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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읽은 첫 번째 책은 <트릭>이라는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가 저술한 장편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1장, 2장,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백 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작가의 글맛이 좋아서 금방 읽혔다. 일 년에 책 세 권을 겨우 읽는 동생도 재미있다며 가져다 읽었다. 이 책은 크게 보면 일흔 살의 할아버지와 네 살의 손자의 특별한 성장기이다. 딸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네 살짜리 손자를 떠맡게 된 일흔 살의 주인공(다니엘레)은 시종일관 아이(마리오)를 귀찮게 여긴다. 나 역시 아이보다는 어른에 가까운 상태여서 그런지 초반에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돼서 덩달아 마리오가 귀찮게 느껴졌다. 최근까지 학교 과제 마감에 촉각을 곤두세웠기에, 마감까지 삽화를 그려야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됐다. 그런 와중에 옆에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계가 전혀 다른 네 살짜리 아이가 쫑알거린다면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공감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마리오에게 무장해제를 해버리고 말았다. 네 살 어린이 특유의 지치지 않는 산만함(?)과 호기심, 그리고 그런 아이를 끊임없이 밀어내는 철옹성 같은 다니엘레로 인해 마리오에게 괜시리 짠한 감정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뚫어내려는 창과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혀 맞지 않는 퍼즐 같으면서도 어떻게든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기묘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밀어내고 귀찮아하는데 마리오는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해서 밀어내도 다시 와서 놀아달라고 졸랐다. 마리오의 이런 타격감 제로인 성격은 마침내 다니엘레의 마음까지 건드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별 볼일 없는 존재라 여겼던 어린 아이가 다니엘레가 지난 세월동안 외면했던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게 한 열쇠가 된다. 오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삽화가'라는 직업을 위해 살았던 주인공은 마감에 대한 압박과 성취감을 넘나들며 살았지만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 비슷한 그림만 그리며 쇠퇴해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를 '할아버지'라 정의하지 않으려 하고, 늙고 쇠퇴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주인공은 '생기 가득한' 그림을 그려내는 손자에게 열등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삽화가'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게 될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가지만 그걸 안다는 것과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인 듯하다. 주인공만큼 긴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벌써 이십대의 절반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을 바라보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몇 살이 돼야 나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명확히 짚을 수 있을까? 마냥 어리지도,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칭할만큼 완전하지도 않은 애매한 지금, 휩쓸리는 물살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아보려 애쓰고 있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고 배울 게 많은 애송이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흘러 '진짜 어른'이 된다면 다르게 느낄 수 있을까. 확신없는 의문이 든다. 앞만보고 달리며 오로지 삽화 그리기에만 몰두했던 주인공은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미래'라고 부를만한 시간보다 돌아볼 '과거'가 더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지난 시간동안 성공을 위해 몰두하느라 애써 외면했던 상처와 그로인해 자라지 못한 채 '유령'처럼 남아있는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게 된다. 작품 속 주인공은 흔히 떠올리는 '현자같은'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다른다. 주인공은 일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불안하고 우울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일흔이 됐지만 여전히 불완전하고, 네 살의 어린 손자에게도 미움과 열등감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며 어쩌면 이런 모습이 (원치는 않지만)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썩 멋있지는 않는 일흔의 모습이지만 한 발 들어가서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저물고 싶지 않아서 악을 쓰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역설적으로는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자신에게는 더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이라 여겼던 '생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살짜리 손자의 재능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주인공의 내면에 예술에 대한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다는 반증이니까. 주인공은 찬란했던 지난 날들을 아쉬워하면서도 괴로워했다. '광분'이 가득했던 비좁고 빈곤했던 지역에서 그의 유년시절은 분노와 가난으로 얼룩졌다. 그에게 나폴리의 집과 유년시절은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 시절 그가 외면했던 상처들은 그를 평생 따라다니는 유령처럼 괴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손자가 생긴 나이가 됐고, 오랜만에 방문한 옛집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들과 마주하게 됐다. 손자의 예상치 못한 장난으로 인해 발코니에 갇히게 된 그는 인생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된다. 지난 날의 자신을 돌아보니, 그는 평생 '결실'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강박감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간 충만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텅 빈 공허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가 쫓았던 목표들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훗날 과거를 무엇이라 부르게 될까. 아직 싹조차 틔우지 못한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내 삶도 마리오보다 다니엘레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과거를 어떻게 떠올리게 될지 궁금하다. 혹여나 내 삶이 권태로움에 젖어 생기를 잃게 된다면 그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며 꺼내볼 수 있기를. 차가운 발코니에 갇혀 인생을 고찰했던 주인공을 떠올리며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대단함과 하찮음의 차이를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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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과거를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고이 묻어두었던 과거를 마주하려면 촉진제가 필요하다. 다니엘레는 손자 마리오를 통해 과거의 유령과 마주한다. 그러나 그 마주침은 결코 악운이 아니었다. 결투의 끝은 수용으로 끝나는 기분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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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레가 마주한 유령은 정말 유령인가. 나는 그가 만들어낸 편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다니엘레는 자신을 괴롭게 했던 도박꾼 아버지, 폭력적인 주변 인물들과 자신을 다르다고 믿고 싶었다. 설령 그에게도 그런 본능이 존재할지라도 말이다. 평범한 나폴리 길거리 깡패가 되지 않기 위해, 나아가 평범한 성생활을 영위하고 격조 있는 어휘를 구사하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나폴리를 떠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나폴리로 돌아온 나흘 안에 물거품이 된다.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던 그의 고통은 어리고 당당하며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마리오 앞에서 더욱 극심해진다. 다니엘레를 괴롭히는 유령은 나폴리에서 그의 앞에 드러났을 뿐,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다니엘레가 도망치거나 숨기지 않고, 자신의 치부와 못난 점을 그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재능을 꼭닮은 마리오에게 질투를 느끼기 보단, 그 재능이 꽃 피우길 바랐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자신의 일부이기에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프고 괴로운 과거일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레를 통해 나의 약한 점과 외면해온 구김살을 펼쳐 햇볕에 말려보고, 다시 한 번 쓰다듬어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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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니엘레는 딸의 부탁으로 손자 마리오와 잠시 함께하게 된다. 점점 잊혀 가는 화가 다니엘레는 마리오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자신보다 뛰어난 화가로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손자이면서도 자라날 예술인 마리오에게 다니엘레는 어떤 마음을 느끼게 될까. 또한 다니엘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 마리오와 달리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상처 가득한 어린 시절을 외면하기만 하는 그에게 다니엘레의 두려움 결정체인 유령이 따라다닌다. 과연 다니엘레와 마리오는 함께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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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中: 결투가 아닌 질투였다. ] <간략히> 뜨겁고 활력이 폭발하는 손자의 재능을 질투하면서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와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자신의 재능을 비관하는 늙은 화가가 순수하게 자신과 놀고 싶어하는 손자를 돌보다가 생기는 비극과 그에 대한 극복을 다룬 결투극. <서평> 어린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가? 이 문장이 찰나의 순간을 글로 박제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 것이다. '마리오'는 제멋대로고, 고집불통이며, 잘난 체가 심하고, 자신의 실수를 들키지 않으려 거짓말을 일삼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지만 정작 숫자와 전화거는 법은 모른다. 손주를 돌보기 위해 딸 '베타'의 집에 온 늙은 그림 작가 '다니엘레 말라리코'는 이런 마리오의 아집으로 인해 큰 곤경에 처한다. 소설은 다니엘레 말라리코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간다. 그래서 마리오는 더욱 작은 악마처럼 보인다. 그저 아이의 천진함과 무지에서 나오는 버릇없음때문이 아니다. 마리오가 더욱 사악하게 보이는 이유는, 다니엘레 말라리코가 마리오에게 '질투'를 느끼기 때문이다. 어릴 적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나폴리를 떠난 다니엘레 말라리코는 도심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작가가 된다. 하지만 다니엘레는 시간은 흘러 몸은 늙고 생각은 굳어서 부서지기 직전이지만, 그는 여전히 어릴 적에 꿈꿨떤 흐릿하고 부연 어릴 적 꿈을 쫓는다. 연필 하나로 세상의 규칙을 정하고 혁명을 하는 꿈을 말이다. 안정을 찾을 만한 상황에서도 다니엘레는 부단히 방황한다. 그 과정에서 아내에게 소홀히 한다. 아내가 병으로 죽고 나서 우연히 펼쳐본 일기장엔 자신이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을 추구하는 동안에 아내는 다른 남자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오랫동안 혼자 지낸 다니엘레는 여러 잔병치레를 하는 노인이 되었다. 이때 딸 베타는 자신과 남편이 학회에 참석하는 동안에 마리오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게 된다. 다니엘레는 마리오가 자신의 그림이 너무 어둡다는 말을 할 때부터, 귀여운 얼굴로 자신의 명성을 깎아내리려는 작은 악마에게 적대심을 품었다. 더더욱 경계심을 느끼고 살의를 느낀 것은 마리오가 자신의 그림을 따라 그릴 때였다. 모방이지만 누가 봐도, 심지어 자신이 봐도 화사하고 산소가 가득한 그 그림. 원래는 못 그려도 칭찬하려 했지만, 이 그림을 칭찬하면 진심으로 자신의 그림들이 별 것 아닌 낙서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다니엘레의 눈과 코와 귀와 뇌를 사용해 마리오와 마리오가 사는 집, 즉 어릴 적 자신이 살았던 집을 바라보게 된다. 치기 어린 장난에 불과한 마리오의 행위 하나에 우리는 짜증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위의 '<간략히>'에서도, 이 책의 뒷 면 홍보 문구에도, 다니엘레와 마리오가 지내는 그 시간은 '결투극'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70이 넘은 노인 다니엘레에게 10살이 채 안되는 마리오는 경쟁 상대였기 때문이다. '질투' 앞에서 혈육이라는 개념은 무참히 작아진다. 그러나 사실 이 둘의 생활은 '결투'로 표현되기엔 너무 거창하다. '사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최전성기의 근육과 순발력을 가진 여우는 당연히 마리오고, 늙고 병든 토끼는 당연히 다니엘레다. 자신의 재능이 이 아이의 재능에 비해선 정말 별 거 아니었다는 사실, 어쩌면 다니엘레 혼자서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니엘레는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다니엘레가 마리오로 인해서 역경을 겪고, 그 과정에서 분노, 자기 혐오, 죄책감,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제 풀에 지친 다니엘레는 눈두덩이가 푹 파이고, 머리는 다 벗겨진 채 근육이 다 빠져 볼품없는 팔다리를 한 노인을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를 수용하고 인정하자, 자신 앞에서 짹짹거리며 떠드는 저 어린 아이는 작은 악마가 아니라 귀여운 손자가 된다. 결투가 아닌 질투였다. 질투를 붙잡고 있으면 어린 핏덩이도 경쟁 상대로 보이지만, 다니엘레는 마지막에 질투를 내려놓았고 비로소 한 명의 인간이 되었다. 이 책은 너도 그런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넌지시 메세지를 던진다. #트릭 #도메니코스타르노네 #한길사 #소설 #신간 #문학 #이탈리아문학 #책 #책추천 |
| 미래를 보고 현재를 살아야 하지만 가끔 뒤돌아 과거를 마주하는 날들이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거나 행복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귀신의 형상으로 마주한다. 딸의 부탁으로 네 살 손자 마리오를 돌보게 된 일흔다섯 살 다니엘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손자를 돌보며 자신의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손자의 훌륭한 그림실력을 보고 어떠한 박탈감 혹은 피해의식을 느끼다 비가 쏟아지는 날 발코니에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또한 일흔다섯 살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만큼, 서술에 있어서 해당 연령대가 느끼는 신체적 한계나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빡깜빡하는 등 세심한 묘사가 돋보였다. 다니엘레와 마리오가 미래와 과거를 상징하는 두 극단이라면 정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나는 어떤 과거를 가졌으며 어떤 미래로 향해야 할까 생각해 보게 해 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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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다니엘레의 일종의 제령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과거는 그림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의 현재와 미래는 그것만은 아니다. 답지 않게 조숙하며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총명한 손자 마리오를 통해 그의 세계는 역으로 확장된다. 그는 더이상 헨리 제임스 때문에 고통받지도, 나폴리라는 곳의 난폭함으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도망쳐왔는지를 증명할 필요도 없으며, 다가오는 재능넘치는 후배 화가들로부터 쫓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인정하기는 굉장히 괴롭다. 자기 인생 자체를, 마인드셋 자체를 통째로 뒤집어야 하니까. 오히려 젊은 시절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발버둥 칠 때보다도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사회는 변한다.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힘주어 버티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하다. 책을 통해 다니엘레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나의 미래도 동시에 떠올려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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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줌파 라히리가 번역한 미국판 제목이기도 하다. 역자에 의하면, 줌파 라히리는 원제인 ‘스케르체토’를 ‘짓궂은 장난’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래, 인생은 우리에게 늘 짓궂지. 예술가로서 자아를 우선시하며 살아온 다니엘레는 손자인 마리오의 집이자 자신의 옛집에서 유령을 본다. 그것은 다니엘레가 도박을 일삼던 아버지로부터의 핏줄을 끊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길러온 과거의 잔흔이다. 그 잔흔 속에서 다니엘레는 마리오의 예술적 잠재력을 발견하고 남모를 질투를 느낀다. 누가 알았을까. 이들 사이의 미묘한 균열이 마리오의 짓궂은 장난을 계기로 극에 치닫게 될지 말이다. 카드 게임에서 누군가 트릭을 하면, 남은 건 승리 혹은 패배이다. 살면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 일어난 후 우리에게 남는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적어도 이 책은 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승리 혹은 패배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학회에서 돌아온 부모님에게 할아버지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는 마리오의 대사로 책은 끝난다. 마리오의 그 말은 앞으로도 종종 곱씹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