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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로스 #우리패거리 #비채 #영미문학 #정치풍자 (……) 현재의 정치적 혼돈이 언어의 쇠퇴와 관련되어 있으며, 먼저 언어에 손을 댄다면 십중팔구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 정치적 언어, 그리고 보수당에서 무정부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세력에 해당되는 갖가지 변형은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하고, 살인을 훌륭한 일로 만들고, 바람을 단단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고안된 것이다. _ 조지 오웰, 〈정치와 영어〉, 1946년 서문에 인용된 오웰. 통찰력이란. 비틀기의 대가 필립 로스. 닉슨은 그에게 어지간히도 미움받았나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할 때, 그는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의 결정으로 직을 내려놓는다 했을 뿐. 전임자 케네디와의 공통점은 임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는 점 하나인가. 그는 어찌하여 미움받는 대통령이 되었을까. "... 알겠소? 중요한 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놈의 긴장이 지속되니까. 긴장이 너무 쌓이면 사람이 무너질 수 있소. 나야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무너지지 않겠지만. 이 점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오. 내 책을 읽어보면 내가 다른 것 못지않게 무너지지 않는 데에도 내 정치 경력 전부를 바쳤음을 알 수 있을 거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너질 수는 없지." 결정의 내용보다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인식. 그 인식의 위험성... 풍자문학. 아픈 곳을 찌르되 유머를 잊어선 안되는 장르. 저자는 대가답게 신속하게 찌르고 물러난다. 아니, 이걸 어떻게 대국민 담화, 국무회의, 후보연설로 풀어내냐구요. 혹시나 오해할까봐서 트리키가 지옥에서 출마할 때 한 연설로 못을 박았어요. 땅땅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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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거리』(필립 로스, 김승욱 역, 비채, 2024)를 읽다.
이 책을 선택한 건 그의 전작인 『에브리맨』(필립 로스,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09)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다.
작가는 『에브리맨』에서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나이듦과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를 보여주었다. 그저 그런 보통의 존재인 한 남자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는 내게 도무지 알 길 없는 삶의 비애를 조금이나마 엿보게 했다. 그래서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의 통렬한 정치 풍자극!’이라는 출판사의 홍보글은 매일같이 극성스러운 정치 뒷담화에 시달리는 내게 고급스러운 풍자 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것이라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소위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필립 로스의 초기작인 『우리 패거리』는 그런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소설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대화와 인터뷰들이 분명 반어와 역설을 현란하게 구사하고 있지만, 번역의 한계일지 우리말로 그 언어유희가 실감나게[ 전달되지 않아 강렬한 수사의 미학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 소설은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모델로 삼은 ‘트릭 E. 딕슨’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내세웠다. 소설은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언어유희를 사용하여 중의적으로 읽히는 수법을 썼고, 역자는 친절하게 이름이 나올 때마다 설명을 붙이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서의 흐름을 자주 끊게 만들었다. 좀더 우리말에 걸맞은 의역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실제로 닉슨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논의한 녹취록이 훗날 공개되어 이 소설은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사익을 위해 터무니없는 정책을 고안하고 이를 진심으로 옳다고 강변하는 모습과 사건의 본질을 흐려 무고한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는 상대 탓하기와 같은 저급한 정치권과 미디어의 언어가 가감없이 펼쳐지는 데서 독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쩌면 소설에서 보이는 매우 부조리한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는 환멸에 빠진다. 바로 여기서 풍자소설이 가져애할 해학이 전해지기보다 공포심을 조장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실패 혹은 번역의 오류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선 과연 이 소설이 ‘가장 유쾌하고 다층적인 정치 풍자 소설” 등의 찬사를 받았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법률 코치: 다행히 이 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대체로 수동적이고 무관심한 편이라서 언론의 이런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보도에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트리키 : 아,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미국 국민들의 훌륭한 무심함에 대한 믿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소. 그냥 텔레비전에서 보이스카우트의 피를 조금 보았다고 해서…… 텔레비전에서 보이스카우트의 피를? (그의 입술이 갑자기 땀으로 흠뻑 젖는다) 저들이 나를 탄핵할 거야! 저들이……! 법률 : 코치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그렇지 않아요. 이건 그냥 또 한 번의 위기일 뿐입니다. 걱정하실 게 전혀 없어요. 자, 자,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하시면 됩니다. 어서 제 말을 따라 하세요. 위기 때 행동하는 법을 아시잖습니까.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트리키 :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pp.70-71)
이 부분에선 우리 정치 현실이 오버랩 되어 살짝 웃겼다.
여하튼 필립 로스의 소설이기에 한번 더 애정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내가 너무 기대가 커서 미처 놓친 부분들이 있지 않은가 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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