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조선의 왕의 이름을 달달달 외울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전부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묻는다면...일반적인 업적 몇 가지 이외에는그들의 삶과 생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선왕조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지식들을 알려주었다. 글씨도 크고 시원시원해 처음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교재로는 매우 좋을 듯 하다. 또 간간히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이나 인물들의 사진등을 첨가하기도 했으므로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조선의 왕조에 대해서만 서술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그들 시대에 살았던 여러 인물들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다루어 폭 넓게 역사를 살펴보게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제법 지은지 오래된 책이라 시정해야 할 사진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과 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관적인 견해가 다소 거슬렸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 관점에서 쓰여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나 패자의 시선에서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하는 이런 책이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역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
| 조선왕조 오백년사는 정말 읽기 좋은 책이다 태조에서 부터 순종까지 5백년 동안 한 왕조가 유지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만큼 긴 역사를 가진 왕조였다. 중간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극복하고 몇백년을 더 유지하였다. 그만큼 전통과 뿌리가 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특히 세종과 성종때는 조선시대의 황금기였다. 세종 대왕때는 한글이 만들어졌고 여러가지 과학기구 등이 만들어 졌다. 조선시대 대황금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성종때 역시 대중흥기였다. 순조때는 임진왜란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다시 일어났었다. 그러나 고종때는 다시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래서 결국 일본에게 조선이 합병되고 말았다. 정말 참울한 결말이었다. 결국 순종때 나라가 없어졌다. 정말 암울하고 분노스러운 강제 합병인것이다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의 5백년 역사를 한번에 알수 있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한눈에 보려면 먼저 이책을 권하고 싶다. 정말 보람있게 읽은 이야기 조선왕조 오백년사 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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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산 것은 약 1년 전쯤인 중 1때였다. 아빠와 함께 간 서점에서 아빠가 조선왕조 오백년사와 고려왕조 오백년사, 그리고 고구려 사를 사주셨다. 나는 그것들을 열심히 읽었고, 중2인 지금은 국사에 무척 자신이 있다. 잘난 척 하려는게 아니고, 이런 청소년을 위한 역사서를 읽으므로서 공부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 책은 보통 책보다 약간 두껍지만 글씨가 그렇게 작지 않아서 한 이틀 열심히 읽으면 다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역사책과는 달리 정사뿐만 아니라 야사까지도 곳곳에 있어서 아주 재미있고, 그리 딱딱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 왕이 끝날 때마다 많은 그림 및 사진 자료가 나와서 도움을 준다. 단, 그것에서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 사진들을 시대별로 분류해 놓지 않고, 이것저것 섞어 놓았다는 점이다. 예들 들어, 정종 편 뒤에 규장각 그림이 있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치만 그 사진들 중에서는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도 많다. 하여간 국사를 한번 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7살의 짧은 생애였다. 12살에 왕위에 올라 3년을 있다가 영월로 내몰려 다시 3년을 지낸 뒤에 쓸쓸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따져보면 사육신의 거사가 오히려 그를 영월로 쫓겨나게 했고, 금성대군의 모의가 도리어 그에게 사약을 받게 했던 것이다. 그때 단종을 옭아 죽인 통인은 돌아서서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입과 코로 피를 토하면 쓰러져 죽었고 끝까지 단종을 곁에서 모시고 있던 궁녀들은 모두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한편 단종의 왕비였던 송씨는 단종이 영월로 내몰린 뒤, 궁녀 몇을 데리고 동대문 밖 정업원에 나가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주지승이 되었다. 단종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낮으로 슬퍼하였고, 매양 앞산에 올라가 영월 땅을 바라보곤 했으므로, 뒤에 그 산을 망원봉이라 불렀다. 말년에는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 집에 의탁하다가 80여세에 하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