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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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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엔 18편의 풍장(風葬)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엔 '풍장45'가 있어요. 저에겐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시죠. 제가 황동규 님의 시를 처음 접했던게 대학 1학년 초였는데, 그게 '꿈, 견디기 힘든'이라는 시였거든요. 제목만 봐도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대학에 갓 들어온 제겐 힘이 쭉 빠지는 시였죠. '뭐...꿈이란게 원래 그런거 아닌가. 이런걸로 뭐하러 시까지나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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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엔 18편의 풍장(風葬)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엔 '풍장45'가 있어요. 저에겐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시죠. 제가 황동규 님의 시를 처음 접했던게 대학 1학년 초였는데, 그게 '꿈, 견디기 힘든'이라는 시였거든요. 제목만 봐도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대학에 갓 들어온 제겐 힘이 쭉 빠지는 시였죠. '뭐...꿈이란게 원래 그런거 아닌가. 이런걸로 뭐하러 시까지나 쓰는걸까?' 젊은이의 그 깨달음 없는 어리석음으로 그냥 그렇게 지나쳐가긴 했지만요. 그리고 한 1,2년 쯤 후엔가, 제게도 방황이라는게 찾아오더군요. 꽤 오랜 기간, 나의 인생에 대해,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시간에 대해, 세상의 이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랬어요. 그때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그렇구요. 그러던 중에 다시 전 황동규 님의 시를 만나게 됐답니다. 그게 바로 '풍장45'였죠. 며칠 병(病) 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그 어깨를 쓰다듬는 시간의 손가락도./ 눈이 밝아졌구나,// --- 이 시체를 끌고 가라. 순간, 저, 설레임같은 걸 느꼈어요. 오랜 기간 병없이 앓고 있었는데... 순간, 몸이, 마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느낌이었죠. 전 남들보다 명민하지 못해요. 좀 우둔한건지..늘 뒤늦게 깨닫곤 하죠. 그때 전 처음으로, 진심으로, 시가 좋아졌답니다. 시가 노래라는걸, 자연스런 말이라는걸, 입김이라는걸, 그냥 삶이라는걸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사람들은 다 다르고, 저마다 경험도 다르니까 각자 다들 좋아하는 시도 다를거예요. 그 때의 제겐 그 시가 남다르게 와닿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 시를 좋아해요. '미시령 큰바람'에 실린 다른 많은 시들도 너무 좋구요. 읽을때마다 자연스러움이 느껴지구, 사람의 삶이 느껴져요. '인간적 정감'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삶, 고민, 일상의 생각들을 말하는 거예요. '영원'이란 현실 속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라죠. 바로 그러한 '시간성' 내에 부유하는 것 같은, 일상, 우리들의 삶이 느껴져요.

[인상깊은구절]
바람 소리.//저 마을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산,/ 낯익어 고향 같다./개울 간신히 건너는 돌다리/ 낯익어 돌다리 같다./눈 반쯤 감고 보면 모두 낯익다./ 바람 소리에 흔들릴까말까 주저하는/저 나무의 몸짓도./ 언젠가 하루 구름 갠 날/눈 한번 아주 감으면/ 모든 게 낯익어지지 않을까.//몸서리치게/ 낯익은 사람 소리.
a******9 2001.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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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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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1. 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3.11.30.       배움터(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노래(시)를 물음풀이(시험문제)에 맞추어 조각조각 뜯고 줄거리(내용)하고 알맹이(주제)하고 글감(소재)을 알아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노래를 ‘줄거리·알맹이·글감’으로 뜯어야 할까요? 가락(운율)을 짚고 빗댐말로 헤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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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2021.8.1.

노래책시렁 190

 

《미시령 큰바람》

 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93.11.30.

 

 

  배움터(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노래(시)를 물음풀이(시험문제)에 맞추어 조각조각 뜯고 줄거리(내용)하고 알맹이(주제)하고 글감(소재)을 알아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데 노래를 ‘줄거리·알맹이·글감’으로 뜯어야 할까요? 가락(운율)을 짚고 빗댐말로 헤아려야 할까요? 저마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를 저마다 다르게 느끼기에 저마다 달리 노래하기 마련입니다. 이웃이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느끼고 읽어서 주고받으려는 뜻이 아니라면, 굳이 노래를 가르치거나 배워야 할까요? 《미시령 큰바람》을 읽는 내내 노래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노래는 그저 부릅니다. 잘난 노래나 못난 노래란 없어요. 노래를 놓고서 물음풀이를 한다면 모두 눈속임이나 거짓이지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일 노래인데, 어떻게 줄거리나 이야기를 하나로 짜맞추어야 할까요? 곰곰이 보면 이 나라에서는 ‘문학비평·문학창작·문학수업·문학강좌’가 있습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사랑하면서 사람이 숲으로 서는 길을 나누는 자리는 좀처럼 안 보입니다. 글쓰기를 배워서 틀에 맞추는 문학이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에서 저마다 피어나는 노래이기를 빕니다.

 

ㅅㄴㄹ

 

오백 년은 넘어 뵈는 느티나무가 지나가고 / 오르페우스처럼 / 나는 휘딱 뒤돌아본다. / 오토바이 하나가 눈앞에서 확대되려다 만다. (지방도에서/26쪽)

 

마음속 악마가 속삭인다. / 뒤돌아보지 마라. / 뒤를 보이지 마라. / 시간 됐다, 출석부와 책을 끼고 곧장 강의실로. (마왕魔王/50쪽)

 

이달의 사락 h*******e 2021.08.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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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내내 들여다 보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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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폭염 핑계, 일 핑계로 휴가다운 휴가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어떻게든 떠나자고 벼르고 별렀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만지작거리며 마음 달래던, 그러다 이곳에 언젠간 꼭 가보자고 마음 먹게 만든 시집이 있습니다. 황동규 시인의 오래된 시집 [미시령 큰바람]입니다. 그중 눈에 쏙 들어온 것이 '삼봉 약수'였습니다. 요즘 같아선 시에서처럼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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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폭염 핑계, 일 핑계로 휴가다운 휴가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어떻게든 떠나자고 벼르고 별렀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만지작거리며 마음 달래던, 그러다 이곳에 언젠간 꼭 가보자고 마음 먹게 만든 시집이 있습니다. 황동규 시인의 오래된 시집 [미시령 큰바람]입니다. 그중 눈에 쏙 들어온 것이 '삼봉 약수'였습니다. 요즘 같아선 시에서처럼 그곳에 들어가 두문불출 절연하고

두어 겨울이 아닌 남은 삶 온전히 영위했으면 싶기도 합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 만난 개울,

우리 마음 이리 맑은 적 있었는가?

차가 맑은 거울 부시며 개울을 건너고

새들은 얼굴 찡그리며 나무에 붙어 있다.

삼봉 약수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나무토막 박아 만든 계단 중간에서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펴서 이마에 대고?

어지럽혔던 개울 다시 거울이 되면

웃는 낮달 뜬 하늘에 새들만 표표히 날리

 

세상이 고장난 시계처럼 움직이면

들어가 살리, 홍천군 내면,

내면에서도 계방천 지류의 한적한 숲길.

허허로운 바람 소리 : 절망도 때로는 도피니라

입구의 팻말만 바꾼다면

두어 겨울 나기 어렵지 않으리

약수터 안내판 대신 "떠돌리 쉬는 곳"

찬 물에 계속 뜨거운 머리 식히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열목어가 마지막 와서 몸과 마음 묻는 곳

 

마지막 대목이 특히 찡했습니다. 제가 바로 열목어란 생각에서 말입니다. 너무 벌겋게 달아 있습니다. 별 소득도 없이 일상에 치여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도 홍천군 내면 계방천 지류 한적한 숲길이 지금 필요하답니다.

a*****7 2012.08.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