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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말하는 '그'는 '그들'이다. 남성이며, 복수이다. CBS 정혜윤 PD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말을 주워담았다. 주워담아 골라서 읽기 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책의 짜임은 한 명 한명의 이야기를 엮어주어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잘 읽힌다. 이는 '쌍차 해고자'라는 뭉치로만 두리뭉술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뭉치 안의 개별 하나하나를 기억하게 된다. 이름 석자부터 그들이 나고 자란 보통의 생(生)을 본다. 한 명의 역사를 읽어가다보면 바로 내 곁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임을 새삼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들의 일이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남일로 보지 않고 나라면 어땠을까,로 생각이 넘어간다. 그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마음이 아픈 것을 지나 분노가 일고, 과연 이렇게 내버려두어도 되는가, 내가 할 일은 없는가, 사람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란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것은 실존적인 물음이다. 그리고 평생을 지고 살아갈 물음이며 지속적으로 답을 구해야할 질문이다. 2009년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2009년부터 지금까지 '진행중인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 사회의 노동 조건과 비정규직 문제와 맞물려 쌍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더 넓은 우리 나라 노동 문제의 방향까지 결정 지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이것은 마냥 남일처럼 덮어두고 모르는 척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2009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늘 드는 마음은 그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나를 대신해 싸워준 것 같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진보'로 때로는 '종북'으로 몰아가지만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늘 누군가 그렇게 싸워줬기에 지금의 우리가 더 나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싸워주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결국 터지고 사회문제화 되어 현재에 어떻게든 암덩어리처럼 드러나지 않는가.
2010
정혜윤 PD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감성적인 글만 쓰나보다했던 그녀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났고 힘이 필요한 '노동자'를 만난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아보였는데 정혜윤 PD가 가진 예리함과 섬세함은 쌍차 해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는 힘이 되었고 거기다 그녀의 대단한 글력으로 써내려갔기에 오히려 더 좋은 책이 나온 것 같다.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다. 쌍차 문제라는 가려질 수 있고 가리고 싶어하는 사건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 책이다. 쌍차에 대한 것은 TV 뉴스로만 본 나에게도 큰 충격으로 남아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하물며 77일간 옥쇄파업을 하며 현장에 머물렀던 그들에겐 어땠을까. 지옥이었다고 그들 입으로도 표현한다. 살인적인 진압 과정은 저것이 과연 이 나라의 국민을 대하는 공권력 수준으로 정당하다 볼 수 있는가? 란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주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나오는 발언 정도가 우리같은 국민이 알 수 있는 얕은 정보였다면 이 책을 통해선 쌍차 노동자의 입장에서 '왜 싸울수밖에 없었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은 어찌보면 회사에게, 국가에게, 자기 자신에게,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질문을 한 것이고 그에 대한 결론을 가지고 투쟁에 임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결론의 옳고 그름을 감히 이 일에 훨씬 비껴나 있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쌍차에서 해고된 이후 다시는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어요. 신뢰가 깨지는 것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24p, 이현준) 그들에게 가장 고통은 폭력적인 경찰의 진압일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더한 것이 '산자'와 '죽은자'로 갈려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그 자체였다. 어제까지 형, 아우하던 사이가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사고 전환이 되면서 같은 노동자들끼리 대치 국면으로 가야했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사람에게 베인 상처가 그들에겐 가장 쓰라리다. 엄청난 자본력과 정치력으로 이를 보이지 않게 조종하고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공포스럽다.
2011 이제 그들은 복직 투쟁을 넘어 복직 이후의 상황까지 고민한다. "쌍차 문제의 두 핵심은 진실과 죽음이다. 진실을 가려내야 복직과 원상회복이 된다. 진실이 곧 복직이다. 진실이 밝혀져야 잘못된 것은 바로 잡는다. 들어가서도 부당한 대우를 안받는다."(255p, 양형근) 라고 주장하는 한발 앞선 생각도 있다. 왜 그들이 정당한 이유없이(표면적인 이유 말고) 해고되었을까란 질문을 파고들었더니 나오게 된 원인. 잘못은 엉뚱한 사람이 하고 그 잘못의 결과를 뒤집어 썼다는 것을 알게 된 쌍차해고자들. 그러나 복잡한 인과관계를 국민들에게 얘기하면 이 문제에 한걸음 떨어져보는 사람들은 복잡한 얘기를 듣질 않으려 한다. 귀찬힉도 하다. 이미 각자의 삶조차도 버거운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그래서 그들은 지금은 아주 단순한 이유를 들며 복직을 외친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꿈을 접을 수 없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중략) 우리 모두의 소망은 가족과 함께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183p, 한상균)
2012
지금도 싸우고 있는 해고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는 것. 연대의 힘을 알게 되었고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상균 전 노조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과 김정우 전 지부장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가 그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내가 봤을 땐 그저 강경파 노조 집행부쯤으로 보였는데 한상균과 김정우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해고자들에게는 매우 커보였다. 사회 생활에서 결국 따르게 되는 사람이 인간적인 상사가 아니던가. (물론 능력 없는 인간적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오, 이 파트는 누가 말하는 거지?' 라고 다시 확인했던 부분이 있었다. '참 많은 생각을 했고 생각의 범위가 넓구나라'는 부분이 한상균과 김정우 부분이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따르는 이유는 비슷한가보다.
2013 올초 쌍차 대법원 판결은 해고가 정당하다라며 2심 선고를 파기했다. 그들은 이미 지리한 5년간의 투쟁에 지쳤다. 대법 판결 후 그들이 법원 밖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은 대법원 선고 훨씬 전에 출간되긴 했지만, 정혜윤 PD는 기록의 필요와 책임, 의무를 가졌던 게 아닌가 싶다. 나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할만한 게, 그들에게 힘내라고 할만한 게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 책을 사는 것이고, 읽는 것이며, 이런 소심한 리뷰라도 올리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쌍차 공장 굴뚝에서 고공 농성 중인 이창근씨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치유는 돌아가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우리를 치유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일하러 복귀하는 것이 치유예요."(132p)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하던 그들의 플랜카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하다. 그럴 것 같다. 일상을 제대로 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 없기를 바랍니다. 진짜 애도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이 생기는 것이지 않겠어요?"(170p)라고 말하는 복기성씨의 말이 잔잔히 맴돈다. 애도가 필요한 시대다. 여러 이유에서....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들이 복직했으면 좋겠고 그만두더라도 그들 스스로 그만둘 수 있었음 좋겠다.
미안합니다, 제가 힘이 되지 못해서.
해고 뒤 세상을 떠난 쌍용차 노동자 26명이 신던 신발이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한 퍼포먼스. 살아 있는 누구의 신발이 27번째에 놓일지 모른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7124.html)
<연관 읽기>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짓는 ‘분홍 도서관’ 건립 비용으로 쓰인다. 그곳은 떠나간 동료 26명과 그 가족들, 모든 아이와 어른을 위한 도서관이다. (발췌 주소 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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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시청을 지나고 광화문을 지나면서 출근을 한다. 어느 날은 책에 고개를 파 뭍고 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는 대한문 앞 못생긴 화단이 있다. 그 말도 안되는 화단을 만들고 한참 동안 그 못생긴 화단을 지키는 전경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 화단을 볼때마다 쌍용차를 생각하게 된다. 왔다갔다 하면서 고민 끝에 기부금함에 돈 넣고 돌아섰던 기억과 노란봉투 참여한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 생각했지만, 볼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묵직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돈 몇 푼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는데, 그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자니..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죄책감을 갖게 되는 나로써는 부담스러웠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개의 마침표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침표가 없는 일을 자신의 의지 없이 만나게 되고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일 것이다. 물음표가 생겼다면 답을 찾고 싶어할 것이고, 나는 책을 읽으며 이 분들이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밀려난 것이 친구사이의 술자리 같은 조금 맘상하면 끝날 일이 아니라 생계와 삶의 계획과 맞물려 있는 직장의 일이라면 나는 그 물음표를 물리치고 마침표를 찾아 맹렬하게 헤매게 될 것같다.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나눈 의미 없는 약속들, 기다리라는 말에 기다렸으나 결국 아무 해결도 되지 않는 일들, 기다리면 기다리릴수록 해결보다는 망각, 회피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예상처럼 일어날 것이다. 그런 일을 5년이나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이야기는 충분히 치열하지만, 이야기가 치열해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같이 나서야 하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 이렇게 살았는데, 쌍용과는 이런 인연이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이렇다라는 이야기였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다. 슬픔과 치열함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기쁨이 있고 전에는 전혀 몰랐던 마주 잡은 손에 온기에 대한 이야기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간단한 설명과 추임새를 넣어 정리하였다. 스물 여섯명의 스물 여섯개의 완전한 이야기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을 읽은 후에 H-20000의 동영상을 찾아 봤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빛이 났다. 이야기는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로 끝이 났다.
책 상태 좋다. 표지를 보고 너무 와 닿아서 지인에게는 끔찍하다고 말했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따뜻하게 보인다. 기계 돌아가고 삶의 흔적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따뜻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데, 시선을 어디다 두고 있었길래 그리 끔찍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난 정혜윤 작가의 강연도 책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들과 달라 좀 불편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들고 강연하는 정혜윤 작가는 내가 알던 정혜윤 작가와 달랐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혜윤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는데 빠른 시일 내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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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제가 그랬어요. "우린 월요병이 없다. 우리는 매일 휴일이다. 그런데 월요일이 너무 갖고 싶다." 너무나 원해요. 월요병 앓고 싶어요. 그런데도 그런 공장 가고 싶지 않아요. 5년이 지났는데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쌍차 문제를 생각보다 많이 알아줘서 고맙다. 그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헛짓이다.'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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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개의 크고 작은 부품들이 모여서 '자동차'라고 하는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수 많은 개인들이 얽히고 섥혀서 굴러가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부품 하나의 결함에도 자동차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듯, 사회를 이루는 그 어떤 개인들의 삶이 삐걱댄다면 그 시스템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자본은 수익이라는 명분으로 소유권을 주고 받으며 이득을 챙기고,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합니다. '해고는 죽음이다'를 내걸고 치열하게 싸워 온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 봅니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정부는 회사를 외자에 팔아넘기고, 외자는 약속을 어기고 대량 해고를 하고, 이후로 몇 달째 이어진 옥쇄파업과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끊임없는 죽음의 행렬 등 쌍용차는 자본주의가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속한 소규모 사회가 문제없이 돌아간다고 해서 전체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없는 게 아니듯, 내 삶과 그들의 삶이 별개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슬픔과 기쁨'은 달리 말해 '나의 슬픔과 기쁨'이 되어야 온당한 것이겠죠. 그러므로 그들이 걸어 온 과거와 지금 처해 있는 현재가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아야 합니다. 저 얽히고 섥힌 시스템 속 어딘가에 자그마한 부품으로 나 또한 속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거, 더 많은 급여와 더 많은 복지가 아닙니다. 그냥 하던대로 일을 하게 해 달라였습니다. 그냥 가다가 본인들이 만든 차를 만나면 반갑고, 그 이력까지 생생하게 온 몸으로 기억하는,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묵묵히 일만 했을 뿐인데 어느 날 이유없이 날아든 해고통지서에 동의할 수 없었던 그들입니다. '다시 일하게 해 달라!' 그들이 원하는 단 한 가지입니다. 쌍용차 투쟁에 앞장섰던 한상균이라는 이가 지금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정부의 노동개악에, 역사왜곡에 맞서 송곳처럼 맞서고 있는 그가 지금 조계사에 들어가 있습니다. 일부 신도들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착착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부처가 그리 가르치지 않았을 것인데, 종교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품으로 날아든 약한 생명을 거리로 내치는 짓을 하지는 않을 텐데... 부처님의 가호가 그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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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0000과 함께 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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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픈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가장 기쁜 것은 같이 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로 행복했어요. 내 옆에 누가 누워 있다는 것으로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잊고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는 주간지에 같이 담겨 온 노란 봉투를 받아 본 것이 얼마 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손배청구액 46억원이 선고되었고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그들을 위해 노란봉투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잊고 지내다가 한 사람의 몫이라도 해내고 싶어서 사만칠천원의 기부를 했다. 약간의 망설임끝에 선뜻 낼 수 있는 그 금액은 내가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만큼 커다란 돈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에 알량한 위안을 가졌었다. 이것 하나로 그들의 기쁨에 함께 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 정말 부끄러움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마음을 베이듯 스며들어 와 자꾸만 내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정혜윤 역시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느낀 부분은 더욱 커다랬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고 있을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복직투쟁을 위해 싸워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산자, 해고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외면하지 못해 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다른 일을 하면 한달에 오륙백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도 불편한 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희망뿐 다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미사 강론시간에 신부님께서 대한문에서의 매일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더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제단의 결정에 따라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면서부터 죽음의 행진이 멈추었다며, 그들에게 종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님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자신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 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의 힘과 미사성제의 위대함을 믿는 마음에 괜한 자부심을 느꼈었지만 이제는 신부님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라고 한 그 마음을 더 깊이 깨닫는다.
"공장에 안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보충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 이 투쟁을 운동과 계급에 의해서 했던 사람은 그 생각 안할 겁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동지들, 썩어 빠지게 일만 했던 동지들, 운동이 뭔지도 팔뚝질이 뭔지도 모르는 동지들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어느새 "쌍차 투쟁이 이 나라 정리 해고의 문제, 노동자들의 문제다"하고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럼에도 "또 만들고 싶다. 또 하고 싶다"고 해요. 그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 옮겨 적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담담히 흘러나오는 쌍용자동차 선도투 스물여섯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연결되는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측은지심을 알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묵묵히 자기 일, 자기 역할을 하고 자기 삶을 살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답을 모를 때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를 택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중 일부라도 현실로 만들어 보길 선택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너무나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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