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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한 시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 영화는 차고 넘친다.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내가 어릴때 보았던 [성웅 이순신]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장군이 참전한 해전의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명량]과 [한산]은 보았지만 [노량]은 보지 않았다. 소설은 [칼의 노래]와 [불명의 이순신]을 읽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로는 [7년 전쟁]을 읽었고, 징비록도 읽었다. 그러니 그 당시 조선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어떠했는지를 모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다. 이번에 읽게 된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상)(하)]는 난중일기를 해석하듯이 쓴 소설이었다. 난중일기의 내용이 그대로 들어와 있기도 하고, 난중일기에 없는 내용들은 작가가 철저하게 고증해서 첨가하고, 글의 재미를 위해서 상상의 인물까지 만들어 소설의 재미를 더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칼의 노래]와 [불멸의 이순신]을 읽은 입장에서 이 소설이 그 소설들보다 재미있다고 말할수는 없겠다. 그러나 나는 난중일기를 읽는 것 같아서 좋았다. 새롭게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은 武臣이면서도 文章이 출중했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다. 모든 것이 한쪽만 뛰어나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바둑도 이론을 공부하지 않고 실전만 하는 사람은 어느 수준이 되면 늘지 않고, 실력이 정체된다. 한 단계를 뛰어 넘으려면 바둑 이론 공부를 해야한다. 사활이든, 행마든, 포석이든! 이순신 장군이 뛰어났던 것은 武도 뛰어났지만 늘 공부해서 文으로 탄탄히 내용을 굳혔던 것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난중일기의 순서 대로 임진 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정유재란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때 그때의 정취나 상황을 漢詩를 통해서 압축된 심리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에 소개된 한 시 중에 절반은 최인 작가님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지은 한시를 내가 평가할 수는 없다. 평측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운자도 딱히 맞는 것 같지 않았다. 맞지 않는 시도 있었고, 맞는 것도 있었다. 한시에 사용된 한자가 생소하면 옥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예 모르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조금 안다고 모르는 걸 두고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술술 읽지 못하고 공부하듯이 읽었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었다]는 이순신 장군을 재해석 한 소설이었다. 일기나 한시를 통해서 본 그의 심성이 잘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의 워낙 국민적인 영웅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가공의 인물이 첨가된 부분이 낯설고 어색했다. 공감이 잘 되지 않고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한시는 꼼꼼히 읽었다. 여름방학때 시간을 내어서 소설 속 한시를 가지고 공부를 해 볼 생각이다. 평측이나 운자도 자세히 맞추어 보고 나라면 어떤 글자를 쓸지 고민해서 한시 교재로 사용하려고 한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읽었더니 난중 일기 원문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시와 함께 한자공부도 더 해야할 것 같다. 이 소설은 나에게 한시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의지를 불러 일으켜준 소설이었다. 한시까지 넣어서 새롭게 이순신 장군을 해석해주신 최인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
![]() 제목 만으로 관심이 가득!!! 쏠리던 #장편소설 #신에겐12척의배가있나이다 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보다 외국에서 더 위인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진도대교를 건너 들어오다보면 오른쪽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크게 있다. 울돌목 위를 지나면서 이순신장군의 동상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해서 몇년 전 부터 '칼의노래'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만 하다가 자꾸 미루게 되었다. 이순신 - 임진왜란 - 징비록 으로 연결되는 연상작용 탓에 '징비록'에도 관심은 가졌지만 역시 선뜻 찾아 읽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느낀 벽은 현대어로 재탄생시킨 책 일지라도 사실 어려운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부담스러웠던것 같다. ![]() 다행이 오늘 만난 이 책은 어려운 단어의 벽은 덜 느껴졌다. 처음엔 일기라는 형식으로 뚝뚝 끊기는 이야기를 연결해서 머릿속에 구상하는 작업이 좀 힘들었다. 자상한 이 일기장은 지역이름과 인물 이름도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명과 인물명이 처음에는 좀 불편스러웠지만, 나중엔 거슬리지 않고 흘려 넘기는 길을 택했다. 그러다 정말 궁금하면 앞을 좀 들춰서 다시 찾아보기도 했지만 ![]()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해석된 한시만 알던 나라서 한시의 맛을 느끼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근데 이야기 흐름에 어울리는 분위기는 살짝 느껴지는듯 했다. 일기장 치고는 감정표현이 많이 드러나진 않는다. 사건 위주의 서술이 주를 이루는데 그런 사무적인 글의 중간중간 시가 있어 부드러움을 더해줬다. 가끔 나도 일기를 쓰다가 그 때 내 감정에 너무 떠오르는 노래 가사를 써두기도 하는데, 그런면에선 공감이 갔달까? 장편이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술술 읽힌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사극 드라마를 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만난다면 드라마 이상의 즐거움은 느낄 수 있을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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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 대한 책은 정말 넘치고 넘친다. 심지어 '이순신의 반역'이라는 책도 등장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순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삶과 업적에서 기인할 것이다. 최인의 장편소설 역시 난중일기를 토대로 이순신을 조명한다. 2권으로 된 소설은 1권에선 임진년(1592) 정월 초하루부터 갑오년(1594)까지를 2권에선 을미년(1595)에서 무술년(1598) 11월 19일 이순신 장군의 전사까지를 다룬다. 여기에 저자가 직접 지은 한시를 적절하게 수록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돋군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사실 말이 안된다. 어쩌면 선조와 중신들의 수군의 전력을 육지로 불러들여 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말이 옳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 안된다. 이미 적 수군의 배는 1000여척이 넘는다고 정탐과 보고가 된 상태에서 이 말은 허언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가 아닌 절체 절명의 그들에겐. 그렇기에 세계해전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전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이미 적을 알기에 어떻게 싸우면 이길지 알기에 그는 당당할 수 있었다. 전쟁은 그야말로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인간적인 윤리나 도덕 보다는 힘의 원리가 더 먼저 작용하기에 늘 힘없는 민초들은 억울하지만 그냥 죽어 갈수 밖에 없다. 침략군인 왜군은 물론이고 도움을 주고자 참전한 명군들에게도 유린당하는 백성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결국 배고픈 백성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잡아 먹어야 하는 아비귀환을 맞이하나 여전히 그들 곁엔 아무도 없다. 왕과 중신들은 살길을 찾아 도주하기에 바쁘고 정적을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이고 제 식구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백성은 보이지도 않는다. 난중일기는 이러한 백성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정사가 아님에도 더 정확하다. 이 책은 일기체로 되어 있어 읽기에 수월하다. 작가의 상상력이 어느정도 가미되었지만 난중일기라는 틀을 크게 벗어 나지는 않는다. 일기체라서 그런지 매일의 날씨에 대한 기술이 상세하고 알기 어려운 장군의 일상이나 역사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나 인물들의 갈등의 골이 섬세하게 묘사하여 인간 이순신을 이해할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순신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도지나 다모 예화, 이런 휘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권준등은 책을 읽는 내내 집중을 더하게 하는 좋은 요소였다. 이밖에 다양한 전투들과 의병 조직들을 세밀하게 소개하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의 실상을 낯낯이 보야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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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맏아들 회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다. 애비로서 아들의 혼례에 참석하지 못하니 비통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밤에 장흥부사 황세득이 술을 가지고 왔다.한양에 있는 첩들을 자기의 관부에 거느리고 왔다. 곤장을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11-) 상을 내리려면 바르게 함을 중요히 여기고 벌을 주려면 용서 없음을 중요히 여긴다. 상을 바르게 하고 벌을 용서없이 행하는 것을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보는 곳에서 행하면 직접 듣고 보지 못하는 경우의 사람도 암암리에 감화되지 않음이 없다. 대저 성심은 천지에 사무치고 신명에게 통하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76-) 오랜만에 몸이 편안해 조반을 마음 놓고 먹었다. 오전에 도지와 함께 정자로 나가 활을 20순 쏘았다. 나는 각궁으로 편전을 쏘고, 도지는 철궁으로 육냥전을 쏘았다. 화살이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 박히지 않았다. 바람 탓을 하면서 객사로 돌아와 공무를 보았다. 점심을 먹고 났는데, 부산으로 보낸 거제현령 안위가 들어왔다. 안위는 중요한 보고가 있다면서 바짝 다가앉았다. (-143-) 선비 안극가의 본관은 탐진이고, 자는 의지, 호는 뇌석이다. 안극가는 1591년 45세의 나이로 사미시에 합격했으나,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성주선비 정구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쌓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안극가의 스승 정구 또한 세속을 멀리하고 도를 구하는 선비였다. (-209-)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이는 내 집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다. 적들이 나를 해하려다가 안 되니까 집안을 절단내려 한다. 이러니 왜적을 가리켜 도적떼라고 하는 것이다. 홀로 배 위에 앉았는데, 심회가 천 가래 만 갈래였다. 오후에 출항해 변산을 거쳐 곧바로 영광 법성포로 들어갔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 앞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곧 나주목사 배응경이 지휘선으로 와서 적정을 고했다. (-250-) 거센 물이 바르게 흘러 돌도 떠내려가게 하는 것이 세(勢)이다. 사나운 새가 빠르게 꺾어 날아 낚아채는 것이 절(節)이다. 이런 까닭으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그 기세가 험하고 그 절도는 짧다. '세'는 당긴 활과 같고 '절'은 발사된 화살과 같다. (-291-) 잠시 후 선창으로 내려가 군사들에게 출정의 변을 고하고 배에 올랐다. 나팔을 세 번 불고 거북선 1척과 찬옥선 80척, 협선50척의 돛을 올렸다. 배가 포구를 벗어나기 직전 언뜻 예화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화는 바닷가에 나와 배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예화가 서 있는 바위절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넋을 닗고 서 있을 때 조방장 우치적이 보고했다. "진린 도독 함대도 돛을 올렸습니다." (-342-) 1597년 음력 9월 16일, 원균이 이끌던 조선의 수군은 전멸하였고, 조선의 배는 12척 밖에 남지 않았다.12척의 배를 직접 이끌고 명량해전에 뛰어들었던 조선수군의 장수 이순신 장군은 일본을 크게 패퇴시켰고,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임진왜란 내내, 전쟁을 치우면서, 23전 23승 전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함으로서,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을 쓴 소설가 최인이 쓴 『늑대의 사과』,『문명, 그 화려한 역설』,『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도피와 회귀』를 읽음으로서,그의 작품 중, 두 편을 제외한 마머지 작품을 완독했다. 소설가 최인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었으며, 지난한 자료 수집과 이야기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그의 문학적 가치에 근거한다, 소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 는 을미년(1595년) 음력 1월 1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겐 예화가 있었다. 부모 없이 자란 예화를 가르치고, 살피며, 요리와 배움을 예화에게 제시하였다. 전란 중에서, 아픔과 고통을 삭힐 수 있었던 건 예화의 극진한 보살핌 때문이다.이순신 장군 ,그도 사람이었다. 아들과 조카들도 전쟁에 투입되었고, 세 명의 전쟁 중에 아들이 사망하였다. 조카도 사망하였던 와중에, 아버지로서,이순신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의관을 갖추고 이순신 장군은 배 위에 서서 진두지휘 했다. 배 위에서, 그는 훈령을 따르고, 그 훈련에 따라서 상과 벌이 결정되었다. 항상 전시 상태였고, 활을 쏘았고, 훈련을 병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술년 (1598년 음력 11월 19일) 마지막 전쟁,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고,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소설은 전쟁 뿐만 아니라 인성, 전술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었다. 손자병법과 육도 삼략에 나오는 전쟁의 기본 원칙을 꼽씹고 있다.이 원칙은 임진왜란 내내 이어지고 있었으며,고독하고,외로운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고단한 인생을 들여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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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맏아들 회가 혼례를 올리는 날이다. 애비로서 아들의 혼례에 참석하지 못하니 비통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밤에 장흥부사 황세득이 술을 가지고 왔다.한양에 있는 첩들을 자기의 관부에 거느리고 왔다. 곤장을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리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11-) 상을 내리려면 바르게 함을 중요히 여기고 벌을 주려면 용서 없음을 중요히 여긴다. 상을 바르게 하고 벌을 용서없이 행하는 것을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보는 곳에서 행하면 직접 듣고 보지 못하는 경우의 사람도 암암리에 감화되지 않음이 없다. 대저 성심은 천지에 사무치고 신명에게 통하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76-) 오랜만에 몸이 편안해 조반을 마음 놓고 먹었다. 오전에 도지와 함께 정자로 나가 활을 20순 쏘았다. 나는 각궁으로 편전을 쏘고, 도지는 철궁으로 육냥전을 쏘았다. 화살이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 박히지 않았다. 바람 탓을 하면서 객사로 돌아와 공무를 보았다. 점심을 먹고 났는데, 부산으로 보낸 거제현령 안위가 들어왔다. 안위는 중요한 보고가 있다면서 바짝 다가앉았다. (-143-) 선비 안극가의 본관은 탐진이고, 자는 의지, 호는 뇌석이다. 안극가는 1591년 45세의 나이로 사미시에 합격했으나,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성주선비 정구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쌓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안극가의 스승 정구 또한 세속을 멀리하고 도를 구하는 선비였다. (-209-)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이는 내 집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다. 적들이 나를 해하려다가 안 되니까 집안을 절단내려 한다. 이러니 왜적을 가리켜 도적떼라고 하는 것이다. 홀로 배 위에 앉았는데, 심회가 천 가래 만 갈래였다. 오후에 출항해 변산을 거쳐 곧바로 영광 법성포로 들어갔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 앞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곧 나주목사 배응경이 지휘선으로 와서 적정을 고했다. (-250-) 거센 물이 바르게 흘러 돌도 떠내려가게 하는 것이 세(勢)이다. 사나운 새가 빠르게 꺾어 날아 낚아채는 것이 절(節)이다. 이런 까닭으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그 기세가 험하고 그 절도는 짧다. '세'는 당긴 활과 같고 '절'은 발사된 화살과 같다. (-291-) 잠시 후 선창으로 내려가 군사들에게 출정의 변을 고하고 배에 올랐다. 나팔을 세 번 불고 거북선 1척과 찬옥선 80척, 협선50척의 돛을 올렸다. 배가 포구를 벗어나기 직전 언뜻 예화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화는 바닷가에 나와 배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예화가 서 있는 바위절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넋을 닗고 서 있을 때 조방장 우치적이 보고했다. "진린 도독 함대도 돛을 올렸습니다." (-342-) 1597년 음력 9월 16일, 원균이 이끌던 조선의 수군은 전멸하였고, 조선의 배는 12척 밖에 남지 않았다.12척의 배를 직접 이끌고 명량해전에 뛰어들었던 조선수군의 장수 이순신 장군은 일본을 크게 패퇴시켰고,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임진왜란 내내, 전쟁을 치우면서, 23전 23승 전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함으로서,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을 쓴 소설가 최인이 쓴 『늑대의 사과』,『문명, 그 화려한 역설』,『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도피와 회귀』를 읽음으로서,그의 작품 중, 두 편을 제외한 마머지 작품을 완독했다. 소설가 최인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었으며, 지난한 자료 수집과 이야기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그의 문학적 가치에 근거한다, 소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하)』 는 을미년(1595년) 음력 1월 1일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겐 예화가 있었다. 부모 없이 자란 예화를 가르치고, 살피며, 요리와 배움을 예화에게 제시하였다. 전란 중에서, 아픔과 고통을 삭힐 수 있었던 건 예화의 극진한 보살핌 때문이다.이순신 장군 ,그도 사람이었다. 아들과 조카들도 전쟁에 투입되었고, 세 명의 전쟁 중에 아들이 사망하였다. 조카도 사망하였던 와중에, 아버지로서,이순신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의관을 갖추고 이순신 장군은 배 위에 서서 진두지휘 했다. 배 위에서, 그는 훈령을 따르고, 그 훈련에 따라서 상과 벌이 결정되었다. 항상 전시 상태였고, 활을 쏘았고, 훈련을 병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술년 (1598년 음력 11월 19일) 마지막 전쟁,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고,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 소설은 전쟁 뿐만 아니라 인성, 전술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었다. 손자병법과 육도 삼략에 나오는 전쟁의 기본 원칙을 꼽씹고 있다.이 원칙은 임진왜란 내내 이어지고 있었으며,고독하고,외로운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고단한 인생을 들여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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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인 이순신 장군,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그를 추모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많지만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더 조명받지 못하는 점도 있고 그가 남긴 난중일기라는 기록물을 보더라도 당시의 시대상이나 상황, 배경, 혹은 인물 등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접하며 역사를 배우거나 공부해 볼 것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접하며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도 소설이라는 장치나 상상의 기법이 더해진 책으로 역사를 어려워 하는 분들이라면 새로운 형태로 접하며 더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워낙 대중매체에서 자주 다루며 영화나 드라마로 자주 표현된 이순신 장군 관련 다양한 사건들, 하지만 이 책은 인간 내면의 심리나 관계술, 그리고 위대한 리더의 경우 어떤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판단, 다양한 사람관리 등을 통해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의미로 이어지게 되는지,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접하며 판단해 볼 수 있어서 기존의 임진왜란 및 이순신 장군 관련 책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하며 배움의 시간과 과정, 모두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총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며 우리가 교육 과정에서 배웠던 전쟁 및 전쟁사, 혹은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나 인물사 등을 비롯해 저자의 적절한 소설적 장치와 기법 등이 함께 작동되어 읽는 재미와 의미를 극대화 하고 있다는 점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투쟁 정신이나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정신, 그리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면서도 끝까지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강한 의지와 마인드를 통해 일생을 보냈던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기록 등을 함께 알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왜 모두에게 존경받는 성웅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대수롭지 않는 일도 사람들에게 안좋은 영향력을 제공한다고 판단이 들 경우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항상 전쟁의 최전방에서 지휘하며 강한 리더의 마인드와 존재감을 보여줬던 이순신 장군이라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배우고자 하는 우리 역사의 위인이라는 점도 체감해 보게 된다. 모든 것이 최악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방법과 방식을 찾으며 승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위대한 영웅, 이 책을 통해 접하며 자세히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청소년을 비롯해 일반인들까지 모두가 배우며 접할 수 있는 역사 소설책, 함께 접하며 활용해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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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왜의 침입이 뜸해졌다. 특히 조선의 겨울추위를 이기지 못했던 왜는 겨울철이면 숨어 나오지 않았다. 간간히 식량을 얻으려 노략질을 일삼아 이순신은 왜적선이 보인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날씨가 허락하면 출전하여 왜적을 요절내었다. 하나 지지부진한 전쟁이 계속되자 어리석은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무능하다 닦달한다.
선조의 초조한 공격이 어지러워서였을까 이순신의 병은 잦아지고 통증은 더해만간다. 아픔이 극심해질 때마다 자신에게 침을 놓고 탕을 다려올리는 예화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예화가 여러번 이순신의 아이를 떼느라 몸이 상하자 이순신의 마음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내 너 없이 어찌 버티겠느냐 몸을 잘 건사하라'. 그저 연인 예화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원균이란 자는 무도하고 탐욕이 극심한 자이고 이순신에 대한 질투가 심해 선조에게 거짓 보고를 올려 모함을 한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삭탈관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하게 한다. 밴댕이 소갈딱지 보다 못한 선조가 이순신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는 대신 열등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순신은 한양으로 끌려 올라와 극심한 고초를 당한다. 유성룡을 비롯한 충신들의 간언으로 겨우 죽음을 면하고 백의종군을 명받아 합천으로 향하던 도중 고향 아산에 이르러 어머니의 부음을 접한다. 전장에 끌려다니느라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한 것이 한이어서 통곡을 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한스럽다.
정유년 왜는 결국 다시 조선을 향해 진군하고 다급해전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전장의 선봉에 나서게 된다. 이제 마지막 일전이 남았다. 일촉즉발의 전쟁전야, 이순신은 한산섬 수루에 앉아 시 한수를 읊었다.
이순신이 한양에 끌려가 있던 동안 수군의 전세는 말도 못하게 추락하여 애써 지어놓았던 배도 거의 사라지고 12척만이 남았다. 이순신은 낙담하지 않고 선조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백성이 하늘이다. 아마도 이순신은 비겁하고 허약한 왕 보다는 백성에게 충성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항간에서는 이순신의 죽음이 스스로 의도한 바가 있다고도 한다. 소설에서는 예화가 선택한 길로 인해 좌절을 느낀 이순신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수없이 떠나보내고 거의 매일 병으로 고통받았던 이순신이 정말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게 된다. 의로운 이여! 한 민족의 구원자여! 영원히 별로 남아 우리를 지켜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