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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루샤 애벗과 키다리 아저씨인 저비스씨가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대부분이 애벗 한 사람의 편지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애벗의 일기 또는 연애편지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애벗은 비록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후원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의를 갖추어야 했던 아이이지만 늘 밝고 명랑하며 솔직한 소녀였다. 글쓰기와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순수하고 발랄한 소녀였다. 그랬다. 애벗은 고아원의 맏언니이어서 고아원의 온갖 잡일을 다 하고 있었다. 난 이 부분에서 애벗의 마음이 느껴지고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도 우리 집의 맏언니여서 내 동생들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평소에 나는 책임감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건 아마도 2명의 동생을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루샤 애벗이 고아원에서 일을 하다가 키다리 아저씨로부터 후원을 받고 그 후 고아원을 떠나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애벗의 수많은 편지에 답장조차 하지 않지만 늘 뒤에서 애벗을 보살펴 주고 마침내는 후원자가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다. 제루샤 애벗은 대학을 다니면서 제루샤 주디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키다리 아저씨를 알아갔다. 주디는 아직 미숙한 것인지 기분파인 것인지 기분이 안 좋으면 편지의 말투를 차갑게 하고 기분이 좋으면 말투를 부드럽게 한다. 나는 여기에서 자신을 후원해주시는 분인데 차분하고 예의 바른 말투로 편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디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니 솔직히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주디가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날 무렵 보낸 편지가 무척 인상 깊었다. 편지에서 주디는 이제껏 항상 남들이 입다 버린 옷을 입었는데 드디어 주디가 원하는 옷과 여러 물품을 사게 되었다고 말했다. 키다리 아저씨가 주디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금화를 주었고 그 돈으로 물건들을 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디가 산 물건들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왜냐하면 사치스러운 명품이나 비싼 음식이 아닌 자신의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만 샀기 때문이다(물론 비단 양말도 하나 샀다.) 비싸고 사치스러운 물건을 산다면 키다리 아저씨에게 혼날까봐 무서워서 그랬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그리고 주디가 록윌로우 농장에서 저비스씨와 함께 지낸 것도 인상 깊었다. 농장 주인과 주디가 저비스씨를 기다리며 농장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미국에 사는 이모와 사촌 언니, 그리고 사촌 동생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온 가족이 다함께 할머니 집을 청소했던 기억이 있다. 이모네 가족을 기다리며 청소하는 것이 몸은 힘들었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언가 준비하는 시간이 설레기도 했었다. 주디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저비스씨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아마도 내가 이모네를 기다리다 만났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농장에서 주디는 저비스씨와 함께 낚시를 하고 말도 탔다. 여기서 '낚시'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우리 아빠가 생각이 났다. 왜냐하면 요즘 우리 아빠는 문어 낚시에 빠지셔서 낚시 용품을 많이 사거나 배를 타고 나가는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 지금도 책상의 반을 낚시 용품이 차지하고 있다. (하. 하. 하.) 동시에 난 주디가 부러웠다. 왜냐하면 주디는 낚시든 말타기든 무언가를 재미있게 알려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워낙 바쁘셔서 아빠에게서 운동을 잘 배워보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 주디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디와 키다리 아저씨가 실제로 만나게 되고 그 이후에 썼던 편지를 읽었을 때이다. 왜냐하면 키다리 아저씨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저비스씨였기 때문이다. 주디는 저비스씨를 좋아한다는 걸 편지에 전부 썼는데 그 편지를 당사자인 저비스씨가 읽었다니!! 나라면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것 같다. 나는 내향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인 저비스씨에게 본인을 좋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다니!! 진짜 너무 너무 민망할 것 같다. 하지만 주디는 민망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주디는 숨지도 않고 저비스씨에게 안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편지는 주디의 첫번째 연애편지이다. 난 연애편지는 너무 쑥스러워서 못 쓸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남자에게 편지 자체를 잘 못 쓸 것 같다. 부끄럽고 쑥스러워 요즘말로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디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며 행복한 그리움을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연애편지를 쓰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저비스씨와 주디가 잘 될 줄 알고 있었다. 편지에서 주디가 하는 행동과 표현들을 보면 저비스씨를 생각하는 마음이 글자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너무나 잘 전해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저비스씨가 주디에게 하는 말을 보아도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티가 많이 났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주디는 친구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까지도 편지에 적어 보내면서 키다리 아저씨와 알게 모르게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와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했던 주디는 결국 키다리 아저씨와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디처럼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상대방의 위선에 맞서는 정신,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끈기 등이 있다면 결국에는 현명한 어른으로 성장하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주디를 보며 내가 처한 상황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감동 덕분에 <<키다리 아저씨>>라는 작품이 발표된 1912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