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킬로미터까지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공간. 와이오밍의 목동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가 생각났다. 그런데 마지막을 읽어보니 브로크백마운틴 촬영장소가 와이오밍이었단다. 어디를 봐도 인공적인 게 없이 자연과 동물만 있는 광활한 대자연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거 감히 상상도 안되기에 목동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신비함이 있는것 같다. 분명 한권의 소설을 읽은것 같았는데..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에 슬픔을 이겨내고자 와이오밍으로 떠난 작가님의 에세이라니~~ 그 공간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탄생할수 있는건가보군요~~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그런식으로 극복할수도 있겠지만..그러다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또다시 힘들고..그런하루가 반복되고.. 하지만 저자는 와이오밍이라는 장소로 떠나고.. 그곳의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주는 위로에 온 몸과 마음을 맡기는 모습에 브로크백 마운틴의 장면들이 생각나고.. 온 밤하늘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주는 위로를 나도 받는 기분이었다. 와이오밍의 거대한 자연.. 나도 가볼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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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가 되도록 초대한다. 우리는 종종 강과 닮았다. 부주의하면서 강하다. 소심하면서 위험하다. 맑으면서 탁하다. 소용돌이치고 반짝이고 고요하다. 소로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한 인간의 삶은 강물처럼 신선해야 한다. 같은 통로로 흘러도 매 순간 새로운 물이 흘러야 한다.” | p119 ? #열린공간의위로 #그레텔에를리히 #빛소굴 #도서제공 ![]() 와이오밍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던 그레텔 에를리히에게는 투병중인 연인이 있었다. 한 때 그녀와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병세가 깊어지며 그는 먼저 도시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하루라도 빨리 촬영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거침없이 흩어져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느날 아침 그의 어머니로부터 그가 이미 눈을 감았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그레텔은 도시로 돌아가는 대신 와이오밍에 남기로 한다. “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가는 일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 역설로 압축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라졌다.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고 바닥에 누워서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요란한 웃음을 터트렸다가 결국 울어버리곤 했다. 죽음만큼 웃긴 농감은 없을 거야. 우리는 동의했다. ” | p57 “ 이 넓은 공간은 꼭 가능성 같아서 슬퍼져. 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삶의 가능성 ” | p58 그녀에게 와이오밍의 대자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도시에서의 삶 대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목장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곳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삶의 스펙트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대자연의 위로와 거칠지만 순박한 사람들로부터 얻는 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목장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가보지도 않았던 산으로 들판으로 몇천마리나 되는 양들을 홀로 이끌어 나아가야 하고 풍족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한다는 것이 요즘같은 시대라면 더더욱 마치 다른 시공간속에 있는 듯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태껏 존재해왔고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 속에 감춰진 섬세함으로 동물들을 보살피고 기른다. 그리고 작가는 그 환경 속으로 더 깊이 걸어들어갔다. ‘거침없음’의 이면에 ‘거침없이 견딤’ 속으로. 그 안에서 오롯이 자연을 느끼고 향유하며 ‘땀으로 일궈낸 사랑의 언어들’속에서 상처가 아물어간다. 카우보이와 목장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지식은 그저 영화에서만 보던것이 전부였지만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생각의 전환을 경험했다. 남성미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는 누구보다 섬세해야 하고 다정해야 하며 자연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얼굴을 붉히고 모자를 고쳐쓰며 겨우 내뱉는 사람들이며, 여인과의 깊은 대화 후에는 “심장이 삐끗한 거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 그들의 힘은 곧 부드러움이고 그들의 강인함은 보기 드문 세심함이다. ” | p78 “ 이곳에서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잘 버텨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적어도 전동적으로 목장 생활은 물질주의와는 거리가 있고 인간이 동물과 동고동락하며 얻게 되는 성취감, 밤에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별자리를 찾아보는 등의 소박한 기쁨을 대표한다. 내가 배우게 된 강인함은 순교자적인 끈기나 단순무식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적응의 기술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강인함은 곧 연약함과 통하며, 온유함이야말로 진정한 치열함이라고. ” | p66 혹시 ‘브로크백 마운틴’ 이라는 영화를 기억할까?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한 퀴어 로맨스 영화인데 왠지 이 책을 읽으며 그 영화가 떠올랐는데 진짜로 그 곳이 와이오밍이었다.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레텔이 머물렀던 목장의 분위기를 언뜻 알 수 있어 슬며서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한없이 충만하고 대자연 속의 풍요를 내 안으로 더 가까이 가져올 수 있었다. 도서 제공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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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으로 쌓아올린 대자연의 서사시. 1970년 대의 미국의 와이오밍은 시기적으로도 장소적으로도 나에게 낯선 곳이다.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대한민국의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와이오밍의 그 열려있는 광활한 자연은 읽으면서도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이 차분해지는 것을 은연 중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무슨 느낌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 이 책에는 전자기기가 나오지 않는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책의 글들을 통해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이오밍의 자연은 광할하고 거칠고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있다. 한편의 대 서사시를 읽은 기분이다. 와이오밍의 격렬한 사계절을 읽으면서 성큼 다가온 우리나라의 여름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열린 공간인 와이오밍에서 거친 자연과 함께 아픔을 이겨내는 작가는 양 떼들과 소들과 송아지와 말들을 통해 삶의 힘을 배워간다. 문장은 시와 같지만 와이오밍의 자연은 거대하다. 그 거친 자연을 읽어가며 나도 이 빡빡한 도시의 삶에 위로를 받는다. * 이 책은 빛소굴( @bitsogul ) 출판사 서평단에 신청하여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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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그녀는 타버린 숯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채색된 시간이 한순간 죽음이라는 검정으로 환칠되어지고 사랑을 잃었습니다. 사랑을 잃었고 잊어야 했기에 사랑을 잊으려고 황량한 와이오밍의 땅과 하늘, 숲과 들, 양떼와 소들의 시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길이라 생각했던 삶을 어디에도 길이 없어 헤메이는 땅, 와이오밍.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에 기대어 있지 않은 땅, 인간의 존재가 땅에 엎드려져 있으며, 인간의 존재가 하늘에 드러누워 있고, 양들과 소들이 가는 길로 가는 인간의 존재, 자연이라는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에 기대어 있는 인간의 존재만이 있는 그곳은 상실의 마음으로 검게 타버린 숯이 된 한 여인의 시간이 머물기에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와이오밍이라는 공간은 황무지 대평원이며, 계절은 뜨거움의 높은 여름만큼이나 차가움의 낮은 겨울의 긴 시간이 머물러 있고, 드넓은 황야의 거리는 사람들에게 고립과 비고립의 변동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잃어버린 그녀의 사랑처럼 잃어버려져 있고 생략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침묵에 숨겨진 말은 직설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 생의 처음을 울부짓는 아이의 울음과 같은 소리입니다. 그녀의 시간은 양털을 깍고, 양떼들을 몰아갑니다. 상실의 슬픔을 깍아내고, 그 아픔을 몰아가는 것으로 일상의 모든 것이 거칠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녀가 만난 와이오밍의 사람들은 자연을 닮았습니다. 부서진 사람과 무너진 사람들, 사라진 사람들의 열정은 뜨겁고 또 차가운 계절의 시간을 닮았으며, 그들의 시간은 자연을 따라 모여들고 흩어지며 또 헤메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검게 타버린 숯이 되어 머무른 와이오밍. 그녀는 나에게 목탄의 느낌으로 쥐어집니다. 그녀의 글은 목탄으로 그려진 거칠고 투박하며 가장 진한 선과 면들로 채워진 그들의 삶을 내 앞에 그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간 조차도 탄화된 숯의 검정으로 부서지듯 그려져 있음을 읽습니다. 그러한 거친 그녀와 그곳의 사람들의 그려진 삶의 선에서 엷은 부드러움으로 숨겨진 감정, 아니 짙은 검정의 흩어진 엷은 검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부딪힘 속에서 문질러진 그녀의 거친 목탄의 선들은 엷은 면들을 곱게 채운 검정이 되었음을 읽게 됩니다. 상처 입은 인간들의 삶을 문질러 부드럽게 흩어지게 하는 인간의 손이며, 자연의 지우개이었음을. 그곳은 치유이며, 회복이었습니다. 그레텔 에를리히의 열린 공간의 위로는 목탄화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어둠-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탄화내어 그려진 숯의 거칠고 투박한 어둠이 사람들과 자연으로 완성되어진 짙은 어둠과 옅은 어둠의 명암으로 완성되어지고 오래 굳혀진 열린 공간의 그림들이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앗아가는 일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 역설로 압축되지 않는 모든 것은 사라졌다."p.57 "내가 배우게 된 강인함은 .....적응의 기술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강인함은 곧 연약함과 통하며, 온유함이야말로 진정한 치열함이라고."p.66 "중요한 것은 거침없음이 아니라 '거침없이 견딤'이다."p.75 ".....순례자처럼 산에 오르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곧 부드러움이고 그들의 강인함은 보기 드문 세심함이다."p78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상실에 이은 상실이자, 죽음의 방향으로 떨어지다 다시 생명이 되는 사물의 동력을 상징한다."p.117 "준비는 안 하죠. 고통에 대비하는 방법은 없으니까요."p.155 ![]() "가을 내내 우리는 두 개의 목소리를 듣는다. 한 목소리는 모든 것이 익었다고 말하고 다른 목소리는 모든 것이 죽어간다고 말한다."p.175 "가을은 결실도 죽음이며 성숙도 부패의 하나임을 가르쳐준다. 물가에 오래 서 있는 버드나무는 녹이 슬기 시작한다. 나뭇잎이란 사실 계절을 나타내는 동사가 아닐까."p.179 열린공간의 위로는 거칠고 투박한 검정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