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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초등학교 기간제교사 야다베 요헤이, 국공립대학 3년생 모로하시 다이야, 대형식품사 직원인 사사키 요시미치는, 물놀이를 가장해 아이들을 성적으로 다루는, 소아성애자로 체포가 된다. 이런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이보다 500여일 앞선 날짜로부터 시작한다. 검사인 데라이 히로키는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아들 다이키를 어떻게해서든 악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생필품을 파는 몰에서 매트리스를 파는 기류 나쓰기는 잡화점의 나스 사오리나 와키모토의 관심과 연애사, 스탠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대학교에서 미인미남을 뽑는 행사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간베 아야코는 선배 구아하라 사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제안인 다이버시티 페스티발을 열고자 한다. 데라이 다이키는 친구와 함께 유투브방송을 하게 되고, 도미요시 아키라라는 형의 도움으로 편집 등을 배우며 즐거워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시점에서 이런 아이들을 성적으로 보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다이키와 같은 아이들의 방송에 제재를 가하게 된다. 자신을 어떻게해서든 결혼을 시키려는 것에 반발해 똑같이 결혼에 관심이 없는 사사키 요시미치와 결혼을 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간에 아야코는 작년 준미스터에 선발된 사사키 요시미치를 짝사랑하여 그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신이, 자연이 허락한 관계가 아니라며 혐호하며 부정하던 눈길이 줄어들고, 이젠 동성부부의 아이까지 신고가 되는 시대가 왔다. 이제사 사람들은, 나는 동성애에 아무 생각이 없어. 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듯, 자신의 선입견 없이 넓게 이해 한다는 등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각자가 이성애이든 동성애이든, 자신이 만들어 버린 부류에 끼워맞추려고 한다. 에이섹슈얼 (섹스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쓰기와 요시미치는 타인의 관섭이 피로하여 서로간에 남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는 커플이 되어버린다. 모로하시는 여자친구가 없어 동성애자가 아닌가 의심되고 또 그러하여도 이해할 수 있다는 처지이지만 사실은 물페티쉬가 있는 사람이다. 공원에서 물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린 이 세 명은, 똑같이 소아성애자로 분류되어 체포가 된다. 아동성애가 아닌 물인데, 이해받기를 포기하여 차라리 입을 다무는 이, 사실상 섹스에는 관심이 없는데 오해로 체포된 이. 이성애만 옳은 성애라고 믿는 검사도, 동성애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간베 아야코도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카테고리에 불류하고 자신의 동료(나까마)라고 여긴다. 그외의 성애에 대해서는 자신은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상 자신의 앞에 다가오면 줄을 그어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구분한다. 이제까지 동료로 여겼지만, 자신이 정의하고 이해하는 옳은 욕망이란 분필로 그외의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틀리다고, 그래서 결국은 검사에 의해 법률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옳은 욕망인가.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여기까지 인정해줄 수 있는 그 한계 안에서만이 옳은 욕망이고, 거기 한계선에 줄을 긋고 그너머에 있는 욕망들은 옳지않다고 말한다. 다양성의 시대에서 이렇게 성적인 다양함을 난 이해해라고 너그러운듯 말하는 한편, 난 너희들과 달라. 하고 구분해버린다. 이는 장애인의 데모에 교통수단이 늦어지니 민폐라고만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도 같다. 난 장애인이 아니므로 그들과 다르므로 그들의 호소를 다른 누가 들어주겠지 하면서. 옳고 그른 욕망을 떠나, 다른이의 신발에 한번 들어가 보자. 나는 너그럽다. 하는 대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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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생각이나 생김새. 튀지 않고 그냥 그런. 이런 평범함이 싫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평범하게 잔잔하게 살 수 있어서. 생각이나 가치관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 유형에서 크게 다르지 않고 욕망(?)도 별로 크지 않은.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평범함 속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그런 사람.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줄 알았다. 그래서 서로 노력하면 관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안다.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고, 때론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게 소수이기에 더욱 나타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그래서 외로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제목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 마음 안에 존재하는 욕구?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욕구(欲求)다. 여러 가지 욕구에는 다양함이 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식욕, 수면욕, 성욕, 성취욕, 소유욕 정도? 다른 건 모르겠고 성욕 같은 경우는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더 내밀하고 은밀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떻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 만약 내가 남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들이 들어가기 힘들다는 사립초에 입학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 그리고 검사라는 직업. 이런 잔잔한 행복이 지속 될 줄 알았는데 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집에만 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은 히로키. 아들 다이키가 유튜버가 되어 세상과 소통한다? 자신에게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침구 전문점 직원 나쓰키. 그리고 불편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들과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생 야에코. 서로 알지 못하는 이들은 어느 날 어떤 사건에 의해 연결되기 시작하는데.
확실한 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것. 그래서 공감을 일으키는 걸작도, 피하고 싶은 문제작일 수도. 쉽지 않은 주제고 입에 담기 불편한 주제이기도 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당연하다고, 그 외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고, 이후 나이가 들면서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남자가 남자를 혹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그런 것 정도는 이제 ‘그럴 수 있어’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몰랐다. 욕망을 느끼는 대상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세상과 단절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지만, 누군가와 지독하게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부모조차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단정 짓고,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사람들. ‘만약에’ 내 아이가 이런 상황이라면? 그래서 참 어렵다. 평범하지 않은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야 하는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진실은 저 안 깊숙한 곳에 있지만, 결코 그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달라 사정할 수 없는.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느끼지만, 유연해지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참. 평범. 보통. 단순하게 살고 있구나. 그 평범과 보통이 고마운 일이구나 싶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지게 되는 욕망. 그런 욕망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 진 것을. 읽고 나서 확실히. 여운이 남긴 한다. 나와 다른 게 틀린 것은 아니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용납하기 쉽지 않은. 다양성에 대해, 존중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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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거칠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특수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도 않은 소아성애자라 낙인찍히며 체포되는 줄거리를 가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을 받는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쉽게 나올 수 있는 대답일 것이다. 그리고, 아사이 료의 <정욕>은 이 대답에 비판을 제기한다. 만약 2021년이 아니라 1960년대라면, 이들이 체포되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 놀아주는 착한 어른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남자아이의 몸에 성욕을 느낀다고 주장은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어린이에게 성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고, 동성애 역시 사랑의 한 형태로 인정받으면서 물로 인한 변화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이들의 행동은 "걔는 수에즈 운하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한다고" 정도의 느낌의 기행이 아니라, 추악한 범죄로 비쳐지게 되었다. 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결과가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그 소수자에 기지 못한 사람들이 설 곳이 더더욱 없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물에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냐?"라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차로 공원을 향해 폭주한 노령의 남성은 범행 동기로 "급수장을 폭파시키고 싶었다.", "사회를 원망한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436p~437p)라는 서술을 통해서 이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흐르는 물에 성적 흥분을 느끼기 때문에 일어난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책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바른 욕망." 올바른 욕망이란 존재하는가. '다들 불안한 것이다. 불안해서 딸기 빵에 흥분하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여자 성기에 흥분하게 된 자기가 불안해서.(중략) 불안해서 주위 사원을 끌어들여 험담하는 것이다. 저 녀석을 이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주위도 이물질이라고 느낀다는 사실을 통해 자기가 다수파, 즉 어엿한 인간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어서(중략)내가 옳고 정답이라고 믿는 유일한 근거가 '다수파에 속해 있다'라는 사실뿐이라는 모순을. 3분의 2를 두 번 연속 뽑을 확률은 9분의 4이듯 '다수파에 계속 있을 수 있는' 확률은 대단히 소수라는 것을.' (379p)의 서술은 올바르다의 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왜 나쁜가? 어린이를 보고 섹스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왜 나쁜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수의 사람은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라는 대답 외에는 합리적인 대답이 없다는 사실을 소설은 샅샅히 분해해서 보여준다.(379p) 그렇기에 자신의 방향이 옳다라고 주장했던 아예코가 동시에 그때 자신이 그를 막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이후로도 살아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다. '네가 그토록 떠들어 댄 연대라는 게 드디어 내게도 생길 것 같아.' "연대." '나에게도 그 연대를 얘기해 줘."(중략) 두 눈을 선의로 반짝이는 친구가 '머리가 이상한 사람의 폭주'라고 단정한 뉴스는 어느새 까맣게 변한 화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439p)라는 결말부는 그렇기에 강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자신의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자기의심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을 하게 된 배경이 사실은 범죄가 아닌 행동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모순이(아예코는 인지조차 하지 못하지만)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회문제가 잠깐의 조명 뒤 잊혀저 버리는 장면이 드러나 있다. 아사이 료는 정말 철저하게 비판한다. 소수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은 소수자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말한다. 세월이 변해도 유지되는 진리 같은 건 없다고. 생각을 멈추지 말라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 따위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다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고, 쉬운 대답을 하게 내버려두는 작품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에 대해 고민하다가 죽는 것이다"라는 혹자의 명언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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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욕망’을 뜻하는 <정욕>이라는 제목과 ‘걸작’과 ‘문제작’을 동시에 아우르는 도전적인 문구에 혹하여 읽게 된 화제의 소설. 어제 도착했으나 빨려들 듯 순식간에 읽었다. 등교를 거부하는 아들을 둔 검사 히로키. 비밀이 있기에 사람들과의 연결을 피하는 계약직 직원 나쓰키, 처음 사랑에 눈 뜬 여대생 야에코.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이들의 인생은 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 시대’에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마음 둘 인물이 좀처럼 없었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법처럼 등장인물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다양성에서조차 소외된 이들을 보며,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내일 살아남길 바라는 불안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아사이 료의 <정욕>은 적어도 나에게는 ‘문제작’이 아니라, ‘걸작’으로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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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애자들은 취향이 존중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범죄라고 규정되기 때문인가? 범죄라고 한다면 그들의 취향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당연히 사회적 규약, 합의의 오랜 역사를 법 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준수하고 지켜오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여러 욕망 중, 식욕과 수면욕에 대한 욕구와 함께 성(性)적 취향에 대한 특별함은 다소 사람들에게 언급되기 어려운 섹션에 속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식욕이라 하면, 채식주의자 혹은 육식주의자 그리고,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세분화된 그룹, 그리고 소위 못먹는 거 없는 사람들과 입이 짧다고 놀림을 당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취향들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용인이 되는 것이 사회이다. 하지만 성욕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욕망과 욕구가 있지만, 페티쉬로만 단순히 설명되고 있는 그들의 특이한 성적 판타지 혹은 성적 욕망이 그들의 인생 전반을 잡아채며, 평범한 모습으로 둔갑되어 살아간다.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시각은 남과 여 라는 성별이 서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과거 혹은 현재까지 인류의 기본적인 형성 과정을 두고 '정상적' 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비 정상적' 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정상적'인 범주 밖의 거의 모든것을 말한다. 같은 성(性)을 사랑하는 동성애와 자신의 성(性)정체을 포기하고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보고자 다양한 노력들이 행하여지고 있다. 하지만 '비 정상적' 이라고 하는 수준의 범주를 넘어버린 욕구와 욕망에 대한 부분은 얼마나 용인할 수 있는가? '물','불','하늘','자동차','나무' 등 무수히 많은 특정한 사물 혹은 대상에게만 성적 욕구가 발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함께 하는 구성원으로서 그들을 어느정도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단순히 '이해한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 의 3인칭 시점으로의 의견 표명이 아니라, 그것이 나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욕구를 가진것에 감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혹시 나도 모를 무언가가 있는지 걱정 해야 하는지, 우리 주변에 비 정상적인 욕구를 가진자가 있는지 두리번 거려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소재의 공격적인 필체와 전개는 주요 사회이슈를 스릴러와 반전,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로써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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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친구 중 한분이 잘 읽은것 같아 따라 구입함. 보통 추천받는 책들은 잘 안맞는데 이건 좋았움. 스토리나 문ㅊㅔ가 내가 좋아하고 잘 읽혀 하는 류임. 오랜만에 괜찮은 일본 작가 발견해서 기분 매우 좋음. 해당 작가의 다른 책도 소장해서 읽고 싶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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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욕망이라고 한자까지 제목에 같이 표기한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두꺼워서 다 읽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찬찬히 읽으니까 다 읽어졌습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서 시야가 넓어진 기분입니다.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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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수준 높고, 기상천외하며 예측 불가능한 트릭을 구사했다! ‘독자에게 단서를 당당하게 보여 주면서도 진상을 알아맞히지 못하게 한다.’라는 본격 미스터리의 난제를 멋지게 해결했다. 과거의 사건이라는 배경과 치밀한 복선을 활용하고, 예상치 못한 진실을 짐작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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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가키 유이에 관심이 있어 동명 영화를 보다가, 원작에도 관심이 생겨 구입해 읽어 본 작품인데,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싶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소설가의 상상력이란 굉장한 것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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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좋다. 우리가 흔히 성소수자라고 일컫는 동성애자조차 사회적으로는 바른 욕망이다. 소수일 뿐이지만, 사회에서 허용한다. 사람을 사랑하니까. 사회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에 성욕을 품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나오는 물 페티즘인 등장인물들이 ‘이상성욕’을 갖고 있다고 일컫는다. 나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도 정욕을 갖고 있는 인간이니까. 이해할 수도 없다. 평범을 타고난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책을 읽었다 한들 나는 정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위선이다. 성욕이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잘못된 성욕을 갖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몰매를 맞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 기준으로 ‘이상성욕’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불행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들에게 그 어떤 말도 건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행복을 느끼는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정욕을 가진 자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들 입장에선 웃기다고 생각한 걸 과연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욕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평행선을 그리는 듯 하다. 과연 교차점이 생길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