 기원이 어떻게 활용될지라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출간>, 종의 기원의 출간이 가져온 <논쟁>, 그가 남긴 <유산> 순으로 쓰여 졌다.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영국의 한 과학자인 찰스 다윈에 의해 출간되었다. 과학적 지식으로 종의 기원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앎이 단순한 인간의 종의 기원이었을까? 이 책은 다윈보다 먼전 종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고 발표한 학자들이 있었음에도 왜? 사람들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선구적인 학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19세기 초 유럽 사회는 격동기의 시대였다. 산업혁명기가 무르익었고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권리찾기가 시도되었고 교황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새로운 기득권층에게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다. 거기에 종의 기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신의 창조물이었던 인간이 유인원이라는 동물을 조상으로 두었다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한 번도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고 말년에는 영국의 대성당이자 왕족이나 영국의 대표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의 묘가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살아생전에 그 모든 영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영국의 중상류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의사가 되려했으나 성격에 맞지 않자 성직자가 되려했다. 이 또한 ‘내 성격상 장차 성직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면목 없는 일’ 이라며 고사하고 자연학자가 된다. 그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비글호>와의 인연이다. 영국 해군본부의 지령으로 남아메리카 해역의 측량조사라는 명목으로 남아메리카 해안지역과 갈라파고스 제도 등을 항해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다윈은 자연사 연구를 한다. 그 5년이라는 기간에 다윈은 많은 표본들과 깨달음을 얻는다. 그가 그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변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는 불안했고 지주와 제조업자, 노동자와 고용자들의 갈등으로 중산층은 위협을 받고 있었다. 보통선거권과 비밀투표제가 거론되었다. 격변기에 기득권 계층은 어떤 선택을 하려했을까? 프로드리히 엥겔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고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그 시대의 진보에 적합한 이론이 바로 진화라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다윈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아이콘이 된 것이다. 다윈이 직접 집필한 종의 기원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에 의하면 <그의 이론은 섬뜩했을지 몰라도 그의 문체는 한결같이 다정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자와 독자를 잇는 독특한 마법을 발휘했다>고 표현한다. 과학이기 이전에 문학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언어 선택에도 신중했다. <진화> 대신에 <변형된 후손>이라거나 <적자생존> 대신 <자연선택>이라는 용어을 선택했다고 한다. 다윈의 언어는 과학적이고 가치중립적이기보다 목적론과 의도가 깊은 밀턴이나 세익스피어의 언어였다고 표현한다.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물의 객관성도 크게 작용을 한다. 그로 인해 그는 많은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론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생학이 아닐까 싶다. 우월한 인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은 위에서 거듭 언급한 새로운 기득권층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에게 아주 적절한 이론이 되는 것이었다. 식민지를 유지하고 지배하려했던 야욕까지도 그의 이론을 인용했고 인종차별에도 이를 인용했으니 말이다. 그의 사후인 1907년 영국의 우생학 교육협회가 창설된다. 찰스 다윈의 아들 레너드 다윈이 회장직을 맡았다. 이 협회에서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 번식을 못하도록 하거나 격리시키는 등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업적(?)들을 남겼다. 또한 독일 파시즘 등장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중산층 백인들에게 편향되거나 인종차별과 대량학살 등을 진화론과 유전학이라는 이론을 토대로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다윈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윈의 진화론과 우생학은 아주 좋은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로 인해 다윈의 이론은 비판받기도 한다. 나도 그러한 이유로 다윈의 우생학이나 진화론이 오염된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으로 새로운 세계를 논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럼에도 그가 이루어낸 업적은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생각이었음은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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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여 2권의 책을 이미 출간한 저자가 요약집처럼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에 대해 책을 냈다. 종의 기원이 다루고 있는 갈라파고스 섬의 다양성과 핀치새의 진화 흔적 등에 대한 설명은 없다. 빅토리사 시대에 다윈의 사회적 위상과 어떤 과정과 어떤 역경을 딛고 이 책을 집필했는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측면에서 이 책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 무척 새로웠다. 빅토리아 시대상도 알 수 있었고, 교회로부터 사회 권력이 점차 민간이나 정부로 이양되어가는 올바른 과정을 다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것처럼 어두컴컴한 사회상에 다윈 홀로 혁신적인 주장을 펼친다는 점은 그에게나 그의 가족에게나 몹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시기를 조절하며 섬세하게 출간의 순간을 기다렸지만, 또 다른 진화론자 월러스의 등장으로 다윈의 독창적 주장이 힘을 잃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책에서는 다윈이 동료들과 계획적으로 월러스의 진화론을 그의 진화론과 동시 출간하고 사회 위상으로 그를 밀어냄으로써 홀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으로 설명되어있는데 이점은 사실일 듯 싶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다윈의 지속적인 연구와 겸허한 자세다.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격과 성품을 다스리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동료도 많았고, 이런 저런 병치레를 거치며 지철 법도 한데 끝까지 책을 집필하고 연구한 그의 자세와 신념은 높이살만 하다. 그의 저작이 세상의 빛을 보면서, 다행히도 이미 성서의 내용에 대한 도전이 어느 정도 과학적 지위에 양보하는 국면이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이처럼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적 토론이 성행하고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야기했다. 우생학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다윈조차도 걱정을 했고, 여러 저자들이 그와 연결되길 희망했지만, 그는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신중을 거듭했다. 지렁이에 대한 그의 연구는 찬사를 받았고, 둘째 딸을 잃은 슬픔으로 교회와 신에 대한 기대보단 과학적 연구에 집중함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십분 유지했다고 생각된다. 존경스러운 과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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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과 그의 책 <종의 기원>은 현대 인류 문명과 정신사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쳤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찰스 다윈의 생애와 그 시대의 분위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의 영향력에 대해 개략적으로 써놓은 것이다. 역자에 의하면 이 책의 저자인 재닛 브라운은 다윈에 관한 두꺼운 저서를 두 권 내놓은 작가라고 한다. 때문인지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알찬 내용으로 군더더기 없이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사상이나 발명품이던 간에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의 시간적, 공간적인 상황을 배경을 두고 보는 것이 좋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진화론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는 이른바 ‘빅토리아 시대’로서 대영제국이 전 세계의 해양을 지배하고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던 때이며, 계몽주의가 만개하여 사람들은 신과 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대던 때이다. 또한 20세기에 꽃피울 과학 문명의 씨앗이 다양한 분야에서 발아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다윈이 진화론을 발견하고 그의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배경이 되었다. 흔히 진화론은 다윈의 발명품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윈은 진화론에 뼈대를 세우고 옷을 입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다윈 이전에 거칠고 현대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오류 투성이기는 하지만 이미 진화론이 나와 있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수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전후의 맥락을 합리적으로 연결하여 현대적 의미로서의 ‘학문’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다윈이라는 뜻이다. 다윈 역시 당시에 유행하던 진화론, 지질학, 맬서스의 이론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의 앞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다윈은 그가 22세 되든 때인 1831년 말부터 1836년까지 약 5년 간 비글호에 탑승하여 대서양, 남태평양, 인도양을 두루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의 결과가 1859년의 <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중한 성품의 다윈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론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갈고 다듬는 과정에서 2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월리스의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보고 다윈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이론을 공표하고 책을 출판하게 된다. <종의 기원>과 진화론에 대한 논란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를 뜨겁게 했다. 당시의 그 뜨거웠던 분위기를 이 책에서는 ‘논쟁’이라는 한 장을 할애하여 전하고 있다.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종의 기원>과 진화론은 지금 현재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의 ‘유산’ 편에서는 그 책이 출판되고 난 후에 진화론의 개념이 어떻게 확대되었으며, 그것이 인류 사회와 문화, 학문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당시 무차별적으로 확대되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진화론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개념을 인종 차별과 지배에 확대함으로써 인류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기도 했다. 또한 변질된 우생학은 인류의 퇴화를 막기 위하여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의 번식을 막기 위한 조치로서 강제적 불임이나 격리, 나아가 유대인 학살의 학문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행위들이 다윈 이전에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여기에 인론적, 학문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부당한 행위에 대한 자기 변명에 불과한 것이지 다윈의 학문이 잘못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다윈의 사상은 이후 생물학 전반에 그 영향을 끼쳤고, 유전학, 발생학 등 학문이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는 나아가 치료 의학이나 심리학, 또는 경제학 등에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윈과 종의 기원, 진화론에 대해서 궁금한 독자들은 어렵지 않은 문체로 되어 있는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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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의 기원'이라는 명작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 역사에 대해 써 놓은 글이다. 1859년 11월 24일에 출판된 이 책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신앙심이 모든 것의 중심이어야만 했던 그 시대에 생물이 신에 의해 완벽히 설계되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며, 만물의 명장이고 신이 사랑했던 인간도 원숭이가 진화한 것이라는 그의 학설은 종교계의 탄압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 출판상시, 생각보다 종교계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했다. 마녀사냥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그랬던걸까? 실제로 찰스 다윈은 살아 생전 따개비의 연구로 여왕메달도 수여받고, 그 업적을 칭송받았던 존경받는 자연과학자였다. 의사 아버지와 명문가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았던 전형적인 상류층 남성이기도 했다. 그는 죽을 때 까지 초야에 묻혀서 시골생활을 즐기고 자상한 남편으로 사랑받으며 세상의 논쟁을 피해있었다. 그는 사회와 과학계에 큰 의문을 던졌지만, 그 자신은 숨어 지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다윈이라는 인물의 출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그가 경험한 탐사 활동, 학문연구 활동, 그의 성품등을 말해주면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의의가 있는지 배워볼 수 있다.
나는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은 현재 과학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자연선택설과 진화론을 채택한 책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문체가 참으로 개인적이며 그래프나 수식도 없고 전문용어도 없는 마치 인문학서같은 책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이 출간되고 비난과 찬사를 같이 받으며 신앙심에 대한 신성모독을 일으킨 것은 이 책이 생물에 관한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아담과 이브가 아닌 유인원을 채택했기 때문인데, 이는 아직까지도 미국의 몇몇 주에서 창조론으로 학생들을 가르칠지에 대한 논쟁이 있을만큼 오래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일반 과학계에서 어떻게 제창을 하든,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제작되고 그 파편은 어디에 있으며 에덴 동산은 어디였다 라고 가르치려는 신학자들이 세상에 많이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이런 종교적 가르침을 과학으로 믿게 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이 책엔 다윈의 어린시절, 안정적인 삶을 시작했다는 것에서부터 그가 의사가 되기 위해 슈루즈베리 학교에 갔으며 어린아이를 마취없이 수술하는 것을 보고 의사를 포기하고 자연과학자,발생학자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후 그는 해면동물의 발생에 관심을 갖고 비글호를 타고 5년동안 탐사활동을 한다. 항해가 끝난 후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하면서 그가 저술가로서도 명성을 날리며 지질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러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하면서 종의 기원이란 저서의 틀을 잡기 시작한다. 그가 이 책을 출판했을 때에는 이미 책이 쓰여지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단지 출판할 때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종교계의 반항이 두려웠을까) 한참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열기가 뜨거워질 때 출판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당시 역사의 변화의 시점에 서 있는 서구 사상이 변화되는 한 축이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유명해졌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수십년 먼저 혼자 책을 출간했다면, 정말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그는 시대를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신사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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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펙트>는 찰스 다윈 전문가인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 교수 재닛 브라운이 익히 알고 있는 다윈의 사상을 새롭게 들려준다. 종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다윈이 최초로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다윈보다 먼저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가마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윈이 종의 기원에 대한 학설을 제시한 첫 번째 과학자로 꼽히게 되었을까?
재닛 브라운은 생명과학의 역사, 자연사, 생물학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진화학계의 세계적 석학이다. 또한 다윈의 생애를 폭넓은 식견과 독보적 연구를 통해 <찰스 다윈 평전>을 집필한 과학 저술가이다. 이 평전은 다윈과 그의 시대에 바치는 기념비적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1825년 다윈은 아버지에 의해 일치감치 에든버러 의대에 보내졌다. 그래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몹씨 고역스러운 수술 광경을 지켜본 이후로 자신은 결코 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확신 하에 1827년 의대를 그만두었다. 당시 에든버러 대학교는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문이었다.
에든버러에서 그는 화학, 자연사, 지질학 등의 학문을 접했고 '플리니 협회'에 가입하여 의대 강사 로버트 그랜트를 만난다. 그를 통해 라마르크의 변형관을 알게 된다. 이미 자신이 읽었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의 <동물생리학 또는 생물의 법칙>에도 비슷한 이론이 있었기에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정규 학위를 따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리스츠 칼리지에 입학했다.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 위한 일반 과정이었다. 그의 집안이 그다지 종교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성직자가 된다는 생각에 자신은 만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이로니하게도 정통 교회로부터 심하게 공격받았으니 참 얄궂은 운명이다.
케임브리지에서 다윈은 지적 엘리트 환경으로 진입했다. 젊은 식물학 교수 존 스티븐스 헨슬로와 젊은 지질학 교수 애덤 세즈윅과의 우애 관계는 물론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휴얼, 자연학자 레너드 제닝스 등과도 친분을 맺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같은 학교에 다닌 사촌 윌리엄 다윈 폭스였다. 그는 사촌과 함께 자연사에 몰두했고 딱정벌레 분류에 정통한 아마추어 곤충학자가 되었다.
1831년 최종 시험을 마치고, 그는 절친한 애덤 세즈윅 교수의 조수로 2주 동안 웨일즈의 오래된 암석을 조사하러 갔다. 이후 영국의 조사선 비글호를 타고 세계 항해를 경험했다. 이는 당초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이 케임브리지 교수 헨슬로 등에게 초청장을 보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윈에게 그 기회가 돌아갔다. 본디 이 항해는 영국 해군본부의 지령이었다.
항해는 1831년 12월에서 1836년 10월까지 이루어졌다. 비글호는 포클랜드 제도, 리오데자네이로, 부에이노스아이레스 등 남아메리카 여러 해안 및 타이티, 뉴질랜드, 갈라파고스 제도, 희망봉, 세인트헬레나섬, 안데스 산맥 횡단 등의 탐사와 여행을 했다. 다윈은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사를 다방면에서 탐사하면서 수많은 동식물 표본과 화석, 암석 표본 등을 채집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 항해 때 이루어진 세 가지 발견이 자신의 모든 견해의 출발점이었다고 썼다. 그 세 가지 발견이란, 파타고니아에서 발굴한 화석들, 아프리카 타조와 비슷한 남아메리카 레아의 지리적 분포 양상, 그리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들이었다.
당시에는 기존 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은 무엇이든 간에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중에서 으뜸은 진화 개념이었다. 당시 '변형 개념'을 공개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는 스스로를 위험천만한 정치적 급진주의자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악명이 높았던 사람은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와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이었다.
1798년에서 1809년 사이에, 라마르크와 이래즈머스 다윈은 동식물이 창조주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으며, 무기물에서 자연 발생했다는 주장을 각기 독자적으로 펼쳤다. 그들은 생물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다양해졌다고 보았다. 두 사람은 동물이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식물도) 몸의 각 부위를 쓰거나 쓰지 않음으로써 환경에 적응하고, 그 적응 양상이 자손에게도 전해진다고 믿었다. 이는 '획득형질의 유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 체계에 인간도 포함시켰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이 '개선'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사회구조까지도 변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에 귀국해서 4~5개월 지난 1837년 초, 다윈은 종種이 '신의 힘 없이'기원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는 <비글호 항해의 동물학> 총 5권(1839~1843)을 발간했다. 이 탁월한 전집은 손으로 직접 그린 컬러 도판들이 가득하다. 또한 5년간의 항해 내내 기록했던 일지를 토대로 생생한 여행기도 집필했다. 지금은 흔히 <비글호의 항해기>로 알려진 책으로 그의 명성을 널리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1858년 6월, 다윈은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서 보낸 소포를 수령했다. 그 안에는 자연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쓴 짧은 논문이 들어 있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전개되어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똑같은 이론을 내놓았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사실 다윈도 긴 원고를 쓰고 있었다. 이에 자극받아 서둘러 <종의 기원>을 쓰는 일에 몰두했다.
다윈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자연에 관해 믿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에덴동산을 완전히 빼버린 '기원에 관한 그림'을 제시하고, 줄기차게 생물들을 만들어내는 천상의 시계공이라는 이미지를 땅 밑에 묻어버렸다. 동식물을 각별한 설계나 각별한 창조의 산물로 보지 말아야 했다. 그는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는 종이 불변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다윈의 기본 주제는 점진주의였다. 모든 일은 조금씩 서서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물은 똑같은 하나의 설명으로 엮였다. 시간, 우연, 번식이 지구를 지배했다. 생존경쟁도 그렇다. 생물세계를 설명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견해가 없을까 하고 찾던 사람들은 다윈의 말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그 후 어느 누구도 전과 같은 관점에서 생물과 자연세계를 볼 수 없었다.
<종의 기원>의 출간은 분명 기원에 관한 논의의 본질을 극적으로 바꾼 크나큰 사건이다. 이 책이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책 속에 담긴 주요한 주장들이 생존 측면에서 복원력이 있고, 추종자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의 전통이나 사회의 도덕 가치에 도전한 고독한 목소리가 아니라 서구 사상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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