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눌노리, 겨울
큰 눈이 내리자 파평산이 마을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산 밑 묵은 밭 아래 텃밭으로 마을 가까이 바짝 붙어 울타리 넘어 마당까지 내려왔다
사람을 피해 멀리 앉던 기러기도 긴급 주민총회라도 하려는 듯 마을회관 앞까지 와서 자리 잡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여서 내외 조심이 느슨해진 듯 마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눈이 내린다. 푸짐하게 눈이 내린다. 허공을 꽉 채워 내리는 흰 눈. 내리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검게 더러워진 도시의 눈이 아니다. 내리면 내리는 대로 논과 밭에, 마당과 지붕에 눈이 쌓인다. 소리마저 흡수하여 고즈넉하게 하얀 세상으로 바꾼다. 마을에 서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산에도 눈이 내려 바짝 다가왔다.
눈은 공평하다. 어디라고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내리는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다. 다만 눈이 만물을 덮으면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야생의 생명은 대책이 없다. 저장하지 않는 생명에게는 너무 가혹한 세월이다. 먹이가 있는 사람의 마을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경계를 지워야 한다. 그렇게 눈이, 큰 눈이, 국경 근처 작은 평화마을에 눈이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