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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교섭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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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제법 인지도가 높았던 일본 총리 중에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총리 취임 전부터 북측과 다이렉트로 교섭하여 납북자(일본 국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었고, 실제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었다. 둘 다 매우 딱딱한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했었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 있냐는 듯, 이를 지켜보던 관찰자 대부분은 아마 '잘 되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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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제법 인지도가 높았던 일본 총리 중에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총리 취임 전부터 북측과 다이렉트로 교섭하여 납북자(일본 국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었고, 실제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었다. 둘 다 매우 딱딱한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했었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 있냐는 듯, 이를 지켜보던 관찰자 대부분은 아마 '잘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었을 것이다.

저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미국에서는 그 직후에 이른바 네오콘이 정권 핵심부에 자리하여 북한 정권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려야 할 악으로 간주했고(2008년에 정권은 교체됨), 북은 북대로 서방 진영에 대해 경색된 태도를 보였으며, 중국이 그새 경제력 축적을 앞세워 북한의 후원자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아베 신조 중심으로 보통국가론을 내세워 자체무장을 추진 중인데, 저 고이즈미 씨도 한국에서는 당시 마뜩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비둘기파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이 사람은 최근에도 관련 이슈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한 적 있다.

이 책은 고이즈미 내각보다 10년여 앞선 1990년대 초를, 북한-일본 외교 교섭의 시초로 잡는다. 이때는 나카소네 씨가 수상직에서 물러나고, 다케시타 씨가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 자격으로 직접 최전선에 나서서 정치를 총괄하려 들었으나, 연이은 부패 스캔들의 발생으로 치명타를 맞아 휘청일 때였다. 이때 사민당도 만년 야당 신세에서 벗어나 도이 다카코 여사의 지도 아래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려 노력하기도 했다. 와다 하루키 씨가 북일교섭의 시초로 보는 1990년대 초는 이런 시대적 맥락을 함께 파악해야 제대로 고찰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대로 북일 교섭은 일본 진보 시민 단체가 여론을 주도하여 그 기반이 잡힌 것이다. 납북자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일본 시민의 보편적 안전을 위해서라도 북한과 일본 사이의 비정상적인 긴장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일본 진보 진영은 이전부터 식민 시대에 자국이 행한 죄과에 대해 겸허히 빌고 가야 한다는 데 별반 이의가 없는 분위기였으며, 더군다나 남북 동시 유엔 가입 실현, 소련 붕괴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 만큼 북한과 깨끗하게 수교를 단행하자는 국민 여론이 확산하던 차에 보수 정권에서도 이를 묵살할 명분이 없었던 터였다.

오자와 이치로 씨가 촉발한 자민당 대분열 이후에는, 자민당 내 신진 세력이었던 하타 스토무, 호소카와 모리히로 등이 사민당 일부와 손 잡아 전후 최초로 정권 교체에 성공하였고, 이때 무라야마 도미이치 씨가 수상에 취임하여 그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전향적인 태도로 과거사 문제에 임하였다. 이때 북일 겨섭도 급물살을 탔는데, 다만 북핵 개발 문제가 돌출하는 바람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공습을 거론하는 등 분위기가 일시 급랭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북은 체제를 지탱할 후원 대국이 갑자기 사라진 터라(중국은 아직 자기 앞가림도 못함) 히스테릭한 불안에 시달렸던 시점이다. 사이가 나쁜 건 미국과 북한이었지 일본과의 사이에는 적대 현안이 다소 덜 부각될 무렵이었다. 의회에서 북한에 호의적인 여러 결의, 안건이 통과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2002년은 김일성 사후 아들 김정일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대외적으로 활동하며, 특히 그때로부터 2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 삼아 모종의 이미지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던 시점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과의 피파월드컵 공동개최로 완연한 평화 분위기를 정착하여, 이참에 오랜 불안 요소를 중성화하자는 게 조야의 여론이었다. 이 작업이 잘 이뤄졌다면 일본에서 시민단체의 발언권이 지금보다는 훨씬 커졌겠으며, 고이즈미 씨는 역사에 남을 명 총리대신으로 그 위신이 크게 높아졌을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지금 익히 아는 대로이다. 이렇게 결과가 크게 꼬인 건 첫째 책임이 북측에 있다. 북이 핵을 개발하고 이후 소아병적으로 대외 불신 기조를 유지하는 바람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북 유화 목소리를 내는 진영의 힘이 훨씬 위축되었다. 미국 역시 경직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별 효과도 없이 견지하여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은 잘못이 있으며, 그 와중에 감사해야 할 것은 일본 시민 사회 단체의 공명정대하고 일관성 있는 평화지향적 스탠스이다. 저자 와다 하루키 같은 분은 한국의 창비 같은 매체에 내내 기고를 해 온, 일본 학계의 양심이기에 아마 일본보다 한국에서 지지도가 더 높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s****o 2023.08.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