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남이는 열세살로 장의사에서 화환을 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려운 살림에 보태고 있었습니다. 화환 아르바이트로 받는 돈은 1회당 10전이나 특별히 장렬을 따라 가는 날이면 20전도 받고는 했었습니다. 그렇게 모으면 한 달에 오, 륙원씩 벌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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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남이는 열세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古物 行商을 하였다 푼푼이 벌어들이는 돈, 그것은 萬若 節用하여 쓰기만 하면 그 집안의 세 食口는 굶지는 않고 지낼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술을 즐겨하고 性質이 暴惡한 그의 아버지는 제가 버는 돈은 제 用處뿐에 썼다. 집안은 가난하기가 짝이 없었다. 어머니의 품팔이로 들어오는 돈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지내왔다. 열두 살부터 효남이도 때때로 돈벌이를 하였다. 活動寫眞館의 하다모치, 或은 葬儀社의 花環 모치, 이런 것으로 때때로 20錢씩 벌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내다가 그는 마침내 K葬儀社의 專屬으로 되었다. 그의 하는 일이라는 것은 花環을 들고 永訣式場까지 葬事 行列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는 日工으로 10錢씩 받았다. 그리고 花環을 들고 葬列을 따라 갔던 날은 特別手當으로 20錢씩 더 받았다. 그의 輸入은 한 달에 平均 잡아서 五六원씩 되었다.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