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뤼기에르 주교 발로 알기>책은 생각보다 얇았다. 반면, 단숨에 휘리릭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책을 펼치니 연표, 사진, 주석이 있어 비교하며 음미하며 읽어야 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뿌리 깊은 신앙이 바탕이 되었으니 파리에서 조선으로 행할 수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를 읽고 파리 외방전교회 사제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 한국 외방 선교회가 생기고 그곳 사제들이 전세계에 나가서 선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톨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건 브뤼기에르 신부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우리가 박해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건 브뤼기에르 주교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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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한국 교회 초기, 사제를 절실하게 원했던 시기에 활동하셨던 한 분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 책 제목처럼, 바로 알지는 못했던 거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마음에서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아! 이분이 한국 교회의 역사를 만드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책에 여는 글에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걸었던 그 길에서 조선 대목구가 시작되었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는 촉매가 되었으며, 교황청과 조선 교회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p36 이보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업적을 잘 설명한 문장이 있을까? 이 책은 이 문장에 관한 증명이라고 보면 좋겠다.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을 조선이라는 땅에 누군가 가라고 떠밀지도 않았다. 당신 스스로 가겠다고 자처하셨으니,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셨을까 싶다. 하지만, 이 섭리에, 하나의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게 갈망하던 조선 땅에 들어가기 전에, 왜 목숨을 거두셨을까? 조금 더 두셨으면 한국 교회가 어떻게 변했을지 몰랐을 텐데 말이다. 이 또한 알 수 없는 섭리가 있으리라 믿으며, 접어두기로 한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신앙적 업적이 이외에, 다른 부분도 발견된다. 바로, 기록이다. 책에서도, ‘서신’을 비롯하여 ‘여행기’라고 소개하는 글이 나오는데 잘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기록으로 그 시대의 여러 상황과 분위기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주교의 『여행기』에서는 그가 머물렀던 곳의 환경과 식생, 풍속, 관료들의 분위기 등의 정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수도회 사이의 분쟁 또는 협력,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 다른 종교의 전파 상황, 전교에 대한 가능성과 그 여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p154 이 책을 만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국 교회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애쓴 일등 공신을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계속 모르고 지냈을 이야기였다. 많은 신자가 이분의 책을 읽고, 우리가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신 분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분에 관한 감사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조금 더 견고한 신앙인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
초대 조선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이야기를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가 다방면의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일대기이며 열한 교구 교구장 주교님들의 추천을 받은 책입니다. 전국 교구장 열한 분의 추천이 담긴 이 책으로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대한 지적인 탐구를 시작한다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투신하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선교 사제의 삶을 선택해 동아시아 대륙의 끝 조선을 향해 ‘순교의 걸음’을 옮겼던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대해 더 가까이 그리고 더 자세히 알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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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의 신부님께서 계시던 #개포동 성당에서의 신자들의 인사나 신부님과의 인사는 늘 마주서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제가 #하겠습니다!" 였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개포성 성당에 염수의 신부님이 머무실때는 몰랐었다. 그런데 요즘 '브뤼기에르 주교 바로알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하겠습니다!' 의 의미를 바로 알게 되었다. 확실히 그 전의 개포동 성당에서 강제로 나누어 주고 읽히던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일대기' 에 관한 책 보다 쉽고 재미 있어서, 그 의미가 훨씬 빨리 다가오는 듯하다. 이런 주교님의 열정과 사랑을 진즉에 깨우쳤다면, 개포동 성당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님 현양 사업'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고 다들 앞장서서 했을 터인데...일개 본당이 하기에는 너무나 큰 사업이어서 결국 서울대교교구로 간 사업이된 듯하다. 염수의 신부님께서 늘 우리에게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알리기 위해서 정말 애를 많이 쓰셨다.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이것도 인연인 건지 지난 번 한수산님의 '새벽길'을 보고서 마가자의 의미를 깨쳤는데,,,이번에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열정과 사랑이 가슴을 쳤다. 진즉에 알았더라면 개포동 성당에 주교님의 흉상이 모셔졌을 때 더 많이 뵙고 감사인사 드릴껄...... 이제는 명동 성당에서 만나뵐 수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이시다...... 내게는 너무도 어렵고 멀었던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사랑과 열정이 이 책에는 쉽게 잘 적혀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사랑을 잘 담고 있다. 조선에 오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소주교님. 늘 말로만 듣던 그 주교님이 왜 위대한지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148p"하느님께서 과연 나중에 버리시려고 그 먼 조선에 그리스도교인들을 만드는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하느님의 섭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 딱 한 명만 보내 보십시오." 당시 조선의 박해가 심해서 선교를 맡기 오렵다는 주장에 반론을 하신 말씀인데...... 나는 여기에서 가슴이 탁 막혔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섭리를 끝내 찾아내시고 전교회를 설득하시는 열정에서......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그 서슬 퍼런 박해에도 무궁화처럼 피고 또 피어나는 신앙을 끝내 펼치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어낸 우리의 #신앙의 자유가 이제는 자유가 넘치는 세상인데 점점 젊은 #천주교인들은 줄어들고 있다. 어떻게 지켜낸 신앙인데......그 신앙을 물려줄 후손이 없는 시대에 신부님의 사랑이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 닿아 그분을 #시복시성을 해 드리고 #현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사랑받기를 소망한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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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수산 작가님의 <내가 떠난 새벽길>을 읽으면서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끝내 조선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고 만주 땅에서 병사한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그 가슴 먹먹함.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 분을 뵙고 싶다는 생각에 용산 성직자 묘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이 책은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님으로 계시는 조한건 신부님께서 글을 쓰셨다. 1장 조선의 상황을 읽으면서 성지순례 다니며 익힌 단편적인 지식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다.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신부님들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님들이 많으신지와 그 당시 들어오셨던 신부님들이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전체적인 관점에서 기술되어 한국교회사를 시간순으로 머리에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특히나 브뤼기에르 신부님이 1829년에 작성한 편지를읽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조선 선교의 위험한 사업을 본인이 직접 대안을 제시하며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자청한 한 통의 서한으로 조선 선교의 불투명성을 역전시키고 조선 대목구의 설립, 조선 교우들의 신앙의 씨앗 심고 또 브뤼기에르 주교님 뒤를 이은 열성적인 선교자들(모방신부님, 샤스탕 신부님, 앵베르 주교님 등)의 조선 파견이라는 물길을 대주어,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라는 새순을 튀울 수 있고, 결국 한국 천주교회라는 굳건한 전통이 수립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소(蘇) 주교 시복 추진 제1차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연구실적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 대목구 설정 200주년을 향하고 시점에서 그분을 시복시성을 추진 운동을 펼친다니 다행이다. 복자와 성인만이 공경의 대상이라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운동을 통해 조선 초대 교구장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우리 조선 신자들을 향한 사랑을 기억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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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는 우수한 성적과 두터운 신앙심, 대담하고 솔직한 면모를 갖춘 만능 인재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앞날이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교는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않았다.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쳐라”는 말씀을 모토로 삼아 불편하고 불안한 미래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조선에 가서 선교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천주교는 신부가 없이 평신도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종교였다. 평신도가 천주학을 공부해서 만인에게 전파한 것이다. 잘 알겠지만 조선은 유교 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국가였기 때문에 서학 따위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학문이었다. 그런 나라에 자진해서 선교하겠다는 건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선교에 대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나열하자 조목조목 반박한 다음 대안을 제시하였다. 조선 선교에 열망이 있었던 만큼 조선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이다. 조선으로 향하는 주교 일행의 여정은 평탄하고 꽃밭 같은 길과 거리가 멀었다. 주교는 안타깝게도 조선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국 마가자에서 생을 마쳤다. 주교는 조선에 도착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여정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 길은 이제 오늘날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되었다. 주교님이 이역만리부터 닦아두신 길을 끊지 않으려면 우리도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박해받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브뤼기에르주교바로알기 #조한건신부 #생활성서 #생활성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