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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이미 있던 것은 과거에 있어 왔던 것이며 지금의 새것은 다시 과거의 것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소비의 시대’라고 한다. 소비를 해야만 돌아가는 사회라는 것은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삶의 가치가 없다는 삶의 극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소비라는 돋보기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의 모든 삶이 소비를 중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은 우리 사회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하고 있듯이, 시장사회는 소비가 삶의 중심이자, 목적인 셈이다.
며칠 전 아파트 앞 쓰레기 더미에 아무 흠집이 없는 탁자가 버려졌다. 우연히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관리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한 후, 집으로 가져왔다. 아무 흠도 없고 색상도 이쁘고 디자인도 훌륭한 이 탁자를 왜 버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던 터에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 탁자의 주인공을 그려보고 그네들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며 저자가 그리는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을 따라가 보기도 하였다. 괴테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의 황금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던 것처럼 대부분의 학자들이 경험을 배제한 자신의 지식에만 갇혀 실천과 경험이라는 생명의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의 저자는 문화범죄학이라는 자신의 학문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자신의 오랜 고향 텍사스 주 포트워스로 향하여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가 되었다. 장장 8개월 동안 쓰레기 수집인으로 살았던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낸 기록이자, 소비문화와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 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낭비’에 관한 사회문화적 현실을 마주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저자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세상이 ‘소비지상주의’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넘쳐나는 ‘멀쩡한 쓰레기’들과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들로 인해 소비주의의 확산의 두려움을 깨달아가는 일상의 이야기와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소비주의의 확산’으로 특정한 자원 고갈을 포함한 환경오염과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폐기물의 급격한 증가를 동시에 가져온다고 한다. 오래 전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의 아름다운 새 알바트로스가 무더기로 죽어 산을 이루게 된 이유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먹고 집단떼죽음을 당한 것을 보고는 매우 경악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렇게 ‘소비와 낭비’ 는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파괴의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낭비와 쓰레기 수집을 대하는 범죄학자의 역할이 단지 그 법적 ·문화적 모호함에 대한 설명과 결론을 이끌어내고 문화범죄학의 새로운 가설을 입증하고 접근하여 결론적으로는 총체적인 문화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 더 이상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물건이 있는가? 그럼 예술을 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물질세계의 의미는 이렇게 다시 한 번 변화를 겪는다. 이번에는 버려진 물건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가능성을 갖는 위대한 변화다.-p273 최근 캠핑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서 캠핑을 갈때마다 좋은 벗들을 만나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휴가에서 만난 이웃은 20년차 캠핑경력의 달인들이었는데 이들과 친해지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소박할 수 있는 캠핑문화이지만 소비와 낭비의 문화는 캠핑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일수록 소비와 낭비가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싼 텐트와 비싼 캠핑도구들, 듣보잡의 고가의 캠핑용품들이 즐비한 가운데 캠핑경력의 달인들의 소품들은 비교적 소박한 편이었다. 다 쓴 햇반그릇이 밥그릇이고 퐁퐁을 담아온 통은 다 쓴 화장품 통이었고 음식들은 집에서 한 번 먹고 남긴 음식들을 모두 냉동해서 팩으로 담아 온 것들이다. 이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삼시세끼를 꼬박 푸짐하게 대접받았다. 나는 그 순간이 저자가 길거리 세계와 마주하며 느낀 오늘날의 소비문화의 통찰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소비와는 다른 세계, 소비에 물들지 않은 생활습관이 얼마나 삶을 자유롭게 하는가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니었을까. 지나친 소비문화에 대한 경계와 길거리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삶을 관통하는 아름다움들이 저자의 눈을 통해 내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실 해아래 새것이 어디 있겠는가. 새것은 언제나 헤지게 마련이고 지금의 새로운 것은 반드시 과거가 될 것임을. 끊임없이 소비함으로써 소유하게 되는 물건의 획득을 통해 소비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고 마는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집어등을 향해 달려드는 오징어떼는 아닌지 반성과 깨달음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선물해주고 있는 책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 삶,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바로 선禪에 이르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소비문화의 근본을 꺾을 수 있는 존재론적 힘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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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쓰레기를 배출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쓰다 보면 수명이 다할 수도 있고, 혹은 중간에 고장이나 버릴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먹고 남은 음식물처럼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것들도 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종류는 무엇이 있고, 또 그 양은 얼마나 될까? 아마 헤아리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이 주위에서 보는 쓰레기만 해도 그 양이 엄청나서 입을 다물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일요일이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생길 때마다 직접 쓰레기 소각로로 이어진 통에 넣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재활용 쓰레기는 종류별로 따로 분리수거 하기 때문에 그 양을 눈으로 볼 수가 있다. 비록 일주일 치를 모았다 내놓는 것이지만,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 쌓여있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를 볼라치면, 우리들의 소비의 끝이 과연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쓰레기는 생길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던 시대에는 쓰레기가 배출될 수 없으며, 설사 배출된다 할지라도 그 양은 미미했고, 더군다나 배출된 그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물건들이 대량생산되고, 사람들이 과시의 일환으로 소비를 하게 되면서 집안 곳곳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그것들은 쓰레기로써 밖으로 내다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간혹 이사라도 하게 된다면 쓰레기 양은 엄청나게 증가한다. 집안 곳곳에 숨어 있던 것들하며, 새것과 교체되어 이제는 밖에 버릴 수밖에 없는 생활용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출되는 쓰레기들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그것들은 일부 재활용되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쓰레기소각장에서 태워져 공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혹은 땅속에 매립된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그것들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유발시키는 잠재적 요인이 되어, 우리들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도시 속에 버려지는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인 제프 페럴은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뚜렷한 소득 없이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8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도시 이면의 세상을 탐험해보고 그 세계와 호흡하기 위해서, 그는 길거리 곳곳에 있는 쓰레기 하치장, 쓰레기 통, 폐기물처리장과 빈민촌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곳에서 찾은 물건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수입을 얻고자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가 그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보았던, 길거리 곳곳에서 쓰레기와 함께 일어나는 일들은, 다양한 촌극이 연출되는 소극장 무대와 같았다고 한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그가 보내는 길거리에서의 시간들은 점차 도시를 찾는 시간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시간으로 바뀌어 갔다. 버려진 것들은 잊혀진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발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버린 사람의 삶의 변화에 대한 흔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쓰레기를 뒤지면서 본, 또 다른 것은 버려지는 물건들이 결코 쓰레기일 수 없는 것들도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이는 날로 확산되는 소비문화,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 그리고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낭비였다.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 에게는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이야말로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아니 지금의 세계는 소비지상주의가 이끌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끝없는 소비 뒤에는 무분별한 낭비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순환구조는 종래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이어져 자신의 구조적 모순으로 언젠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매립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마지막 토양의 안전까지도 묻어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연구를 목적으로 쓰레기 탐색자가 되었지만, 생활하면서 점차 생존을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는 삶에 적응해 간다. 그러면서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사람들 모두가 거지나 노숙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불법 쓰레기 수집인, 노숙자, 금속 수집가, 재활용 운동가뿐만이 아니라 아웃사이드 아티스트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도시 이면의 또 하나의 세계이었다. 선택에 의해서든, 생존을 위해서든 그들은 공식적인 쓰레기 폐기업자나 공중위생 관련자들보다 한발 앞서 그것들을 분류하고, 그것들에게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는 도시를 탐색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서, 캔이나 각종 금속으로 분류하여 재활용하는 쓰레기 수집상들이 있어서, 쓰레기들이 이들을 통해 수많은 부활을 할 수 있고, 도시는 그나마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도전을 한다. 맹목적 과소비의 위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대 소비문화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또 그런 소비문화가 우리의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있음을 고발하고자 8개월간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비문화와 낭비적인 쓰레기의 배출은 우리사회 역시 결코 미국 못지 않다. 그나마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분리수거를 하고 있어 조금은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많은 쓰레기들, 쓰레기 봉투에 담겨 버려진 수많은 물건들, 그 속에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읽을 수 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무분별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조금 적게 쓰고, 조금 불편한 삶을 산다면 어떨까? 무분별한 낭비 너머로 아직도 배를 곯고, 부족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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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위해 아파트 문을 열고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무엇인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들이 잔뜩 널려져 있다. 아마 앞집에서 집안정리를 하면서 내놓은 듯하다. 봉지 사이로 언뜻 보니, 책을 비롯하여 아직 쓸 만한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다. 거기에 책장과 의자도 나와 있다. 새것인 듯 보이는데, 요 며칠 앞집이 수선스럽더니 일부 필요 없는 짐들을 정리한 듯 보인다. 상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들어있는 비닐봉지도 보이고, 책이 가득 들어있는 봉지도 수 십 개 있다. 봉투사이로 들여다보니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그리고 수험교재등과 더불어 수 십 권의 일반서적도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호기심에 자세히 보니 걔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미처 갖고 있지 않은 책도 보인다. 상태를 보니 구입하고 바로 책꽂이에 꽂아 두었거나 한 번 정도 뒤척인 것 같은 느낌의 새것 같았다.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버린 물건을 챙긴다는 것이 주는 왠지 모를 꺼림칙함에 그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책에 대한 아쉬움은 가슴 한구석에서 가시지 않는다. 현관문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다시 뒤돌아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조금 전 보았던 작가의 책을 검은 비닐봉투 속에서 꺼내 집에다 들여놨다. 비닐봉투속의 책들을 보니 일부 전집에 가까운 인문학관련 서적들도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누군가 버린 물건을 챙긴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2권의 책만 서둘러 챙기고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두 권 다 책을 구입 후 표지도 열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새 책이었다. 아마 이 책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의 저자인 제프 페럴 같으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일일이 그 봉투들을 확인하고 쓸 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챙겼을 것이다. 버려져있던 책장과 의자도 거의 새것이었고. 검은 봉투 속에 들어있는 상자속의 물건들도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상자의 상태로 봐서는 거의 대부분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은, 거의 새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 쓰레기와 같이 버린 것도 아니고 물건별로 정리해서 분리수거한 것으로 봐서 가져다 사용해도 별로 불쾌할 것 같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듯 누군가가 버린 물건을 가져다 사용한다는 것은 왠지 모르는 꺼림칙함을 주는 건 사실이다. 책 2권을 챙기는데도 상당한 망설임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듯 쓸모 있는 물건들이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방출된다. 한때 문제가 되었던 막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집안의 인테리어를 뜯어내고 재공사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버려진 물건들을 다시 가져다 재활용하거나 약간의 수리를 거쳐 자신에게 유용한 물건으로 탈바꿈시켜 사용한다. 아니면 값나가는 것들만 모아다 고물 수집상에게 일정의 대가를 받고 팔기도 한다. 요즘 길거리에서 손수레를 끌면서 골판지 박스나 폐지 등을 모으고 계시는 나이 드신 분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전에는 출장 등으로 인해 책이나 짐을 이동하기 위해 골판지 박스를 슈퍼 같은데서 자주 구해왔는데, 이런 분들이 늘어남으로 인해 이제는 골판지 박스도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만큼 남들이 버린 물건들을 수거해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처음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땐 그 제목이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라는 제목은 선뜻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분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거기에 달린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이라는 부제는 언뜻 수용하기 낯설었다. 쓰레기를 통한 인문학적 고착이라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일견 현대 자본주의 논리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소비문화를 고발한다는 저자의 논리에 일단 수긍이 갔다. 저자가 이 책의 서두에 기술한 “현대 소비문화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비판적 시각을 확보해준다......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뒷골목의 쓰레기더미와 이를 뒤지는 이들의 삶이 곧 그 총체적 낭비구조의 증거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나의 희망은 이렇게 드러난 증거가 오늘의 소비문화가 가져오는 우리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는 행위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것이다. (22쪽)” 는 논리적인 접근은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통한 인문학적 고찰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쉽게 깨닫게 한다, 저자는 현 소비문화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문화적 환경을 분석하고 고찰하기 위해 직접 길 위로 나선다.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에 있던 저자는 안정된 직위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학교로 다시 복귀하기 전-물론 기약이 없지만- 8개월간의 기간을 길거리에서 재활용품 수거와 쓰레기 수집 같은 불법적인 활동(?)에 동참한다. 이 책은 그런 현장 경험의 결과이다. 체험의 결과물이다. 대단한 학자이다. 범죄학 전문가인 그가 그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에서 쓰레기 수거인으로 생활하면서 그가 보고 느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주는 잘못된 이면을 들여다보며 이 책을 기술했다. 저자는 그의 고향 포트위스 시내의 이웃들을 순회하면서 살펴본 많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버려진 풍요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물건도 있고, 조금만 손보면 사용할 수 있는 전자제품들도 있다. 당장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다양한 금속, 공구, 빈병을 비롯하여, 상당한 금액이 나가는 오래된 물건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에 나열한 쓰레기 속에서 수거한 물건들의 리스트를 보면 현금을 비롯하여 은 식기, 새 카메라, 롤렉스시계처럼 상당히 고가의 물건들도 있다. 한때 그런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단순히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지는 것이다. 그리곤 또 다른 새로운 물건을 향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과다한 소비문명은 현대인의 끊임없는 욕망의 상징이다. 하지만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고 그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면 할수록 그 욕망은 충족을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들 또한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즉각적인 충족에 중독되면 영속적인 만족이란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오로지 끊임없는 욕망과 욕망에 대한 충족만을 바라보게 되며 그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진다. (323)” 고 저자는 얘기한다. 이러한 욕망 주기의 단축은 또다시 새로운 물건과 새로운 만족을 주는 물건을 찾게 되고, 점차 최신의 것만 찾는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물건의 용도를 떠나 단순히 그 물건이 최신물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려진다. 그리곤 단순히 새롭다는 것 때문에 또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대기업들의 소비를 조장하는 치열한 광고에 현혹되고, 대중의 소비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돈을 벌기위해 삶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삶의 중요한 행복은 외면한 채, 그저 잠시 스스로에게 머물렀다 사라지는 순간의 만족을 위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이러한 과다한 소비문명은 자원의 불필요한 낭비를 가져온다. 지구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선진국이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국민의 상대적인 박탈을 가져온다. 이는 선진국 내부에서도 극심한 소비의 불균형을 야기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수거자를 범죄인 취급하는 미국의 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소비를 유발하고자 하는 생산자들의 농간에 정책당국들이 놀아나고 있는 증거이다. 저자는 길거리의 쓰레기 수거자들은 범죄인이 아니라, 환경보호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재활용 센터에서 만나는 이들은 노동자이자 환경보호주의자다. 환경보호주의자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다. (221쪽) 그들이 쓸 만한 자원과 물건을 수거하여 재활용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막고, 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한 공간도 현저히 절약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이 버린 쓰레기는 그 물건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모든 것이라고 얘기한다. 쓰레기 속에 담겨진 편지나 사진은 어떤 한사람이 살아온 일생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한 기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 통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한사람의 삶도 그리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방출하는 쓰레기를 보면 안다’던 어는 철학자의 대사가 떠오른다. 단순히 쓰레기는 음식쓰레기를 비롯해서 더러운 물건만 버려지는 게 아니라 한사람의 삶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있다. 저자는 일부 쓰레기 속에서 고향에서 같이 성장했지만 이제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기록을 발견하고 가슴이 아팠던 얘기도 기록하고 있다. 한사람의 삶의 기록들이 쓰레기 속에 버려짐으로 인해 그 사람의 흔적과 기억조차 사라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얘기한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속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던 현대의 삶속에서 느림의 미학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저자는 토로한다. 또한 다른 수입을 전혀 배제한 채 쓰레기 수거를 통해 벌어드린 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해 가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서, 쓰레기를 확인하면서 익숙했던 삶의 지역에서 그동안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조금 더 늦은 발걸음과 조금 더 자세한 관심이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만든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처럼 모든 것을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 문화에 길들여져 있던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느림의 미학이 주는 행복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게 바로 쓰레기의 인문학이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현대인들은 무조건 빠르고, 최신의 것이 좋은 것이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느림은 오랫동안 같이 해오며 감정을 주고받던 일상의 물건들이 주는 삶의 기쁨을 현대인들은 너무 느끼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진정한 삶의 기쁨은 느림이 주는 참된 미학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소비문화의 폐단과 속도전에서 벗어나 삶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 아닌지 생각게 한다.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서 현대인의 일상이 가지고 있는 허울 속에 감춰진 이면을 들여다보는 저자의 논리가 새롭다. 세상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길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더 나아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을 죄인취급을 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자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단순히 새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그 물건이 주는 편리함보다는 내가 그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느끼는 상대적인 만족감이다. 어쩌면 남보다 앞서간다는 우월감의 다른 표상이다. 그 우월감이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그 물건은 소용이 다되어 다시 쓰레기 통속에 버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허울뿐인 만족감을 위해 자원과 물자는 필요이상으로 과소비되고, 그런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우린 경제활동에 매진한다. 순간의 만족을 위해 시간이라는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흐름의 반복은 정신없이 바쁜 삶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가 길에서 쉽게 마주하는 쓰레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 현대인의 삶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삶에 있어 우리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올바른 삶의 방향이 어딘지를 깨닫게 하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또한 깨달음을 주는 것들도 많다. 우리가 그걸 느끼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바쁜 일상에 치여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속도전에 길들여 있기 때문이다. 잠시 그 속도에서 멀어져보자.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달려가고 있는 소비문화가 과연 옳은 길인지, 제대로 가는 길인지를. 그러한 노력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소비문화의 피폐함이 만들어낸 잘못된 순환의 고리에서 우리를 탈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자주 반복되고, 그 순환의 고리를 끊게 되면 우리가 염원하는 행복은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아님 지금 우리가 쉽게 소비하고 있는 물건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임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재활용을 통해 조금만 소비를 줄여도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 및 자원, 경제배분에 대한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혁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깨달은 이들의 조금만 행동의 변화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너무 등한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인들의 소비문화의 풍요속의 뒷모습, 과도한 소비문화가 주는 폐해, 더불어 그를 통해 피폐해져가는 현대인의 삶을 고찰하는 이 책을 접한 뒤로 가끔 만나는 길거리의 쓰레기통속이 궁금하다. 그 속에 어떤 이들의 욕망의 종착역과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이 남겨져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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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 또는 시내에 즐비한 백화점과 외곽지에 있는 대형 마트를 통해 하루라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시대에 있다. 이렇게 소비가 확산되는 만큼 그 그림자인 쓰레기의 양도 소비에 비례한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들을 그냥 매립지에 보내지 않고 다신 한 번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골목마다 쌓이는 쓰레기들을 수집하는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들의 생활을 통해 현대의 소비 형태를 돌아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종신교수직을 사양하는 대신 얻은 8개월간의 휴직기간을 이용해서 온전히 거리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실험을 한다. 저자가 본 쓰레기 수집가들의 모습은 쓰레기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했는데 생계를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 속에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쓰레기가 재생되는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저자는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너무나 풍요로워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 역시 저자가 줍는 버려진 물건들이 쓰레기인지 보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자는 거리의 쓰레기 탐색가로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놓고 일을 했다. 그 첫 번째는 자신이 뒤진 현장을 원래보다 조금 더 깨끗하게 유지해놓는다는 것이다. 뒷사람들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먼저 온 사람이 권리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집한 물건이 주인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거나 유품일 경우에는 어떤 물건이든지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건 하나가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래 주인이 스웨터 한 벌을 사서 입고 버린 뒤, 그 스웨터는 옷의 역할 대신 개의 깔개가 되거나 다른 장식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마치《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라는 그림책에서 코트 한 벌이 재킷이 되었다가 조끼가 되고 목도리, 넥타이, 손수건, 단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낡은 외투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고 쓸모 있는 것으로 재생산해내는 유대인들의 절약정신을 보는 듯 했다. 저자는 어떤 과장이나 허식 없이 거리의 탐색자들처럼 쓰레기를 줍고, 그것을 해체해서 고물상에 내다 판다.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당장 구매를 하는 대신 거리에서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보면 대개는 그 욕구가 사라지거나 그 물건이 필요 없는 게 되고 정말 필요하면 그 물건이 언젠가는 거리의 골목에 나타나는 즐거움을 맛본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것은 거리에 다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쓰레기가 자신에 의해 재활용되는 순수한 기쁨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가 느끼는 쓰레기 탐색가의 일은 소비사회에서 버리는 물건들을 재활용시키고 회복시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쓰레기를 통해 버는 돈이 적은 만큼 “많이 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게 쓰는 법을 배우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겨질 때는 예술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재활용품만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8개월간 쓰레기 탐색자로 살아오면서 저자는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 끝없이 확산되는 미국의 소비문화, 나날이 커져가는 빈부격차, 문화적 물질주의에 기반 한 글로벌 경제의 대량 생산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낭비”가 그것이다. 저자는 쓰레기를 줍는 동안 여러 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가 진짜 야만인이며 비열한 사람인가?” 거기에 대한 답을 《탈출》의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기계를 사용하고, 사람들을 노예화하며, 지구를 피 흘리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버리기 위해 생산하고, 채우기 위해 구덩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혹은 그 모든 부조리를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기계 그늘 속에 숨어서 빵 부스러기라도 집어먹으려고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활동을 억압한 다양한 법과 조례들이 쓰레기 수집가들의 역할을 막아서 골목에서 “쓰레기 탐색자”들이 사라진다면 건물의 층만큼이나 지하 매립지의 깊이도 깊어지는 사태를 맞이해서 도시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과다한 구매가 낳은 낭비를 바로 잡는 역할을 이들이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 교수생활을 할 때는 몰랐던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통해 물질적인 획득을 넘어서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수집하며 자신을 발견해나가고 있었던 길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늘날 너무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모든 소비의 해답이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것을 통해 저자는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원하지도 않게 되는 경지에 오른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 삶,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바로 선에 이르는 삶이다 ” 이런 저자의 깨달음의 일부가 내게로 와서 나 역시 소비지향주의 습관을 돌아보고 한 벌의 외투가 단추로 변하는 과정까지 낭비 없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싶다. 아껴야 잘 산다는 걸 넘어서 아껴 쓰고 욕구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물질 대신 커다란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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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Empire of Scrounge 부제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저자 - 제프 페럴
간혹 미국 드라마를 본다거나 뉴스 사진을 보면, 커다란 카트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개 쇼핑 몰에서 온갖 생필품에서 식재료 내지는 다양한 상품들을 담는 카트이지만, 거기서 본 카트에는 다른 것들이 담겨있다. 불룩한 비닐봉지가 여러 개 옆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카트 안에는 상자나 캔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것을 미는 사람들은 쓰레기에서 쓸 만한 것을 주워 자기들이 사용하거나 돈이 될 만한 것을 팔고 있었다. 대개 쓰레기를 주웠는데 그 안에 시체가 들어있다거나, 술이나 약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다가 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전개가 흔하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빈 병이나 캔 내지는 종이와 신문 종이 상자들을 모으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골목에도 그런 일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래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버릴 종이 박스나 신문이 생기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할머니 댁 앞에 놓아둔다. 막내 조카도 자기 집이나 우리 집에 택배 상자나 선물 상자가 생기면, 주섬주섬 모아서 그 집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간혹 골목 입구에 장롱이나 상, 책상 컴퓨터 같은 것이 버려져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쓸 만한 걸 가져가곤 한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주의 깊게 보면서, ‘이거 잘 씻으면 괜찮겠지?’라든지 ‘우리 집 상다리하고 맞으려나?’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귀신 붙었다고 오래 된 물건을 꺼려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사실 최근에는 사람들이 귀신이 붙을 정도로 물건을 오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귀신의 귀자를 꺼내는 순간, 한심하다는 듯이 볼 것이다. 내 경험담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어디서 바구니를 주워 오시기에 ‘엄마 귀신…….’이라고 했다가 이상한 소리 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다.
전에 우리도 밥그릇이 한두 개 깨져서 새로 세트를 맞춘다고 남은 것을 버린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어느 집에 가서 괜찮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가봤더니 이미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미국 드라마와 동네 얘기를 하느냐면, 이 책이 그런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8개월 동안 동네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과 나눈 교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반응과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왜 아직 쓸 만한 것을 버릴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버릴지도 모른다. 또는 유행이 지나갔거나 거 좋은 게 나와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왜 필요 없는 것을 샀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하다보면, 자연스레 과소비라든지 과잉 생산, 자원 고갈과 자원의 재활용 그리고 분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책에서는 단순히 필요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예도 나온다. 기억하기 싫고 간직하기 싫은 과거 추억의 잔재들이기에 버리기도 한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빼고, 저자는 얼마나 많은 쓸 만한 것들이 버려지고, 그것이 수집되고 어떻게 재활용되거나 돈과 바뀌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 겪은 경험담이나 대화를 곁들인다.
또한 미국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고 현실 반영이 되지 않았는지 일침을 가하고 있다. 보기에 좋지 않다고 쓰레기를 주로 모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얘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확실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저자는 쓰레기 탐색자들이 생존을 위한 수집을 하는 것은, 사회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존재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면,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활용을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둘째조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나바다 운동’이 아주 활발했었다. 또한 학교별로 알뜰 매장이라는 것을 분기마다 개최했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졌다. 그냥 애들이 싼값에 떡볶이 같은 간식과 장난감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만을 주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환경이나 의식이 바뀐 걸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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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기벽 같은 건 아니었다.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에서의 종신교수직마저 포기하고(대학교수에게 종신교수직이란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다. 이걸 포기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직업없이 그저 도시의 쓰레기를 뒤지고 다녔던 것은. 그렇다고 한 때의 깜짝쇼와도 같은 유희도 아니었다. 장본인 제프 페럴에게 그건 어디까지나 진지한 사회학적 연구의 일환이었다. 그는 주로 슬램이나 그래피티등 도시의 하위문화를 연구해왔다. 계층이 열악하여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잘 들어오지 못하는 도시의 하위문화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학적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8개월에 걸친 쓰레기 탐사는 바로 그것의 연속이었다. 현대사회는 무엇보다 소비사회다. 소비는 하는만큼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화려한 소비사회의 그늘에 가려 쓰레기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들은 어떻게 코끼리 무덤에 이르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눈 앞에서 안 보이면 그만이다. 사람들에게 쓰레기는 금방 없어져야 할 것 이상의 존재가 아니다. 아무도 그걸 성찰의 대상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저 제거의 대상일 뿐. 제프 페럴은 거기에 반기를 든다. 쓰레기에 대한 우리의 편협된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스스로 교수라는 직업까지 내던져가며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던 쓰레기의 진정한 여정을 마치 도요새를 따라가는 조류학자처럼 현장으로 뛰어들어 세심히 관찰한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는 바로 그 관찰의 기록이다. 쓰레기가 단순한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거꾸로 현대 도시의 자화상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성찰의 대상임을 보여주기 위한.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굳이 교수직까지 내던지고 몸소 쓰레기를 뒤지며 다닐 필요가 있을까? 물론이다. 제프 페럴은 말한다. 그것도 그냥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진짜 쓰레기 수집가가 되어버린다. 생존을 위해 알루미늄 캔을 모으는 가난한 이들과 똑같이 그 역시 생존을 위해 쓰레기를 뒤지고 모으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종신 교수직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철저히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미처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제프 페럴은 말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절대 이 연구는 성공할 수 없다고. 오로지 그들의 위치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모아야 그들에게 쓰레기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또한 그것으로써 도시에서 쓰레기가 과연 어떤 진실된 여정을 걷게 되는지 고찰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바로 그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연구자료들을 얻기 위해서 그는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쓰레기를 뒤질 수 밖에 없는 낮은 자가 된 것이다.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이다. 책의 모든 내용은 그가 8개월 동안 도시 이곳저곳의 쓰레기를 탐색하는 동안 틈틈이 써 온 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은 그 기록을 그대로 만든 것과 다름없는데 이는 그가 투명한 연구 자료를 원한 것만큼이나 이 책 역시도 읽는 이들에게 투명하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쓰여진 상황은 리얼하며 묘사되는 현장의 분위기 또한 생생하다. 페이지마다 우리는 그가 어디서 어떤 것들을 주었는지 그리고 또 누군가를 만나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주었는지를 그대로 알게 된다. 책은 자주 그가 주었던 것들의 긴 목록을 그대로 제시하고 그 하나하나에 그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면 어떤 경로로 여기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혹은 거기에 얽힌 과거 주인의 기억들까지도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의 쓰레기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더없는 생존을 위한 발판이 되며 또한 한 마리의 소처럼 쓰레기 역시도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도시에서 쓰레기가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잉된 것을 생각하고 바로 그 과잉이 우리가 사는 도시에 위기를 만들고 있음을 본다. 아니, 도시만이 아니라 전 지구에 환경 위기마저 불러오고 있음을. 책에는 굳이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신념으로 쓰레기에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는 이들도 나오는데 그들이 그러는 것은 지구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들 스스로 환경보호자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여, 우리는 분명히 본다. 쓰레기도 얼마든지 재활용되어 생존이든 필요든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또한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나 불필요하게 사들이고 그만큼 헛되이 버리고 있으며 그렇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과잉과 낭비로 점철되어 있는지...
하지만 제프 페럴이 발굴하는 쓰레기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는 그것만이 아니다. 직접 돌아다니며 그 때 그 때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어느 한 곳만 소금쟁이처럼 빙빙 돌지는 않는다. 제프 페럴은 새로이 발굴해낸 쓰레기의 의미와 가치에 맞게 이야기의 지평을 차츰 넓혀간다. 개인적 차원에서 도시의 차원으로, 그렇게 개인에게 의미있었던 쓰레기는 그 드러난 의미가 차츰 드러나면서 도시와 지구 전체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할 성찰의 거울이 된다. 과잉된 소비가 베블렌이 말했듯 단순히 타인의 이목을 향한 과시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거나 제조품 뒤에는 항상 따라붙게 마련인 'MADE IN"에 들어가는 나라의 변화를 통해 그 과시를 위한 과잉된 소비를 뒷받침하고 있는 매일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보내고 있는 지구촌 전체의 저임금 노동구조를 보게되기도 한다. 그러는 한편,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빼앗긴 미국인들에게 살아나갈 또다른 방편을 제공했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만연된 소비주의적 상황이 전혀 다른 방식의 대안적 경제마저도 형성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성찰의 대상으로써 쓰레기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지평을 넓혀나갈 때마다 시시각각 새로운 의미들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자면 제프 페럴은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같다. 길에 떨어진 말똥의 상태를 보고는 자신이 쫓는 상대가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지 가늠하는 인디언말이다. 그렇게 쓰레기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건 내부에 아주 많은 이야기거리를 간직한 할 말이 참 많은 '스토리텔러'였다. 그건 제프 페럴과 같이 주의깊게 들으려는 자에게는 '소크라테스'와 같았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듣는자의 세계를 넓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아로 만들어주었듯이 쓰레기들 역시 제프 페럴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걸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에서 확인하게 된다.
도시 환경은 날이 갈수록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지만, 나는 버려진 것들 속에서 더 많은 놀라움과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도시를 탐색하며 매일의 의미를 뒤집고 일반적인 상황들을 특별한 사건들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각종 법적 문제와 공간에 대한 정부의 통제란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이 작은 혁명을 위해서는 상황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총과 포가 필요없었다. 단지 공간의 전복이 필요할 뿐이었다. (...) 상황에서 상황으로, 현재와 다음을 잇는 다양한 공간의 변화를 지도로 그리면서 나는 소비가 넘치는 도시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도망가는 탈출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었다.(P. 337 ~ 338)
안도현 시인은 길거리의 연탄재도 함부로 발로 차지말라고 했는데 이제 우리는 쓰레기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인식의 변화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낭비는 어디까지나 무사유에 기인한다. 사유란 다름아니라 타인이나 사물에 깃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같은 물건이라도 그 깃든 추억과 사연을 알게되면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됨을 경험상 알 것이다. 사유란 바로 그런 과거의 기억과 깃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보자면 낭비란 천부적 귀머거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책에는 갓 태어난 아기 선물로 받은 것도 채 포장도 뜯지않고 그대로 버려놓은 걸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과연 거기에 어떤 의미들이 깃들어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히 자신의 뜻대로만 가치를 판단해버린 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제프 페럴은 아무리 쓸모없는 쓰레기라 하더라도 우리의 사유를 요청한다. 이 책의 여정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것이다. 제거의 대상이 아닌 성찰의 대상이 될 때 과연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열릴 것인지는 저 위의 인용된 문장으로 제프 페럴 스스로가 잘 보여주고 있다.
* 이 리뷰는 예스 24의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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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밖에서 골프공을 낚아채는 토끼’, 제프 페럴의 저항과 탈출의 즐거움 최근 경제학자 우석훈을 ‘골프장에 짱돌 던지는 토끼’로 표현한 서평기사가 떠오른다. 권력과 거래의 장이 되어버린 골프장, 그 안의 권력(혹은 자본)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우석훈의 의도를 비유한 표현이다. 골프장 주변에서 골프공을 줍는 제프 페럴의 모습이 묘하게 이와 겹친다. 물론 제프 페럴이 살고 있는 곳에서 골프와 골프장이란 정치경제활동의 은밀한 장이라거나 권력의 결집지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끊임없이 생산하는 사회와 줍는 자의 구도, 혹은 무분별한 소비가 낳은 쓰레기더미와 쓰레기를 주워 제조회사의 이윤과 무관하게 새가치를 매기는 이들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생각하는, 합법인지 불법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줍는 행위의 저항점이 가지는 의미가(모든 변화는 저항점으로 해석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작은 혁명이기도 한 저항점들의 지속성에서 변화가 탄생하지 않는가.) 우석훈의 그것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비유를 패러디한다면 제프 페럴은 ‘골프장 밖에서 골프공을 낚아채는 토끼’쯤 되지 않을까. 이는 벌써 10여년은 된 과거의 쓰레기 탐색자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을 우리가 지.금 읽어도 유효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지향주의에 대한 비판적 각성은 이미 높고 자본주의 체제의 안과 밖에서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제프 페럴의 쓰레기 탐색은 과도한 소비지향적인 현재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부산물의 가치를 재매김하는 실.천 연구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또한 그는 문화범죄학자로서 이 실천적 연구과정의 일상에서 발견된 합법과 범법의 경계의 모호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물질의 가치를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문화저항행위의 기능까지를 언급하고 싶어한다. 이는 주변성과 모호성을 가진 경계에서의 해체작업이라는 것을 발견할 때 즐거움을 감추지 않는 저자의 모습에서 때때로 만날 수 있다. 그 즐거움은 우리가 예상하는 快의 순간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떤 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없고, 본문에 언급되는 (익명저자의 공격적인 반소비주의 이야기의 제목인) ‘탈출’ 그 자체이자(레비나스의 탈출이 떠오르지 않는가), 수전 스트레서의 (‘쓰레기와 필요’에서 소개된 매일 힘든 노동 가운데) “농담과 웃음, 거래를 통한 변화”의 즐거움을 잇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탈출의 즐거움은 체제 안에서의 공간적인 탈출일 뿐 아니라 저자가 만난 탐색자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가진 자기선택과 무소유에서 발생한 발견의 반가움, 박탈감이 주는 해학적 웃음, 감시와 통제가 심한 도시의 판옵티콘에서 벗어난 경계를 가로지르는 카타르시스,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해체와 재창조의 기쁨과 맞닿아있다. 저자는 실제로 해비타트 운동 봉사자로 집철거와 자재수거를 하면서 데리다의 환상을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미소 지은 봉사자들의 작업이 ‘해체’였음을 강조하며 Jacques Derrida의 기존질서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해체와 연결짓는다. 탐색이 소비물질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이자 환경보호운동이기도 하며 (데리다의 해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가치들을 재배열, 재배치함으로써 소비문화 자체를 재구성하는 힘을 가진 문화사회활동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프 페럴은 자신의 쓰레기 탐색작업을 scrounge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이 단어에서 쓰레기 수집을 통한 획득 혹은 그 행위 자체의 의미를 발견해서이다. 책 전체에 걸쳐서 종종 강조되는 이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제프 페럴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탐색하다scrounge의 어원인 scrunge는 ‘생존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scrounge는 태평양 전쟁 직후였을 1945년의 책에 의하면 (저자는 쓰레기에서 수집한 책, 멘켄의 ‘아메리카의 언어’를 인용하고 있다.) 구걸하다, 찾아다니다, 등치다, 무료로 가져가다, 훔치다, 슬쩍하다, 그럴듯하게 빼앗다라는 의미로, (제프 페럴 스스로가 되고자 한) scvenger는 “뱃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해안가 일꾼들”, 2차대전 당시 scrounging은 연합군들에게 훔치다, 전리품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생존’에서 시작해서 ‘찾아다니’고 ‘그럴듯하게 빼앗’고 ‘훔치’는 것으로 미묘하게 변화하고 다소 폭넓은 의미를 갖게 된 이 단어의 의미는 제프 페럴의 그가 이 수집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쓰레기 수집을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 scrounge의 사전적 의미처럼 생존과 불법획득 의미 사이의 어딘가에서 버려진 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잉여된 부를 재분배하면서도 기업과 정부의 통제 밖에서 지극히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를 비롯한 거리의 많은 이들이 ‘생존의 전략’으로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이제는 홈리스나 극빈곤자가 아니더라도 쓰레기 더미를 통해 정크아트를 포함한 업사이클링, 이타적 목적의 사회적 활동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도로변의 버려진 생활쓰레기에 접촉은 합법적이나)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행위를 비롯해서 종교자선단체의 shop, ‘폭탄대신 식량을food not booms’의 무료급식까지, 이 중 대부분이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그 중 일부는 그 불법성이 우리의 도덕적 판단과 괴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합법이라는 것과 우리가 습득해온 도덕 혹은 정의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를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쓰레기를 수집하는 쪽에만 불법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버리고 탐색하고 재분배하는 모든 과정에서 합법과 불법은 서로 엇갈린다. 저자가 수없이 발견한 페인트들과 같은 불법폐기물투기, 신분도용이 가능한 개인정보들과 유니폼들, 총과 총알, 그리고 술. 이 쓰레기더미를 뒤질 때의 폭력사태의 가능성, 탐색자들을 더러운 일과 사람으로 간주한 편견과 파생되는 일련의 폭언과 폭력, 반대로 공격적인 탐색과 위협으로 인한 분쟁. 수집한 쓰레기를 판매 혹은 나눌 때 중간구매자의 착취, 앞마당세일 통제(부착물, 세일기간 등). 수집한 물건이 이웃에게 보이도록 담을 넘기거나 해비타트의 저가 주택공급의 불법성.(주택 가치 인상 프로그램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여러 도시에서 주택의 기본규격을 457평방미터 이상으로 규제한다고 한다. 작은 집들을 ‘인스턴트 슬럼’으로 생각하는 정치가들의 브로큰 윈도우Broken Window이론을 기반으로 한 정책들이 우리나라의 88서울 올림픽의 철거정책을 떠오르게 한다.) 이 일련의 로드무비에서 소비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만 유난히 엄격한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들은 지속가능한 생산을 꿈꾸는 현대사회 자본주의 체제와 지속가능한 소비를 꿈꾸는 우리 자신을 불편하게 직시하게 한다. 소비를 권장하는 성장맹신 자본주의 도시의 지도에 있지 않은 탐색자들의 길들이 지금의 도시문제를 재구성할 기회가 될 가능성(실제로 실용적인 도시계획과 같은 재구성도 포함되지만 그보단 폭탄 대신 식량을, 폭탄 대신 자전거를bikes not bombs, 프리건freegan 등과 같이 정치적 함의를 지닌 비폭력저항운동으로 말이다.)과 더불어 문화범죄학자로서 실재를 위한 새로운 법적, 경제적 대안의 가능성 모색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법은 지금의 정부에게 재원을 조달하는 스폰서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 쓰레기수집과정의 위험성에서 올 수 있는 인간생명보호, 발생 가능한 폭력과 분쟁을 대비하는 보다 기본적인 법의 존재목적을 타진하고 그 수집과정이 도시의 생태에 꼭 필요한 가치 또한 인정하며 이 모두를 고려한 협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출판되고,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에까지 번역, 출간되기까지의 시간동안 쓰레기 수집에 대한 많은 인식변화와 법적 변화가 있었을 수 있으나(실제로 재활용경쟁 TV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끊임없이 소비주의에 대한 반성과 도시의 생태를 위한 인식전환의 노력, 그리고 법적 협의는 연구되어야 하며 우리가 제프 페럴의 무용담을 누구든 갈 수 있는 어떤 길이라는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 쓰레기 탐색이 주는 새로운 가치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트워스시가 별 기대 없이 실시했던 빈병수거보상 프로그램에서 저자가 발견했을 도시공간에 대한 경험적 재생산과 새 협의점에 대한 가능성을 나는 우리나라의 몇 가지 사례에서 느낀 적이 있다. 서울역에서의 홈리스 강제퇴거 정책이 서울역 인근주민들과 이용 시민들의 불만에서 비롯된 정책인지, 브로큰 윈도우 이론에서 출발한 정책인지 그 시발점은 알 수 없으나 강제퇴거정책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풍경이었나보다. 아직 서울역과 부근엔 노숙자가 상당수 남아있으며 재활의 의지조차 격려 받지 못한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팽팽하게 느껴졌던 그 논쟁이 방향의 전환을 꾀할 가능성을 느낀 적이 있다. 무작정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쇠파이프를 든 용역이 있는 강제철거와 같은 강제퇴거가 아닌 코레일과 서울시가 함께 각각 여행객 안내 등의 일자리지원과 일정기간 주거비 지원 프로그램이 그 노숙인들의 일부를 서울역 노숙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이다. 기존의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인 잡지 ‘빅이슈’ 판매 등과 함께 사회정책관련자들에게 어떤 각성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사회적 기업과 단체들의 활동만으로는 홈리스 재활 프로그램의 한계가 분명 있지만 우리 사회는 사회정책이 가야할 바를 아주 조금씩 체험해가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이 마치 유치원의 체험학습처럼 1회성 체험에서 끝나지 않고 체제 안에서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발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관적이긴 하다. 우리는 쉽게 주변의 쓰레기를 뒤지는 이들을 발견하거나 떠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부분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의 이미지가 쉽게 연상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언급된 노숙자와 실업자가 주울거리가 줄어드는 일에 대한 토론이 매우 궁금했으나 더 이상의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프 페럴과 누군가가 토론했을 이 화두는 더 나은 도구와 건강과 젊음을 가진 이들에게 일말의 수입마저 빼앗기는 약자에 더한 약자층 생성이 되어버리진 않을까하는 우려도 잠깐 하게 했다. 질문은 제프 페럴이 던졌지만 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성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경제대안, 협동조합의 형태에서 또 다른 대안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공익사업 또한 가능해보였는데 우리나라에서 폐지수집노인들도 형식적이고 매우 적은 조합가입비를 내고 조합원으로서 소속감을 가지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협동조합의 사례를 기사로 만난 것이다. 이는 지원차원의 프로그램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빅이슈’ 판매원과 마찬가지로 폐지수집노인이 주인이 되는, 기존 지배문화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하위문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제프 페럴이 경험한 1인 자영업자가 아니다보니 즉흥적이고 시공간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탐색자로서의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또 우리나라는 폐지수집, 가정에서의 리폼, 나아가서는 축사의 분뇨를 비료화한 업사이클링과 같은 친환경사업과 업사이클링 아트, 땅콩주택, 차와 물품을 나눠쓰는 공유경제 등에 대체로 호의적인 듯하다. 환경부의 재활용율 목표지점도 다소 높아졌으며 특정재활용품에 한정적이긴 하지만 회수율이 증가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더 빠른 도시의 회복을 위해 다수의 실천까지 끄집어내기에는 시간과 인식전환의 계기가 여러 지점 필요하겠지만 소비지향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저항의 발판은 꽤 다부지게 차근차근 기본을 쌓고 있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사이클링을 권유하는 사회, 기업의 환경보호전략지원과 수익성연구 등 체제 안에서, 그리고 체제밖에서 과도한 생산과 소비중심을 비폭력저항운동으로서의 실.천은 도시와 우리의 삶의 균형을 잡는데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저자의 경험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크게 와 닿는 미덕은 총체적 낭비구조라 할 수 있는 삶에서 다양한 가치를 제시한 것이다. 수많은 새 물건들이 넘쳐나고 소비를 장려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구형이 되어버린 것들의 가치, 쓰레기가 되어버리기엔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일편들, 버려졌지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심지어 새 물건들)과 그 물질들에 담겨있는 정신과 마음. 짧은 삶의 부산물이 되어버리고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 올 그 물건들 자체와 그 물건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가치의 존재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경험은 우리에게 힐링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삶 뒤에 남겨질 부산물(혹은 쓰레기)이 될 주변에 대해 한번쯤 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 또한 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은 것일거라 상상해본다.) 내가 읽은 그의 쓰레기 탐색은 (실제로 그의 아름다운 스텐실 정크아트를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행위가 의미 그 자체가 되는 하나의 행위예술로 느껴졌다. 책의 원제이기도 한 empire of scrounge이 꼿꼿하게 서서 성장강요 소비시대 empire of gold와 대치하듯 노려보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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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매주 수요일(오전 6시~오전 10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그리고 옷과 신발 및 음식물은 투입구에 집어 넣고 있다.그리고 음식물은 8월1일부터 센서기를 음식물 투입구에 접촉하면 음식물 쓰레기통이 열리고 닫을 때에는 센서기를 한 번 더 대면 된다.(세대별로 월 1,000원씩 징수한다고 함) 이렇게 일상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오물과 재활용품 등은 풍요로운 사회상을 그대로 반증하고 있으며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이 되면 단지 세 곳에 집하장을 만들어 재활용품 및 허접한 것들을 분리하고 있다.나도 가끔 분리수거를 하기에 한 쪽에는 박스,종이를 나르고 한 쪽에는 플라스틱,깡통,잡병 등을 나른다.분리수거를 하다 보면 몇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안타깝기만 하다.아무리 사회적 계몽을 한다고 해도 지키지 않는 소비자들의 비현명한 행동은 후세대들에게 그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행정학과 친구가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 예측했던 것으로 보여진다.1980년대 대학시절 주택가에 자취생활을 했는데 여름철만 되면 음식물 쓰레기통은 각종 벌레,들고양이들의 천국이었다.음식물이 부패되는 악취와 코를 찌르고 무분별하게 널려져 있는 각종 집기류,가재도구,세간살이 등이 목불인견이었다.다행히 쓰레기 분리수거 및 종량제 등이 도입되면서 한국도 쓰레기 처리를 선진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개인적으론 2000년까지는 서울 주택가에 살았던 관계로 본격적인 쓰레기 분리수거는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경제적 소득이 높아지면서 소비패턴도 풍요로워졌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그런데 고가에 사들인 제품을 얼마 못가서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버릴 때에는 걷어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가져갈 수 있게 잘 정리를 하는 것이 배려인데 아무렇게나 난잡하게 방치해 놓는 것이 문제이다.CCTV를 설치해 놓아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단지에 살지 않는 외지인이 버릴 경우에는 찾아 내기도 어렵고 관리사무소와 주민간에 불신의 벽도 놓아 쓰레기 처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도시의 그늘을 파헤치고 있는 제프 패럴저자는 도시의 길거리를 집중취재하고 그 단상을 고스란히 적시하고 있다.돈과 물질이 넘쳐 나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쓰는데 거리낌이 없지만 하루하루를 이어가는데 전력투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원망을 사기에 충분하다.다행히 저자는 음식물을 제외한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생필품들은 거리의 노숙자 캠프,푸드뱅크,자선단체 등에 전달하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그가 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불법 쓰레기 수집인부터 노숙자,금속 수집가,재활용 운동가,대안건축물 건축가,아웃사이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겉으로는 온전하게 보이는 사회구성원일지라도 삶의 질은 밑바닥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금품 폐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법적 제재 및 체포가 이어지다보니 쓰레기 매립장은 철,알루미늄,구리 등으로 넘쳐난다고 한다.금속 수집이 어려워지자 옷,잡동사니류,소비재 등으로 수집품목을 변경하여 이를 앞마당 세일이나 벼룩시장을 통해 판매를 한다.금속 수집을 집중단속하다고 해도 '빈틈'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알류미늄 캔,구리,눗,각종 주물 등을 주워 암시장에 거래하는 이들도 있으니 생계수단과 방법은 이를데 없다는 생각이 든다.아울러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란 없다","벼랑 끝에 서게 되거든 뛰어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한다.겉으로는 경제소득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도시의 길목에는 여전히 비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생활방식을 버젓히 횡행하는 부류가 많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 삶,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바로 신(神)에 이르는 삶이다.이것이 바로 소비문화의 근본을 꺾을 수 있는 존재론적 힘이다.천천히,자기 삶의 현재를 충분히 누리면서 사는 탐색자들의 삶 속에서,소비자들이 버린 쓰레기 한가운데서,다른 이가 이르지 못한 자기 존재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다. - 본문 -
이렇게 과다한 쓰레기 투척과 수거는 만만치 않은 사회적 비용을 치뤄야 하고 이를 통해 유발되는 환경오염,기후 온난화 등도 골치거리이다.가슴이 짠하게 다가오는 점은 한때 단란하고 행복을 꿈꿨던 이들이 등을 돌리고 헤어지면서 버려지는 귀중한 물건들이다.액자 속의 사진첩들과 정신적 근육을 고양시켜 줄 각종 문학작품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신변잡기류 등이다.도시의 거리에 내버려진 물건들은 어찌보면 물질적 욕망과 허세가 만든 인과응보는 아닐까 한다.자신의 분수와 처지에 걸맞는 생활습관과 근검절약하는 일상의 자세가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서 생활의 만족을 높여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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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식당에서 잔반을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많은 양이였다. 그리고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가치를 생각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다하지 못하는 것들이 내린 저주가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3천년전의 중국의 속담에는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은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음식물 쓰레기처럼 자신의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한데 뒤섞여 악취를 풍기며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비단 물건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까지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찾을 때까지 8개월 동안 쓰레기를 모으러 다닌 이야기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가치 재창출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장면이 곳곳에 나온다. 쓰레기가 단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다시 돈이 되고 어떤 것은 예술품이 되며 또 어떤 것은 추억과 지식까지 담겨있다.
단지 버려지는 쓰레기가 아니라 버려지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생계수단으로서 또 유용한 것을 찾아다니는 탐색물로써 쓰레기는 계속 쓰이고 있다.
가치란 것을 알아본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도교에서는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태어나게 한 이유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평생 가치를 다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끊임없는 생각은 '가치'라는 단어다. 이 '가치'에 갖혀서 이 책에 메세지를 많이 보지 못했다.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해서 이미 폄하해버린 가치가 없었는지 한 번 생각해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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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청소를 하다보면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같이 지내는 이 작은 공간에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은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집게로, 장갑 낀 손으로 쓰레기봉지를 휘적여 재활용품을 골라내다보면 남들 보기에 좀 지나쳐 보일 것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된다. 멀쩡한 캔이며 박스와 신문지, 종이컵, PET병 등을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봉지에 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리라는 생각에 괜히 예민하게 구는게 아닌가 싶다. 때때로 자식 낳고 사는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책임감이 없을까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이게 다 괜한 짓이다 싶다가도 나라도, 이거라도 해야지 하면서 멈출 수 없다. 하시던 일에서 큰 소득이 나지 않게 되자 아버지는 그동안 틈틈이 하시던 쓰레기 재활용품 모으는 일을 새벽과 저녁으로 더 열심히 하셨다. 나와 동*님도 보이는대로 박스를 모아 아버지께 갖다드렸다. 돌아가시던 날도 새벽 3시에 나가 차를 세워놓고 길가의 박스 같은 것들을 모으시다 그 시간까지 술 쳐먹고 운전하던 젊은놈의 차에 받혀 돌아가셨다. 이제 이렇게 비교적 담담하게 그 상황을 얘기할 정도로 1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내게 쓰레기는 남들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5남매와 사위들까지 달려들어 아버지 창고에 있는 철근이며 박스 등 재활용품을 이틀 동안 트럭에 연이어 실어 날라 고물상과 주류합동상사(유리병 파는 곳)에 팔아 돈을 엄마께 드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그 많은 것들을 혼자서 들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크기의 철기둥까지 끙끙거리며 옮기셨을 아버지는 평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모아야 멀쩡한 것들 버리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며 그 일에 자부심을 갖고 계셨고 그런 아버지가 나는 자랑스러웠고 지금도 자랑스럽다. 오늘 출근할 때 입은 갈색 니트 재킷도 그 때 아버지가 헌옷 버린 걸 주워오셨던 것이고 나는 이 옷을 입을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인 듯 포근하고 기분이 좋다. -전에는 아파트 출입구 옆에 큰 통을 두고 헌옷을 모았고 그걸 뒤적이면 쓸만한 옷들을 주워올 수 있었다. 헌옷을 전문으로 모아 파는 게 이권이 된 후에는 한 번 들어간 옷을 꺼낼 수 없으니 재활용에 큰 걸림돌이 된다. 난 아파트 입구의 그 헌옷들 중 잠옷도 꺼내 빨아입었고, 연수차 미국 갔을 때 대학 기숙사 출입구 옆에 있던 통에서 속옷도 건져 입었다. 잘 입었고 아무 병도 걸리지 않았고 또 재활용에 일조를 한 것 같아 기분도 좋았었다.- 우리 아파트에 매일 열심히 재활용쓰레기 분리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그 분을 볼 때마다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우리집에서 나오는 것들을 꼭꼭 잘 모아 그 분 작업공간인 노인정 옆 공간에 갖다놓는 것 밖에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쉽없이 모으시는 것들이 어쩌다 큰 트럭이 와서 모아가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혼자 쓰레기장과 분리창고 사이를 왔다갔다 하시는 모습은 우리 아버지의 묵묵한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내가 사는 이곳 삼척만 해도 시내에 있던 몇몇 고물상이 점점 외곽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가끔 길에서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이런저런 재활용품을 모으는 분들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이 외곽에 있는 고물상까지 모은 것들을 어떻게 팔러 가실 수 있을지 걱정된다. 물론 많이 모아놓고나서 고물상에 연락하면 와서 한꺼번에 가져가긴 하지만 그 정도로 모으기 위해서는 별도의 저장공간이 있어야 한다. 조그만 집에 그런 것들을 정리하다보면 집안의 웬만한 공간이 전부 재활용쓰레기로 가득차야 할 텐데 말이다. 전에 아파트 옆 작은 공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아놓은 박스 더미에 불이 붙은 적이 있다. 속이 상했다. 그걸 모으느라 하셨을 고생을 생각하니 기껏 모아놓은 것들 다 팔아봐야 몇 만원 되지 않을 것임에도 잿더미가 된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매년 한 권이라도 사회학과 관련한 책을 읽어보자는 막연한 결심-아니, 생각-으로 신문 책소개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지은이 제프 패럴-콜린 패럴 아님, 하하-은 사회학과 범죄정의학, 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데 이 책에는 그의 전공과 관련한 통찰이 곳곳에 드러난다. 한 대학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다음 학기에 다른 대학에서 자리가 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8개월간 현장에서 진행된 생활 겸 연구라고 저자가 책에 썼고 홍보문구도 그러하지만, 뭐 솔직히 내 생각엔 그래도 다른 대학에 자리가 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는 상태였던 것 같아 약간 과장이라는 느낌도 있다. 원제는 Empire of Scrounge라고 한다. scrounge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봤다. ‘찾아 모으다’, ‘훔치다’, ‘훔치려고 기웃거리다’, ‘뒤지다’ 등등의 뜻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미국에서 재활용품 수집, 혹은 쓰레기 분리수거가 범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캔을 줍거나 병을 모은 사람들은 거의 사문화된 규정이라고는 해도 언제라도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과태료나 벌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에 갔을 때 미국 사람들이 전혀 분리수거를 안하고 쓰레기통에 그냥 마구 버리는 것을 보고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웠는지 기숙사에서 만난 일본여학생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작년 하와이 갔을 때 거의 비슷한 일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이리 수준이 낮을까 라고 생각했다. 혼자 미국 동부여행을 하던 중 캐리어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아 파란 비닐봉지에 신발을 담아 캐리어에 걸고 5월달에 버리지 못한 낡은 다운점퍼를 걸치고 뉴욕이며 시카고며 지하철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거기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재활용쓰레기를 모으는 노숙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 큰 유대감이 들기도 한다. 고속도로변에서 많은 알루미늄 캔을 주우면서 음주운전자의 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추론하거나, 집밖에 버려진 이런저런 책과 물건들을 보며 거기 사는,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맞춰보고 심지어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그게 미국이라는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속성에서 기인한 것임을 분석하는 제프 패럴의 학자로서의 모습은 곳곳에서 보인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은, 말 그대로 책 겉장에 쓰인바,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성찰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범죄학자-요즘 미드에 빠져있는 나로서는 criminology라는 게 내용은 잘 모르지만 왠지 친근하다-로서의 제프 패럴은 쓰레기가 가치 없는 것으로 버려졌다가 골동품이니 뭐니 하여 소중한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낙인이론이 범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고“ 적었다. 결국 사회적으로 특정한 행동을 범죄로 이름 짓는지 여부에 따라 범죄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처럼 ”물건 자체보다 어떻게 이 물건에 대한 의미가 변화되어왔는지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가 결정된다“. 쓰레기를 모아 돈만 번 것이 아니다. 이 사람 참 착하다. 옷가지와 신발을 실어다 노숙자 보호소에 갖다주고 캔음식은 푸드뱅크로, 담요나 수건은 깨끗한 걸로 골라 동물보호소에 보낸다. “재활용을 위한 ... 정직한 노동에서도 기쁨을 맛”보면서 나이키, 갭 등의 옷가지를 골라내면서 저임금 아동노동자들을 생각한다. 그래서 읽다보면 쓰레기가 쓰레기로 대접 받는 미국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덜 불편하다. 집에서 바닥재를 뜯어내는 ‘해체’작업을 하며 허리에 연장벨트를 뜯어내는 데리다를 봤다고 하는 구절을 보면 빙긋 웃게된다. 그는 공병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일하는 것을 보며 “인종과 배경을 넘어선 민주주의적 평등을 만”나기도 한다.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하여 나름 예술품을 만드는 제프 패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낡은 옷을 뜯어 가끔 바느질하는 나와 참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반갑다. 소비문화, 빈부격차, 물질주의, 글로벌 경제의 대량생산, 낭비로 인한 만족을 모르는 소비문화를 돌아보며 아나키즘에 까지 이어지는 반문화로써의 쓰레기 수집이라는 위상을 세우는 이 책이 고맙다. “뉴욕에 사는 베트남 출신 노숙자는 “온 도시의 알루미늄 캔을 주우러 다니는 스스로를 ”어쩌다 보니 환경주의자가 된 사람“으로 부른다”고 한다. 쓰레기에 관심을 갖고 분리수거를 하다보면 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뒷부분에는 역시 학자인 작가가 꽤 긴 참고문헌을 포함한 후주를 붙여놓았다. 그걸 읽는 재미도 좋다. 그런데, ‘부서진 창문 법칙’을 반박하는 제프 페럴의 ‘The Aesthtics of Cultural Criminology'라는 논문이 있다는 주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구글에서 찾아보았으나 결국 못 찾았다. 언젠가 볼 기회가 있겠지. 오자는 5개 찾았다. 22, 51, 53, 146, 219쪽이다. |