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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00km에 달한다는 스페인 순례길을 떠올릴 적마다 이유 모를 아련함을 느낀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한 번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앞서 그곳을 걸은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거리가 이미 결코 평이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는 데도 그러하다. 실제 나의 지인은 홀로 순례길을 걷다가 강도를 만났다. 약간의 물건을 빼앗겼으며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를 떠올릴 때면 몸서리 칠 정도로 두려운 상황과 마주했다. 다른 이들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없진 않을 테지만, 걷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그로 인해 줄어들지는 않은 듯하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을 최근 들어 실감한다.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를 잊어야만 하는 시기로 10대 그리고 20대까지도 많은 이들이 여기지만, 건강이 언제까지 허락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가장 젊고도 건강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행하는 게 현명한 태도다. 나이가 60을 훌쩍 넘긴 저자가 아내와 함께 스페인으로 향한 것도 그래서일 거다. 젊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내 체력으로는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며 뒷걸음질 쳤더라면 끝끝내 걸을 수 없었을 터이다. 특별히 낸 용기의 결과, ‘내 생이 최고의 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고,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 했다. 많은 여행기를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가벼운 마음을 우선 준비했다. 몰입을 하다 보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국경을 넘어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긴 호흡도 함께 준비했다. ‘꽃중년’의 연배에 이른 저자 부부에게 젊은이들에게서 볼 법한 스피드를 기대할 수 없어서였다. 한국인 특유의 빠름 문화에 길들여진 입장이어서 처음에는 우려가 앞섰다. ‘이렇게 걸어서 대체 완주가 가능하기는 한 건지’ 조바심마저 일었다. 이른 아침 함께 출발한 이들의 뒷모습이 조금씩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일이 반복됐을 것임에도 저자는 자신만의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속도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대신 길게 걸었다. 남들보다 두 시간 정도는 더 걸리겠거니 여기기도 했다. 느리게 걸어 남들보다 더 상세히 주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가끔은 혼자 걷기도 했지만, 아내와 보폭을 맞추어 걸어 든든하기도 했다. 순례길이라 하여 꼭 절대 고독을 지향할 필요는 없으리라. 어떠한 형태가 됐건 자신과 만나고 늘 붙어 있어 외려 몰랐던 상대방과도 만난다며 순례길 취지에 충분히 부합하는 걸음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성당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록됐다. 기억하고 싶은 만남은 일부러 뒤편에 따로 수록했는데, 성당에서, 마을 식당에서, 쉼터에서 만난 우리말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각기 처한 상황은 다르나 같은 장소를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동지애를 맛보기도 하였는데, 실제로는 걷지도 않은 나 또한 비슷한 감정에 빠져드는 게 신기했다. 엄두가 안 난다. 장기간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그러하고, 말도 아니 통하는 곳에서 혼자 걷는 행위 자체가 꺼려진다. 면도기 없고, 샴푸 없고, 빗도 없고, 로션도 없는 저자의 생활을 엿보았더니 더더욱 겁만 많아졌다. 걷기에, 정확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면 좀 덜 매끈한 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닐지도. 오십여만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계속해서 순례길을 찾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일단은 오늘밤 꿈에서 걸어볼까 한다. 여느 때보다도 달콤한 꿈을 꾸는 밤이 되리라 기대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