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읽는 소설이다. 처음엔 정말 할일도 없고 심심해서 읽은 것이고 읽어보니 결말도 어중간해서 좀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다르다. '수난이대'는 제목 그대로 수난을 당한 이대에 걸친 부자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만도는 한국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기다린다. 만도는 태평양 전쟁에서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었다. 아들 진수도 억시 한국전쟁에서 사고로 한쪽 다리를 읽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불행을 겪게 되자 좌절을 하지만 그러한 불행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을 한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이 두사람은 왜 불행을 당해야만 하는가...이 두사람이 원해서 전쟁에 참가했는가.. 이 모든 수난의 근원은 전쟁에서 부터 온다. 일본과 미국의 제멋대로인 행동으로 인해 한 개인에게 일생이 불해해지는 경우는 영화에서나 TV,소설등에서도 적지않게 볼 수 있다. 현재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제 7차교육과정 고1 국어교과서) 소설 '그 여자네 집'도 역시 전쟁으로 인한 개인의 불행의 한 사례이다. 수난이대에서 나온 만도와 진수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힌들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조금만 긁혀도 아프고 괴로운데 그시대에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어땠을거며,, 우리가 가족과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어도 보고싶고 그리운데 그시대에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은 어땠을까.. 라고 생각해볼 때 그 시대와는 너무나도 달리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우리들의 조상이다. 우리가 전쟁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10년 동안 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받아왔고 무한이도 많은 소설들을 읽어 왔다. 내가 읽고 배웠던 전쟁에 대한 소설들 에는 지배층의 피해에 대해서는 그렇게 언급되지 않았다. 모두 평민들.. 가난하고 무지한사람들.... 그런사람들이 지배를 받고 피해를 가장 많이 봤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타켓으로 감돌을 주며 동정심에 의한 눈믈을 자아낸다. 현재 배우고 있는 소설' 그 여자네 집'도 역시 전쟁으로인한 개인의 불행의 사례이다.수난이대에서 나온 만도와진수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우리는 조금만 다쳐도 아프고 괴롭다.하지만 우리의 이 고통은 그 시대를살면서 전쟁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비하자면 우리는 새발에 피이다.우리가 전쟁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전쟁은 과연 누굴 위해 하는 것인가...단순히 식민지를 삼으려고,땅을 넓힐려고라는 이유는 전쟁의 모두 피해자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이유다.아무 잘못없는 사랑을 힘이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을 떨어뜨리고 함부로 죽인다면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좁은 땅에서 식량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단지 거배자들에 허영된 욕심에서 오는 것이다.이건 살인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도나 진수와 같은 전쟁으로인해 몸에 이상을 입었거나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뭐가 되는 것인가...또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젊어질 것인가...만도와 진수 뿐만아니라, 그 외도 보이는 곳보이지 않은 곳에 피해자들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 제일큰 희생자는 종군 위안부...우리도래나이에 영문도 모른채붙잡혀 가서 일본인들에게 소중한 순결을 강탈당하고 해방이 됐는데도 한국에 돌아오지못하고 눌러 살아가 일본의교과서 일로 분노하며 병든 몸을 이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잔혹한 것은 한것이 명명배백히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뜸을 들여서 산 피해자이자,산 증인인 종군위안부할머니들이 지쳐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인류역사상 히틀러 못지않게 잔인하며 비인간적민 행동은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그밖에도 전쟁에서 피해는 이루어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수난이대`를 통해 전쟁의 싱강성과 그것에 인한 개인의 비참함을 읽었고, 전쟁은 무의미하고 아둔한 것이라는 것을다시 한번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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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 작가의 단편집인 『수난이대』는 10여 년 전에 구입한 책이다. 그때 이 책을 읽었고 리뷰도 썼지만, 새삼스럽게 다시 펼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립기념관장 인사로 이해 해방 이후 처음으로 반쪽 자리 광복절 기념식이 된 현실이 생각나서이다. 하 작가의 작품 중에 「노은사」가 떠올랐는데, 다시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겠다. 첫째, 하근찬 작가와의 인연을 생각했다. 내게 있어서 하 작가는 아주 친숙하다. 그이 작품인 「수난이대」와 「흰종이수염」 이 긴 세월 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매년 그의 작품을 다루었고, 교재연구를 겸해서 작가 연구도 했을 것이다. 그는 전국의 중학생들이 국정교과서로 국어를 배우던 시절에 교과서에 2편의 작품에 실린 드문 작가 중에 한 명이다. '역사의 증언과 생명력'이 하근찬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요약일 것이다. 일제나 공산당에 대한 증오나 분노를 크게 노출하지 않으면서 민중의 아픔과 고뇌를 잘 표현한 것이 그의 작품들일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감동은 없어도 지나온 세월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작가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은 「여제자」이다. 시골의 초등학교에 부임한 남교사와 과년한 초등학생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남교사는 연상인 동료 여교사에게 더 관심이 있었고, 여학생만의 짝사랑이니 이렇다 하게 성공한 사랑은 없다. 이 작품은 이영재 감독이 영화로 각색한 「내 마음의 풍금」으로도 흥행에 성공했는데, 이병헌·전도연·이미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소설과 영화 양쪽에서 성공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나의 초임 발령이 작품 속의 배경과 비슷한 시골 중학이었으므로 더 마음에 와닿았던 듯하다. 둘째, 「노은사」에서는 묘한 연민과 함께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을 했다. ![]() 「노은사」 는 '나이가 드신 옛 스승'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작품 속의 화자는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출판사를 하면서 그런대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이준호라는 사업가가 등장한다. 그는 부친의 사정으로 인해서 잠시 사립 소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담임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진사문 선생이다. 진 선생은 당시 민족정신이 투철한 젊은 교사였다. 그는 조선어 시간에는 일부러 한국인의 삶이 담긴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마도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였던 듯하다. 그러다가 일제의 정책에 의해서 조선어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었을 때, 조선어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조선어 수업을 하면서 비분강개하던 진 선생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치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연상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이니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해방이 되었고, 작중 화자는 초로에 접어든 거리에서 진 선생을 만났다. 학창 시절 의연했던 스승을 떠올리면서 연락처를 받았고, 스승의 직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진 선생은 아마도 교편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린 듯하다. 현재 그의 직장은 개인 학원, 그곳에서 그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달라진 스승의 현재 모습에 거리감을 느끼는데…….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이 투철했다고 해도, 지금은 해방이 되었다. 생활을 위해서 일본어 강사를 하는 것이 그리 큰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것이 친일파라고 매도할 성질도 아닌데, 작중 화자가 너무 예민하지 않나 싶었다. 셋째, 역설적이게도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하면서 청산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다음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장면 총리도 친일파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군인반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쓰면서까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다. 「노은사」는 1977년에 발표되었다. 유신 말기, 박정희의 권세가 북한의 김일성에 버금갈 정도로 기세 등등하던 시절이다. 많은 지식인들은 박정희의 친일 행위를 알고 있었지만, 감히 거론할 수 없는 시대였다. 아마도 그런 분위기에서 작가는 나름 역사의식을 갖고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올해 광복절은 해방 이후 최초로 반쪽짜리 광복절 행사가 치러졌다. 정부는 친일 의혹이 있는 인물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고, 그에 반발한 광복회와 야당은 정부 기념식에 불참하고 따로 기념식을 개최한 것이다. 이승만은 비록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했지만 그 자신은 마지막까지 반일의 자세를 유지했다. 박정희는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회담을 강행했지만, 그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이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 디딤돌이 되었고, 그 자신은 공개적으로 친일의 언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친일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집권을 했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국가 주요 자리에 포진시켰으며, 삼일절이나 광복절 기념식에서 공개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반영하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07년에 별세한 하근찬 작가는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대통령이 나오리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노은사」에서 작중 화자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고취하던 은사가 일본어 강사가 된 것으로도 충격을 받았는데, 그가 2024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등장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에게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1977년 그때가 그리울 정도로 좋은 세상이었다. 작중 화자는 지금의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근찬 작가의 작품들은 '역사의 증언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작가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입시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이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고, 기성세대는 자신이나 부모 세대가 체험했던 시대를 돌아보는 의미에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 책은 절판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근찬'이라는 표제어로 검색을 하면 그의 작품들 상당수가 현재 시판되고 있으니, 그의 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 이런게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하면, 그 넓고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을는지.. 한쪽 팔을 잃어 버린 자신 앞에 나타난 아들, 한쪽 바짓가랑이가 흩날리는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러운 아들. 그런 아들 앞에서 두 눈 가득 눈물을 쏟아내고도, 외다리로 살아가야 할 아들의 삶을 걱정해 주는 아버지. 참으로 비극적이다고 볼 수 밖에 없었던 작품 '수난이대' 이지만, 전후의 삭막함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마음. 자식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가끔 자식을 위해 좋은 말 한마디 던져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지고, 또 앞으로 세상의 편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두 부자의 안타까움이 가슴 깊숙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전쟁. 우리에게는 그 아픔과 시련의 추억이 없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수난이대' 는, '흰종이 수염'과 더불어 전쟁 직후를, 서민층의 시각에서 나타내어 이해하기가 쉬웠던 장점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 걱정 없어 보이지만 근심 가득한 만도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징용터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 서로가 서로의 위를 짓밟고 올라가는, 아니 그렇게 올라가야만 하는 현실 속에 그 아픔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아들 진수. 몸의 일부분을 나라에 바치고 돌아온 그들에게는, 전쟁 직후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남은게 없었다. 다만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 각막함 뿐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업어 줄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는 힘이 되어 나라를 돕고, 결국 그렇게 희생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서민이었기에, 단지 그 하나의 이유로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술로서, 세상을 비난하는 일로서 풀어야 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수난을 극복하려 했던 의지. 그리고 그보다 더 강했던 부자간의 사랑. 개울가의 외나무 다리에서 일어난, 아무렇지도 않은 마무리 대목이었지만, 말로 표현 하지 못할 감동이 그리고 안타까움이 울컥 눈물이 치닫게 하는 문학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맛볼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땅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래도 가장 낮은 곳, 묵묵히 말없이 노력하는 서민들의 땀방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신체의 일부분은 비록 모자람이 있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더 따듯하고, 훌륭한 만도와 진수 부자.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것을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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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독서토론대회에서 하근찬 씨의 <수난이대>를 주제로 정했었습니다. 만도 부자는 팔과 다리를 잃고도 자신들의 처지를 수긍하고 말없이 귀가합니다. 그들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 토론 주제였지요. 만도 부자의 자세에 대해서 부정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어느 학생의 토론 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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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근찬씨의 <수난이대>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하근찬씨가 이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며 읽고 또 읽으면서 <수난이대>를 제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하근찬씨가 나타내려고 한 주제를 제 나름대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주제는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수난 극복의 의지, 민족적 비극과 그 극복 의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주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수난이대>를 읽고 느낀 것은 자신들이 겪은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만도와 진수의 모습에서 느낀 나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수난이대>의 배경은 농촌입니다. 이 토론대회에 참석하신 다른 친구들은 하근찬씨가 이 글의 배경을 농촌으로 한 이유를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이 농촌이란 배경은 농민들의 삶의 현장으로서보다는 전쟁의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사람들, 특히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농민들의 장소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버지와 아들이 겪은 수난은 그들 가족 단위의 수난이자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2대(代)에 걸친 한 가족의 수난은 민족사적 수난의 하위 개념이자 대유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죠.
하근찬씨는 만도와 진수의 대화를 통해서 앞으로 만도와 진수는 서로의 불구를 보완하면서 살아갈 것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만도와 진수를 불구를 만든 전쟁, 그 전쟁을 겪게 한 조국에 대한 어떤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아니 보상은커녕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커다란 슬픔을 느꼈습니다. 특히, 자신의 불행도 서러운데 아들마저 불구가 된 것을 보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만도의 모습에서는 분노마저 느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지 않습니까. 만도가 팔을 잃고, 진수가 다리를 잃은 것은 그들의 실수나 욕심 때문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의 무능이나 불행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일제강점기 때 징용에 끌려가서 희생된 분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한국 전쟁 때 희생된 분들은 그 보상을 제 때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후에야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겨레가 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한국 전쟁 직후에는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만도와 진수 부자는 힘겨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고, 특히 아버지 만도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위로도 없이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이럴 수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그들이 요구를 하기 전에 국가와 사회가 그 보상을 성의를 다해서 해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외교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보상을 일본에 요구했어야 하고, 한국 전쟁에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서는 그 후손에 대해서라도 보상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이런 책임은 만도와 진수 부자에게도 있습니다. 그들은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희생된 많은 분들이 조국과 전쟁을 원망하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술과 담배에 빠져 살다가 좌절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 분도 있다고 하고요.
그들은 그렇게 좌절하고 울분에 잠길 것이 아니라 좀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의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근찬씨는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를 통해 불구인 상황을 협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제시한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이겨낸다는 복선을 담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문학의 세계는 현실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하지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도와 진수의 정확한 미래가 나와 있지 많기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현실처럼 만도와 진수는 전쟁의 고통으로 자살을 했을 지도 모르고 술과 담배에 빠져 살다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구인 상황을 협동하고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 부자만의 협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은 협동에서 한 발 더 나가 보상을 당당한 요구를 하고, 국가와 사회는 겸손하게 그 요구에 귀를 기울였어야 합니다.
이상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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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도하는 우리나라 고전 단편. 생각대로 어렵고도 심오하고도 쉬웠다. 비율로 따진다면... 전체가 10일때 어렵다:심오하다:쉬웠다 라면 4:4:2 이다.
수난이대의 주인공은 만도와 만도의 아들 진수이다. 모두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인데, 만도는 팔 한쪽을, 진수는 다리 한쪽을 잃었다. 모두 전쟁때문에 그런 것이다. 물론 만도와 진수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만도는 징용으로 끌려가 비행장을 닦고, 비행기를 넣는 굴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리고 어느날, 만도가 그 안에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불을 당기는 차례였다. 그래서 불을 붙여놓고 나오는데 저기서 비행기가 오는 것이었다. 물론 사이렌이 울리기 전이었다. 만도는 질겁을 하며 도로 굴속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쾅!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그 때 만도는 팔 한짝을 잃었다.
진수는 물론 징용으로 끌려가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진수는 전쟁중에 수류탄 쪼가리를 다리에 맞았다. 그것이 빨리 나아야하는데, 자꾸 썩어들어가서 다리 한짝을 잘라낸 것이다.
음... 이렇게 적어놓으니 더 모르겠다. 사실 내가 그때를 조금이라도 직접 보거나, 체험을 했다면 적기가 쉬울텐데, 그냥 역사책이나 교과서로 접한게 다이니 조금 많이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근찬이라는 사람은 해방 전후와 6·25전쟁 전후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많이 다루었다. 이 책에는 수난이대, 흰 종이 수염, 일본도, 삼십이 매의 엽서, 준동화가 그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다시한번 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있는 우리 가족중에 헤어지거나 죽은 가족들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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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내가 지도하는 학생의 집에서 보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실난 이 책을 중학생 시절 더운 여름날 방학동안 방구석에서 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수난 이대'는 아주 가슴아프게,'여제자'는 아련한 내 기억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도 내 책장에는 어릴적 누런 갱지에 촘촘히 박힌 활자로 표지마저 때가 낀 이 '수난 이대'라는 책이 당당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동안 나는 내가 귀애하는 내 제자들에게 가끔씩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고 아이들도 모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그랬는지 아주 좋은 책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본것이다.
내 학생 시절도 생각나고 무엇보다도 트랜디 드라마다, 소설이다 잡질구래한 책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그래도 여전히 민족적 정서며, 순순한 사춘기적 정서를 곱게 다듬어주는 역량있는 글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팔을 다친 아비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인 '수난 이대'도 전쟁의 상처에 한 서린 민초들의 삶이 가슴찡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여제자'가 제일 좋다. 얼마전'내 마음의 풍금'이란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영화가 나왔을때 나는 영화을 제작한다는 소식만 듣고도 가슴이 설레였다.
바로 이 '여제자'가 그 모티브인것을 금방 눈치 챘기 때문이다. 주인공 전도연의 이름이'홍연이'인것과 이병헌이 연기한 젊은 선생, 그리고 일련의 줄거리가 금방 '여제자'임을 알수 있게 했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첨가하고 각색한 '내 마음의 풍금'은 원작보다는 훨씬 못 미친다. 하기야 순수하고 세심한 사춘기 소년 같은 짝사랑을 수채화처럼 맑게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을 어떻게 짦은 영화가 다 담을 수 있었을까? 하여튼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문학계의 큰 결실과도 같은 책이다. 내 감상이 이 책의 좋은 점을 전하는 데 부진하지만 여하튼 중고생들은 필독으로 꼭 읽었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일기장 검사를 하면서 홍연이의 그날 치를 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앵두가 조금밖에 안되어서 미안했다. 선생님께서 그 앵두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내가 갖다 놓았다는 것을 아실까? 우리 선생님은 머리가 좋으시니까 아실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한테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선생님은 다 짐작하실 것이다. 선생님의 하숙방을 들여다보니 어쩐지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일고 나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방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니..... 홍연이의 심리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일기 끝에다가 몇 마디 적어 주는 게 좋겠구나 싶었다. 나는 뭐라고 적는 게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간단한 몇 마디 말이지만, 그것이 문자로 남겨지는 판이니, 마음내키는 대로 적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선생이라는 체통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생각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엇다. "앵두 고맙게 받았다. 홍연이가 갖다 놓은 줄을 대뜸 알았다. 내 방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니, 나중에 내가 있을 때 놀러 오너라." - 수난 이대 중 '여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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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집에 있는 책이다. 어떤 경로로 나와 인연을 맺었는지 모르지만, 비교적 새책이고 2003년에 발간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구입을 한 책인 듯하다. 그 무렵에는 서평단이벤트 등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2005년 이전에 만난 책들은 선물을 받았거나 구입을 통해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시 외출을 할 일이 있어서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들고나가서 다시 만나는 인연을 맺은 책에 대한 인상을 적어보겠다. 이 책에는 「수난이대」등 8편의 작품이 실려 있으나 「여제자」에 대한 느낌을 중심으로 적으려고 한다. 첫째, 하근찬 작가에 대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하근찬 저자는 교과서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의 단편인 「수난이대」와「흰 종이수염」오랜 동안 중학교 국어책에 실려 있었는데, 두 작품 모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민족의 수난과 관계있기 때문인 듯하다. 교단에 있던 시절에 거의 매년 이 작가를 다룬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여제자」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 19세의 강수하 교사와 자신의 나이보다 좀 늦게 초등학교에 학교에 입학한 홍현이, 그리고 동료교사인 26세의 양순정 교사가 얽히는 수채화같은 사랑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이병헌 씨와 전도연 씨가 주연을 맡아 「내 마음의 풍금」으로 영화화 되었는데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많이 알려진 듯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가 어느 시골 역에 멈추고, 강수하 교사가 내려서 학교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교단의 첫 학교와 같은 분위기라서 더욱 정감이 갔다. 소설보다 2~3년 앞서서 작품을 읽었으니 아마 1990년대 말쯤 이 책을 읽었던 듯하다. 그때는 「여제자」만 실린 문고판 중편소설이었다. 홍연이의 학교를 한두 해 늦게 다녔다고 했으니 열대여섯 정도……, 강수하 교사와의 차이는 서너 살에 불과하니 오히려 양순정 선생보다는 더 어울리는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통해 하근찬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작가의 다른 작품을 교과서에서 자주 만났으니 나와는 적지 않은 인연인 듯하다. 둘째, 흐릿한 기억력이 도움이 되었다. 「여제자」는 나름 흥미 있게 읽었고, 영화를 통해서도 만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만난 작품인 듯 새롭게 다가왔다. 읽고 나서야, 이런 대목이 있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흐릿한 기억력이 오히려 고맙기만 했다. 감동적으로 읽었거나 인상 깊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낄 것이 아닌가 셋째,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어색함은 어쩔 수 없이 느꼈다. 이 책에서는 강수하와 양순정 교사가 교실에서 풍금을 연주하면서 합창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마노 사비시이 미쓰우미니……(산중의 쓸쓸한 호숫가에……).’어쩌고 하는 일본 노래였다. 소설을 읽을 때는 이 대목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품의 배경은 한국전쟁 직전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였다. 강수하 선생과 양순정 선생은 일제강점기때 교육을 받았을 테니 일본 노래가 생활화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나의 부모님이나 학창시절 선생님들도 일본식 교육을 받았으므로 대화에서 일본어를 쓰시기도 했다. 나도 일본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세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두 주인공이 교실에서 일본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들으니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에 대한 거리감이 생긴 것일까? 그밖에도 어떤 촌스러움이 느겨지는 대목이 있었으니……. 지금의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어과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는 작가다. 중고교 학생들이 읽어두면 좋지 않을까 싶다.60대 이상인 독자의 경우도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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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앗아간 그들의 팔과 다리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까지는 다앗아 가지 못했다 통나무 다리위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없는 다리는 다리게 되어주고 없는 팔은 팔이되어주는 아주 정답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사람이 있으면 전쟁이 모든걸 페허로 만들어 나도 다시 회복하지 않을까? |
| 나는 사실 한국 단편 문학들을 좋아하질 않는다. 항상 수필이나 현대 소설 같은 것을 읽는 것뿐이다. 그래서 언니가 내어준 책의 7가지 글을 모두 읽었을 땐 처음엔 너무 어렵고 막막하여 무엇으로 독후감을 써야 할지 몰랐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는 소설 하나가 있었다. 바로 맨 처음 읽었던 '수난 이대'였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만도 부자의 낙관 적인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라는 큰 고통을 겪었던 만도 부자. 그러나 그들은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선다. 비극적인 모습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려고 하는 '만도'와 '진수'. 내가 만약 만도 부자였더라면 아주 비관하고 낙심하였을 텐데... 이들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부자의 뒷모습이 내 기억에 남는다. |
| 이 책을 읽고 나서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만도는 팔을 전쟁에 나갔다가 팔을 잃고 불구가 되어서 불편한 생활을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렇게 살아가자라고 하는 낙관적인 그의 성격이 드러나 있다.이런 성격이 만도를 살수 있게 해주었던 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그의 아들 진수는 3대 독자 이나 만도처럼 전쟁 통에 발을 잃고 불구가 되었다.그 모습을 역전에서 기다리다 본 만도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어서 살아가는 그래도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이 소설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누구나 들으면 아는 이야기 일것이지만 전문을 다 읽어 보는것도 좋은 것인것같다. 나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꿈도 꾸지 못했을 행동을 만도와 진수는 나에게 일깨워 주었다.또한 아무리 몸은 이래도 즉 겉모습은 이래도 속마음은 다른 누구 보다도 희`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생각할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