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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미래(?)인 것 같지만 이미 현실인 노동의 상태. '미세노동' "하등 취업' 임금없는 노동, 노동자없는 노동 엄청난 속도의 변화에서 오직 자본의 부만이 늘어나교 노동자가 사라지고, 아니 가라앉고 있는 다가온 노동, 노동자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냄. 내가 노동(그 대가인 임금)으로 살아가야한다면 읽어보고 생각해봐야할 내용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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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가혹한 세상. '진보주의자' 조차 모르는 세계. 스칼렛 오하라는 남북전쟁 후 아틀란타 재건 사업이 돈벌이 기회라고 보고 재제소 사업에 뛰어들었지. 남부연맹의 병참기지였고,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 중심 아틀란타의 재건에 목재 공급 사업이 유망했기 때문. 이악스런 스칼렛은 망해버린 남부연맹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남부연맹의 배신자로 경원시되던 남부의 공화당원 스캘러왜그(scalawag 깡패, 건달)와 남부에 한 몫 잡으러 온 양키 카펫배거(carpetbagger 카펫으로 만든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자)들과 거래를 트면서 사업을 키웠다. 스칼렛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아일랜드 노무자 십장 조니 갤러거에게 재제소 운영 전권을 맡겼고, 죄수들을 무임 노동으로 혹사하는 것도 눈감아 주었다. 스칼렛의 재제소는 일종의 범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였던 것.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이후 미국 남부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창궐한 범산복합체는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조니 갤러거 같은 자본의 논리는 달랐다. 그리고 '노예해방'이라는 명분으로 1865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수정헌법 13조는 거꾸로 범산복합체를 강화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다. 수정헌법 13조는 "어떠한 노예 제도나 강제 노역도,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이상, 미합중국과 그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어 노예 제도의 폐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처벌'로서 '강제 노역'이 허용되는 길을 열었다. 우리가 영화로 본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장면도 범산복합체에 의한 사설감옥은 더 많은 수감자가 있어야 이윤이 증대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범산복합체를 위한 대량투옥의 유혹? 1970년 닉슨은 '법질서(law & order) 확립'을 강조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블랙팬서, 블랙파워 등의 흑인 정치운동, 반전 시위, 여성 해방 운동 등이 타깃이 되었다.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닉슨의 선언은 '대량투옥'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필 존스의 [노동자 없는 노동]에는 난산복합체(refugee-industrial complex)라는 말이 나온다. 난민의 고통이 플랫폼 자본축적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필 존스가 소개한 몇 가지 사례를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케냐의 사막지대에 드넓게 자리잡은 세계 최대 난민촌 다다브, 그 한 복판에 있는 막사 안에는 여러 대의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고 이 막사에서 시간 당 1달러가 채 안되는 돈을 받고 데이터 라벨링 노동을 하는 난민들이 있다. 레바논 샤틸라 난민촌의 시리아 난민들은 밤 낮을 바꿔 지구 반대편 자본가들을 위해 도시에서 촬영된 동영상에 "집", "가게", "자동차" 같은 라벨을 붙인다. 그 라벨이 그들이 한 때 살았던 거리의 지도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어쩌면 지도를 만드는 이유가 훗날 드론이 그곳에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쓰일지도 모른다. 미래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일이 될지도 모를 이런 라벨 작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옆 집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M2워크(M2Work)에 참여한다. 노키아와 세계은행이 공동으로 출범시킨 M2워크는 "사회경제적 최약자층"에 새로운 형태의 '미세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세계은행은 '범난반구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창한 모토 아래 30%에 육박하는 팔레스타인의 실업률을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기회로 읽었다. 여기서 '미세 취업 기회'란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라벨링과 같은 '미세 노동 microwork'을 일컫는다. 미세노동은 노동자에게 권리나 안정성, 일정한 직무를 보장하지 않고, 그 보수도 푼돈에 지나지 않아 간신히 먹고살 수만 있을 뿐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에는 불가능하다. 순전히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고 사회적 삶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이른바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의 상태에 있는 이들이 바로 난민촌, 빈민가, 강점지의 노동자들이다.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은 주로 특정지역의 거주자들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인종차별적이고, 범산복합체의 논리와 연결된다. 난민처럼 경제의 암흑 지대에 수용된 사람들을 착취하는 미세노동 프로그램은 '난산복합체'의 은밀한 준동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