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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균 저자의 책이다. 제목이 『파묘』인데, '파묘'란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냄'이란 뜻이다. 이 책의 부제인 「친일파 민영휘 첩과 아들의 묘가 사라졌다」를 보니 내용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이 책의 원고는 2019년 7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충북인 뉴스'에 연재된 「충북 지역의 부끄러운 친일잔재 답사기」 덧붙이면서 고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작년 8월에 고향 후배가 이런 말을 하면서 보내주었다. "이 책의 저자가 홍천 사람인데, 형도 고향이 홍천이잖아요. 잘 읽어 보세요." 책을 받을 때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홍천 사람이라고 모두 아는 것은 아니고, 나와는 나이 차도 많은 듯하니 저자와는 일면식도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충북 지역과 별로 연관도 없는데 내가 그곳에 있는 무덤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없으며,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이라면 몰라도 첩과 아들의 무덤에 어디에 있든 무슨 관계랴 싶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친일파라고 해도 민영휘는 조선 말기의 세도가인 민씨 일족이니, 죽은 지 100년 가까이 되었을 텐데 이제 와서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아마 두어 달 동안 읽기를 미루다 책의 존재도 잊은 듯하다. 그러다 며칠 전에 우연히 펼치면서 답답함 속에 울분마저 느껴졌다. 책장을 넘기면서 스친 생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민영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민영휘가 고종비인 명성황후의 일족으로 세도 가문이었으며 친일파였고, 친일의 대가로 일제강점기 때 축재를 했으며, 휘문고등학교 설립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더 자세한 행적을 알게 되었다. 안유풍은 민영휘의 여러 첩 중에 한 명인데, 민영휘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휘문고와 풍문여고는 민영휘의 '휘'와 안유풍의 '풍'을 따서 교명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니 두 학교의 교명은 결코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니고, 그런 이름을 교명에 붙여서 후세에 전하는 두 사람 역시 영예롭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잊힌다면 당대의 불명예로 그칠 것을 그런 이름을 굳이 후세에 전하려고 한 그들의 행위가 어찌 보면 다행이기는 하다. 그 학교가 남아 있는 한 민영휘와 안유풍이 어떤 인물인지 기억될 것이 아닌가. 둘째, 지역신문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이 책의 내용은 2019년 3월부터 2024년 4월까지 5년에 걸쳐 '충북인 뉴스(충북 청주에서 발간하는 인터넷 신문)' 에 연재된 「충북지역의 부끄러운 친일 잔재 답사기」를 수정 보완해서 단행본으로 엮었다고 한다. 기자는 집요하게 친일파 민영휘의 첩 안유풍의 묘가 청수 상당산성에 자리 잡게 된 배경과 사라지기까지의 내용을 추적해서 실패한 친일 청산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인터넷 신문이 긴 기간에 걸쳐서 이런 기획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친일파의 현실을 파헤친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지역 신문이 아니라 중앙지에서 이런 기획을 통해 전국의 산재한 친일 잔재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아쉬운 마음도 컸다. 셋째, 새삼스럽게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체가 한스러웠다. 친일파를 찾아내서 척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일제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치솟던 해방 직후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를 응징하기 위해 설치된 반민특위는 친일파를 등용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던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습격당하면서 무산되었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가동하였다면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친일파 민영휘 첩의 묘소가 청수 상당산성에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친일신문들이 민족지인 양 변신하여 활개칠 수 있었을까? 친일파가 세운 학교들이 민족학교인 양 변신하여 아직도 존재할 수 있었을까?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가 호의호식하면서 80여 세의 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해방 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는 친일파들의 오늘을 있게 한 이승만에 대한 분노가 새삼스럽게 일었다. 넷째, 개인적으로 저자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꼈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견문을 담았거나 생각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면서 여러 자료를 섭렵하며 완성한 노작임을 곳곳에서 느꼈다. 긴 세월 동안 노고를 아끼지 않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동향인이라는 것이 반가우면서 자랑스러웠다. 다섯째, 답답하면서도 희망을 느꼈다. 민영휘와 안유풍 등 친일파와 가족들은 해방 이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은 아무런 응징도 받지 않았고, 후손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만……. 뜻있는 이들에 의해 그들의 자취가 이렇게 밝혀지고 있다. "청주시 상당산성에는 여전히 민영휘의 아들과 며느리의 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남아있는 숙제는 여전히 많다. 파묘가 곧 일제 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친일 잔재 청산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친일파의 석물과 무덤이, 문화재 대우를 받는 가옥이 친일파 묘지기의 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들의 잔재는 문화재로 둔갑해 숭배받는다.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그렇다. 그들의 무덤이 문화재가 되고 유산이 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잊지 말자. 不忘(불망)!-9쪽 저자의 말-" 2025년은 민영휘의 첩의 묘소뿐만 아니라, 친일파들이 자리 잡은 이 땅의 기득권이 파묘가 되는 대한민국이 펼쳐지리라는 기대 속에 희망을 느끼고 싶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친일파의 파묘가 어찌 청주나 충청도만의 문제일까? 전국의 독자들이 읽으면서 각자가 사는 지역의 친일 잔재를 생각하는 도화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이 친일을 청산하는 들판의 불꽃이 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